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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08화


동천은 저 새끼가 왜 인상을 구기며 나가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자신은 해줄 만큼 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기분을 환기시키는 뜻에서 추연을 욕실로 떠다밀었다.

“자자, 얼른 씻으라고. 여자가 냄새나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장 아저씨가 그랬어.”

추연은 정신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얼떨결에 떠밀렸다.

“앗? 저, 그게.”

쾅!

동천은 일부러 소리 나게 욕실 문을 닫았고, 멀거니 서있던 추연은 하는 수 없이 조심스레 옷을 벗어 욕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목욕하고 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물러선 동천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장춘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장 어르신께서 먼저 들어가셔야 하는 건데. 죄송합니다.”

그런 이유로 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나 장춘은 그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잘한 일이었다.”

동천은 확실히 못 박아 두려는 듯 약간의 아부를 섞어 말했다.

“역시 황룡세가 분들은 마음이 넓으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연이가 나오면 장 어르신께서 먼저 들어가시지요. 저는 제일 나중에 목욕을 하겠습니다.”

자기 가문을 띄워주는데 마다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장춘 또한 그 부류에 속했는데 그는 이 어린아이가 참으로 사려가 깊어(?), 앞으로 큰 재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욕실에 들어갔던 추연은 편치 않은 심정으로 목욕을 하느라 땀 냄새만 나지 않을 정도로 대충 물만 뿌리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다…, 했습니다. 욕통에는 들어가지 않고 물만 뿌리고 나왔으니 두 분께서 사용하시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장춘은 욕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허허, 너무 조심했구나. 그리 안 해도 될 것을.”

침대 위에 누워있던 동천은 장춘이 들어간 뒤 추연을 힐끔 쳐다보다 그녀가 들어갔을 때 입고 있던 옷과 나왔을 때 입고 있던 옷이 똑같자 눈살을 찌푸렸다.

“올 때 아무것도 준비 안 하고 왔냐? 목욕을 했는데도 옷이 똑같잖아.”

추연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제가 멍청하여 아까 도망칠 때 잃어버렸습니다.”

“에그, 신경 좀 쓰지. 그렇게 나오면 목욕한 게 다 허사잖아. 쳇, 하는 수 없지. 우선 내 옷으로 갈아입어.”

추연은 재빨리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자 뒷머리를 긁던 동천은 소연을 부릴 때의 경험을 살려 추연을 대했다.

“싫어? 그럼, 내가 갈아입혀 주랴?”

대번에 얼굴이 붉어진 추연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내젓던 두 손을 공손하게 내밀었다.

“제, 제가 입도록 하겠습니다.”

동천은 승리의 미소를 띠웠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히히!’

곧이어 옷을 받아든 추연은 말똥히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동천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뒤돌아 주셔야…….”

“아? 알았어. 알았어. 나는 창밖을 구경하기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갈아입어.”

동천이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는 가운데 사르륵거리며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크지?”

“예? 아, 아니요. 전혀요.”

지레 놀라 몸을 움츠렸던 추연은 내심 한숨을 내쉬고 어떻게 입는지도 모를 정도로 후다닥 입어버렸다.

“됐습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동천은 그녀의 말과는 달리, 제법 헐렁거리는 옷차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 그녀의 뒷부분을 가리켰다.

“어라? 저게 뭐지?”

추연은 고개를 돌렸다.

“뭐, 뭐가 있나요?”

기회를 포착한 동천은 그녀가 돌아선 순간 잽싸게 달려가 혼혈을 집어버렸다.

“아…?”

추연이 기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 쓰러지려는 그녀를 자연스레 안아든 동천은 침대 위에 눕힌 뒤 신발을 벗겨냈다. 그러자 추연의 자그마한 발이 드러났는데 그녀의 발은 심한 물집을 앓고 있었다.

“으윽? 이것이 정녕 너의 발이란 말이더냐?”

상상외의 몰골에 기겁을 하는 동천. 그의 놀람은 이내 황룡미미에게로 화살을 매겼다.

“아아, 개 같은 년 때문에 불쌍한 네가 고생만 하는구나.”

자못 처량한 눈으로 추연의 발을 내려다본 그는 양손으로 각기 하나의 발을 감싸 쥔 후, 귀의흡수신공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서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빛이 흘러나왔고, 그 빛은 추연의 발 속으로 스며들며 물집들 하나하나를 터뜨려냈다. 그리고는 터진 곳을 급속히 아물게 하였다. 언제 장춘이 나올지 알 수가 없어 최대한 빠르게 치료를 마친 동천은 피로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것이……, 이것이 한때나마 나를 사모했던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란다.”

“풋!”

어디선가 여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야?”

깜짝 놀란 동천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은 창가 쪽. 신경을 집중시키고 그곳으로 달려간 그는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어떤 년이 웃은 것 같았는데. 이 몸이 잘못 들었나? 하긴,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면 이 몸의 감지력에 걸렸어야 마땅했으니 잘못 들었나 보다. 그래, 내가 너무 신경을 과다하게 써서 그랬을 거야.”

추연에게 이불을 덮어준 동천은 잠에 빠져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추연아. 이 몸은 주위에 여자들이 넘쳐나 너까지 감당하기에 힘이 부친단다. 이해해주겠지? 그렇지?’

추연은 이해한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동천이 보기에 그렇다는 소리였다.

‘그래, 이해해준다니 이 몸의 마음도 가뿐하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남자는 널려있어. 그렇다고 무식한 하천이나, 우유부단한 춘천 자식은 행여나 생각하지도 말고. 그 자식들은 네 일생에 전혀 도움을 안 줄 녀석들이니까.’

동천이 쓸데없는 생각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때마침 장춘이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아하, 개운하다. 본 어르신은 다 끝마쳤으니 이제 들어가 보거라.”

“예, 장 어르신.”

동천은 예의 바른 아이처럼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동천과 같은 침대에서 자게 된 장춘은 처음만 약간 불편했지 시간이 흐르자 7년 전 먼저 갔던 마누라 생각에 편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쿨쿨.”

모든 것이 조용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모든 것이 편안한 새벽. 그 새벽에 뭔가 이상하여 꿈틀거린 장춘은 스멀스멀 파고드는 나긋한 손길에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색욕이 한 가닥 한 가닥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음. 으음!”

그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젊은 날 풍류를 즐겼던 여인들 중 인향(人香)이라는 기녀가 있었는데 지금의 흥분은 잠자리에서의 그녀와 비견될 정도로 이미 늙어버린 장춘의 몸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이건 분명 꿈이다. 허나, 허나 깨어나고 싶지는 않구나.’

장춘은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젖꼭지를 애무하는 듯한 손길에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늙어버린 지금, 이러한 흥분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헉? 흐어억?”

그는 방금 전의 애무로 인해 절로 몸을 퉁겼다. 그리곤 인향이 최고였다는 기억을 급히 수정해야만 했다.

‘이, 이건! 이것이 최고다! 흐윽?’

절정에 치솟았던 장춘. 그는 포만감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휴우. 참으로 오랜, 응?”

장춘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했다. 자신의 가슴에서 느껴지던 쾌락. 그것이 깨어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자신과 동철이라는 아이. 그렇다면…….

‘서, 설마!’

장춘은 흔들리는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아직까지도 꼼지락거리고 있는 동천의 팔을 볼 수가 있었다. 잠결에 때를 맞춘 듯 웃어대는 동천.

“히히, 이히히!”

“…….”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히익?’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정도로 나자빠진 장춘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우선 이 자리를 피하고 보았다. 그는 밖으로 뛰쳐나와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지금까지의 흥분이 저 아이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어찌 저 어린것의 손놀림이 젊은 날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던 인향이의 솜씨보다 탁월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 비록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어린애와, 그것도 사내아이와 그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장춘의 어깨를 짓눌렀다.

‘꿈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흥분해서 주책을 떨었다니……. 아아, 나 같은 게 황룡세가의 육 장로라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구나!’

갑자기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 소곤거리는 환상이 떠올랐다.

-저 인간 남색을 즐긴다며?

-그런다지? 쯧쯧, 말세야. 말세.

그런 생각이 들자 장춘은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다.

‘더 이상 살아서 뭐하랴. 크윽, 죽어라 죽어!’

쿵쿵쿵쿵!

그는 나이 예순에 머리로 벽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깰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아침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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