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15화
당황한 민소희는 돌아나가려는 동천에게 말했다.
“소문주님.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동천은 민소희에게 안 보이는 각도에서 슬그머니 주먹을 말아 쥐었다.
‘씨발, 간다면 그런 줄 알지 왜 꼬투리는 잡고 지랄이야?’
꼬투리랄 것도 없었으나 동천은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상한 동천은 대놓고 면박을 줘 볼까도 했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아냐, 민 할멈이 무슨 잘못을 했겠어. 그게 아니라 내가 감 노인에게 급히 물어볼 게 있었는데 없어서 찾으러 나가려고 했던 거야.”
민소희는 믿는 눈치였다. 안도한 민소희는 동천에게 앉기를 권했다. 그녀는 동천이 순순히 앉고 나서야 웃음을 흘렸다.
“호호, 아마도 독에 관련된 것을 물어보시려고 오신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저에게 물어보셔도 무방하답니다.”
동천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할멈도 아는 게 꽤 되나 보지?”
민소희는 자못 자랑스럽게 대답해주었다.
“그럼요. 남편과 같이 만독문 육당을 맡은 제가 그 정도 실력도 없다면 말이 안 되죠.”
“호오! 그으래?”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동천은 얼른 물어보고 얼른 대답을 받아낸 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내가 한가지 물어볼게. 혹시, 청뇨로명단이라고 알아?”
순간, 민소희의 눈에서 이채가 발했다.
“네, 그것은 전대 문주님께서 말년에 만드신 단환이온데 굉장히 까다로운 재료를 요구하는 것이라 전대 문주님께서도 딱 한번 만드신 것을 끝으로 여지껏 만들어진 적이 없는 단환이옵니다. 헌데 무슨 일로…….”
숨기고 싶었던 동천은 손을 휘휘 저어대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알 것 없고, 그럼 거기에 10살인 여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겠네?”
민소희는 직감적으로 소문주가 이 것을 물어보러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렇지요. 9살도 아니고, 11살도 아니고 꼭 10살이어야 한답니다. 그 이유는 10살의 여아가 유아기 때를 빼고, 성장 발육 시 가장 활발한 성장을 하기 때문이랍니다. 즉, 재료와 보조를 맞추어 그 활발한 생명력 덕을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실지 모르지만 단환에 쓰이는 여아의 오줌은 마지막 3일째 것 외엔 효용이 없답니다.”
“오잉? 마지막 3일째 것밖에 효용이 없다고? 뭐 그딴 게 다 있어?”
민소희는 동천의 어투에 빙그레 웃었다.
“소문주님. 이틀 동안 여아를 굶기고 몸속의 노폐물이 다 걸러지길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헌데, 초기에 재료들을 끓여 먹이면 그 재료들이 여아의 생명력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노폐물만 흡수하게 되기 때문에 제가 이때의 오줌은 효용이 없다고 했던 겁니다. 호호, 그리고 그 재료들의 힘을 업고 잠시나마 노폐물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는 6번의 복용. 즉, 이틀이 걸리는 관계로 실질적으로 청뇨로명단을 만드는 데 쓰이는 분량은 마지막 3일째 것밖에 없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실에 동천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사실 용독경에 지금 민소희가 가르쳐준 내용이 없었던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항광도 인간이었던 것이다. 뭔 소리냐고? 그러니까, 그도 인간이라서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산중에 홀로 30년 동안 굴속에 처박혀 살았는데 잊어 먹는 게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항광은 용독경을 만들 당시, 우선 아는 것만 자세히 써놓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는 부분은 대충 써놓은 뒤, 나중에 만독문에 돌아가 다시 만들려고 했었다.
결국, 그의 염원대로 만독문에 귀환할 수 있었으나 용독경을 동천에게 준(?) 덕분에 지금 그는 새로운 용독경을 만드느라 아주 생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냉가를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던 동천은 내심 용독경을 개떡같은 책으로 치부해버렸다.
‘어쩐지 무식하게 두껍기만 하고 내용은 형편없더라. 쳇! 그 방광 할아범을 믿었던 내가 병신이지. 어이구, 병신! 좋다고 그걸 읽어댄 세월이 다 아깝다! 병신아 왜 사……. 아니지? 내가 왜 병신이야? 취소! 취소, 취소!’
병신이 되기 싫었던 동천은 좌우로 고개를 저어대기에 바빴다. 그러나 민소희는 소문주의 이러한 행동을 다르게 해석했다.
“잘 이해가 안 되십니까?”
그제야 자신의 추태를 인식한 동천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능청을 떨었다.
“응? 그 무슨 섭섭한 말이야? 내가 바본 줄 알어?”
민소희는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하옵니다. 똑똑하신 소문주님께서 당연히 그러실 리 없는데 제가 늙어서 망령이 들었나 봅니다.”
맞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동천은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할멈에게 괜히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알 건 다 알았으니까 나 이만 갈게.”
“예, 소문주님. 살펴 가시지요.”
동천은 자신을 따라 나오면서도 차마 고개를 못 들고 있는 민소희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그런데 그 10세의 여아는 태어난 날이 지나가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민소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물론이옵니다. 태어난 날이 넘어간 여아에게 재료를 먹이면 완성된 단환의 효과가 반으로 줄어든답니다.”
이제 알아낼 것을 다 알아낸 동천은 크게 선심을 쓰듯 자신보다 키가 작은 민소희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알았어. 정말 갈 테니까 감 노인 오면 나 왔었다고 전해줘. 히히!”
수련은 오늘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그녀는 반갑게 웃으며 자신을 찾아온 동천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니가 여기엔 웬일이야?”
동천은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른 인기척을 살폈다.
“내가 뭐 못 올 곳에 왔냐? 그리고, 정 할머니는 안 계시지?”
“청목 할머니? 응, 안 계셔. 한 5일 전에 요림에서 온 여자에게 무슨 소리를 듣더니, 바삐 나간 후 여태껏 깜깜무소식이야. 그건 왜?”
동천은 내심 안도하며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너, 무공 수련은 잘돼 가냐?”
동천은 예의상 물어본 듯 했지만 수련은 무언가 뜨끔함을 느꼈다. 6개월 동안 아가씨가 화정이를 상대하면서 그에 비례해 자신에게 소홀히 하자 수련은 서운함보다 기쁨이 더욱 컸었다. 그래서 그 틈을 타 빈둥빈둥 많이도 놀았던 그녀는 근래에 들어와서 진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동천에게 그런 것을 털어놓을 정도로 무른 수련이 아니었다.
“그럼! 내가 너처럼 놀고먹는 줄 알아?”
자신을 모욕하는 언사에 동천은 뒷골이 은근히 땡김을 느꼈다. 하지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하는 냉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법.
“히히, 너도 꽤 농담을 잘하는구나?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만해? 그럼, 어디 실력이나 볼까?”
이렇게 치고 들어올 줄 몰랐던 수련은 한순간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무, 무슨 소리야? 실력을 보다니?”
자신의 짐작이 맞아 떨어졌음을 직감한 동천은 좀 더 수련을 밀어붙였다.
“에이! 뭘 그렇게 빼. 그동안 아가씨께 지도를 받은 네 실력을 보자는 데.”
“미안해.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방금 전에 검술을 연습해서 피곤하니까 다음에 보여줄게.”
수련이 자꾸만 빼자 동천은 밉살맞게 웃으며 물어보았다.
“킥킥, 혹시 너…….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했던 거 아냐?”
발끈한 수련은 성질대로 밀고 나갔다.
“흥! 좋아. 정 그렇다면 실력을 보여주지. 하지만 그전에 네 솜씨부터 보여 봐. 네가 먼저 실력을 보이면 내가 네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는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동천에게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물론, 동천의 도발이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는 짓이 정말로 밉살맞은 걸. 이런 수련의 행동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동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야?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