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204화


하지만 동천은 사부의 곡소리를 계속 듣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동천은 잠시동안 사부를 울게 해준 다음 됐다싶을 때 끼어 들었다.

“흑흑. 사부님께서 우시니 제 가슴도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 우세요. 안 그러면 애써 관리해오신 피부가 망가지잖아요.”

피부 얘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역천의 한 맺힌 울음소리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그는 급히 몸을 돌린 후, 두 손으로 양 볼을 살살 문지르며 피부에 자극을 주고 나서야 환한 얼굴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허허! 이 사부의 말씀이 잠시 빗나갔구나. 그리하여 이 사부는 오늘 너에게 2단계 신법인 귀영낙화(鬼影落花)를 약간 가르쳐주기 위해 온 거란다.”

약간이라도 좋았다. 그 동안 같은 동작만을 반복해서 내심 질려있었던 동천은 솟아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얼른 가르쳐주세요. 히히, 얼른 요!”

역천은 의욕에 불타는 제자의 모습에 흐뭇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아,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짝짝!

역천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문 쪽에서 한 사내가 긴 막대기를 가지고 신속히 다가와 역천의 뒤에 공손히 시립 했다. 자연 동천의 눈알이 긴 막대기들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세히 눈여겨보니 각이 진 막대가 아니라 봉처럼 둥글었다. 헌데 또 봉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길어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냥 긴 막대기라고 하는 게 어울릴 것 같았다.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인 동천은 저게 뭐에 쓰는 물건이냐고 사부에게 물어보려고 입을 떼었지만 그보다 역천의 목소리가 간발의 차로 빨랐다.

“놓고 가거라.”

“예.”

역천의 명에 사내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나서 막대를 조심스레 옆으로 뉘인 후 재빠르게 사라졌다. 역천은 희미하게 웃음을 짓더니 막대기를 집어서 물이 차있는 훈련장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는 날쌘 제비처럼 날아 정 중앙에 그 막대기를 거침없이 꽂아 버린 후 발로 막대기를 차서 그 반동의 힘으로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온 역천은 그 자신도 자신의 신법에 흐뭇한 마음을 가졌지만, 이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오륙 장을 날아가 다시 되돌아 온 광경을 목격한 동천과 도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도연은 말이 없었으나 흥분을 감추지 못한 동천은 역천을 우러러보았다.

“싸부! 존경하옵니다! 역시 대단하시고 위대한 분이십니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역천은 기분이 째졌지만 무공을 가르쳐주기에 앞서 사부가 먼저 흥분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뒷짐을 지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렸다.

“허허, 쑥스럽구나 제자야.”

동천은 그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닙니다! 쑥스러우시다니,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그 누가 사부님처럼 사뿐히 오장 여를 날아서 막대를 꽂고 공중에서 다시 돌아오겠습니까?”

이에 역천의 머리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긴 하다만……. 허허허!”

자기 자신에게 금칠을 해서 멋쩍어진 역천은 너털웃음을 짓고 나서 재빨리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귀영낙화의 운용법을 가르쳐 주겠으니 깊이 새겨 듣거라.”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한 동천은 자세를 가다듬고 말했다.

“예, 사부님.”

역천은 잠시 도연을 바라보았으나 중요한 구결은 제자에게 전음으로 가르쳐주더라도 무공에 대한 지식을 넓혀보라고 도연이 듣는 것을 내심 허락했다.

“운용법을 가르쳐주기에 앞서 귀영낙화의 근본을 가르쳐주겠다. 귀영신법의 2단계인 귀영낙화는 ‘위에서 아래로 얼마만큼 자연스레 착지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떠한 경우에 처할지 아무도 모른단다. 더군다나 한평생 피를 보는 무림인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열에 아홉은 착지가 불안정해진다. 그리고 점점 떨어지는 높이가 올라갈수록 그러한 현상은 두드러지기 마련이지. 그래서 본문의 사조들께서는 최적의 자세를 연구하시어 마침내 귀영낙화라는 신법을 만들어내신 거란다. 그렇다면 너는 떨어질 때 무사히 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잠시 머리를 굴려 본 동천은 예전에 감송에게 줏어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대충 대입시켜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동천은 꽤나 고심하는 척 하다 말했다.

“으음. 아무래도 흔들림이 없는 부동심(不動心)이 아닐까요?”

역천은 뜻밖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가 원했던 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 그것도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허나, 결론적으로 부동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단다. 그것이 뭐냐!”

역천은 약간 뜸을 들인 다음 대답을 기다리는 제자에게 입을 열었다.

“바로 엄지발가락의 힘이다!”

역천은 자신 있게 말했지만 듣는 동천은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장난 하나…….’

동천이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았다. 발가락 사이의 때를 벗길 때 심심하면 보는 엄지발가락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아마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주먹이 날라 갔겠지만 동천은 그 상대가 사부라서 참아야만했다. 제자가 말은 안 했지만 역천이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어? 못 믿겠냐? 그렇다면 좀더 현실적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마.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바닥을 디디는 발의 면적이 클수록 큰 충격을 느끼게 되어있다. 그리고 발뒤꿈치로 디딜수록 그 충격은 배가되지.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갈 때 무의식 적으로 엄지발가락을 사용하는데 우습게도 떨어져 내릴 때에는 그렇지 못하단다. 왜 그럴까? 궁금하지 않느냐?”

역천의 이야기에 다시 흥미가 일어난 동천은 곧바로 대답했다.

“궁금합니다!”

역천은 만족의 웃음을 띄우며 살짝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래 궁금하기도 하겠지. 흐흐, 그것이 뭐냐? 그것은 바로 무의식 안의 공포심이다!”

“예? 웬 공포심이오?”

앞부분을 빼먹은 제자의 반문에 역천은 기분이 약간 상함을 느꼈다.

“그냥 공포심이 아니라 무의식 안의 공포심이니까 까먹지 말아라. 그리고 이해가 안 간다면 네 경우부터 생각해 보거라. 너는 위에서 뛰어내릴 때 엄지발가락만 쓴 적이 있더냐?”

생각해보니 없었다. 혹여, 그런 적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여러 가지 옛 일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역시나 허사였다.

“으음. 듣고 보니 없네요?”

역천은 다시 미소를 떠올렸다.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못 했을까? 물론 거기에는 엄지발가락의 효용을 모르는 것도 있을 테지만 설혹 안다고 해도 그렇게는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뭐냐고? 좋아 가르쳐주마. 허허! 당연히 그렇게 뛰어 내렸다가는 엄지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더군다나 너무 높으면 아예 엄지발가락을 쓸 엄두도 못 낼걸? 안 그러냐 제자야? 믿기 어려우면 지금 엄지발가락만 사용해서 위아래로 뜀뛰기를 해보거라.”

“그러죠 뭐. 그게 어렵겠어요?”

약간 미심쩍은 마음을 가지고 사부의 말대로 뜀뛰기를 시도한 동천은 이만한 것에도 엄지발가락이 아픈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파요, 사부님!”

제자의 그런 모습에 역천은 정색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그럼 이 사부가 안 아픈걸 가지고 아프다고 했겠냐?”

사부의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한 동천은 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너무도 신기해서요. 제가 어찌 사부님의 말씀을 못 믿겠어요. 당연히 믿죠!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믿는 것하고, 체험했을 때 놀라워하는 것하고는 조금 다르잖아요? 헤헤. 바로 지금이 그런 경우예요.”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은 역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헤벌쭉거렸다.

“크헤헤! 그럼 그렇지. 크헤헤헤-헥? 콜록콜록! 켁켁! 후우, 하마터면 사레 걸려 죽는 줄 알았네.”

죽었다가 살아난 역천은 곧이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제자의 시선을 느꼈다. 이에 역천은 은근히 쪽팔렸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

“험! 어쨌든 그렇게 때문에 뇌리에서는 공포심을 갖고 무의식 적으로 엄지발가락의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엄지발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고. 이제야 알겠느냐?”

동천은 사부의 행동에 웃음이 다 날 지경이었지만 속으로 웃음을 참아가며 고개를 숙였다.

“예, 사부님. 너무도 귀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맛에 사부를 하는 것이리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역천의 생각은 그랬다. 역천은 구름을 밟은 기분으로 사랑스런 제자에게 말했다.

“오냐. 그렇다면 이제 운용법을 일러 줄 터이니 잘 듣거라.”

“예.”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