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25화
동천(冬天). 2부-4. 서장(序章).
세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가 태양군도(太陽群島)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다는 3000년 이상 묵은 태양화리(太陽火鯉)의 내단.
또 하나가 용이 되지 못해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5000년 이상 묵은 이무기의 내단.
그리고 마지막이 북해의 만년설 어딘가에 조용히 빙기(氷氣)를 발하고 있을 8000년 이상 묵은 지극빙신수(地極氷神水)…….
그러나 하늘은 그 세 가지 중 단 한 가지의 선물도 하사하질 않았다. 원망(怨望)…, 좌절(挫折)…, 분노(忿怒). 허나, 어쩌랴. 이것이 운명인 것을. 이 운명에 따라야 하는 것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본좌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지 않는가.
분공(糞貢)이라는 아이.
“도 소형? 잠깐 쉬다 가세나.”
길을 걸어가면서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도연은 정신을 차리고 중소구의 이야기를 받았다.
“그럴까요?”
산허리 중턱에서 잠시 멈춰선 그들은 전 마을에서 얻어온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한낮의 무더위라 주먹밥이 금방 상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될 수록 빠른 시간 안에 해결을 본 것이다. 중소구와는 다르게 차근차근 꼭꼭 씹어먹은 도연은 손을 털고 일어나다 좌측 산기슭에 자리한 낡은 사찰(寺刹)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도연의 시선을 따라간 중소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소형제, 불가 쪽에 관심이 있는가?”
도연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 중소구를 돌아보았다.
“글쎄요. 없다고는 못하겠죠. 말이 나온 김에 한번 가볼까요?”
중소구는 인상을 펴지 않은 채 대답했다.
“흐음, 본 대인은 부처를 믿지 않지만 소형제가 믿는다면 같이 가주기는 하겠네.”
도연의 권유에 이끌려 사찰에 당도한 중소구는 오가사(吾呵寺)라 쓰여진 현판을 올려다 본 후 피식 웃었다.
“나를 꾸짖는 절? 참나, 개똥 같은 절 이름이네.”
좀 더 오가사를 비하하려 했으나 안에서 어린 동자승이 나오자 그의 중얼거림은 거기에서 끝을 맺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동자승이 합장을 하고 물어오자 중소구는 거만하게 뒷짐을 졌다.
“험! 본 대인께서는 이곳을 지나치는 길에 잠시 들렸느니라.”
이런 종류의 시주들을 종종 대한 적이 있었던지 동자승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대신 중소구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듯 자세히 살펴볼 뿐이었다.
“그러셨군요. 그럼, 저기 아랫마을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시던 길입니까?”
중소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궁금하지?”
그의 의심 섞인 물음에 도연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먼 곳에서 여행을 하던 중 이곳에 잠시 들르게 된 것뿐입니다.”
그제야 도연의 존재를 의식한 동자승은 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다 흠칫 놀라했다. 아니, 놀라는 것을 넘어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대던 동자승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아, 참으로 부처님의 뜻입니다. 저, 잠시만…….”
안으로 들어간 동자승은 도연 일행에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예각(豫覺) 스님, 예각 스님! 어느 시주분들께서 우리 오가사에 기부를 하러 오셨답니다!”
“엥? 우리가 언제?”
중소구는 황당한 마음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꺼려하던 곳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기분이 최저로 떨어진 것이다. ‘그냥 갈까?’하는 갈등이 일어났지만 도연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짓자 그도 생각을 바꿔 조용히 웃었다.
‘흐흐, 그렇군. 기부인지 기부인지 안 내면 되는 것 아닌가. 이 문제를 가지고 뭐라 하기만 해봐라. 성질 난 김에 다 엎어버릴 테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여섯의 노승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로서는 당황스럽게 말이다.
“뭐, 뭐야.”
정확히 다섯 명이었다. 아니, 그들을 대동하고 온 동자승을 합치면 총 여섯이었다. 도연과 중소구의 전신을 자세히 훑어보던 노승들은 서로들 쑥덕거리다 자애로운 미소를 보내며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허허, 아미타불. 어젯밤 서쪽 하늘에 선한 기운이 일어 귀인들이 찾아오리라 예측했는데 역시나 본 노승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구료. 우선 들어오시오.”
키가 멀대 같이 크기만 한 노승이 출입을 허락하자 주위의 노승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들을 환대했다.
“아미타불, 오가사에 오신 것을 환영하외다.”
“오오, 귀인들이 오셨구나.”
“의심하지 마시오. 예각승의 예측은 틀림이 없으니까.”
“참으로 귀한 분들이셨구료. 아미타불.”
뭔가 사이비적 냄새가 풍겼지만 도연 일행은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려 어정쩡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꽤나 역사가 깊게 보이는 이 사찰은 적잖이 풍화되어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작았다. 그러니까 자세히 설명하자면 불상을 모셔놓은 중앙의 법당 한 채와 좌우로 승려들의 숙소. 그리고 앞마당 왼쪽 한 켠에 쓸쓸히 자리한 오층석탑. 이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을 친히 안내해준 예각이란 노승은 마른 얼굴을 적당히 활용하여 웃는 낯으로 만들었다.
“허허, 누추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여장을 푸시지요. 식사는 잠시 후 들여보내겠습니다.”
방안을 들여다본 중소구는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누추한 줄은 아는군.”
예각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듯 하자 도연은 황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재빨리 말했다.
“감사합니다.”
붉어졌던 예각의 얼굴이 차츰 원 상태로 되돌아갔다.
“아미타불.”
그가 불호를 읊조리고 사라지자, 대뜸 바닥에 누워버린 중소구는 못마땅한 듯 볼멘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뭐가 좋다고 이런 곳에서 머무는가?”
행랑을 풀고 중소구의 옆자리에 앉은 도연은 등 뒤의 벽에 기대며 천천히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중소구는 요상하다는 눈빛으로 도연을 바라봤다.
“내참, 그런 대답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는가.”
“그러게 말입니다.”
“…….”
도연 일행의 방을 지정해주고 노승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되돌아온 예각은 그들 중 동자승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 건 올리게 보이더냐?”
그러자 처음의 인상과는 다르게 동자승이 짓궂은 웃음을 띄웠다.
“킥킥, 꼬마가 제법 불심이 깊어 큰 거 하나 내놓을 것 같아요.”
확신을 단언하는 동자승의 대답에 노승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모두들 신분에 걸맞지 않게 방정맞은 웃음들이었다.
“낄낄낄! 확실히 너는 우리들의 보물단지다. 네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저런 멍청한 놈들이 자주 걸려.”
노승들 중 뚱뚱한 체격을 자랑하던 노승이 음산하게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마을 놈들을 우려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네가 들어온 것은 정말 천운이었어. 크하하!”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원래 이들 다섯 노승들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근근이 먹고사는 거지들이었다. 젊었을 때 뜻이 맞아 나쁜 짓도 종종 저지르고 다니던 쓸모 없는 자들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노쇠해져감에 따라 한 곳에 정착할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르게 된 이곳.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삼 년 전의 일이었다. 동사(凍死)나 면할까 하여 찾아들었는데 놀랍게도 이곳의 스님들이 처참하게 도살당해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기겁을 한 나머지 부랴부랴 도망쳤지만 얼마 후 그들은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마을의 인심이 하도 박하여 그곳에서 얼어 죽느니 차라리 이곳으로 돌아와 주인 없는 방을 차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 하루는 시체들을 치울 생각조차 못했다. 허기가 져 힘이 없었을 뿐더러 무섭기조차 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못했던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닥치는 대로 훔쳐먹고 이틀 동안은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했다.
사흘이 지나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시자 호기심이 동한 그들은 밖으로 나와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체들 중에는 승려가 아닌 자들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들 주위로 승려들이 죽어 나자빠진 것으로 보아 그들을 지켜주다 죽은 것 아니면 그들과 싸우다 죽어버린 것, 그 둘 중에 하나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이 어떠하던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무인으로 보이는 두 사내들의 소지품을 뒤져본 그들은 제법 넉넉한 은자와 무공비급으로 보이는 두 권의 책을 얻어낼 수 있었다.
무공비급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노쇠한 그들에게는 묵직한 은덩어리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실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의견을 모아 시체들을 치우고 이 사찰에 둥지를 틀기로 한 그들은 무공을 연마하며 일년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지만 돈이 떨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지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공도 대충 익혔으니 산 도적질을 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으나 이미 노쇠한 그들이 일년간 무공을 익혔어봤자 얼마나 익힐 수 있었겠는가. 여러 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들은 결국 사이비 중 노릇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허나, 글자를 몰라 무공비급의 해석에도 동네 촌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그들이 무슨 놈의 중 노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마을 사람들은 이미 그들이 외부에서 굴러 들어온 혹덩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이래저래 배를 골아야 했던 그들이었지만 어느 날 외지에서 온 청년이 부처님께 공양을 한다며 약소한 돈을 기부하고 간 것을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곳을 지나는 외지 사람이 하루 동안 묵어가려 하면 없는 살림에 식량까지 날아갈까 싶어 문전박대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을 끌어들여 조금이라도 돈을 쓰고 가게 한다면 굶어 죽을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을 주민들이 아닌 외지인들만 전문적으로 노리는 신종 사이비 단체가 특이하게 이곳에서만 기승을 부리게 되었는데 이들의 성격이 좀 더 사악하게 변하게 된 계기는 5개월 전 분공(糞貢)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거지 소년이 합류하면서부터였다. 이름을 풀어보자면 ‘똥을 바친다.’라는 이 열 살짜리 거지 소년은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그들에게 좀 더 확실한 돈벌이를 제의했다. 자신을 이곳에서 먹고 자게만 해준다면 외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시켜 좀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으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사이비 노승들은 반신반의했지만 효과가 단박에 드러나자 뛸 듯이 기뻐하며 분공을 자신들의 일원으로 합류시켜주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헌데, 아무래도 무슨 물건을 처분해야만 돈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분공의 말에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다. 예각이 말했다.
“눈치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네가 그렇게 봤다면 그렇겠지. 제길, 그렇다면 아랫마을의 장물아비 염가 놈에게 팔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이야기도 되는군. 곤란한데.”
아랫마을에 장물(贓物)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염문(廉問)이란 이름의 사내가 있었는데 어찌나 교활하고 돈독이 올랐던지 그에게 잘못 걸린 초보자들은 다른 곳에서보다 반 이상이나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팔게 되어 있었다. 돈독이 오른 만큼 그에 따른 상당한 지식과 입담을 가지고 있어 기가 질린 초보자들은 제대로 반박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팔게 되는 것이었다. 대개 그러한 초보자들은 허무한 얼굴로 나와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이미 물건을 팔고 난 뒤였다. 도로 무르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그거 큰일이군. 전에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때 몇몇 불쌍한 시주들이 그놈에게 얼마나 처참히 당했던가.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구먼!”
눈꼬리가 축 처진 노승이 흥분해서 소리치자 예각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네. 움직여도 내일쯤 움직일 테니 오늘 저녁에 그 방법을 쓰기로 하지.”
“엇? 그 방법을 말인가?”
모두들 흠칫하는 가운데 예각이 분공을 바라봤다.
“분명히 그놈들이 값나가는 물건을 처분할 눈치였더냐?”
그 방법을 쓴다는 소리에 잠시 움찔해있던 분공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 있게 대꾸했다. 도연 일행이 내일쯤에 간다는 것은 이들만의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이죠, 제가 언제 틀린 적이 있었어요?”
분공이 소리 높여 대답하자 예각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좋아 좋아, 귀안(鬼眼) 분공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틀림이 없구나. 그렇다면 형제들, 내 의견에 별다른 이의는 없겠지?”
그렇지 않은 듯 뚱뚱한 노승이 이의를 제기했다.
“자네의 생각도 좋지만 좀 자제하는 것이 어떤가. 저번 달만 해도 두 번이나 그 방법을 썼다가 관에서 포두까지 파견했던 것을 잊었는가?”
모두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금처럼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과는 달리, 아직까지 젊었을 적의 기질이 남아있었던 예각은 잠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다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어떠한가. 그놈들이 기절하면 우선 그 내용물을 살펴본 뒤, 큰 건이라면 일을 치르고 그럭저럭이라면 그냥 놔두는 것일세. 이만하면 괜찮겠지?”
예각의 눈치를 보며 서로 중얼거리던 노승들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해야만 했다.
“자네의 뜻대로 하겠네.”
그러자 예각이 씨익 웃었다.
“좋아, 그렇다면 슬슬 준비하기로 하세들. 분공아 너도 준비하거라.”
분공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답했다.
“맡겨 두라고요.”
밖으로 나와 조촐한 식단을 차린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난 뒤 도연 일행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주…….”
‘벌컥!’
그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꼴사납게 머리를 산발한 중소구가 문을 열어주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머뭇거리던 분공은 중소구의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가 입에 맞을런가 모르겠습니다. 부디 시주분들께서는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밥상을 내려다본 중소구는 왜 동자승이 ‘부디’라는 말까지 써가며 맛있게 먹어달라고 강조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밥상에는 꽁보리밥과 이름 모를 산나물 한 가지만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라면 백 번 양보하는 차원에서 이해해줄 수도 있었지만(도연만) 메말라 딱딱해진 꽁보리밥은 쉬어터진 듯 묘한 냄새를 풍겼고, 누렇게 뜬 산나물 잎들은 도저히 입 안으로 들어갈 것만 같지 않았다. 밥상과 동자승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중소구는 심각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본 대인에게 요따위 것을 먹으라는 소리인가?”
중소구가 예상외로 심각한 반응을 보이자 분공은 재빨리 도연에게 도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쉰 도연은 예의상 한입 씹어 삼켰다. 이어 그는 눈을 감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도연을 지켜보던 중소구가 참다못해 물었다.
“도 소형제. 맛이 어떤가.”
마침내 도연의 입이 열렸다.
“드셔보시지요.”
“이, 이걸? 흐음…!”
신중하게 밥상과 도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그는 돌연 엉뚱한 곳에 분노를 터트렸다.
“본 대인은 이래서 중놈들이 싫어! 이런 걸 누가 먹겠는가! 안 그래?”
분공은 겁에 질려 주춤 물러섰다.
“그, 그렇지요. 하지만 몇 개월 전에 도둑이 들어 재정이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하는 처지인지라 시주님들께도 이런 조촐한 밥상을 내오게 된 것입니다.”
분공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자 절로 찔끔해진 중소구는 품속에서 스무 냥을 꺼내 디밀었다.
“험, 사정이 참 딱하군. 이걸 가지고 나가서 제대로 된 것 좀 사 오게. 남은 것은 생활에 보태 쓰고.”
분공은 안 받는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랬다가는 상대가 화를 낼 것만 같아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갈무리했다.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중소구는 금방 유쾌해졌다.
“하하, 자네가 기쁘니 나도 즐겁군. 천천히 다녀오게.”
“예,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방에서 나온 분공은 나가서 사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잠깐 고심을 했다.
‘이곳에도 먹을 것이 넉넉해서 굳이 아랫마을로 내려갈 필요는 없지만 저들이 심심해서 나왔다가 내가 있는 것을 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으음, 그러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갔다가 시간 좀 때우고 올라오지 뭐.’
결정을 내린 그는 노승들에게 간단히 당부해두고 오가사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