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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38화


분노한 공현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이익,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로군!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하는 말을 잘 들어라. 너는 이제부터 아가씨의 주위에 얼씬거리지도 말아라. 만일 지금의 당부를 어길 시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동천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뒤쪽에서 강호영이 소리쳤다.

“말이 많다! 형님이 말씀하시면 예 하고 답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아무리 형님들의 말씀이긴 하나 남녀간의 만남을 좌지우지할만한 명분은 없다고 봅니다.”

순간 공현의 눈초리가 싸늘해졌다.

“네 녀석은 우리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게로군.”

“아닙니다. 부 당주님께 들었습니다. 제갈 소저를 사모하는 모임에 속하신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잘됐다고 생각했는지 공현이 음침한 미소를 뿌렸다.

“흐흐, 알고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로구나. 허면, 외부 인이 아가씨에게 접근하려면 그만큼의 실력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예? 그것까지는 잘…….”

어느새 전면으로 나선 강호영이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겁을 주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확실히 그러한 조항이 있다. 지금 알았으니 된 것 아니냐. 그러므로 네가 실력도 없이 주제넘게 나선다면 이 형님들이 손 좀 봐줄 수도 있다는 얘기지.”

지금의 동천은 순수함이 가득했다. 황룡신단의 충격으로 잠재되어있던 순수한 부분만이 깨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만큼 납득할 수 없는 제재를 가하면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이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바른 생활 사나이고, 나쁘게 말하면 앞뒤가 꽉 막힌 녀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천은 이들과의 타협을 거절했다.

“제갈 소저와는 만나고싶은데 그런 조항이 있다고 말씀하시니, 외부 인인 저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자신들의 말을 듣고도 동천이 당당 하자 잠시 어이없어하던 소년들은 이내 잘됐다는 얼굴들을 했다. 진작부터 속 시원히 패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대변하듯 공현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쩔 수 없군. 네가 할 일은 간단하다. 여기 우리들 중에 하나와 손속을 겨루어 정정당당하게 승리하면 되는 것이지. 그래도 응하겠느냐?”

“물론입니다.”

“하하, 좋다! 장진, 네가 손봐주거라.”

“예, 공 형님.”

강형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이에 비해 제법 기골이 장대했던 장진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나섰다.

“네가 기어코 까분다하니 조금만 손을 봐주겠다.”

동천을 자세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문정이 두려운 얼굴로 끼여들었다.

“이러시지 마시고 대화로서 해결들 하시지요.”

장진은 손마디를 우둑거리며 흰 이를 드러냈다.

“사부란 작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제자란 놈은 좀 똑똑해서 두려운지는 아는구나. 그러나 이미 늦었다. 더 이상 나선다면 너부터 손을 봐주겠다.”

‘멍청한 녀석! 내가 너희들 두려워서 이러는 줄 아느냐? 그게 아니라, 이번의 대결로 인해 혹여 충격이라도 받으시면 사부님께서 원래의 성격으로 되돌아 올까봐 그게 두려워서 이러는 것이다!’

문정이 나설 만도 했다. 이제야 지금의 동천을 적응해가기 시작했는데 다시금 그 소악마로 되돌아가면 ‘평화로운 나날’ 에서 ‘지옥 같은 나날’ 로 뒤바뀌는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동천이 부드럽게 그를 밀어냈다.

“걱정 말아라. 사부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문정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공현이 소리쳤다.

“시작!”

“아랏찻차!”

쌩하니 달려들어 권장을 펼친 장진은 주먹에 한가득 밀려올 충격타를 기대하며 입가에 미소를 뿌렸다. 그러나 동천의 신형은 슬쩍 움직인 것만으로 그의 공격 권에서 벗어났다.

“어? 제법 하는구나! 그렇다면 이것도 피해봐라!”

“그만!”

오른쪽 주먹에 온 힘을 실었던 장진은 그만 하라는 공현의 목소리에 어정쩡한 손놀림을 펼치다 거두었다. 장진의 눈에 ‘왜?’ 라는 의아함이 가득할 때 공현이 입을 열었다.

“이 형이 철 아우의 실력을 얕보았던 모양이군. 호영아, 네가 나가라.”

“뭐?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러니까 너로 바꾼 거다. 그리고 미리 당부해두는데 방심하지마. 방금 그 몸놀림은 예사가 아니었어.”

강호영은 알았다는 듯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알았어. 네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좋아, 애송이 아우야. 덤벼라!”

덤비라고 해놓곤 정작 그가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잠시 멈칫했던 동천은 깜짝 놀라 좌측으로 피했다. 하지만 강호영의 신형은 바로 앞까지 달려들어 있었다.

“먼저 한 대!”

강맹하게 휘두른 그의 주먹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동천의 가슴부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호영은 놀란 얼굴로 동천을 쳐다보았다. 동천의 안색은 창백해져있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대소하며 다시 공세를 펼쳤다.

“으하하, 알고 보니 내공이 모자란 모양이구나!”

그의 예측은 맞긴 맞았는데 반만 맞았다. 동천의 안색이 창백했던 이유는 오직 순수한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귀의흡수신공은 동천의 전체 내공 중 2할. 즉, 24년의 공력이었다. 귀영신법의 1단계만 시전 하려고 해도 반 갑자의 기본내공이 필요한데 그것이 부족했던 동천은 응용만으로 피하기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판단해도 안되겠던지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상대의 혈도를 점하고자했다. 피하기만 할 줄 알았던 강호영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이었다.

“어엇? 윽!”

강호영이 통나무 쓰러지듯 뻣뻣하게 굳어 쓰러지자 동천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공현을 바라보았다.

“헉, 허억, 이, 이제 됐지요? 헉헉.”

공현은 철저히 굳어진 얼굴로 쓰러져있는 강호영을 노려봤다.

‘멍청한 자식! 몸놀림이 예사가 아니라고 그렇게 일러줬건만!’

이어 그는 강호영의 막힌 혈도를 풀어주고 태연히 말했다.

“이건 반칙이다. 내 분명 처음에 말했지 않느냐. 정정당당히 이기라고. 하지만 이건 비겁한 수단이었다. 수세에 몰리는척하다 방심한 상대에게 일격을 먹이다니. 너도 인정은 하겠지?”

“그, 그게…. 헉헉, 비겁한 수단이었나요? 전 몰랐는데요.”

문정은 내심 소리쳤다.

‘바보 같은 사부! 그렇게 말하면 물러설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격이잖아요!’

문정의 생각이 그러하듯 공현의 생각 또한 그러했다.

“쯧쯧, 몰랐나보구나. 강호에서는 마땅히 지탄받을 정도란다. 그러니 이번 시합은 무효다. 다시 시작하자.”

“잠깐만요! 지금 사부님은 급격히 피로하시니 내일이나 다음에 다시 시합을 하는 것으로 하죠!”

문정이 어떻게든 미뤄보려고 했으나 그것을 허락할 공현이 아니었다. 그는 일부러 살기를 내뿜으며 문정을 노려보았다.

“우리의 조항에 승부는 잠시라도 미루어질 수 없다고 정해져있다. 그리고 내 한번 경고하니 너는 다시 나서지 말아라. 만약 한 귀로 흘릴 시엔 이 목검이 무정타하지 마라.”

그가 목검까지 들이밀고 위협하자 문정은 주춤 물러났다. 그것을 본 동천은 어느 정도 회복한 얼굴로 나섰다.

“문정아, 그만하면 됐다. 이 사부는 공 형님의 말씀에 따를 것이니 물러나 있거라.”

“그렇지만 이것은 너무도 불공평합니다!”

동천은 성격이 변한 이후 처음으로 얼굴을 굳혔다.

“비겁하게 이겼다는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위험부담을 안겠다.”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문정은 한숨을 내쉬고 물러섰다. 동천은 다시 원래의 얼굴로 돌아가 자신을 죽일 듯 쏘아보고 있는 강호영에게 말했다.

“다시 시작하지요.”

그러나 공현이 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 기다리거라, 아우.”

“하실 말씀이라도.”

“그래, 다름이 아니라 대하면 대할수록 너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이 우형(愚兄: 어리석은 형)도 나서야겠다.”

“무슨 말씀이신 지 저는 잘…….”

“하하, 그러니까 진정으로 시합을 하자면 여기 호영이와 내가 합격진(合擊陣)으로 상대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마고우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합격진을 연습했지. 즉, 호영이만 혼자 싸운다면 합격진 없이 싸우는 꼴이라 상당히 불리하다는 소리다. 아까도 보았지 않느냐. 혼자서 싸우니 네 그 수법에 간단히 넘어간 것을 말이다.”

보다 못해 다시 문정이 소리쳤다.

“윽, 말도 안 되는……, 악!”

신법을 사용해 다가가 문정의 따귀를 걷어올린 공현은 싸늘히 말했다.

“나서지 말라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그리고는 천천히 되돌아오며 말을 이었다.

“어떠냐. 너는 이해를 하겠느냐?”

진(陣)이라 함은 일정한 배열로서 본래의 힘에 추가적인 힘을 얻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을 통 털어 일컫는 말이었다. 진법이라는 말이 생소했던 그는 진법에 대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장면을 떠올렸다.

  • 진법? 그딴 건 나중에 배울 거니까 지금은 생각할 필요가 없단다, 사랑스러운 제자야.

그게 다였다.

“…….”

그가 그러한 이유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자,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공현이 재촉했다.

“빨리 결정하거라. 나는 네가 어떠한 결정을 내려도 이해해주겠다. 다만, 다른 이들은 두려운 탓에 꼬리를 내린 것이라고 소곤거리겠지.”

그 말이 결정적이었는지 주저하던 동천이 냉큼 허락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강호영과 의미 있는 눈짓을 교환한 공현은 마치 피 뭍은 목검을 털어 내듯 한번 털어 낸 뒤 무딘 검 날을 매만졌다.

“이 형의 예상대로 너는 사내로구나. 나는 검을 사용하고 호영이는 권을 사용하니 너도 따로 사용하는 무기가 있다면 말해보거라. 준비해놓은 게 있다.”

아무 필요도 없다 말하려던 동천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저는 목도를 사용하겠습니다.”

공현은 고개를 끄덕이곤 멀찌감치 서있는 풍형우를 바라봤다. 풍형우는 그의 시선을 이해했는지 자신의 허리에 차고있던 목도를 동천에게 건네주었다. 모든 준비사항이 끝나자 공현이 물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지?”

동천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인 공현은 강호영과 거의 동시에 신형을 움직였다. 좌우로 나뉘어져 공격해오자 동천은 급히 떨어지고 보았다. 공현은 씨익 웃더니 홀로 공격해 들어왔다. 수십 줄기로 갈라지는 그의 공세에 급히 목도를 휘둘러 방어를 한 동천은 갑자기 등뒤로 느껴지는 서늘함에 아차 싶었다.

‘공 형님의 공격은 나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것뿐이었구나. 진짜는 강 형님이었어!’

강형우는 지체없이 동천의 등판을 내려쳤다.

“커억?”

이어지는 동작으로 공현의 목검이 동천의 어깨를 무자비하게 찔렀다. 동천은 어깨가 부서지는 충격을 맛보았다.

“으아악!”

본능적으로 다음 공세지점을 예측해 좌측으로 신형을 옮긴 동천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레 기침을 해댔다. 그에 따라 미세한 핏줄기가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어, 어떻게 해야하지? 헉헉, 죽을 것만 같아. 서있기조차 힘들어. 난, 나는….’

그때 문정이 소리쳤다.

“사부님! 왜 진정한 힘을 못쓰죠?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제길, 죽고싶지 않으면 본 실력을 다하라고요!”

그 소리에 강호영이 비웃음을 흘렸다.

“풋, 웃기는 자식이군. 큭큭, 곧장 죽을 것 같아 비틀거리는 놈이 뭐?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파하하!”

그러나 공현은 다르게 생각했다.

‘진정한 실력이라고? 확실히 뭔가…….’

“호영아! 방심하지 말고 밀어 부치자! 우리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 아직도 버티는 것을 보면 완전히 흘려들을 말은 아닌 것 같다! 설마, 아까 전처럼 또 당하고싶진 않겠지?”

마지막 말이 자극제였는지 강호영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 찼다.

“물론이지! 각오해라 애송이!”

또 다시 협공을 당하게된 동천은 자세를 바로잡고 단 한 수를 펼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한방이다. 어설프지만 치우도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한방일 뿐이다.’

역심무극결을 운용하자 목도가 가늘게 떨렸다. 아울러 미세하지만 묘한 울림을 자아냈다. 동천은 그것만으로도 기혈이 들끓자 애써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기세를 느꼈는가. 악독한 마음으로 동천의 요혈을 부셔놓으려던 공현은 급히 목검을 회수하며 소리쳤다.

“피해!”

“뭐?”

지이이이잉.

동천의 목도가 소름이 돋는 작은 울림을 자아내며 공현과 강호영의 전신으로 뿜어져나갔다. 기겁하여 있는 힘껏 떨쳐내려던 그들은 경악을 터트렸다.

“이, 이건 뭐야!”

“어억?”

그들은 전신이 오그라들고 숨이 턱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 아무리 발악하려해도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믿지 못할 정도로 거침없이 다가오는 목검의 그림자. 그들이 생전처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인식할 때였다.

“쿨럭, 어흑?”

처음으로 발현한 치우도법은 동천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그렇게 그 대미를 장식했다.

‘시, 실패했다. 끄윽.’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속절없이 무너지고있었다. 동천의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 문득 문정의 절규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바보 같은 사부! 그렇게 말했는데도 두려워하다니!”

동천은 자조적인 웃음을 띄웠다.

‘그래, 난 아무래도 바보였나 봐. 평소대로 변종 된 귀의흡수신공을 펼쳤다면 적어도 이렇게 맞지는 않았을 텐데 말야. 하지만, 하지만 말야. 난, 난…….’

동천은 독공을 사용하는 것이 두려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다만 본능적으로 사용하고싶지 않아서였다. 지금이라도 독공을 운기하면 회복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천은 끝내 그것을 거부했다.

퍽!

돌연, 그의 몸을 걷어차는 발이 있었다.

“이 재수 없는 놈! 감히 요상한 수법으로 사람을 홀리려고 해? 죽어라 이새꺄!”

퍽퍽, 퍼버벅!

성질대로 노는 강호영의 발 차기였다. 사부가 그렇게 몰매를 맞자 문정은 겁도 없이 덤벼들었다.

“나를 먼저 죽여라, 이놈들아!”

문정을 상대한 자는 공현이었다. 그는 목검을 사용해 정통으로 명치를 찔렀다.

“아악!”

공현은 후련한 어조로 말했다.

“그곳을 맞으면 숨이 좀 막히지. 네가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충분한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있어라.”

전신을 구타당하던 동천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정을 향해 내뻗었다.

“무, 문정아…….”

“개 같은 자식! 네놈이나 걱정해라!”

강호영은 힘껏 배를 걷어찼다.

“컥?”

동천의 몸은 한순간 부웅 떴다. 그것을 끝으로 그의 의식은 급격히 스러져갔다. 더 이상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이대로 죽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보았다. 아니, 그러한 생각이 들자 편안하게 죽고싶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였다.

‘바보 같은 놈.’

동천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는 힘겹게 물었다.

‘누, 누구지?’

상대는 다른 말 할 것 없이 손을 내밀었다.

‘잡아.’

‘그 손을…, 헉헉, 잡으라고?’

동천의 의식이 다시 흐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잡아.’

동천은 사력을 다해 손을 내뻗었다.

‘힘이 없어. 그, 그렇지만 노력은…, 노력은…….’

평소 같으면 숨쉬는 것만큼 움직이기 쉬운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갓 태어난 어린애만도 못했다. 아울러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포기하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러고 싶어. 포, 포기하고싶어.’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동천이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번 시작한 그의 움직임은 끈기를 가지고 천천히 나아갔다.

‘조, 조금만! 이제 다아…….’

덥석!

동천은 그에게 내밀어진 검은손을 있는 힘껏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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