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39화
치료(?)하다.
밖에서 안절부절 서 있던 이청은 동천이 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환하게 웃었다.
“옥동자님 준비 다하셨습니까?”
동천은 자연스레 뒷짐을 졌다.
“안내하거라.”
“예예.”
이청은 자신이 아들처럼 아끼는 상부(狀副)가 드디어 고질병처럼 앓고 있던 몹쓸 병을 고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목적지가 바로 옆집이라 채 스무 발자국을 걷기도 전에 도달했다. 옆집 문 앞에는 이청과 비슷한 연배(年輩)로 보이는 노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그 노인의 얼굴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형님 왔소?”
이청은 급히 고개를 끄덕인 후 동천을 소개시켜주었다.
“이보게 상주(狀宙), 아까 말했던 옥동자님일세. 어서 인사를 드리게나.”
상주는 이청의 말에도 불구하고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동천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극진한 대접을 기대했던 동천의 이마에 잔주름이 하나둘씩 새겨졌다. 아울러 뒷짐을 진 그의 손가락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에 당황한 것은 이청이었다.
“이 사람아! 어서 인사드리지 않고 뭐하나?”
상주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했다.
“안녕하……시이입니……까?”
상주는 말을 길게 이어가며 인사를 하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옥동자처럼 안 보이는 애새끼에게 존칭을 쓴다는 것이 무지하게 불쾌했다. 자식놈을 살려줄 것같이 보여야 고개가 숙여질 것이 아닌가. 잘 먹긴 했는지 다소 동그란 얼굴에 밋밋한 눈매. 조그마한 코에 얇은 입술. 거기다 덧붙이면 은연중 풍기는 허풍끼. 어느 곳 하나 특출나게 눈에 띄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게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뿐이라면 말 다 나온 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주는 무교(無敎)였다.
“아니, 이 사람이 그래도? 옥동자님이 노하시면 어쩌려고 그러나!”
이청은 동천의 앞이라 대뜸 큰 소리로 상주를 꾸짖었다. 그래야 옥동자님께서 화를 푸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단순한 동천은 이청의 생각대로 화를 누그러트렸다.
“괜찮네. 못 믿는 게 당연하지. 하하, 자네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지 않는가.”
‘아아, 어쩌면 이리도 너그러우신가.’
이청은 과연 옥동자님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우러러볼 때 만족의 웃음을 짓고 있던 동천이 상주에게 다가갔다.
“네가 나를 못 믿으니 한가지 비술을 보여주리라.”
상주는 얼떨결에 대꾸했다.
“그, 그러든지…….”
동천은 상주의 코앞으로 다가와 그림을 감상하듯 위아래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어디 보자. 다리 관절이 안 좋구나.”
상주는 깜짝 놀랐다. 아닌 게 아니라 10년 전부터 무릎에 이상이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어떻게 긴 뭐가 어떻게 인가. 그냥 때려 맞춘 것인데……. 그러나 동천은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나지막이 혀를 찼다.
“쯧쯧, 캐내면 될 것을…….”
“예?”
“아냐, 그런 게 있어. 누워봐.”
“그, 그럽죠.”
어느새 상주의 말투가 달라졌다. 동천도 그것을 알았으나 어디까지나 근엄함을 지켰다. 동천은 상주가 바닥에 눕자 양손으로 각각 무릎을 쥐고 진기를 흘려보냈다.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었다. 약하게. 그러면서도 회전의 묘리를 지키며 천천히 강도를 높여갔다. 상주는 무릎이 근질거렸다. 그렇다고 아픈 것은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무언가 무릎의 내부에서 빙빙 맴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소용돌이를 치며 옥동자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동천은 때를 맞춰 손을 뗐다.
“일어나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보게.”
상주는 침을 꼴깍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동천의 말대로 무릎을 굽혔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전혀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가 아프기 전보다 더 활력이 있는 것 같았다.
“오오! 아이고, 옥동자님! 이 미천한 것이 잠시 의심을 했었습니다요!”
동천은 잔잔히 웃었다.
“허허허!”
어린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으나 이 상황에서는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옆에 서있던 이청은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는 얼굴이었고, 도연은 보기 민망한 듯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상주가 연신 절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이청이 나섰다.
“자자, 그만하게. 언제까지 옥동자님을 밖에서 세워둘 것인가?”
그제야 절을 하던 상주가 뚝 멈추었다.
“아? 그렇군요. 옥동자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쪽 분은 분명히 작은 옥동자님이시겠지요? 작은 옥동자님도 들어오십시오.”
동천은 절을 더 못 받는 것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그러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법. 마음먹은 바가 있었던 동천은 상주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이곳입니다. 아들놈 병 때문에 약초 냄새가 심할 것이오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동천은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내 본시 약초를 벗 삼아 산을 노닐었으니 그 점은 자네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네.”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인 말이었지만 상주는 믿는 듯했다. 그 증거로 약간 주저하던 그가 문을 열었다. 곧이어 진한 약 향이 열린 문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휘유. 약초 냄새.’
간만에 맡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동천이 처음 약초 냄새를 대할 때처럼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만 기분 나쁜 것은 삐쩍 말라 누워있는 삼십 대가량의 사내였다. 사내는 비 온 직후 추위를 고려해서인지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었다.
‘햐, 저 인간 저 몰골로도 용케 살아있네?’
사내의 상태는 동천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안색은 죽은 지 사흘이 지난 것 같이 창백했고, 이불 위로 드러난 앙상한 두 손은 뼈마디가 훤히 보일 정도로 메말라있었다. 병이 생기면 당연히 체중이 빠지고 몸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헌데 그 병이 생각 외로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 표본이 지금 동천의 앞에서 누워있었다.
“으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만성이 되어 앓는 소리였다. 상주는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얼른 달려가 아들을 깨웠다.
“상부야. 일어나 보거라. 너를 치료하실 하늘나라 옥동자님이 오셨다.”
비몽사몽 꿈과 현실을 혼동하지 못하던 상부는 아버지의 노력 덕분인지 차츰 그 의식을 깨워나갈 수 있었다.
“으음, 뭐라고…….”
“이놈아, 널 치료해 주실 분이 오셨다고!”
아들을 부르는 상주의 목소리에는 아버지의 애정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어미 없이 혼자 키워낸 자식이었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누웠던 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됐으니 오죽이나 했겠는가.
상주는 아들의 마른 볼을 살살 흔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너를 말끔히 낳게 할 분을 모시고 왔으니, 우선 정신부터 차리거라.”
상부는 웃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웃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병은 이미 고칠 수 없을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상태를 당사자가 알지 못하면 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그는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도 가식적으로나마 믿는 척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입니까 아버지?”
상주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유언을 듣는 사람처럼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이놈아. 바로 이분이시다.”
동천을 바라본 상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 죽을 때가 되어 헛것이 보이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옥동자 어쩌고 할 때 잘못 들은 줄 알았더니 진짜로 어린아이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동천은 상부의 놀람과는 별개로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상부의 팔목을 잡았다. 진맥을 하려는 것이다.
“어디 보자. 흐음……. 허어! 오호……. 얼씨구! 는 아니고. 그래, 그렇게 된 거구만.”
‘얼씨구!’라는 대목에서 본색을 드러낼 뻔했던 동천은 얼른 끝마무리를 지었다. 그때 상부는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심한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두 늙은이들은 ‘하늘나라의 옥동자라서 그런지 진맥할 때의 과정이 참 독특하구나.’ 하고 의심조차 않았다. 동천이 내심 입 방정맞음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참다 못한 상주가 조바심 나게 물어보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요? 사, 살 수 있겠습니까?”
동천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어렵네.”
“아아, 저런. 아이고 상부야!”
상주는 이제 아들이 죽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것마냥 상부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늘어놓았다. 그때 동천의 단호한 목소리가 상주의 통곡 소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허나!”
순간 상주는 통곡을 멈추고 기대에 찬 얼굴로 동천을 돌아보았다. 동천은 상주와 시선을 맞춘 그 순간 입가에 한줄기 미소를 그렸다.
“내가 누구인가?”
“아이구, 살았구나! 이놈아! 이제 넌 살았어!”
처음 보기와는 달리 꽤 단순한 노인네 같았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극단적인 표정을 지으니 말이다. 허나, 부모의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다면 불손한 일.
‘으음, 저 노친네가 저리도 기뻐하니 기분이 쪼까 그러네?’
동천은 살았다는 듯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상주의 모습에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이청을 보는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