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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05화


이때만큼은 동천의 모든 신경세포가 역천의 입 쪽으로 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동천이 고대하던 목소리가 사부인 역천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전음으로 말이다.

『애초에 귀영신법은 귀의흡수신공에서 떨어져 나왔으므로 운용법의 모체는 귀의흡수신공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귀영낙화는 착지하는 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귀의흡수신공이 제격이라 할 수 있지. 귀의흡수신공의 묘리는 회전력이다. 그리고 귀영낙화 또한 회전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착지할 때 몸을 돌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기의 흐름만을 회전시키란 소리다. 몸을 돌리는 것은 좀더 빠르게 착지할 때나 파괴력을 높일 때 쓰이는 것이므로 지금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에 따르는 기의 행로는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을 따르되 발바닥에 이르러서는 가운데인 용천혈을 지나 엄지발가락의 끝인 은백혈로 정해진다. 구결은 귀의흡수신공을 따르면 될 것이고, 귀영낙화를 시전 할 때 주의 할 점은 지면에 내려설 때 네가 깃털이고 또 깃털을 밟는다는 느낌으로 착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 사부님!”

결과적으로 회전력에 관한 이야기와 운기행로의 이야기밖에 없자 동천은 어느 정도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의흡수신공은 매일 연마하는 것이고, 기의 행로도 족태음비경을 따르되 끝에 가서는 용천혈로 지나서 은백혈로 보내면 되는 것이니 쉽게 생각한 것이었다. 한편, 역천은 자신감에 차있는 제자의 모습에 절로 흐뭇한 미소를 뿌렸다.

“그래그래. 그렇다면 이 사부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 터이니 그 다음에 따라해 보거라.”

말을 마치고 난 역천은 신발 한 짝을 벗고 나서, 동천이 뭐라 하기도 전에 오른쪽에 늘어져있는 지붕 위로 가뿐히 올라갔다. 그리곤 이장 여 거리에 자신이 꽂아 두었던 막대위로 뛰어올라 무리 없이 착지를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동천과 도연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착지한 역천의 발을 보니, 엄지발가락만으로 무리 없이 신형을 가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역천이 착지할 때 막대의 흔들림과 사람의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아까 그의 말처럼 떨어지는 깃털이 부드럽게 막대기 위로 내려앉은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너무도 놀라워 한참동안 멀거니 바라보던 동천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존경하옵고, 또 존경스러운 사부님! 이 제자에게 그 뛰어난 신법을 다시 한번 견식 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허허, 그게 뭐 어렵겠느냐? 다시 한번 보거라.”

바닥에 내려왔다가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한 역천은 신이 났는지 동천이 말이 없어도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게 되었다.

“크헤헤헤! 어때? 끝내주지?”

맛있는 떡도 계속 먹다보면 질린다고, 이러한 역천의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도연은 계속 눈을 빛내며 역천의 행동을 주시했지만 슬슬 지겨워진 동천은 그만 끝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들었다.

“사부님! 이 제자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자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혼자 재미있게 놀고있던 역천은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재빨리 동천의 옆으로 돌아온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힘을 주어 말했다.

“오냐! 이 사부는 네가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자, 해보거라!”

동천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자신 있게 벽 쪽으로 걸어간 동천은 자리에 멈춘 후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세월아 내월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떻게 올라가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자신 있게 왔다가 지붕 위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냥 물러선다는 것은 동천의 같잖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자야, 왜 그러느냐?”

등뒤에서 들리는 사부의 목소리에 오만가지 표정을 다 짓고있던 동천은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헤헤, 갑자기 이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려니까 막막해서요.”

제자의 이야기에 역천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못 올라가? 왜? 귀영분광을 시전 한다는 느낌으로 벽을 차 오른 다음, 분광이 아닌 실제 몸을 퉁기듯이 올리면 되는데 왜 못 올라간다는 거냐?”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동천은 무언가 확 트이는 느낌을 전해 받았다.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 동안 땡땡이를 쳐가며 여러 가지 시도를 제껴둔채 오직 직선 일변도로만 달렸으니 행여나 그런 생각이라도 해보았겠는가? 사부의 말을 듣고 깨우침을 가진 동천은 정신을 차린 후 그게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아이구 사부님도 참! 그거야 저도 알고있죠. 하지만 아는 것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 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역천의 얼굴에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냐? 허허, 난 또 뭐라고. 그럼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해보려므나. 때로는 신중한 것도 필요한 거니까 말이다.”

“예, 사부님.”

고개를 끄덕이고, 정말로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신 동천은 그의 사부가 일러준 대로 뛰어 오를 수 있는 곳까지 뛰어 올라서 귀영분광을 시전 했다. 뛰어 오를 때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높게 뛰어올라 잠깐 당황했지만 오히려 그 덕에 지붕 위가 가까웠으므로 올라가는 것은 수월했다고 볼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올라온 동천은 묘한 기쁨을 느끼며 떠오르는 햇살을 마주보았다.

‘킬킬킬! 난 역시 천재라니까?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속으로 낄낄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던 동천은 겨우 진정시키고 몸을 돌려 역천이 꽂아 놓은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터무니없이 조그만 면적 위에 과연 자신이 무사히 착지 할 수 있을까 다소 두려움도 일었지만 도연이 자식도 지켜보는 마당에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기가 뭐 했는지 동천은 마음을 다잡고 고함을 지르며 다리에 힘을 박찼다.

“아랏찻차!”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비교적 쉬웠기 때문에 동천의 신형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막대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내공을 모아서 족태음비경을 따라 기를 회전시킨다는 마음으로 순환시킨 후 용천혈을 지나 은백혈로 보낸다. 좋았어! 감 잡았쓰!’

순식간에 모든 준비를 마친 동천은 막대 위에 발을 디디기 위해서 다리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밑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얼레? 어, 어? 으악!”

풍덩!

막대 부근에 채 가기도 전에 밑으로 뚝 떨어진 동천은 균형을 잃고 밑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쳤다. 흙탕물에 떨어진 동천은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쏜살같이 상체를 일으켰다.

“푸아! 쿨럭! 켁켁켁! 으으, 퉤퉤!”

본의 아니게 흙탕물을 마셔야했던 동천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반면 역천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대소를 터트렸다.

“푸헐헐! 처음 치고는 잘 했다. 이 몸이 보기에도 자세는 안정되었어. 큭큭, 거리만 잘 계산하고 뛰면 될 것 같구나. 으헤헤헤!”

도연은 동천의 꼬락서니를 보고 나서려 했지만 이내 그만 두기로 했다. 괜히 주군의 심사를 건드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잡쳐있던 동천은 시선을 내리깔고 사부의 신발 부분을 은근히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서 사부에게 대들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동천은 억지로 웃었다.

“헤헤. 그, 그렇죠? 사실은 저도 뛰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 유지해 보려고 노력은 했어요. 어쨌든 노력이 중요한 거잖아요?”

역천은 말 한번 잘했다는 식으로 나섰다.

“고롬! 그렇고 말고!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하지 않는 놈은 다 필요 없어! 허나, 그런 면에서 사랑스런 이 몸의 제자인 너는 충분히 합격점이라 할 수 있지. 오오, 너의 그 빛나는 의지가 이 사부의 눈을 시리게 하는구나! 제자야. 자신을 가져라! 자신! 자신! 아자! 아랏차!”

사부의 행동이 너무도 광적이었는지라 동천은 무서운 마음에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네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까 흥분을 좀…….”

자신이 흥분했다는 소리에 역천은 짐짓 모른 척을 했다.

“내가 언제 흥분을 했었더냐? 험! 그런 건 넘어가기로 하고, 다시 해 보거라.”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대충 얼굴의 흙을 떼어내고 지붕 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심전력한 탓에 막대기 위를 지나쳐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동천은 흙탕물에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미리 대비를 했음인지 어설프나마 귀영낙화로 발을 디뎌 착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비록 막대 위는 아닐지라도 귀영낙화가 성공했다는 사실에 동천의 자신감은 눈에 띄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섯 번째 시도를 한 끝에 동천은 막대 위에 착지할 수 있었다. 엄지발가락에 막대기의 감각이 느껴지자 동천은 내심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내공으로 엄지발가락을 보호하고 있었다고 하나 연마되지 않은 발가락인 탓에 통증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크에엑-! 나죽네!”

발을 디디는 동시에 극통(極痛)을 느낀 동천은 발을 감싸쥐며 등부터 떨어졌다. 곧이어 철푸덕 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얕은 물위를 뒹구는 소리가 질펀하게 들려왔다.

“으아아……. 아퍼. 아퍼! 흑흑흑!”

“제자야! 왜 그러냐?”

아무리 아파도 눈물을 짜낼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이상히 여긴 역천은 재빨리 제자를 끌어내어 신발을 벗겨보았다.

“으잉? 부러졌잖아?”

사부가 옆에 있어서 억지로 아픔을 참고있던 동천은 부러졌다는 소리에 놀라하며 마음놓고 비명을 질러댔다.

“예에? 뿌, 뿌러져요? 아이고 아파라! 흑흑, 아이고! 나 동천이 여기에서 발가락 병신이 되는구나!”

아픈 다리를 허공에 치켜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 동천은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엄지발가락에서 뿌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내려서는 것과 막대 위에 내려서는 것을 동일시한 나머지 너무 방심해서 생긴 결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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