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14화
마법의 성.
“헉헉…….”
한 여인이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 여인은 시녀복 차림이었는데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멈춰선 것은 같은 또래의 다른 시녀를 만나고부터였다.
“매향아! 헉헉!”
매향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초향이 부르는 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 숨 넘어 가겠다. 무슨 일이야?”
초향은 다짜고짜 매향의 팔을 잡고 구석진 자리로 이끌었다.
“이리 와봐.”
깜짝 놀란 매향은 억세게 잡아끄는 친구의 손을 재빨리 뿌리쳤다.
“너 미쳤어? 내가 자리를 이탈했다가 전주님께서 오시면 어떻게 하라고!”
초향은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지금 전주님께서는 절대로 안 돌아오시니까. 이건 내 목숨을 걸어도 좋다고.”
이렇듯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친구의 모습에 매향은 멍하니 친구를 응시하기만 했다. 그녀는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향은 즐기듯 웃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를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너 그 소식 들었어?”
매향은 난데없이 끌고 와서 소식을 들었냐는 물음에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무슨 소식?”
초향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조용한 미소를 그렸다. 그런 그녀의 이마를 타고 한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초향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 후 매향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해주었다.
“글쎄, 요림의 림주님 오른쪽 젖꼭지가 잘렸대.”
“뭐어? 그게 정말이야? 왜?”
기겁을 한 초향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매향의 입을 틀어막았다.
“쉬잇! 소리가 너무 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매향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초향의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미, 미안.”
초향은 매향의 실수를 곧 잊어주었다.
“왜 한 일주일 전쯤에 밤늦게 요림의 마차가 이곳에 당도한 적이 있었지?”
그때 일이 생각난 매향은 나직한 탄성을 내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왔었어.”
“그래. 우리는 그냥 왕래하듯 온 줄 알았던 거잖아.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게 바로 잘려진 젖꼭지를 붙여보려고 왔던 거래.”
친구의 얘기가 신빙성 있게 다가오자 매향은 아까보다 더욱 신중히 물어보았다.
“그래서 요림주님의 꼭지는 어떻게 됐어? 붙였대?”
초향은 미미하게 고개를 저어댔다.
“나도 몰라. 자세한 것은 요림의 상층부에서만 알고 있어. 다만…….”
“다만? 다만 뭐?”
말하기에 앞서 초향의 얼굴에 맺혀져있던 수많은 땀방울들이 마침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때만큼은 초향도 무시할 수 없었던지 팔 소매로 얼굴을 닦은 후 입을 열었다.
“이, 이 일에 소전주님이 관련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어.”
“허-억?”
동천이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매향에게 다른 질문은 필요 없었다. 그녀에겐 방금 전의 경악성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요한 침묵을 깬 것은 매향이었다.
“초향아. 아, 알지?”
초향은 매향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전주와 관련이 된 소문과 문제들은 애초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았어. 나도 살고 싶으니까. 난 단지 너도 조심하라고 얘기해주려고 했던 것뿐이야.”
매향은 자신의 목숨을 미리 구해준 초향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고마워! 역시, 넌 내 절친한 친구야!”
이들에게 동천은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다. 하여튼 후일담이지만 누군가의 입속에서 그 무언가를 꺼내온 금요랑은 역천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 덕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감히 그녀의 그 부분을 잘라 먹은(?) 범인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가 동천이 암흑마교에 들어온 지 2년째인 어느 늦은 봄날의 이야기였다.
“큭큭큭. 이히히히!”
동천은 신바람이 나 있었다. 드디어 단환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모인 것이었다. 헌데 한참을 웃어대던 동천은 어느 순간에 웃음을 뚝 멈추었다.
“아직 속단은 이르다. 으음.”
그렇다. 좋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약재들 말고 또 다른 재료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천은 이 또 다른 재료를 끌어들이는 게 제일 어려운 난관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10세라……. 어디에서 그런 애를 구하지?”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고민이란 동천에게는 적이었다. 동천은 저려오는 머리를 식힐 겸 마루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그런데 때마침 사정화에게 갖다온 소연이 화정이와 같이 돌아오다 개폼을 잡고 있는 동천을 목격하게 되었다.
“주인님!”
소연이 동천을 부르자 화정이가 마냥 좋아하며 따라 불렀다.
“주이니임. 주이, 주이임.”
동천은 약간 안색을 피며 그 둘을 반겨주었다.
“아가씨께 갔다 오는 거야?”
“예.”
대답을 받고 시큰둥하게 돌아서던 동천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곧바로 신형을 돌렸다.
“소연아. 너 몇 살이냐?”
소연은 의아했지만 우선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저요? 12살인데 그건 왜요?”
무의식적으로 그냥 물어본 것이었는데, 괜히 할 말이 없어진 동천은 말꼬리를 돌렸다.
“됐어. 그보다 어디 10살 정도의 계집애 없냐?”
소연은 생각하는 듯 검은자위를 위쪽으로 모았다.
“으음. 글쎄요. 제 동생인 수련이만 해도 11살이고. 또 제 주위에는 제 또래가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동천은 소연을 한 대 때릴 듯이 쳐다보다가 불쌍한 애 때리기도 뭐해서 화정이를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소연이 나직한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러고 보니, 제 동생이 아직 생일이 안 지났는데 그런 10살도 해당이 되는 건가요?”
권력가들 정도면 몰라도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는 평민들에게는 생일을 따지고 자시고 하는 것은 엄청난 사치라 할 수 있었다. 그저, 내일 식량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새해가 처음 시작할 때를 기준으로 나이를 올리는 관습을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소연이 거기까지 생각할 줄 몰랐던 동천은 신선한 충격에서 잠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런 동천이 정신이 든 것은 화정이가 등 뒤에서 그를 살포시 껴안을 때였다.
“햐아! 얘 잔머리 굴리는 게 기가 막히네? 히히히! 화정아. 나 바쁘니까 잠깐 놔봐.”
동천은 화정이의 손을 풀어놓고 감송에게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저기, 주인님! 무슨 일이에요!”
달려가는 동천을 향해 소연이 소리쳐보았지만 정작 동천은 한가지 생각에만 푹 빠져있는 탓에 못 들은 것 같았다. 동천은 감송부부의 방에 도착한 후 기척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어이! 감 노인!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말야? 어?”
방안에는 감송이 없었다. 대신 그나마 그의 부인인 민소희가 동천을 맞이했다.
“소문주님, 어서 오십시오. 남편은 잠시 바람 좀 쐰다고 나갔으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돌아오실 겁니다.”
1년 전 피 빨린 사건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녀를 은근히 경계하던 동천은 단독으로 그녀와 대면하게 되자 심히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동천은 내색을 안 했다.
“나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