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06화
“제자야, 좀만 참거라.”
역천은 위로 심하게 뒤틀려있는 제자의 엄지발가락을 무식하게 잡아채서 당긴 다음 천천히 뼈를 맞추었다.
우둑. 우두둑!
“크에엑! 동천 죽어유!”
동천은 두 팔을 바둥거리며 바닥을 내려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역천은 상관 않고 손톱으로 엄지발가락 옆 부근을 째서 죽은피를 흘려보내고 나서야 동천에게 말했다.
“아직도 죽겠냐?”
사부의 물음에 동천은 발악을 멈추고 부러진 발가락을 보았다. 심하게 부어있었지만 아까 만큼 아프진 않았다. 신기하게 생각한 동천은 엄지발가락을 살짝 구부려보았다. 그러자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오메, 오메 아픈 거! 끄악! 하늘, 하늘님!”
멍청하게 발가락을 움직여서 부러진 뼈가 이탈한 것이었다. 동천이 너무도 고통스러워하자 마침내 도연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동천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울먹이며 소리쳤다.
“흑흑! 씨부랄! 너 같으면 괜찮겠냐? 아이고!”
이런 경우를 처음 대해서 잠시 어이가 없었던 역천은 금새 정신을 차리고 실신지경에 처한 제자의 발가락뼈를 다시 맞춰주었다.
“후우! 제자야. 아물지도 않은 뼈를 움직이는 놈이 어디에 있더냐? 안되겠다. 아무래도 약전에 가서 약을 바르고 침을 놓은 다음 붕대로 압박 고정해야겠구나.”
역천은 동천을 안아들고 사라지듯 자리를 벗어났다. 깜짝 놀란 도연은 얼른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연이 신법을 발휘해 약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치료가 끝난 후였다. 동천을 특실로 데려와 모든 치료를 마치고 깨끗한 물에 손을 씻고 난 역천은 아픈 것을 억지로 참고있는 제자에게 다소 안쓰러운 표정을 건넸다.
“아무래도 보름까지는 뼈가 굳어야하고 다음 보름까지는 적응기간을 거쳐야 하므로 한달 동안은 수련을 못할 것 같구나. 그러니 그새 이론 공부나 하거라.”
동천은 콧물을 훌쩍 들이키고, 밖으로 나가는 사부에게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평소 같으면 한 달이나 쉰다고 속으로 히히덕 거렸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런 마음이 일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런 아픔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사부가 마련해준 목발을 집고 일어난 동천은 자신의 앞에서 알짱거리는 도연을 노려보았다. 주군의 시선을 받은 도연은 재빨리 말했다.
“제가 마차를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이에 동천은 싸늘하게 말했다.
“됐어, 이 자식아. 쳇! 쓸모 없는 놈.”
도연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충격을 먹은 듯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의 주군이 쩔뚝거리며 그를 스쳐지나감에도 말이다.
“…….”
도연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의 초점은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연은 그런 눈으로 눈앞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허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뇌리에는 싸늘한 주군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메아리치고 있을 따름이었다.
‘쓸모 없는 놈. 쓸모 없는 놈. 쓸모 없는…….’
순간 알 수 없는 자괴지심(自愧之心)이 도연의 내부를 휩쓸고 일어났다. 도연의 이성은 풍랑을 만난 듯 위태롭게 버티기 시작했다. 아팠다. 너무나도 아팠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진전은커녕, 퇴보하는 듯한 자신의 무공 때문에 자신을 가르쳐주는 장로님들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는데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군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도연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도연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연은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도연은 갑자기 소리를 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치료를 하던 의원들이나 일꾼들, 그리고 환자들까지 놀라서 달려올 정도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도연은 신형을 돌려 벌게진 눈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하나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과 마주친 사람들은 온몸이 쭈뼛해짐을 느끼고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침묵을 고수하던 도연은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그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달려나갈 뿐이었다. 얼마나 달렸는지 몰랐다. 뛰고 또 뛰었다. 그런 도연이 멈춘 것은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나서였다. 도연의 얼굴은 바닥을 거세게 후려쳤다.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도연이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성이 고통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큭큭큭!”
도연의 악다문 잇새로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그래. 나는 쓸모 없는 놈이야. 그래.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던 도연은 얼마 후 힘없이 일어섰다. 잠깐 몸이 비틀거렸지만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부러져 마차를 타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동천은 쓰러지듯 침대 위로 몸을 뉘이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동천은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깨어났다. 만사가 다 귀찮았던 동천은 점심을 거를까 했지만 결국, 배고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언제나 탁자 위에 준비되어있는 과일과 떡들로 대충 끼니를 때운 후 다시 잠이 들었다. 그후, 동천이 다시 깬 것은 정확히 일각 후였다.
“에이, 씨발. 그래도 배가 고프네?”
신경질 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조심조심 기어서 머리맡에 늘어져있는 줄을 당겼다. 소연을 부르려는 것이다. 하지만 줄을 당겼음에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 계집애가 감히 안 와?”
동천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채 침대에서 내려와 목발을 집고 소연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소연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 이게 어디로 갔지?”
점심에 소연이 어디로 갈리 없었다. 그랬다가는 동천의 가혹한 보복이 뒤따를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점을 잘 알고 있었던 동천은 잠시 머리를 굴려보다 마침내 그녀가 왜 없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쳇! 정화년이 아직도 붙잡고있나 보구만? 하여간 그년도 문제야. 정신을 못 차렸어. 그때 화정이에게 얻어맞았으면 됐지 왜 사서 고생이야? 심심하면 빈둥거리다가 나중에 시집가면 얼마나 좋아? 누가 뭐라고 그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동천 좋고 정화 좋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안 그래?”
혼자 열나게 떠들어대던 동천은 이내 지겨워졌는지 근처에 돌아다니는 시녀를 불러서 끝끝내 밥을 먹고야말았다. 물론, 먹고 난 다음에 동천이 취한 행동은 자빠져 자는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잔 다음 배고프면 일어나서 밥 먹고. 동천은 일주일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단순한 일상생활을 반복했다. 지겹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때 그 일이 있은 후로 소연은 점심 전에 사정화에게 갈 수 없었다. 대신 아침 시간에는 사부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지금처럼 동천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가야만했다.
“주인님. 상을 들여보내겠습니다.”
침을 꿀꺽 삼킨 동천은 얼른 소연을 재촉했다.
“누가 말려? 빨리 가지고 와!”
화정이와 같이 들어온 소연은 여러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그 동안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방안에서만 빈둥거리던 동천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밥 먹을 때였다.
“자자, 먹자! 아구아구! 얌냠.”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동천 덕에 가지가지 쌓여있던 고기와 반찬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화정이는 옆에서 먹다말고 자신의 주인이 먹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꼈음인가? 동천은 음식을 씹어삼킨 다음 화정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훗! 화정아, 아무리 이 주인이 잘생겼어도 식사할 때만큼은 자중해야지. 그래야 새 나라의 어린이야. 자자, 밥 먹어.”
어째서 화정이가 새 나라의 어린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화정이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바아아보.”
“켁켁! 물! 무울! 꿀꺽꿀꺽!”
소연이 건네준 물을 잡아채듯 마신 동천은 상기된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 뭐시기? 바아보? 너 지금 바보라고 했냐?”
화정이는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말했다.
“바아보오.”
너무도 충격적인 말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동천은 또 다시 바보라고 하는 화정이 때문에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언놈이야! 언놈이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 화정이에게 이따위 개 같은 욕을 가르쳐줬어? 이런 씨팔 놈! 죽여버릴 테다! 아니지? 꼭 남자일리 없지? 그럼, 소연이 너냐? 응? 너야?”
억울하게 날벼락을 맞을 수 없었던 소연은 믿는 구석이 있었던지 제법 용기있게 진범을 가르쳐주었다.
“실은 그 욕은 아가씨께서…….”
“아가씨고 뭐고 소용없어! 지가 아가씨면 다야? 다냐고! 아가씨……. 그러니까, 으음. 그럴 수도 있지 뭐.”
죽일 듯이 소리를 치던 동천은 급격히 싸늘해지는 이성을 되찾고 나서야 급히 꼬리를 말았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 없었던 동천은 소연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래서 소연에게 들은 이야기는 실로 간단한 일이었다. 초기 대련 시 지고만 살았던 사정화는 어느새 인가 화정이의 한계를 파고들어 동등해지더니 이제는 화정이를 다치게는 못해도 그녀가 당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따라 사정화에게 생겨난 버릇이 있었는데 그녀가 화정이와 대련 시 결정타를 먹이면 언제나 화정이에게 ‘바보.’ 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화정이는 그 단어를 새겨들었던 것이고 오늘 그것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꼬투리를 잡을게 전혀 없자 동천은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도연이 자식은 뭐하냐? 요새 통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