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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33화


아침에 일어난 동천은 화정이와 단 둘이서만 밥을 챙겨먹었다. 그리고 도연이 자신을 부르러 왔을 때에는 오늘 아가씨와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련을 못 한다고 말했다. 도연은 그런 동천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오늘 수련은 쉬는 겁니까?”

동천은 짜증스러워했다.

“그렇다니까? 이 몸께서 한 말을 또 되풀이해야만 하겠냐?”

도연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동천은 돌아나가는 도연을 향해 뚱하게 답했다.

“뵙든지 말든지. 쳇!”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빈둥거리던 동천은 정오가 되기 한 시진 전에 사정화의 집으로 출발할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은 없었고 평소보다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었다. 혼자 가기가 뭐 했던 동천은 어제 일도 물어볼 겸 소연에게 가보았다.

“소연아. 안에 있냐?”

잠시 후, 미약한 소음과 함께 동천의 손가락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문틈이 벌어졌다. 소연은 그 사이로 탐색하듯 동천을 바라보았다.

“오셨어요?”

동천은 자신을 꺼려하는 소연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열고 말해.”

주인님이 문을 열어 제키려고 하자 소연은 안에서 그걸 막았다.

“아, 안돼요! 저 지금 두 눈이 부어있단 말이에요!”

동천은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소연은 내공을 사용해 밀어붙였다. 당연히 밀리는 것은 동천 쪽이었다. 주춤한 동천은 소연에게 물어보았다.

“밤새 울었냐?”

“네.”

두 눈이 부었다고 해서 예의상 물어본 거였는데, 사실이라는 소연의 말에 궁금해지는 동천이었다.

“왜 울었는데?”

소연은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가르쳐줄 수 없어요.”

“너 맞을래?”

소연은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 죄송해요. 그러나, 그러나.”

동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울어 이 계집애야! 가뜩이나 불안한데 울고 지랄이야!”

짜증이 난 동천은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소연이 계속 우는 것 같았으나 동천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가르쳐줘도 관심을 가져줄까 말까인데, 지금 상황에서 끝까지 숨기려 들며 우는 그녀를 챙겨줄 여유가 동천에겐 없었던 것이다. 불쾌한 마음으로 마차에 오른 동천은 마녀보다 더욱 무서운 사정화에게 갔다. 동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땐 아직 수련 혼자밖에 없었다. 수련은 동천을 맞아들이며 말을 건넸다.

“왔어?”

달갑지 않다는 그녀의 음성이었다.

“왔다.”

역시, 그녀의 심정과 같다는 뜻을 가진 음성이었다. 수련은 고개를 팩, 돌리고 탁자를 향해 손을 가리켰다.

“가서 앉고 싶으면 앉아.”

기분이 상한 동천은 수련의 말을 비꼬았다.

“앉고 싶지 않으면?”

수련은 가소롭지도 않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바닥을 기든지 벽에 기어오르든지 네 맘대로 해라.”

욱! 하는 그 무언가가 튀어 오르려했으나 이런 종류의 싸움에서는 먼저 화를 내는 쪽이 지는 법이었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힌 동천은 지금은 상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어서 섣부른 공격은 피하기로 했다. 동천은 기름진 오리 고기가 이미 차려져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슬쩍 떼어먹으며 말했다.

“난 이층으로 올라가고 싶은데 올라가도 되냐?”

수련은 음식을 챙기면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가도 좋은데, 아무도 없다고 뭐 훔치지는 않겠지?”

‘저, 저게 죽으려고!’

동천은 도둑놈 취급을 당했음에도 주먹을 말아 쥘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만약에 자신이 윽박질렀다가 수련이 울기라도 한다면 사정화에게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으으, 참자. 이곳은 정화 년의 영역이다. 참아라 동천. 의지력 하면 너 아니더냐!’

신빙성이 없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동천은 이미 말을 꺼내놨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총 3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사정화의 방은 중간에 있었다. 이는 동천이 아는 사실이었다. 비록, 지금은 안 쓰고 있는 방이었지만 수련이 가끔가다 청소를 해놓아서 그런지 내부는 깨끗했다. 동천은 그런 주위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참 가난하게 사는구나.”

이럴 땐 검소하게 산다고 해야 맞는 말이었으나 동천이 그런 걸 따질 아이이겠는가? 동천은 침대로 가서 앉아보았다.

“침대도 싸구려네?”

방안의 내부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을 건 다 갖추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가구들의 배치가 조화롭게 되어있어 질리지 않는 그런 방이었다. 다만, 자신의 방보다는 재료의 질이 뒤떨어진다는 것이 동천이 말하는 요지였다. 침대 위에서 몇 번 엉덩이를 튕겨 본 동천은 금세 싫증을 냈다.

“쳇! 별것도 없는 데에서 사는 게 더럽게 잘난 체 하기는…….”

더 볼 것도 없어서 밖으로 나가려던 동천은 언뜻 스치는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라? 이거 도자기잖아?”

침대 머리맡에 나 있는 작은 나무 받침대에 두 병의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볼품이 없는 것이어서 정작 동천의 눈길은 그 옆에 화려하게 빛나는 백자였다. 백자에는 학 두 마리가 구름 사이에서 노니는 그림이 자연스레 묻어 나와 있었다. 순간, 1년 전 혈귀옹의 밑에서 그릇들을 만들 때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후후, 나의 솜씨를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한가닥 하는 놈이 만들었나 보군.”

백자를 들고 방안을 거닐던 동천은 1층에서 누군가가 문을 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백자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 몸을 틀었다.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니 되는 일이 없었다. 아까 오리 고기를 뜯어먹은 탓에 기름기가 묻어있어서 그만 손이 미끄러진 것이다.

“앗?”

기겁을 한 동천은 허리를 굽혀 그것을 잡으려다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가만? 내가 왜 굳이 이걸 잡아야 하는 거지?’

꽤나 대담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동천이 잠깐 주춤한 사이, 도자기는 무참하게 박살이 나고야 말았다.

퍽! 콰직.

의외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다. 그 소리와 더불어 동천은 현실로 돌아왔다.

“제길! 이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깨지다니, 더럽게도 약하네!”

동천은 도자기를 무슨 철제로 된 식기로 아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깨진 조각에 찔리지 않게 한 무더기를 집어든 동천은 창가로 가서 되도록 멀리 뿌려댔다. 깨진 조각들이 커서 그런지 두어 번의 반복으로 바닥을 말끔히 청소할 수 있었다. 자잘한 조각들은 발로 이리저리 쓸어가며 그 흔적을 지웠다.

“우선 이걸로 마무리를 지은 후, 며칠 뒤에 비슷한 걸 골라서 가져다 놓으면 완전 범죄겠지? 히히!”

동천이 그러한 완전 범죄를 꿈꾸고 있을 때 수련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동천! 그만 내려와! 아가씨 오셨어!”

정신이 번쩍 든 동천은 사정화의 방에서 나오며 수련을 욕했다.

‘짜증나는 년! 누가 안 내려간대? 콱, 쌔려 버릴까보다.’

생각과는 달리, 조심스레 내려간 동천은 이미 식탁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정화를 대할 수 있었다. 동천은 그녀를 보자마자 잽싸게 내려왔다.

“아가씨,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사정화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있었어. 앉아.”

“예, 아가씨.”

동천은 사정화와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사정화가 말했다.

“정면으로 앉아. 대각선으로 보기 귀찮아.”

‘그것도 귀찮으면 죽어 이년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당연히 제가 자리를 옮겨야죠. 헤헤.”

속으로 울상을 지으며 자리를 옮긴 동천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사정화도 조용했다. 그런 그녀가 입을 연 것은 수련이 모든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을 때였다.

“먹어.”

동천은 긴장해 있다가 깜짝 놀랐다.

“예? 아, 예. 먹어야죠. 그럼요.”

동천은 입안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먹어댔다.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상대의 명령 아닌 명령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수련은 그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야, 좀 천천히 먹어.”

그래도 동천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사정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먹기를 중단한 동천은 어설프게 입가를 닦으며 수련에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내가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너 진짜로 음식 잘 만든다. 끝내줘.”

동천만큼이나 칭찬에 약한 수련은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를 보였다.

“동천, 좀 더 먹어. 호호호!”

동천의 눈이 은근슬쩍 사정화를 찾았다. 그녀의 지금 모습이 어떠한지 확인하고픈 것이다. 순간, 동천의 눈과 사정화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허억?’

동천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고개를 확 수그렸다. 사정화는 방금 전 동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왜 그러지?”

동천 대신 엉뚱한 수련이 말했다.

“예? 뭘요?”

아가씨에게 물어본 수련은 곧이어 자신이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정화가 동천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동천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었다. 동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을 당할까봐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동천의 얼굴을 지켜보던 수련이 말했다.

“어디 아파? 얼굴이 안 좋다?”

순간, 동천의 대가리에서 그 무언가가 번뜩였다. 뜻하지 않은 도움으로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 오만가지 인상을 다 썼다.

“으으, 사실은 뒤, 뒤가 급한데 식사 때라서…….”

“아휴! 드러! 밥 먹는데!”

수련이 뭐라고 투덜거렸지만 사정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갔다 와.”

동천은 연기를 위해서 배를 부여잡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가, 감사합니다.”

동천이 황급히 나가자 사정화는 천천히 젓가락을 놓았다. 수련은 아직도 밥이 남아있는 아가씨의 밥그릇을 보고 의아해했다.

“더 안 드세요?”

사정화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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