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09화
“내가 뭐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불만 없지?”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있어도 없다고 해야했다.
“그럴 리가요. 말씀하시지요.”
이런 진행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던 동천은 자신의 천재성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천은 기분 좋게 자신의 질문 사항을 꺼내 들었다.
“현재 백년 근 산삼의 재고가 어떻게 되지?”
때마침 방금 재고파악을 했는지라 창고지기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백년 근이라면 3뿌리가 있습니다.”
“오오! 그래? 허면, 그건 됐고. 이곳에 50년 이상 된 미늘버섯 6개와 동작풀 30개. 다면양류(多面楊柳) 세 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년 근 정도의 매화약주(梅花藥酒) 한 병이 있는가?”
갑작스레 물어오는 고급 약재였으나 창고지기도 나름대로 이 생활 30년이라는 자랑할 만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소전주님. 죄송하지만 모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늘버섯과 동작풀은 여유분이 좀 남아 있으나 다면양류는 조금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면양류는 익히 들어서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천은 무조건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물론, 이 사실을 알기 전이었으면 상황이 달랐을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래? 헌데, 왜 재료들 중에 매화약주는 뺀 건가?”
조금은 가라앉은 말투였기에 창고지기는 좀 더 신중을 기해 말했다.
“헤헤, 제가 감히 빼 먹을 리 있겠습니까? 그 문제를 잠시 재껴 논 것은 그 매화약주의 관리는 이곳 담당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천의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관리하는 게 아니라고? 그럼 어디인데?”
“술을 마시는 데에는 여자가 종종 필요한 남자들이 있기 때문에, 모름지기 술이란 여자와 관련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미인이 따라주는 술맛이 남다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슬슬 짜증이 일어난 동천은 손을 들어 상대의 말을 제지시켰다.
“잘 알아들었어. 그런데 말야. 내가 아주 조금 짜증이 날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이 몸에게 결론만 말해. 알았어?”
애새끼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한 창고지기는 반사적으로 짧게 대답했다.
“요림(妖林)에 있습니다!”
이에 동천은 더 짧게 되물었다.
“요림?”
“예, 원래는 술을 관리하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한 200여 년 전 요림에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화약주는 제가 감히 대령해 드릴 수가 없사오니, 소전주님께서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천은 슬슬 자신의 턱주가리를 쓰다듬었다.
“요림이라? 그곳의 림주님이 요화(妖花) 금요랑(金妖郞)님이지 아마?”
창고지기의 고개가 재깍 수그려졌다.
“역시, 소전주님이십니다!”
창고지기의 아부에 으쓱해진 동천은 조그마한 흰 이를 드러냈다.
“흐흐. 내가 이 정도라네.”
이 정도고 저 정도고 지랄이고, 어쨌든 무사히 위기를 넘겨낸 창고지기는 소전주의 입에서 무슨 개소리가 튀어나오기 전에 다면양류 건을 언급했다.
“그리고 말씀하신 다면양류는 그 소재를 아나 가져오기가 무척 힘겹사옵니다.”
동천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도 그럴 것이 재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다른 재료가 수백 개나 더 있어도 말짱 헛것이기 때문이었다.
“뭐? 이건 또 뭔 소리야?”
창고지기는 본래의 말투로 돌아온 소전주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재빨리 해명에 나섰다.
“그게 그러니까 아시다시피 다면양류는 음습한 곳에서 자라서 변태를 하는데 그 지대에 가장 적합한 곳에 살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다면양류가 살각의 내부에서 자리하고 있다는 말인데, 그걸 채집해오기 난감한 게 단 한 그루밖에 다면양류가 바로 살각의 각주께서 애지중지하는 하는 나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 미천한 것들이 감히 그분께 잎사귀를 따가도 되냐고 말씀을 드릴 수 없기에 그러는 겁니다. 이 문제만큼은 소전주님께서 이해해 주십시오.”
동천은 거의 기는 듯 주저앉아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울먹이는 창고지기를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그래서 다리는 가만히 놔두고 대신 싸대기를 후려쳤다.
“이새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못 구하겠다? 이 씨필 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너, 혹시 이 생활이 맘에 안 드냐? 그런 거야? 그럼 말만 해. 내가 당장 짤라 줄게.”
창고지기는 뺨의 얼얼함도 잊고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아닙니다요, 소전주님! 다면양류요? 한달! 아, 아니. 2주일만 여유를 주십시오! 그렇게 라도 시간을 주신다면 제 목숨을 걸고라도 꼭, 대령해 드리겠습니다! 소전주님. 제발!”
지금의 지위에서 박탈당한다면 거의 죽음이나 마찬 가지였다. 그 동안 그가 아랫것들에게 할 짓 못할 짓 해오면서 살아왔는데 만약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그는 사흘도 못 버티고 싸늘한 시체로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두려운 나머지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보자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흐음. 정말로 2주면 가능 해?”
그제야 창고지기는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약조를 지껄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그것은.”
주춤거리는 상대의 행동에 동천의 눈이 절로 치켜 떠졌다.
“이런 잡놈을 봤나? 그럼, 거짓말을 했다는 거냐? 것도 감히 이 몸에게?”
누구는 하고 싶어서 했겠는가? 동천은 다 자기 탓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다. 한편,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창고지기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결과가 뻔하다면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쪽에 자신의 목숨을 걸기로 작정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찌 거짓말을 고하겠습니까. 2주 맞습니다! 예. 그렇고 말고요.”
만족한 대답을 들었는지 동천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좋아좋아. 그럼, 매화약주는 이 몸께서 처리를 할 터이니 자네는 다면양류를 맡게나. 세 근일세. 알겠나?”
“예, 예.”
동천은 고개를 숙여대는 창고지기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있어. 히히!”
창고지기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을 지껄였다.
“예, 예.”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천이 나간 후에도 계속,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던 창고지기는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다리에 힘이 빠져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내가 미쳤지. 그걸 어떻게 2주안에…….”
창고지기는 호흡이 점점 거칠어짐을 느끼곤 손을 가져가 심장을 지긋이 눌렀다. 심장이 터질 듯 세차게 뛰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있는 것이긴 한데, 정작 창고지기의 눈동자는 허무 그 자체였다.
“…….”
뭐라 중얼거리며 의미도 없는 말을 지껄여 보고도 싶었으나 웬 일인지 그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귓가에 희미하게 무언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릭! 끼리릭!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닫혀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만큼은 그래도 창고지기가 왕이었다. 그런데 무례하게도 아무런 말 없이 들어오다니. 이렇게 된 마당에 화가 날리 없었으나 그래도 자존심은 있었다. 그는 거칠게 무례한 자를 돌아보았다. 그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창고지기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이, 이공자님이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알고 보니, 상대는 이공자 공영수였다. 그는 창고지기의 물음에도 대답 않고 마냥 주위를 둘러보다 마침내 입술을 떼었다.
“내 본의 아니게 지나치다 사제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네.”
처음에 창고지기는 흠칫하는 눈치였으나, 조금 머리를 굴려보니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 와서 저런 소리를 지껄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침을 삼키며 은근히 자신의 생각을 비추었다.
“그렇다면 뭔가 도움을 주시려고…….”
공영수는 웃었다. 그러나 동천처럼 경박한 웃음은 아니었다.
“자네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더군.”
공영수는 섣불리 대답을 꺼내지 않았다. 아마도 상대를 좀더 애태우게 하려는 속셈이리라.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공영수는 멋드러지게 성공한 셈이었다. 창고지기는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공영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공자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열심히 충성을 바쳤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상대의 매달림에 공영수는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음.”
제법 눈치가 빨랐던 창고지기는 지금 이공자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마도 지금 재빠른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는 무심히 왔던 것처럼, 그렇게 돌아갈 것이 뻔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길 간절히 기도하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쿵쿵쿵!
“만약, 이번 한번만 도와주신다면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인가? 공영수는 의자를 깊숙이 끌어서 탁자 위에 두 팔을 올려놓았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창고지기에게 말했다.
“차(茶)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