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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23화


동천은 수련에게 가다가 자신의 방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소연을 볼 수 있었다.

“소연아, 너 거기서 뭐 하냐?”

손가락으로 애꿎은 치맛자락을 쥐어뜯고 있던 소연은 동천을 일별하고 환하게 웃었다.

“아? 오셨어요? 들어가 보세요. 전주님께서 오셨어요.”

“사부님이?”

고개를 끄덕인 소연은 방문 쪽을 힐끔 보더니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무언가 심각한 표정이시더라고요.”

소연의 입김에 귀가 간지러웠던 동천은 귀를 후비면서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었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

그때 안에서 역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냐?”

동천은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네, 사부님! 들어갑니다!”

후다닥 들어간 동천은 소연의 말대로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부를 대할 수 있었다. 이에 움츠러든 동천은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오셨어요? 헤헤, 기별이나 하시고 오셨으면 맛있는 걸 차리고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제자가 웃었으면 사부도 웃어야 이 사제관계가 성립되는 것일진대 의외로 역천은 차분하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딴 건 필요 없고. 요즘 잘 쉬고 있더냐?”

아무래도 사부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동천은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본 뒤에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쉬고 있습니다.”

역천의 눈썹이 약간 꿈틀거렸다.

“그래? 그럼, 요사이 뭐 하는 것은 없고?”

동천은 뜨끔함을 느꼈다.

‘설마, 눈치채신 건가? 아니야. 감송 부부 외에는 모르는 일이고, 또 그들이 발설할 이유도 없잖아?’

상황 정리가 끝난 동천은 딱 잡아떼었다.

“헤헤! 오랜만의 휴식이라 신나게 놀고 있어요.”

알겠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던 역천은 갑자기 두 눈에서 신광을 터뜨렸다.

“이놈의 새끼! 네가 그러고도 이 몸의 제자야? 내가 바보냐? 약재 창고에 가니까 백년 근 산삼 3개가 비더라! 하도 이상해서 창고지기 새끼를 족쳤더니 네가 가졌다고 다 불었어! 또 하나 요림에 가서 백년 근 매화 약주까지 가져왔다며? 또또 하나 동작풀하고 미늘버섯까지 가져갔던데 그거 다 어디에 쓰려고 가져간 거냐? 응?”

생각지도 못했던 사부의 광란(?)에 기겁을 한 동천은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나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약간 머리를 굴려보니 아직 사부는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동천은 침을 꿀꺽 삼킨 후 다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사부님께서 벌써 아시다니. 전 나중에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했는데…….”

입가에 침을 발라서 더욱 몰아치려던 역천은 그 말을 듣고 주춤했다.

“나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동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실은 예전에 감 노인이 제게서 우연히 계면서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것을 주재료로 청뇨로명단이라는 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것을 만들어서 사부님께 드리면 사부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라는 마음에 몰래 숨겨 만든 후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했는데,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미 들통났으니 제자의 마음이 착잡합니다. 더군다나, 더군다나 사부님께서 이 제자를 고작 그런 놈으로 생각하셨다는 게……. 흑흑흑!”

그 순간 역천은 머리에 둔기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럴 수가. 내가, 내가 이런 사랑스러운 제자를 의심했다니…….’

역천은 감격에 목이 메었다.

“오오! 오오오! 제자야! 이 사부가 잘못했다! 너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이 못난 사부가 노파심에 의심을 했구나!”

사부를 잘 속여넘긴 동천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애써 다잡고 마지막 수순을 밟았다.

“사부~!”

“제자야!”

둘은 서로를 얼싸안았다. 제자와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던 역천은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킨 후 계속 울고 있는 사랑스러운 제자를 달랬다.

“자자, 그만해라. 모든 게 이 사부의 잘못이니, 네가 울 것 없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느라 생고생을 해야만 했던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천의 품에서 떨어졌다.

“훌쩍! 아니에요. 다 못난 이 제자의 탓이지요.”

역천은 탄식 어린 모습으로 창가로 걸어 나갔다.

“아니다. 아니야. 내가 헛산 게야.”

창가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전방을 주시하던 역천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근데, 언제 만들어지냐?”

점심을 먹고 두 시진 뒤, 수련의 오줌을 받아낸 동천은 오줌이 담겨있는 작은 물통을 들고 약탕실에 들어와 탕관에 부었다. 물론 조심해서 말이다. 그러나 동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으으! 하필이면 이때에 걸려 가지고 단환 하나를 손해보다니. 그것도 진국을.”

동천의 말인즉, 아까 사부인 역천이 언제 만들어지냐고 물었을 때 정확히 사흘 후면 대령해 드릴 수 있다고 이실직고 말씀을 드렸다. 두 개가 만들어지는데 두 개를 다 드린다고 하자, 처음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던 역천은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라 하나만 받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처음에 동천은 마지막 사흘째 만들어진 단환이 아닌 효과가 절반 정도로 뚝 떨어지는 단환을 주려고 생각했었다. 허나,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역천이 흑도 최고의 의원인 만큼 청뇨로명단의 효능을 모르지는 않을 터. 단박에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게 분명했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 날에 만든 단환 하나를 주기로 마음을 돌렸다.

“사부님께 드리는 것인데도 배가 슬슬 아프다니. 동천아, 너는 아직도 수양이 모자란 것 같구나.”

쪼그리고 앉아서 부싯돌로 아궁이에 불을 붙이려던 동천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끼리릭, 거리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동천은 그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그의 사형인 공영수였다.

‘에이 씨! 화딱지가 나 죽겠는데, 저 병신 새끼는 왜 또 오고 지랄이야?’

생각 같아서는 사형이 앉고 있는 의자를 부숴 놓은 뒤, ‘병신아 이리와 봐. 못 오지? 죽어 새꺄!’라며 괴롭히고 싶었으나 사형은 사형이기에 냉큼 뛰어가 예의를 갖추었다.

“사형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세요?”

공영수는 동천이 마중 나온 덕에 의자를 멈추었다.

“흐음. 이 사형이 못 올 곳에 왔는가?”

사형이란 작자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저 인간은 이곳에 오면 안 되는 인간이었다. 순간 동천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 설마. 이 병신 자식도 냄새를 맡고 하나 얻어먹으려고 온 건가?’

동천이 섣불리 대답을 못하자 공영수는 불쾌한 얼굴을 했다.

“사제, 정말 그런 것인가?”

정신을 차린 동천은 급히 고개를 저어댔다.

“아이고, 아니에요.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재빨리 대답을 못 드렸네요. 헤헤, 잘 오셨어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아시고 오셨어요?”

공영수는 불쾌한 기색을 지우고 말했다.

“내 사제를 본 지 오래되어 찾아왔다가 사제가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온 것이네. 흐음. 한데, 안에서 요상한 냄새가 나는군.”

흠칫한 동천은 자신도 따라 냄새를 맡아보았다. 하지만 이곳 밖에서는 별다른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그래서 동천은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자식, 개 코 아냐?’

공영수가 이상한 눈초리로 동천을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이 사형을 보는가?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는가?”

동천은 재빠르게 행동을 취했다.

“헤헤, 묻다니요. 그런 거 없어요. 아? 그리고 여기에서는 대화를 나누기에 불편하니까 제 방으로 갈까요?”

그러나 동천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지려는 듯 공영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닐세. 이 사형은 약탕실에 들어가 보고 싶네.”

동천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예? 저 안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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