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91화
황급히 내공을 끌어올린 탓에 거두어들이는 것이 다소 힘에 부쳤던 도연은 가늘게 숨을 몰아쉬었다.
“저는 방어 초식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자신은 방어를 했을 뿐인데 네가 못 막은 것을 가지고 왜 따지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신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누구긴 누구겠는가. 바로 동천이지.
‘잘한다! 잘한다! 이기는 편 우리 편! 이히히히!’
생각 같아서는 미미년을 반쯤 죽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품위를 생각해서 그저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동천과 나란히 관전하고 있었던 추연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아, 저 오빠 대단하네요.”
그녀의 말에 가만히 있을 동천이 아니었다.
“저것이 뭐 대수라고 놀라느냐.”
“예에? 방금 그것이 별거 아니라고요?”
동천은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아니란다. 저건 본 공자가 기거하는 곳에서는 개나 소나 다 기본이란다. 하! 하! 하!”
동천이 마지막에 또박또박 힘주어 웃어대자 자신을 비웃었다고 생각한 황룡미미는 분노에 못 이겨 황룡무제검법(黃龍霧在劍法)의 1초식을 펼쳤다. 처음의 공격은 이번 것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격이 다른 무공이 펼쳐진 것이다. 황룡미미와는 달리 외부의 잡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던 도연은 가슴 쪽으로 회오리치듯 쏘아져오는 여섯 가닥의 줄기를 재빨리 피했다. 그러나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에 데인 듯 가슴 부위가 화끈거렸다. 황룡미미는 자신의 검초를 피하자 내심 이를 악물었다.
“차앗!”
도연은 방심할 수 없어 뒤로 빠졌지만 방어만으로는 힘에 겨웠던지 어깻죽지를 강타당했다.
“우욱.”
그제야 안색이 밝아진 황룡미미는 공격을 멈추고 가소롭다는 식으로 웃어댔다.
“호호호, 졌음을 시인하느냐?”
왼쪽 어깨를 어루만지던 도연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승복하는 조항은 제시되지 않은 걸로 압니다.”
황룡미미는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듣고 보니, 어떤 상황이 되면 패배하는지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흥! 좋다. 틀린 말도 아니니 상대가 졌다고 시인했을 때 이긴 걸로 하자.”
당당한 도연이 얄미워 흠씬 두들겨 놓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도연은 황룡미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삼 초도 끝났으니 공격에 들어가겠습니다.”
황룡미미는 목검을 곧추세웠다.
“마음대로 하거라! 간다!”
두 손으로 목검을 단단하게 틀어쥔 도연은 공격해 들어오는 황룡미미의 검봉을 노려보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발끝을 시작으로 묵직한 기운이 치솟아 올랐다. 온몸을 감돌며 일렁이던 무형의 기운은 하나의 물결이 되어 황룡미미의 목검을 시작으로 삽시간에 그 영역을 넓혀갔다. 도연의 영역권 내에 들어온 황룡미미는 답답하고 짓눌린 듯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흐윽?’
생각지도 못했던 중압감이 그녀를 내리누른 것이다. 그러자 때를 노린 도연의 목검이 거대한 압력을 내뿜으며 황룡미미의 전신을 제압해 들어왔다.
‘아, 안 돼!’
질끈 눈을 감은 그녀는 치욕스러운 패배를 맛보리라 생각했지만, 난데없이 들려온 천둥 같은 전음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려야 했다.
『회룡추미보(回龍追尾步)!』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회룡추미보를 펼친 황룡미미는 간발의 차로 도연의 공세를 피했지만 뒤로 물러설 때 너무 힘을 주었던지 신형이 뒤로 쏠렸다. 눈을 반짝인 도연은 재차 치고 들어와 태공압재(太空壓載)를 펼쳤다. 거대한 듯 공허한 듯한 압력을 실어 허실의 구분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초식으로서 이것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어느 것이 실초이고 어느 것이 허초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초식이었다. 황룡미미는 계속 회룡추미보를 사용하며 예의 그 전음을 기다렸다. 분명히 위기가 닥쳐오면 또 다시 전음을 보내줄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예측한 대로 어디선가 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황룡단분(黃龍斷分)을 허초로 사용한 뒤 황룡절편(黃龍切片)으로 상대의 오른쪽 다리를 찔러라!』
눈을 반짝인 그녀는 도연의 공세를 황룡단분으로 마주치는 척하다가 급히 회수한 뒤 검을 수평으로 세우고 황룡절편을 시전했다.
수슈숙!
상대가 공세를 거둘 줄은 몰랐던 도연은 서로 부딪히는 찰나에 전 내공을 쏟아부었다가 허공을 휘두르는 형국이 되고야 말았다. 몸의 균형이 앞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도연은 사선으로 날카롭게 쏘아져 내려오는 황룡미미의 목검을 보곤 급히 땅을 박차 올랐다.
“타핫! 연주무태(演奏舞太)!”
허공 중에서 수십 가닥의 검세가 물 흐르듯 터져 나왔다.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던 인영은 나직이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급히 황룡미미에게 전음을 보냈다.
『회룡승천(回龍昇天)에 황룡광일참(黃龍光一斬)!』
삼변(三變)을 밟고 신형을 비틀며 튀어 오른 황룡미미는 가르쳐준 그대로 황룡광일참을 펼쳐냈다.
탁, 타타타닥!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던 목검이 도연의 검세와 부딪히며 요란한 소음을 발했다. 그와 더불어 중간쯤 파고들던 황룡미미가 힘에 겨운 듯 너덜해진 목검을 거두어들였다. 내력이 뒷받침만 되어있어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그만 아깝게 물러선 것이다. 공격이 실패해 재빨리 이 장여를 물러선 황룡미미는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헉, 헉헉.”
눈에 보일 정도로 피로한 모습이었다. 한켠에 서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낱낱이 주시하고 있었던 동천은 자신이 보기에도 놀라운 광경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우와…….’
정신을 차렸다면 박수라도 쳐주었을 게 분명했다. 그때 동천을 대신해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짝짝짝짝!
“하하하, 모두들 아주 훌륭하구나.”
박수를 친 사람은 총관과 더불어 걸어오고 있는 황룡굉이었다. 총관은 한술 더 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정도가 아닙니다. 아가씨는 그렇다 쳐도 저 아이는 나이에 비해 실로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있지 않습니까?”
황룡굉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딸아이를 생각해 총관과 같이 치켜세우지 않을 따름이었다.
“확실히 저 아이의 나이에 비해서는 대단하지.”
가주님의 등장에 급히 허리를 숙이던 추연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아픈 듯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동천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가까스로 고개를 쳐든 동천은 아니라는 듯 한 손을 저었다.
“아픈 게 아니라. 으윽, 어쨌든 아픈 게 아니니까 신경 꺼.”
황룡굉이 박수를 치며 등장할 때부터 심하게 머리가 지끈거렸던 동천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봐도 주위에 숨어있는 사람이 없자 황룡굉과 총관을 나란히 주시했다.
‘어째서 가주님과 총관이 오니까 머리가 아픈 거지? 제길! 어제도 갑자기 아팠는데. 그럼, 저 두 사람 중에 내게 해를 끼칠 인간이 있다는 소리야?’
심호흡을 내쉬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동천은 상단전을 일으켜 온 신경을 황룡굉에게 쏟아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번에는 상대를 바꾸어 총관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씨팔, 아무런 이상이 없잖아?’
당연한 결과였다. 상단전을 이용해 사람을 가려내는 법은 동천이 즉석에서 떠올린 방법이었으니까.
‘어째서, 어째서 예지력이 나온 거야! 설마…, 이 몸의 예지력이 어디 한군데 고장난 거 아냐? 으으, 그러면 큰일인데.’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를 쥐어뜯던 동천은 곧이어 무언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러자 주위의 사람들이 동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과연 저 애새끼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두들 궁금했던 것이다. 당황한 동천은 멋쩍게 변명을 해댔다.
“에에, 그러니까. 머리가 가려워서……. 하하.”
바로 옆에 있던 추연을 위시해 괜히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제각기 알아서 고개를 돌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