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59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크흐흐.”
절로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허리를 굽힌 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그의 하체는 역겹고 질퍽한 울림을 터뜨리며 검은 피를 토해냈다.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희뿌연 빛 사이로 드러난 얼굴. 바로 폐혈서생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씨익 웃어댄 그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서점 주인의 목을 움켜잡았다.
“본 서생이 그 따위 어린놈에게 당할 성 싶은가?”
그는 몸을 돌렸다. 주위의 적막함을 뒤로한 그는 피가 굳어버린 잇새로 기분 나쁜 흐느낌을 내보냈다.
“클클, 흐으으. 받은 대로 갚아 줘야지.”
폐혈서생은 지붕 위를 뚫고 날아올랐다. 그리곤 정확하게 동천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죽여라. 죽어라. 크하하!”
콰앙!
방문이 창호지 찢어지듯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동천의 간호를 보고 있던 도연은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폐혈서생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주인 없는 모가지를 휘둘렀다.
“죽어라. 크핫! 죽여라!”
비명은 없었다. 도연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퍼뜩 깨어난 동천은 광기에 물든 폐혈서생이 머리채를 흔들며 짓쳐 드는 것을 목격하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으악! 뭐, 뭐야?”
동천의 목소리가 튀어나온 순간 폐혈서생은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다. 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인 듯 동천의 귀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중얼거리는 그의 입에서 핏물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크하하하! 본 서생을 해했으니 같이 가야겠다!”
갑자기 대소를 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머리채를 동천의 바로 앞에 내던졌다. 떼구르르 구른 머리통은 멈추는가 싶더니 스스로 고개를 세워 동천을 불렀다.
“소협, 뭘 고르시겠습니까? 히히히!”
“무, 물러가! 이건……, 이건 꿈이야!”
폐혈서생은 동천의 발악을 듣고 냉랭한 얼굴을 했다.
“꿈이라고? 이것이?”
오줌을 지린 동천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고! 물러가! 물러가!”
그러자 폐혈서생이 말했다.
“꿈이라……. 그럼, 죽어도 상관없겠지?”
퍼억-!
동천은 그 자리에서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으아아아아악! 으악! 으엑?”
첫 번째 비명은 당연한 비명이었고, 두 번째 비명은 좀 모자란 감이 있어 다시 부르짖은 것이고, 마지막 비명은 꿰맨 상처가 터진 탓에 내지른 비명이었다. 그 결과 다시 의원을 불러 상처를 꿰맨 동천은 눈물을 질질 짰다.
“흑흑흑.”
중소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동천을 내려보았다.
“잘 재워 놓았더니 그새를 못 참고 또 사고를 쳐?”
억울한 동천은 울고 있는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했다.
“흑흑, 대인도, 대인도 꿈에서 그 허파새끼에게 쫓겨봐요. 훌쩍! 아마 저처럼 벌떡 일어났을 거라고요.”
중소구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본 대인이 너처럼 그리 허약한 분이신 줄 아느냐?”
‘이런 씨!’
성질이 난 동천은 두 손을 꽈악 움켜쥐었다. 그러자 무언가가 느껴졌다. 동천은 두 손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응? 이게 뭐……. 아?”
동천이 그것을 확인하자 드디어 도연이 나섰다.
“도련님께서 너무 꽉 쥐고 계셔서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동천은 우선 철경을 내려놓고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양피지를 살폈다.
‘천마도해(天魔圖解)? 후아, 이 선들은 다 뭐랴?’
중소구는 동그래진 동천의 눈을 보고 답답함에 못 이겨 얼른 물어보았다.
“그게 무어냐. 또 무슨 내용이냐?”
동천은 얼른 천마도해를 품속에 넣었다. 그리곤 중소구를 흘겼다.
“알아서 뭐하시게요?”
“알아서 뭐하냐고? 아니 이놈이?”
중소구가 손을 번쩍 들자 동천은 오히려 맞짱을 떴다.
“중 대인. 설마 대인의 신분으로 환자를 치려는 건 아니겠지요?”
대인을 자처하는 중소구가 어찌 환자를 치랴.
“으득, 이놈이 본 대인을 뭘로 보고!”
중소구의 분노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막상 대들기는 했지만 후환이 두려워진 동천은 했던 말을 뒤집을 수가 없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헤헤, 양피지에 관해서는 가르쳐 드릴 순 없어도 이 철경에 대해서는 가르쳐 드릴게요.”
조금 단순했던 중소구는 동천의 예상대로 약간 얼굴을 폈다.
“좋다. 물어볼 것들은 많으나 적어도 한 가지 궁금증은 풀리는 것이니 어서 말해 보거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동천은 낡고 부식되어 제목조차 분간하기 힘든 철경을 집어 들었다. 제목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고작 ‘경(經)’이라는 마지막 글자였다. 이 철경에 관해 그럴듯하게 꾸미려면 적어도 내용은 확인해야 하는 법. 동천은 총 여섯 장으로 분리된 철경 중 제일 첫 장을 읽어보았다.
“에, 그러니까 만물이 하나같고. 내가 하나같고, 나와 내가 그럴진대……기가 돈다 하여…….”
탁!
동천은 미련 없이 철경을 덮었다. 절로 굳어버린 동천의 눈은 도연에게 향해 있었다. 동천과 마주친 도연의 눈은 왜 그 구결을 읽느냐는 무언의 추궁이 서려 있었다. 바로 그때 중소구가 참을 수 없어 물었다.
“이놈아. 왜 읽다 마느냐? 도대체 네놈이 읽은 말뜻이 무엇이더냐.”
가슴이 뛰고 긴장을 한 동천은 딱 잘라 말했다.
“알아서 뭐하시게요?”
바로 그 시각, 객점 내의 사람들은 어느 미친놈의 고함소리를 듣고 누구나 다 기겁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