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73화
“흐음, 그때의 일 때문에 두 녀석을 붙이려다 그녀의 수준을 배려해 평소와 같이 하나를 붙여줬는데 내가 너무 방심했나보군.”
신휘는 민소희가 도망갔다는 걸 알면서도 한가한 모습이었다. 지금 그의 손에는 손바닥보다 약간 큰 종이가 들려 있었고 종이 안에는 작은 글씨들이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와작!
무참히 구겨진 종이는 서서히 연기를 피우더니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신휘는 웃었고 그의 벌어진 입가는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사부님, 화정이의 몸이 펄펄 끓어요. 어떻게 하면 좋죠?”
암흑마교에서 벗어난 지 반나절이 지났다. 이미 짐짝에서 나온 민소희는 화정이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불구덩이에 손을 올린 듯한 착각을 받았다. 손을 내려 화정이를 진맥한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상치 않구나. 혈기가 역류 현상을 보이고 맥박이 제멋대로 요동을 치고 있어.”
자신의 양손을 꼭 쥐고 있던 소연은 애처롭게 물어보았다.
“고칠 수는 있을까요?”
민소희는 고개를 절레 내둘렀다.
“어렵겠구나. 강시의 몸이 사람의 몸과 다를 리 없겠지만 이 사부가 하나 기억하기론 사람이 강시로 전환될 당시, 그러니까 막 강시가 되어버릴 때 특정 영약이나 제조 비법이 아닌 이상 백 약이 무효한 신체로 돌변해버리기 때문이란다.”
“그, 그럼?”
민소희는 비장의 한 수로 대비해둔 화정이가 이렇게 되자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이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나는 수밖에 없단다.”
민소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마차가 멈추어버렸다. 화정이의 머릿결을 쓸어주던 소연은 깜짝 놀라 창틀을 열고 마부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마부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처음에 쭉 가라고 하신 뒤 따로 말씀이 없으셔서 계속 오긴 했는데 전방을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을 택하시면 사천, 섬서로 빠지시고 오른쪽을 택하시면 안휘, 산동, 절강 쪽으로 가게 되는데 어느 쪽으로 마차를 몰까요?”
민소희는 소연에게 조용히 일러주었다.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라.”
소연은 얼른 대답했다.
“오른쪽으로 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마부는 그러겠다고 말한 뒤 마차를 몰았지만 석연치 않은 느낌에 기분이 영 아니었다.
‘보아하니 나들이도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혹,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린 거 아닌지 몰라. 에이,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그도 사람인 이상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떨쳐버리자고 고개를 흔들던 마부는 순간적이나마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좌측에서 날아오고 있었는데 마부가 발견했을 땐 이미 그의 머릿속으로 박혀 들어간 뒤였다. 너무도 빨라 잔상만을 본 것이다. 마부는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그러나 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전방을 향해 속력을 가할 뿐이었다.
쉬익-!
작은 비도가 또 하나 날아왔다. 그것은 두 마리의 말 중 좌측의 말 엉덩이에 정확히 꽂혔다.
이히히힝!
“아악!”
마차가 뒤집어질 듯 요동을 쳤다. 엄청난 충격파 덕분에 내부는 말이 아니게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다친 말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자 나머지 말도 덩달아 제 갈 곳으로 뜀박질을 했다. 마차가 멈추고 좌우로 흔들리자 겨우 추스르고 일어난 소연은 곧 사부를 볼 수 있었다. 민소희는 작은 몸집임에도 불구하고 화정이를 들춰 업고 있는 상태였다.
“어서 나가거라!”
“예, 예!”
소연은 재빨리 일어나 마차를 벗어났다. 뒤이어 따라 내린 민소희는 화정이를 소연의 옆에 내려놓고 어떻게 된 일인지 미쳐 날뛰는 말들에게 다가갔다. 멀쩡한 말은 진정을 한 상태였지만 단검이 박혀있던 말은 여전히 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마부 석을 살폈다. 마부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어디에선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피?’
마부 석에서 소량의 피를 발견한 그녀는 재빨리 제자에게로 돌아왔다. 다행히 소연은 안전한 상태였다. 화정이를 보살피던 소연은 초조한 얼굴로 다가온 사부를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에요? 예?”
민소희는 주위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말했다.
“빨리 화정이를 업고 따라오너라. 급하단다.”
“예, 사부님.”
소연은 군말 없이 화정이를 들쳐업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이 없는 짓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급할 필요가 있겠소?”
“누구냐!”
민소희의 외침에 우거진 수풀 속에서 한 사내가 환영처럼 나타났다. 신휘였다. 아울러 그의 뒤로 하나둘씩 사내들이 늘어만 갔다. 늘어나는 숫자가 멈춘 것은 그들이 일곱을 헤아릴 때였다. 신휘와 더불어 여덟 명이 민소희를 추적한 것이다. 신휘는 화정이을 업고 있는 소연과 굳어버린 안색의 민소희를 번갈아 보며 안쓰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쯧쯧, 너무 무리한 것 아니오? 개구리가 튀어봤자 거기에서 거기일진데 말야.”
개구리로 비하된 민소희는 분노로 얼굴을 붉혔다.
“빨리도 쫓아왔구나. 분명 감시자는 본녀가 죽였을 텐데?”
신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런 초보적인 수법에 당하다니. 그놈도 잘 죽었지. 그 점에 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본 살각의 감시가 그거 하나로 끝나리라 생각했으면 큰 오산이지.”
민소희는 어디에서 걸렸는지 궁금했지만 이제 와서 그걸 알아 뭐하겠는가. 그녀는 언제 준비했는지 붉은색 단환을 꺼내 꿀꺽 삼켰다. 그러자 신휘가 눈을 반짝였다.
“호오? 뭔가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군. 격발단 종류라도 되오?”
약효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떨던 민소희는 온몸을 타고 도는 충만한 내공을 느끼곤 작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소연아. 너는 화정이를 데리고 멀찍이 물러서 있거라.”
소연은 울 것 같은 눈으로 사부를 응시했다.
“하, 하지만…….”
“어서!”
자신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소연은 이내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조, 조심하세요.”
민소희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주었는데 그만큼 그녀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각. 약효는 그 정도가 한계. 그 안에 없애야 한다.’
그녀의 각오가 전해지기라도 한 듯 웃고 있던 신휘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일곱의 사내들이 신속하게 비산하다 일제히 민소희를 향해 모여들었다. 한결같이 초절정 살수들인 그들은 서로를 스치듯 교차하며 민소희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곧이어 뿌연 강기막이 민소희를 둘러싸고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민소희의 왜소한 몸체가 점점 바닥을 향해 짓눌려 내려가고 있었다. 엄청난 힘이 그녀를 조여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살수들이 눈짓을 교환했다. 이제 시작해 보자는 뜻이리라. 그리고 다음 순간 일곱의 살수가 동시에 손을 썼고, 민소희는 터질 듯한 압력에 이를 악다물었다.
‘오너라! 내가 왜 단묘(短猫)인지 오늘 똑똑히 보여주리라!’
슈리릿!
민소희의 품속에서 가는 실선이 휘몰아친 것도 그때였다. 누에의 실처럼 줄줄이 뽑혀 나온 실들은 햇살에 부딪혀 은빛 광채를 머금고 있었다.
까강, 까까까강!
방어막을 형성하듯 그녀의 주위를 휘몰아치던 은빛 실선과 살수들의 검날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살수들은 모두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심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충격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이다. 그것은 민소희도 마찬가지였는데 사방으로 공격을 받아낸 그녀는 충격파를 줄이기 위해 신형을 회전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울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까지 비릿한 것이 올라왔다. 애써 삼킨 그녀는 지체할 것도 없이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그대로 쏘아나갔다. 살수들이 흩어진 때를 노려 각개격파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녀의 표적이 된 살수는 작은 암코양이가 자신을 향해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도망치기엔 시작이 촉박했다. 급히 물러선 그는 자세를 바로잡고 단번에 그녀의 목을 내쳤다. 그러나 민소희는 사정권 밖에서 멈춰버렸다. 대신 창날 같은 유엽비도가 날아와 살수의 목을 꿰뚫었다.
“컥!”
살수의 죽음을 확인한 그녀는 잡고 있던 실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실 끝에 묶여있던 유엽비도가 자연스레 딸려왔다. 유성추와 비슷한 원리로 사용했지만 추 대신 유엽비도를 매단 것이다.
‘놈들의 우두머리는 자존심이 있어 마지막까지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여섯! 지금쯤이면 다시 모였을 테니 숲 속에서 상대하는 것이 나에겐 유리하다.’
짝짝짝짝!
어느새 장내에 나타난 신휘가 갑자기 박수를 쳐댔다.
“아주 훌륭하오.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그런 괴상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던데?”
민소희는 독살맞게 대꾸했다.
“흥! 본녀가 30여 년 동안 놀고만 있는 줄 알았더냐?”
대충 짐작을 하고 있으면서 재미로 물어본 신휘는 자신의 수하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솜씨를 보아하니 내 수하들이 좀 밀리겠구려. 더군다나 숲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어지니 조금 흥을 돋워야겠소. 어디 보자……. 그렇군. 하하, 당신의 제자는 어떻소?”
눈치를 챈 살수들은 민소희 대신 멀리서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소연에게 몸을 날렸다. 대노한 민소희는 고함을 외치며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안돼! 이 비겁한 것들!”
한편, 소연은 살수들이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부를 위한 기도를 멈추고 급히 화정이를 들쳐업었다. 그러나 어찌 그녀가 살수들의 엄청난 속력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제일 먼저 움직였던 살수는 소연에게 당도하자마자 말을 건넸다.
“꼬마야.”
기겁을 한 소연은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상체를 틀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살수가 날카롭게 세운 손날로 소연의 가슴을 쑤셔 넣었다.
푸욱!
“악!”
소연은 업고 있던 화정이와 함께 나동그라졌고, 그와 동시에 소연을 해한 살수의 얼굴이 잔뜩 찌푸렸다.
“…….”
그는 동료들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손은 투박한 갈색이었다.
‘역시 피가 없군.’
소연을 찌를 당시 무슨 두꺼운 것을 뚫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손에는 피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그의 동료였다. 그의 동료는 간단히 말했다.
“온다. 준비해.”
고개를 돌린 살수는 작은 빛살을 보았다. 그것은 겨우 한 가닥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민소희의 신형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살기로 인해 터져 나갈 정도였다.
“이놈들! 모두 죽일 테다!”
위기감을 느낀 살수들은 한껏 긴장해하며 하나의 진을 형성해갔다. 살수가 진법을 구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나 신휘가 이런 때를 대비해 준비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진법 구사가 가능한 것이었다.
“죽이겠다! 죽여버리겠어! 감히 내 제자를!”
반 미친 상태의 민소희는 그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살수들이 형성한 진(陣) 안으로 들어갔다.
“발동!”
진법의 주축이 되는 자가 육괘(六卦)를 점하고 왼쪽의 두 명에게 소리쳤다.
“풍변(風變)!”
두 살수가 양쪽으로 갈라져 민소희를 스치듯 공격했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두 개의 핏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막는다고 막았는데 전부 막아내진 못했던 것이다. 허나 덕분에 정신이 맑아진 그녀는 진 속에 휘말린 자신을 깨닫고 초조함을 금치 못했다.
‘아아, 곧 있으면 약효가 사라질 터인데 이렇게 끝난다는 말인가?’
그 사이 네 번의 공격이 그녀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녀는 다음 공격 시엔 여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 것이라 직감하고 있었다. 분명히 못 막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양패구상을 하더라도 말이다. 민소희는 마음먹은 그 즉시, 온 내공을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리곤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보다 먼저 가겠군요.’
이때 민소희도 몰랐고 살수들 또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무언가가 조용히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