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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38화


“다행히 방은 두 개입니다요. 원래 아들 내외가 있었는데 한 5년 전에 돈 번다고 도심지로 나갔다가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에휴, 그나마 의지하던 마누라도 2년 전 먼저 떠나고 지금은 저 혼자랍니다. 다행인 것은 제 소유의 밭이 있어서 먹고살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다는 것이죠.”

이청의 노안에 쓸쓸한 그늘이 졌다. 동천은 말없이 이청을 바라보기만 했다.

‘거참, 말 많네.’

못마땅한 눈으로 이청의 위아래를 꼴아 본(눈치 못 채게) 동천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자기 맘대로 부엌을 휘젓고 들어가 찐 감자를 들고 나왔다.

“냠냠, 이거 나 먹어도 되는가?”

이미 먹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동천이었다.

“허허, 물론이지요.”

여섯 개의 감자를 가지고 나온 동천은 옥동자의 체면상 품위 없게 먹을 수 없어 천천히 씹어 먹었다. 네 개째가 동천의 입속으로 들어갈 무렵 도연이 다가왔다.

“저도 한 개만 주십시오.”

동천은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은 ‘내 것도 모자라.’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입증하듯 감자를 씹어 삼키는 동천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나마 남아있던 감자들은 눈 깜짝할 새에 동천의 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동천은 이빨에 낀 것도 없으면서 쩝쩝거렸다.

“으응?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

도연은 불만을 표시할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심 킬킬거리던 동천은 곧이어 자기 방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내부는 홀아비가 혼자 산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찌든 냄새와 더불어 지저분하기까지 했다. 동천은 얼른 코를 막았다.

“크으. 이게 사람 사는 곳이야?”

동천의 뒤에서 이청이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혼자 산지가 좀 되는지라…….”

“알면 됐어.”

무성의하게 대꾸한 동천은 문득 그동안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절로 하품이 나왔다.

“이보게, 이 몸이 주무실 거거든? 저녁때 밥되면 그때 깨워. 알았지?”

앞뒤가 안 맞는 어투였음에도 이청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얼른 허리를 숙였다.

“예예, 물론입죠. 편히 주무십시오.”

밖에 서있던 도연은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는 이청에게 말했다.

“할아버님, 아까도 말했지만 저희들은 조용히 머물다 가고 싶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떠날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십시오.”

도연의 당부에 이청은 걱정 말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도 아까도 말했지만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놈입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터이니 작은 옥동자님도 쉬시지요.”

도연은 호칭 문제에 관해 언급하려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어차피 내일 떠날 것이니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놔두어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내일 아침에 떠난다고?”

안에서 다 들었던지 동천이 안으로 들어온 도연에게 물었다.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추적대가 어디까지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피곤함 탓에 그새 까먹고 있었던 동천은 퍼뜩 경각심을 돋구었다.

“으음.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언제동안 이래야 하지?”

어린 도연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주군의 성격을 아는지라 대충 기간을 잡았다.

“적어도 한 달은 이런 생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한 달?”

“예.”

뭐라고 다그치려던 동천은 입술을 깨물며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에 잠겼다.

‘그래. 독한 년의 수하니까 그놈들도 분명 독한 놈들일 거야. 충분히 그때까지 쫓아올 가능성이 있어. 쳇, 까짓거 한 달을 못 버틸쏘냐?’

동천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말로 동천이 생각하는 자들이 추적해 오는 거라면 그들은 동천을 찾을 때까지 평생이고 쫓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천이 생각하는 마장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스므레한 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으음.”

3명의 사내들 중 선두의 사내가 무언가를 보면서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이미 조사를 마친 뒤였다.

“대주님. 납치된 흔적은 없습니다. 아마 스스로 나가신 것 같습니다.”

대주라 불린 사내는 굳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소전주님께서 생각보다 고 단수이시군.”

대주의 오른쪽 뒤에 서있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어리시다 생각하여 너무 방심했다 봅니다. 마차를 그대로 보내고 다른 곳으로 빠지시다니…….”

사내는 ‘듣던 대로 영악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애써 삼켜야만 했다. 그의 대주는 공과 사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앞에서 윗분을 욕보이는 발언을 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결국 중간에서 빠지셨다는 말인데.”

대주는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흘간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서 모두들 피로가 극심한 상태인데 되돌아가면서 흔적을 찾느라 심력까지 낭비한다는 것은 무인의 생명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심에 고심을 했다.

‘시간을 가지고 찾느냐, 아니면 전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단시일 내로 찾느냐.’

그는 자신의 수하들을 흘낏 보았다. 그들은 모두 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쉬는 만큼 소전주의 흔적이 지워질 것은 자명한 일. 쉬이 결단을 못 내리던 그는 마침내 전자를 택하기로 했다.

“운기조식을 취한 후 반 시진 뒤 소전주님의 흔적을 찾는다.”


이청이 깨워주는 시간에 맞춰 일어난 동천은 볼품없는 식사를 마치고 때를 벗겨내기 위해 자그마한 욕통 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씨팔. 그것도 식사라고 가져오다니. 그게 소 여물이지 사람 반찬이야?”

저녁식사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으으, 겨우 두 그릇밖에 못 먹다니. 적어도 세 그릇은 비워야 하는 건데.”

……따로 적을 말이 없다.

“그나저나 이놈의 때는 밀어도 밀어도 왜 계속 나오는 거야? 제가 국수 가락도 아니면서.”

동천의 투덜거림처럼 지금 욕통 안의 상황은 어느 것이 물이고 어느 것이 때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물 반 때 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동천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이를 놓칠 동천인가? 그는 까먹기 전에 재빨리 시(?)를 읊었다.

막국수의 정(情)이란 무엇이냐.

출출할 때 먹고픈 이 마음을 너는 아느냐. 국수라고 다 국수가 아니듯 막국수라고 다 막국수가 아니니라. 내 무지한 너에게 막국수의 정의를 내려주노니.

그냥 국수도 아니고 막 가는 국수가 바로 막국수니라.


“푸헤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끝내주는 시라니까?”

웃느라고 동천의 동체가 흔들릴 때마다 국수 가락 같은 때들이 넘쳐 흘러나왔다. 동천은 자신의 때라서 그런지 전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잘 가거라 나의 때들아. 아아, 길 떠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비의 심정이 이러할까.”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동천이었다. 두 손으로 둥둥 떠있는 때들을 모아 내다 버리던 동천은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 재미가 없어져 그만 밖으로 나왔다. 마침 밖에서는 도연이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히히, 이젠 네가 들어가서 해.”

“알겠습니다.”

도연은 이미 준비해 놓은 뜨거운 물통을 양손에 각각 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물통의 물은 욕통을 씻는데 다 소비해야만 했다. 한편, 그런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둘 리 없었던 동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기분 좋게 운기 행공을 마쳤다. 헌데 눈을 떠보니 이청이 쓰러져있는 게 아닌가?

“어? 저 영감이 왜 문가에서 자빠져 있지?”

얼른 다가가 안색을 살폈다. 그의 안색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동천은 단번에 상황 파악을 마쳤다.

“에이 씨! 내가 운기조식을 하는데 들어왔다가 독무를 마셨구만? 내가 오늘 밥만 안 줬어도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건데……. 하여튼 운 좋은 할아방구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치료는 욕이 튀어나올 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행히 운기조식 막바지에 들어왔는지라 독무를 마신 것은 극소량인 것 같았다. 그나마 2년간 독무를 순화시켜 안으로 갈무리해서 그렇지 처음의 동천 수준에서 이청이 독무를 마셨다만 아마도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것이 분명했다.

짝! 쫘작!

“어이, 영감! 일어나 봐!”

동천은 싸가지 없게도 노인의 따귀를 스스럼없이 후려갈겼다. 그 영향 덕인지 이청이 미약한 신음 소리를 동반하며 의식을 회복했다.

“끄응!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이청이 눈을 뜨자마자 동천의 거친 말투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으음. 자네는 신선무(神仙霧)를 들이마셨다네. 아아, 범인이 신선무를 마시면 적어도 30년의 수명이 늘어나거늘……. 나의 실수로 정해진 수명을 늘려주었구나.”

동천의 헛소리에 잠시 어리벙벙해 있던 이청은 곧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제 수명이 30년이나 늘어난 것이?”

동천은 애써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작전상 이청을 외면했다.

“그렇다. 이는 천기를 거역하는 것이지만 이왕 이렇게 벌어진 일. 너는 앞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들에게 오늘의 일을 퍼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혼자 쓸쓸히 살면서도 의외로 오래 살고 싶어 했던 이청은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참아가며 동천에게 엎드려 연신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그럼요! 절대로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요!”

어느새 눈을 감은 동천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가식적인 어투가 이미 몸에 밴 탓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능숙한 솜씨였다. 잠시의 침묵을 고수하던 동천은 슬슬 짜증이 일어나 본론에 들어갔다.

“이곳엔 왜 들어왔느냐.”

이청은 좀 머쓱했던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 그게. 요 옆집에 제가 친아들처럼 아끼는 아이가 있는 뎁쇼.”

“그런데?”

“예,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무척 아프답니다.”

“그래서?”

“고쳐주십사하고…….”

순간 동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노인네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말하자면 동천이 해준 것도 없지만 말이다. 동천의 낌새를 느낀 이청은 한껏 긴장된 얼굴로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바쁘시면 안 해주셔도 됩니다. 허허! 그냥 늙은이의 헛된 소리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데 무슨 생각에서인지 동천이 손을 저었다.

“아니야. 고쳐줘야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고쳐줘야 할게 아닌가?”

기대도 안 했던 이청은 감복한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옥동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동천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내심 중얼거렸다.

‘히히히! 아마 네 말대로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 사이 목욕을 마치고 나온 도연은 주군에게 다소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예?”

동천은 한 말을 또 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눈알을 부라렸다.

“못 들었어? 이 몸께서 환자를 치료하러 가니까 채비를 하라고.”

듣긴 들었는데 절로 인상을 찌푸릴 만한 이야기인지라 차분히 반박했다.

“아직 주군께서는 그럴 만한 의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천은 콧방귀를 꼈다.

“흥! 네가 봤냐? 이 몸께서 밤이면 밤마다 얼마나 의서(醫書)를 붙잡고 노력을 해왔는지 네가 봤냐고.”

“못 봤습니다.”

솔직히 시인하는 도연의 대답에 부라렸던 동천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짐 챙기고 따라와.”

“짐은 왜 챙깁니까?”

동천은 손을 들어 때리는 척을 했다.

“너 자꾸 토 달래? 한번만 더 아가리 놀려봐. 그때는 ‘절 때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걸로 간주하고 때려버릴 테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른 도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군의 말에 따랐다. 너무도 자신 있어 하는 얼굴인데 더 이상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또 오늘 낮의 일도 있고 해서 더욱 그랬다. 문제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선뜻 환자를 치료해주겠다고 나서냐는 것이었다.

“주군,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소문이 나돌면 저희들의 행로에 상당한 지장을 줄 겁니다. 다시 생각하시지요.”

동천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치료하고 곧장 뜨려고 짐을 챙기라는 거 아냐.”

뜻밖의 대답에 도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 의문의 연속이지만 다른 걸 다 제쳐두더라도 주군이 무슨 생각으로 귀찮은 밤길을 택하면서까지 환자를 치료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천은 그런 도연의 생각을 단번에 읽었다.

“자식아. 이 몸이 괜히 약왕전 소문주인 줄 알아?”

도연에게는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우고 말없이 주군의 명을 따랐다. 앞서 나가는 동천 또한 옅은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엄연히 다른 의미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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