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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2화


역천은 수련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다급히 풍약당으로 경공술을 발휘해 달려 나갔다. 촌각도 안되는 사이에 풍약당에 도착한 역천은 평소에 귀여워해주던 수련이 문가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헤헤! 귀여운 수련아! 그래, 누가 아파서 온게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수련은 자신을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흑흑, 아저씨.. 동천이.. 동천이 지금 많이 아파요.. 흑흑!”

그말에 역천은 의아한 듯 말했다.

“동천? 걔가 누구냐? 아.. 혹시, 이번에 새로 들어온 하인을 말하는거냐?”

“예, 맞아요.. 흑흑! 이러고 있질말고 어서 가보세요.. 걔가 죽으려고해요..”

죽으려 한다는 말에 역천은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가보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흐음! 알았다. 내가 가보마.”

“스슷!”

역천은 주위의 경물(景物)이 빠른 속도로 하나 둘씩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경공술을 발휘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역천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온 것을 알수 있었다.

“흐음! 이제 다왔군. 어디 들어가 볼까?”

역천이 조심스레 인기척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한 여자 아이의 뒷모습과 그 여자 아이의 앞에 얼굴이 팅팅! 부어있는 남자 아이가 보이는 것을 볼수 있었다. 물론 여자 아이는 사정화였다. 말을 붙여 보려던 역천은 진지하게 남자 아이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사정화의 모습에 왠지 방해(妨害)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멀찍이서 보고는 더이상 지체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에 할수없이 말을 걸었다.

현실(現實)…

“자.. 잠깐만요. 사부님!”

말을 이어가던 역천의 말을 갑자기 동천이 가로 막으며 말을 했지만 역천은 짜증내는 표정없이 웃으면서 말을했다.

“뭐냐, 사랑스런 제자야.”

“그러니까요. 정화.. 아가씨가 내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셨다구요?”

“정화가”라고 말하려던 동천은 얼른 뒷말을 흐리면서 말을 했지만 그것을 모르는 역천은 좀 생각하는 척을 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다..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 걸레 였는지도..”

“사부-님!”

동천이 자신을 향해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자 역천은 자신이 너무했나.. 싶어 제대로 말을했다.

“그래.. 알았다. 소리 지르지 말어. 내가 보기에는 손수건 이었다. 맞어. 분명히 손수건 이야.. 이제 됐냐?”

“예에..”

사실 동천이 사부의 말을 끊은 것에는 이유(理由)가 있었다. 그 이유가 뭐냐면 동천이 깨어난 후에 이리 뒤척 거리고, 저리 뒤척거리다가 침대 밑 안 쪽에서 널브러져 있던 손수건 하나를 줏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동천이 수련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지만 수련은 모른다고 하길래 무심코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지금까지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이 난 동천은 자신의 주머니를 무심코 뒤졌다. 아직까지 있나 해서 말이다..

‘휴-! 있네..?’

자신도 왜그러는지 모르면서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쉬던중 사부인 역천이 궁금한 표정으로 옆에서 물어봤다.

“그건 왜 물어보냐?”

동천은 사부의 질문에 속으로 뜨끔! 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말을했다.

“예? 아, 예.. 그냥요..”

그러나 역천은 동천의 말에 못믿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물어봤다.

“내사전에 그냥이란 말은 없다.. 내 사랑스러운 제자야. 니가 설마 사부에게도 숨기려고 하는건 아니겠지?”

평소 같으면 동천의 성격에 속으로라도 씨발씨발! 하겠지만 이상하게 사제의 연을 맺은 다음 부터는 사부에게 할 말은 다해도 경거망동(輕擧妄動)할 정도로 까불기가 싫어졌다.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동천은 애써 그런 마음을 역행(逆行) 하기가 싫어서 그냥 얼버무렸다.

“에.. 그러니까 아가씨께서 손수 저의 얼굴을 닦아 주셨다는데에 감동(感動) 해서요..”

그말에 역천은 흐믓한 표정을 지었다.

“오.. 오! 역시 나의 제자로다.. 고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 사실 아가씨가 겉으로는 차갑게 보이지만 속 마음은 매우 여리시단다. 앞으로 니가 수련과 더불어 아가씨를 잘 보필해 드려라! 알겠느냐?”

동천으 사부의 말을 듣고 속으로는 그런 마음이 여린 계집애가 어떻게 자신을 구타 했냐고 반박하려 했지만 사부의 저런 망상을 깨뜨리고 싶지가 않아 그냥 그려려니 하고 말을했다.

“예. 사부님.”

제자의 공손한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 역천은 입을 함지박만큼 벌리더니 실없는 사람처럼 웃어제꼈다.

“하하하! 오냐, 오냐! 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으하하하..”

동천은 가만히 놔두면은 저렇게 계속 웃을 거라는 생각에 사부의 웃음을 얼른 제지 시켰다.

“사부님 그만 웃으시고 아까 하시던 말을 계속 해주세요.”

“엉? 그래.. 그러니까 내가 아가씨를 뒤에서 불렀지..”

다시 며칠전…

“헤헤! 아가씨. 저를 부르셨다구요?”

뒤에서 갑자기 들린 역천의 목소리에 사정화는 흠ᄍ! 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래요. 이녀석 좀 봐주세요.”

역천의 웃음끼 있는말에 사정화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들고 있던 손수건을 살며시 바닦에 버린후 침대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역천은 아가씨가 바닥에 손수건을 버린 것을 보았지만 아가씨가 자신이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모른채 하고 동천을 향해 다가 갔다. 그런데 아까는 몰랐지만 막상 가까이서 동천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무리 참으려 해도 웃음이 나오는게 참을수가 없었다.

“어디 보자.. 으잉? 얼굴이 뭐 이래? 푸헤헤헤…!”

아가씨가 자신의 웃어 제끼는 소리에 살풋이 이마를 찡그렸지만 웃기는 것을 억지로 참을수는 없었다. 그러던중 역천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가.. 아니고… 흐-음! 이럴수가.. 음.. 놀랍군.. 놀라워!”

역천은 연신 감탄을 하면서 자신의 허리춤에서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탈월한 효과를지닌 조그마한 자색 옥병을 꺼내더니 기절해서 스스로 먹지도 못하는 동천의 아혈과 목부분의 대영혈을 누르고 살짝 벌어진 입속에 청량한 냄새가 나는 자향액(慈香液)을 넣어주자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꼬르르륵…!”

아까 자신이 체신머리 없이 웃어서 그런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있던 정화 아가씨는 자신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향액을 먹이고 나서 동천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물어 보았다.

“뭔가 잘못됐나요?”

사정화의 물음에 역천은 진지 하게 물어보았다.

“흐음-! 아가씨. 이녀석이 이번에 새로들어온 하인 입니까? 그리고.. 한 7-8살 정도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정화 아가씨는 자신의 물음에 아까의 표정과는 달리 이상하리 만치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8살 이에요. 그보다 뭐가 잘못ᄃ냐고 물었어요.”

사정화가 재차로 물어보자 역천은 더 이상 지체하질 못하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잘못돤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다만..?”

역천은 고개를 돌려 잠시 동천을 쳐다보더니 자신이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 난후 아가씨를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보기엔 이녀석은 한 사나흘 동안 맞고 지내다가 오늘은 안맞았지만 크나큰 심리적(心理的)인 압박을 받고 기절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무슨 일인지 밥도 제데로 안먹은 것 같구요.. 그나마 기절하기 직전에 무슨 위안(慰安)거리가 될만한 것을 보고기도(氣道)가 막히는 상황에서 겨우 안정(安定)을 되찾아 살아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역천은 정화 아가씨의 표정과 목소리의 톤을 듣고 아가씨의 지금 심리(心理)상태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에.. 그래서.. 한마디로 놀랍습니다!.”

역천의 대답을 들은 사정화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예? 놀랍다니요?”

역천의 말이 사정화가 바라던 대답과 아주 다른 말이 나오자 사정화는 조금 당황했던 것이었다. 그런 아가씨의 모습을보고 역천은 속으로 잔잔한 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오십 평생(平生) 이렇게 개패듯이 맞고, 더군다나 8살 정도의 나이에 아직 까지 살아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라 이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끈. 질. 긴. 생명력이다.- 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아가씨는 개패듯이 맞았다는 대목에서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묵묵히 자신의 말을 다 듣고난후 말을 했다.

“어쨌든 이제 괜찮은 건가요?”

역천은 사정화의 물음에 다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 와서는 싱글 벙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이제 며칠 동안만 안정을 취하고 쉬게한다면 거뜬히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이제 별일이 없으면 그만 가도 좋아요.”

이제 그만 가봐도 좋다는 사정화의 말에 역천은 아까전에 동천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고난후 생각해둔게 있어서 조심스레 사정화의 신색(神色)을 살펴 보면서 긴장된 표정으로 온 몸을 배배 꼬면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아가씨.”

사정화는 역천이 어렵게 자신을 부르자 속으로는 짜증이 났지만 겉으로 내색 하질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또 뭐죠?”

정화 아가씨가 의외로 차분하게 대답을 해주자 용기를 얻은 역천은 조심스레 아가씨의 얼굴 표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을 했다.

“저.. 다름이 아니오라.. 이녀석 별로 필요없죠?”

순간 아가씨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더니 목소리 또한 날카롭게 해서 말을 했다.

“무슨소리죠?”

그바람에 역천은 약간 찔끔 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

“예,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오십 평생 제자놈 하나 가져 보는게 소원 이걸랑요.”

그 말에 사정화는 코웃음을 치더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로 역천을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거짓말 하지 말아요. 내가 알기로는 몇 명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역천은 속으론 뜨끔 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면서 변명을 늘어 놓았다.

“사실 예전에 제자가 될만한 놈들을 몇놈 구해봐서 가르쳤었는데, 이놈들이 하는짓이 별로 마음에 들지않아 내쫓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녀석을 보니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왠지 잘만 가르치면 나중에 한몫 크게 할것 같아서요.”

역천의 말에 사정화는 나직히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아가씨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 역천은 이때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헤헤! 그리고 의술(醫術)에 대해 좀 아는놈이 아가씨의 곁에 있다면 나중에 아가씨 께서 강호(江湖)에 나가서 경험을 쌓으실 때 옆에 붙여놓고 데리고 다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천의 말에 사정화는 그렇다면야.. 하는식으로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을했다.

“….좋아요.”

사정화의 승낙에 역천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 했다.

“아이구! 감사 합니다. 누가 뭐래도 아가씨 께서 승낙해 주셨으니 저의 제자가 된 이녀석을… 에? 잠깐! 이녀석의 이름이 뭡니까?”

“동천(冬天)이라고 해요!”

“헤헷! 동천이라.. 그것 참 괜찮은 이름이군요! 더군다나 나처럼 외자에 다가 또 나처럼 천(天)자를 쓰고.. 이거 뭔지 모르게 잘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데요?”

역천의 들떠있던 말에 사정화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을했다.

“좋아요. 나중에 동천의 상태(狀態)가 좋아지면 그때 이녀석을 광의 한테 보내 줄께요.”

역천은 감사 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하하하! 그렇게만 해준다면 저야 바랄게 없습죠. 제가 일이 있기 때문에 약왕전(藥王傳) 에서 나올수는 없지만 애들을 보내서 오늘 부터 약을 가져다 오게 하겠습니다.”

역천의 말을 들은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제그만 가보도록 해요. 조금 피곤해요.”

“예! 예! 알겠습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스슷-!”

그렇게 신나는 마음으로 경공술을 발휘해 달려 나오던 역천은 문득 시장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음-? 배가 고픈데? 어디가서 먹는다.. 전(傳)에 가서 먹으려면 여기에서 조금 멀고.. 옳치! 귀옹(鬼翁)이네 가서 먹으면 되겠다.”

일단 결정을 내린 역천은 약왕전으로 가는 길과는 정 반대로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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