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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24화


공영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숨기는 거라도 있는가?”

동천은 애써 흥분을 감췄다. 이런 일로 자신의 안면이 흐트러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있긴요. 전 사형이 불편하실까 봐 그랬죠. 괜찮다면 들어오세요.”

너무도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은 동천의 모습에 공영수는 두 눈을 가늘게 모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깐이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흘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듣기로는 꽤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던데 오늘 보니 아주 깔끔하군. 사제가 사용하려고 청소를 한 건가?”

동천은 병신 자식이 별걸 다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신인 것도 불쌍한데 안 가르쳐주면 질질 짤까 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아? 여기요? 이곳은 제가 새로 청소한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예전부터 하인들을 시켜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관리를 하라고 해서 이렇게 깨끗한 거예요.”

대답을 들은 공영수는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 하긴……, 사부님께서는 유난히도 첫째 사형을 아끼셨지. 아마도 죽은 망령이 사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야.”

망령 얘기가 나오자 동천은 소름이 쭉 끼쳤다. 예전에 우물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씨발 놈! 괜히 옛날 생각나게 만들고 지랄이야.’

공영수를 욕하던 동천은 그러고 보니, 그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형, 죽은 망령이 사부님의 곁을 맴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공영수는 가볍게 웃고 나서 은근슬쩍 넘어갔다.

“훗! 별거 아닐세. 그보다 이것들이 다 뭔가?”

동천은 끝까지 캐물어보고 싶었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물건이 공영수의 손가락에 의해 지적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그만두었다.

“헤헤, 별거 아니에요. 약초예요. 흔한 약초.”

동천의 씨도 안 먹힐 소리에 공영수는 자신이 은밀히 마련해 준 다면양류를 쓰다듬으며 조용하게 말했다.

“흔한 약초라. 요즘에는 다면양류가 흔한 약초인가 보지? 거기에다 백년 근 산삼이 2뿌리나 되는군. 저것들도 흔한 약초인가?”

시비를 거는 듯한 사형의 어투에 동천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이것을 노리고 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뭐야, 이 새끼도 불쌍한 이 몸을 등쳐먹으려고 온 거야?’

동천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모든 게 불확실했기 때문에 먼저 사형의 의중을 떠보려고 넌지시 물었다.

“헤헤, 요새 사부님은 만나보셨어요?”

무슨 변명을 할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공영수는 사제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고 들어오자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께는 죄송스럽게도 요새는 찾아뵙지 못했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해오는가? 혹시, 이 사형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좀 그래서 그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동천은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가졌다. 자신이 단환을 만드는 것은 감송 부부와 소연과 수련, 그리고 사부만이 알고 있었는데 그중 그나마 자주 왕래하는 사부와 요새 접촉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하? 그러고 보니 제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드렸었네요? 헤헤, 사실 이 재료들은 사부님께서 구비해 놓으라고 해서 마련해 놓은 것들이에요.”

“으음, 그랬군.”

사부인 역천이 거론되어 묘한 표정을 짓던 공영수는 수긍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사형에게도 숨기려 들었지?”

그런다고 당황할 동천이 아니었다.

“사형,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숨기려 했던 이유는 사부님께서 극비로 하라고 하셔서 그랬던 겁니다. 그래서 그러니 양해를 좀…….”

동천의 속셈이 어떻든, 드러난 표정만 보자면 상대가 안 봐줄래야 안 봐줄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감히 사부까지 들먹이면서 거짓말을 할 줄 몰랐던 공영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사형이 그 정도도 이해를 못 해주겠는가.”

동천은 이 이야기가 다시는 거론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었다.

“사형,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더 물어보시면 어쩌나 했어요. 헤헤, 저도 원래 아는 게 별반 없었거든요.”

공영수는 사제의 방금 그 말로서 더 이상 자신이 약재에 관해 파헤쳐 볼 건덕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에 공영수는 심란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군. 도대체 무엇이 저 녀석의 진정한 모습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상관할 가치가 없다. 하지만…….’

공영수는 그동안 동천의 사생활을 은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켜보다 보니, 나오는 것은 허탈한 웃음뿐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욕심 많고 편협하고 사상 최악의 성질을 지니고 있을 뿐, 심기가 깊은 모습이나 사물을 뚫어 보는 그런 모습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수준 낮은 동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위선이었다면?’

그렇다. 그동안 공영수가 보아왔던 동천의 모습이 모두 가식적인 것이었다면 후일 자신의 위치가 엄청나게 불안해질 우려가 있었기에 공영수가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꽤 오랫동안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제, 미안하네. 뭐 좀 생각을 하느라…….”

공영수는 동천에게 사과를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알고 보니 동천도 지금 생각에 잠겨있어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

공영수는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 그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사형인 자신이 사과를 하는데 싸가지 없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니. 공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너무 강하게 쥐어 뿌득! 거리는 뼈 마찰음이 들릴 정도였으나 동천은 듣지 못한 듯했다.

‘혹여, 이것도 이 녀석의 계략인가? 으으, 모르겠다.’

공영수는 머리를 쓰면 쓸수록 자신만 손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주인공은 바로 공영수였다. 지금 그는 머리가 아파서 동천과 급히 헤어진 상태였다.

‘어린 녀석이 꽤나 애를 먹이는군.’

이런저런 깊은 생각을 하며 의자를 끌고 가던 공영수는 갑자기 바퀴를 밀어대던 손동작을 멈추었다. 그러자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이 그의 고막을 때렸으나 워낙에 익숙한 탓인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만?”

그는 예전에 창고지기에게 다면양류를 건네주며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 공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제야 살았습니다.

-괜찮네. 마침, 도와줄 수 있어서 도와준 것뿐이네. 그건 그렇고 사제는 무엇 때문에 이것을 찾았던 건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약 1년 반쯤에 무엇을 만드신다고 백년 근 산삼을 찾으시더니, 결국 이번에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호오? 사제가?

-예, 아마도…….

-아마도라고? 확실하지는 않다는 소리인가?

-그러니까 그게…….

그 당시, 공영수는 확신을 못하는 창고지기의 태도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지나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왔을 때 불안해하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이 재료에 관해 캐물었을 때 갑자기 딴청을 부렸던 그 태도. 그리고 사부까지 들먹이며 교묘히 위기를 넘긴 그 대담함.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자 그의 머릿속에 계략이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떠올랐다.

“후후, 아무래도 한방 먹은 것 같군.”

공영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중 마지막이 확실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역천은 간만에 온 제자를 대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공영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제자가 미천하여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역천은 그가 사죄를 했어도 쉽사리 화를 풀지 않았다.

“말로만?”

“예?”

역천은 화를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 짜증스러워했다.

“참 답답하네. 그러니까 말로만 죄송하다고 끝낼 거냐고. 네 기특한 어린 사제만 해도 이 몸에게 진귀한 단환을 선물해주려 하는데 너는 그 나이 먹도록 이 사부에게 말로만 사죄를 할 거냐?”

공영수는 의외로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되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굳이 감출 필요가 없었다.

“아아, 알겠습니다. 하하하! 그런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 단환이 어떠한 단환인지 몰라도 그보다 더한 것을 드리겠습니다.”

반색을 하던 역천은 곧 시큰둥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글쎄, 아마도 힘들걸?”

“어째서입니까?”

동천의 얘기를 꺼내게 되자 역천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특한 네 사제가 이 몸에게 드릴 단환이 무려, 30년의 내공을 높여주는 것이거늘.”

공영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 유명한 소림사의 소단환이 30년의 내공을 높여준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와 동급의 단환이라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단환이었던 것이다.

“그, 그렇군요. 하하, 사제가 그러한 단환을 만들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헌데, 그 단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역천은 싱긋 웃은 후 말해주었다.

“알 것 없어.”

공영수는 당황했다. 사실, 이렇게 단호히 대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축축이 젖어드는 허리 부근을 약간 비틀었다. 땀에 젖어 감촉이 별로였던 것이다.

“그, 그래도…….”

사실, 역천은 말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제가 그 비법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면 난처해졌다. 물론, 자신이 가르쳐주었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공영수가 자신도 가르쳐달라고 조르게 되면 역천의 입장에서는 쪼까 복잡해지게 된다. 그것을 감송이 가르쳐주었다고 생각한 역천은 그에게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사부가 제자에게 가르쳐달라고 하기에는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고로, 복잡한 걸 싫어하는 역천은 꾀를 내었다.

“네가 그보다 더 뛰어난 단환을 준비해 오거나 그에 비견될 물건을 가져오면 말해주마. 어떠냐, 그런 걸 준비해올 수 있느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하, 아무래도 사제의 대단한 능력을 안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공영수가 분수를 알고 물러서자 역천은 조금 안색을 풀었다.

“잘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뭐 먹을래?”

“예, 사부님.”

역천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서역에서 들여온 세술경(洗術經)이란 책을 주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은 공영수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면서 쉽사리 웃음기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소리 내어 웃은 것은 계단 대신 얕게 경사가 진 돌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후후, 푸흐흐흐!”

그는 한참 동안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멈출 때에는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얼굴을 했다.

끼리리릭!

급하게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영수는 종이를 꺼내들고 그곳에 간단히 무언가를 적은 후 품속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불었다. 그가 힘주어 불었음에도 신기하게도 소리가 없었다. 허나, 들리긴 들리는 모양이었다. 새가 날아온 것이었다. 공영수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새의 발목에 전서구 통을 매달아주었다. 그 새는 훈련을 받은 전서구였던지 자신의 발목에 통이 채워지자마자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

공영수는 그 전서구의 모습이 까마득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점이 되어 사라질 때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제, 거짓말은 좋은 게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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