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8화
“하하하! 그렇다. 너는 아까 전에도 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 교주(敎主)의 아들내미답지 않게 의외로 혼자 실성한 듯하면서 들어오더니.. 쯧쯧쯧! 냉소천이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켰구만? 속이 너무 물러터졌어! 삼십 년 동안 이곳을 지나던 몇몇 놈들을 잡아서 죽인 거 가지고 그렇게나 무서워하다니.. 쯧쯧…!”
‘미친놈의 늙은이..’
이게 지금 동천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함부로 표출(表出)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신 다른 말로 항광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래요? 치! 먹으면 될 거 아녜요!”
방금 항광이 애비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다는 말에는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자기 아버지를 욕한 게 아니기 때문.) 자신이 무서워한다는 말에 발끈했던 것이었다.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동천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을 하자 항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흐.. 그렇다면 먹기 전에 미리 알아둬라. 그 단환을 그냥 복용한다면 적어도 네 수명에서 이삼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테고, 심법(心法)을 운용해서 복용을 한다면 단숨에 이십 년 정도의 공력(功力)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단환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똑같이 이십 년의 내공을 얻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된다는 점에서 내가 만든 단환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네가 이 단환을 먹을 때 네가 익히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간직하고 있던 심법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알고 있는 우수한 내공 심법이 있느냐?”
항광의 물음에 동천은 얘기를 할까.. 말까로 잠시 고민을 했다. 사부가 밤새도록 자신을 가르칠 때 이 귀의흡수신공(鬼意吸收神攻)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가르쳐 주지를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는 심법은 그것뿐이고.. 또 자신이 내공심법 하나조차 모르고 있다면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저 매서운 눈매를 가진 늙은이에게 들킬 것만 같았기에 할 수 없이 이름은 말하지 않고, 그 심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히히! 당연하죠! 내가 누구의 아들인데 좋은 내공심법 하나조차 없겠어요?”
“그래? 그러면 그 심법의 이름이 뭐냐?”
동천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지 않던 질문을 항광이 하자 내심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짓말이 특기인 동천은 속마음과는 달리 태연한 모습으로 말을 했다.
“흠흠! 그건 말이죠..? 아버님께서 가르쳐 주지 말라는 엄명(嚴命)이 계셔서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죄송한 줄 알지만 이점에 관해서는 물어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항광은 동천의 숨기는 듯한 말에 순간적으로 의심을 했지만 무림인들이란 게 대개 그렇듯이 자파(自派)의 무공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려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어린놈의 행동이 내심 괘씸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 가기로 했다.
“끄응.. 좋다. 그럼 그 단환을 먹고 네가 알고 있는 심법을 운용해서 공력을 취해봐라. 그리고 네가 그 심법의 종류를 숨기는 듯하니 내가 잠시 나가있으마. 두 시진(4시간.) 정도면 운기조식을 무난히 끝낼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오도록 하지. 그럼 이따가 보자.”
사실 여기에서 항광이 동천의 내공을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에 잠시 나갔다 온다고 했지만, 항광의 진실한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 속셈이 뭐냐하면, 원래 이런 영약을 복용할 시에는 보조자가 옆에서 지켜주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몸에 이상한 증상(症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단 한 번도 운기조식도 해본 적이 없는.. 그러니까 몸 안에 내공이 단 한 올조차 없는 사람일 시에는 옆에서 보조자가 지켜봐야 하는 게 필수였다. 그러나 항광은 그것을 노리고 동천을 혼자 놔둔 후, 운기조식을 하게 한 다음에 동천이 잘못해서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심해서 죽는다고 해도, 자신은 냉소천에게 당신의 아들인 냉현이 혼자 운기조식을 하고 싶다고 계속 우기는 바람에 잘못된 거지 자신하고는 아무런 책임(責任)도 없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는 동천은 항광이 나간다고 하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왠지 항광의 앞에서 운기조식을 한다는 게 꽤나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요? 그럼, 잘 갔다 오세요!”
동천은 항광의 속셈도 모르고 친절하게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흐흐흐.. 오냐! 오냐!”
항광은 혹여 동천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항광이 동천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동천은 자신의 손에 들고있는 단환을 바라보며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왠지 먹기가 꺼림칙했던 것이다.
“으-음! 킁킁. 향기는 좋은데.. 여기에 인간의 대가리 즙이 들어갔다니까 좀 먹기가 그러네..?”
한참을 단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의 동천으로서는 재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얼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차피 먹을 거였기 때문에 형식상의 결정이었다.
“휴-! 할 수 없지. 환골탈태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동천은 밤새 사부의 말을 들으면서 환골탈태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흔히 사람들이 불가능할 때마다 운운하는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들었다. 동천은 그런 기회를 놓치고 싶은 생각이 결단코 없었다. 일단 생각을 마친 동천은 가부좌를 튼 뒤에 귀의흡수신공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김질을 해보았다.
“에.. 그게 그러니까.. 네 번, 두 번, 네 번..”
사실 동천이 아침에 역천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가르쳐 주면 알 것 같기도 한데요..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모두 이해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내공심법에 관해 처음 배우게 된 동천으로써는 처음 내공을 운기할 때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꾸만 물어봤던 것이었다.
“음.. 좋아. 역시, 내 머리는 똑똑 그 자체란 말야.”
다시 한번 내공 구결을 외워도 막히는 게 없자, 동천은 어느 정도 안심을 한 후 천약뇌수단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단환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단환은 동천의 목에서 그대로 녹아버렸다. 동천은 그 순간,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먹은 단환이 그렇게 쉽게 녹아버리리라고는 상상(想像)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맛을 평가하자면 단환이 동천의 혀를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달콤하다.. 그리고..? 모르겠다.. 라고 평할 수가 있었다.
“흐흥! 꽤 맛있는데.. 아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잠시 맛을 음미하던 동천은 재빨리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단전에서부터 위로 천천히 올라가며 기를 세심히 퍼트리고.. 좀 위로 올라가서 중부혈을 중심으로 기를 두 바퀴를 돌리고.. 더 위로 운문혈로 가고.. 그리고 천부혈부터는 양쪽 팔로 기를 퍼트려 손끝까지 기를 순환시킨 후 그 기를 머리 쪽에 있는 신정혈로 보낸 후..’
단환을 먹은 후 뱃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기(氣)가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깜짝 놀란 동천은 얼른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어! 이거..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데..?’
동천은 퍼져나가는 기를 제깐에는 단전으로 모은다고 애를 써봤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조금 모인 기를 단전에서 중부혈로 보낸 뒤 그 기를 두 번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 바퀴도 겨우겨우 돌린 뒤, 그대로 기를 올려 보냈다. 동천의 무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그렇게 기를 돌릴 때마다 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균형(均衡)이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동천의 이마에서는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하더니 굵게 맺힌 땀방울들은 하나둘씩 천천히 동천의 얼굴 곡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제.. 길..! 기(氣)가.. 기가.. 조금씩 역류(逆流)하기.. 시작… 한다..!’
단 한 번의 지나침 때문에 신정혈로 가야 할 진기가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기해혈 쪽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천이 얼굴을 붉히며, 그 기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力不足)이었다.
“크.. 윽!”
입에서는 조금씩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천은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가 아니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하면 되지? 으윽! 제길.. 아마도 처음에 기를 한 바퀴만 돌리고 올린 게 잘못인 거 같은데.. 어떡하면…’
입가에 맺혀있던 핏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아까워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피를 핥아 먹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머릿속에 번뜩! 하고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 그래! 신정혈 쪽으로 기를 한 바퀴 더 돌리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 동천의 생각은 중부혈에서 한 번은 단전 쪽으로 기를 내려보내고 두 번은 신정혈 쪽으로 올려 보내서 자꾸 기해혈 쪽으로 내려가는 정신적인 기를 끌어올린다면?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중부혈에서 기를 세 바퀴나 돌린다는 얘기였다.
지금 동천이 생각한 방법은 매우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는 동천으로서는 급히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자, 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된다! 기가.. 희미하게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천만다행히도 좋은 쪽으로 기의 흐름이 흘러갔다.
자꾸 기해혈 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던 정신적인 기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십주천을 넘어가자 그제서야 상단전과 하단전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없어졌다. 안심을 한 동천은 재빨리 중부혈에서 세 바퀴나 돌리던 기를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한순간의 위기를 넘긴 동천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무사히 십이주천(十二周天)을 마쳤다.
“휘휴-! 죽는 줄 알았네.. 어? 그나저나 몸이 꽤 가벼운데?”
운기조식을 마친 동천은 온몸이 새처럼 날아갈 듯한 느낌이 들자 양팔을 힘차게 휘둘러 보았다.
“우와! 끝내주는데? 히히히!”
신기하게도 단전뿐만이 아니라 미간(眉間)과 미간 사이인 신정혈에서도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단전이 두 개라더니 맞긴 맞나보네?”
신기한 마음에 계속 주절대던 동천은 온몸에서 힘이 넘치다 못해 뻗치기까지 하자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어디 쓸 데가 없을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작은 돌멩이를 보게 되었다.
“흐음.. 사부님이 한 이삼십 년의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 조그만 돌멩이 정도는 가볍게 부술 수 있다고 했는데…?”
손 안에 가득 찰 정도의 돌멩이를 주워 든 동천은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돌멩이를 내리쳤다.
“따악!”
그러나 돌멩이는 부서지지 않았다.
동천의 주먹이 아픈 것은 당연한 이치(理致)…
“윽! 아휴-! 씁! 뭐야? 깨지기는 뭐가 깨져? 에이.. 거짓말쟁이 사부.. 님이 아니라… 아아! 맞아. 내공을 써야 한다고 했지? 천재(天才)인 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자신의 실수를 천재의 실수로 대충 얼버무린 동천은 이번에는 주먹에 내공을 주입한 후 내리쳤다.
“팍! 우수수수-!”
“오오! 이번에는 손도 안 아프고 돌도 힘없이 부서지네? 히야.. 내공이 좋기는 좋은 거구나..! 이래서 세가의 아저씨들이 죽어라고 내공을 키우려고 했던 거구만? 히힛!”
신이 한껏 난 동천은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큰 돌덩이를 들어서 내리쳤다.
“퍼-억! 투둑! 툭툭!”
자신의 뜻대로 돌이 깨지자 동천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정말로 자신에게 날개가 달렸다면 곧바로 날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오-예! 어디?”
이번에는 좀 더 큰 돌멩이를 찾아가던 동천은 아까 항광이 앉아있던 자리에 큼지막한 돌덩이가 놓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직사각형으로 되어있고 가운데가 매끈하게 파여있는 것이 아마도 잘 때 머리에 베고 자는 베개 대용인 것 같았다. 그러나 동천은 베개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흥분한 나머지 그저 큼지막한 돌멩이만 보이면 좋다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깨려고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 돌덩이를 들려고 하자 꿈쩍도 안 했다.
“으응? 이게 왜 안 들리지?”
예상(豫想) 외로 돌덩이가 꿈쩍도 안 하자 동천은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네모난 돌을 잡아 올렸다. 하지만 그런 동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은 움직이질 않았다.
“끄-응! 헥헥.. 이게 반항을 하네? 안 움직여? 까짓 거 그럼 깨버리면 되지.”
성질이 급한 동천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 돌덩이를 온 힘을 다해 그대로 내리쳤다.
“콰-앙(?)”
“허-억? 으으으으-아아악–!!”
동천은 순간적으로 주먹이 깨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고통이 주먹을 타고, 동천의 뇌리에까지 전달됐다. 동천은 고통을 참질 못하고, 땅바닥에 그대로 굴러 버렸다.
“후아, 후아.. 윽! 피.. 피다! 으으으… 이 씨팔놈의 돌멩이가 감히 완벽하고 여린(?) 나의 손 등에 상처를 입혀? 에잇! 에잇! 씨발놈의 돌탱이! 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부수고야 만다!”
동천은 흠집도 안 나는 돌을 보면서 어찌나 분했던지 발딱! 일어나서 돌의 평평한 옆부분을 내공으로 발을 보호한 후 계속 후려갈겼다.
“퍽! 퍽!”
그때였다.
“스르릉..”
“어? 이 돌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갑자기 꿈쩍도 안 하던 직사각형의 돌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 느낌을 뒷받침해 주는 소리가 들려오자 동천은 그 돌덩이를 세심히 관찰(觀察)하기 시작했다. 사실 세심히 관찰할 것도 없이 그냥 보였다.
“엉? 호오.. 이거 움직이는 거잖아?”
관찰을 마친 동천은 돌의 옆부분을 있는 힘껏 밀어보았다.
“읏-차..”
동천의 신음 소리와 함께 돌덩이도 함께 움직였다.
“스르르릉..!”
자신의 생각대로 돌이 움직이자 동천은 역시 나는 천재야.. 라고 생각했다.
“헤헤.. 역시 그렇군. 엉? 이게.. 책(冊)이네?”
돌이 치워지자 원래 돌이 있었던 자리만큼의 구멍에 두 권의 책이 들어있었다. 동천은 그 두 권의 책을 양손에 각각! 하나씩 들고는 그 책들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만독경(萬毒經)? 흐음.. 어디, 이건.. 용독경(用毒經)? 우와! 이건 굉장히 두꺼운데? 그건 그렇고.. 이거 혹시 아까 그 할아범 거 아냐? 어쩐지 대단한 것 같은데.. 내가 먹어 버릴까?”
그때 동천의 뇌리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처음에는 희미하더니 점점 강렬하게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뭔가 이상한..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느낌이 점점 확실한 느낌으로 동천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