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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42화


동천(冬天). 2부-5.

서장(序章).

두 번째 공명이 끝난 뒤, 크나큰 회의감으로 눈을 감는다. 나는 또다시 세월을 보내며 그의 분신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눈을 감고 눈을 뜨고, 잠을 자고 잠에서 깨고……. 죽어버린 눈동자는 초점 없이 밤하늘을 응시하고, 하늘 위의 천기(天機)는 그렇게 나를 마주본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거늘, 나 또한 인간이기에 알면서도 기다리는구나.

아아, 천마(天魔)여.


참으로 훌륭한 도로구나.”

자신이 만든 것을 칭찬하자 대번에 기뻐진 동천은 도를 빼들고 침을 튀겨가며 자랑을 했다.

“그렇죠? 그렇죠? 날이 예리하고 도 날이 곡선미가 뛰어남은 물론 강도가 뛰어나 쇠도 한칼에 잘라버릴 만큼 훌륭한 도랍니다. 히히, 그게 다 만든 분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에이, 누구라고는 말을 못하고요. 아주아주 뛰어나신 분이 만든 거예요.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그때 한 노사가 고개를 내젓고 어느 부분을 지적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손잡이가 훌륭하다는 말이다. 장인정신이 느껴져.”

그것은 혈귀옹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

순간 할말을 잃어버린 동천은 도를 빼든 김에 아예 모가지를 쳐주고 싶은 욕망에 물들었다.

‘크윽! 차, 참자. 여기서 이 늙다리를 죽여버리면 치우도법을 익히는데 막대한 차질이 온다. 참아야 하느니!’

뒷골이 뻣뻣해짐을 감내하며 애써 웃음을 짓고 난 동천은 왜 그러냐는 한 노사의 질문에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방에서 나와 한 노사에게 등을 보이고 나서야 마음껏 얼굴을 변환시켰다. 고개를 돌려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글벙글 웃음을 짓던 동천은 한 노사가 치우도법을 시전 해보라는 명하자 절로 긴장이 되어 웃음을 지웠다. 마당의 한가운데에서 멈춰선 그는 한 노사를 마주보며 천천히 도법을 전개했다.

‘실제 무기를 가지고 전개하려니 좀 긴장되네.’

여태껏 역심무극결의 내공이 증진된 사실을 숨기고있었던 동천은 손만 놀리는 것이 지겨워지자 이틀 전에야 숨겨왔던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두어 달 전이라 말하지 않고, 지금에서야 남아있던 순수한 귀의흡수신공을 역심무극결로 모두 환원했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당연히 너무 빠른 진도에 놀란 한 노사는 끝까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결국엔 몇 번의 확인을 끝으로 동천의 말을 믿게되었다.

사실 두 번째인 ‘역’으로 변했을 때 첫 번째인 순수한 귀의흡수신공을 흡수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었다. 이에 동천은 사실대로 말한 뒤 다음 진도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좀더 기본 기를 다지고싶은 마음에 그 당시 입을 다물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대충 반년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말하려고 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역’으로 변한 동천이 생각했던 것이라 원래대로 돌아온 동천은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는데 있었다.

‘중용(中庸). 중용의 미…….’

그러고 보면 두 번째에서 원래의 그로 돌아올 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두 가지 있었다. 그 첫째는 감지력이 원활하게 돌아가던 그가 목검이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에 맞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감지력을 사용해 제갈일위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먹일 수 있었는데, 전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옆머리를 얻어맞고 기절했다가 원래의 그로 되돌아 와버린 것이었다. 수수께끼라면 수수께끼였지만 워낙에 골치 아픈 생각들을 싫어했던 동천은 그때 자신이 감지력을 느꼈어도 제갈일위를 공격하는 것에만 몰입한 나머지 그것을 느끼지 못했던 거라고 나름대로 어이없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둘째는 원래의 그로 돌아왔다면 두 번째 성격의 경우처럼 독공을 함유한 귀의흡수신공이 역심무극결을 모두 흡수하여 통합했어야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치우도법을 익히는 동천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지만 역심무극결이 흡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서 ‘역’의 성격이 잠재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기에 오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져있는 상태였다.

“됐다. 그만하거라.”

한 노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천은 땀에 범벅이 되고 창백해진 얼굴로 주저앉았다. 재미있는 것은 한 노사의 얼굴로 하얗게 질려있었다는 것인데 그는 치우도법을 정면으로 견식 한 까닭에 그 기세에 타격을 받은 것이었고, 동천의 경우는 알다시피 내력이 딸리는 경우라 심한 기력을 소비한 것이었다. 새하얀 겨울에 새하얀 얼굴의 일노일소(一老一小)가 마주보는 장면은 가히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훗, 오늘도 연습에만 몰두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군. 아아, 빨리 여름이 찾아왔으면 좋겠어. 늦은 저녁까지 연습만 할 수 있게 말야.”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해가 짧아져 돌아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 것은 그나마 동천에게 위안거리였다. 날씨도 추운데 거기에다 깜깜해진 저녁에 돌아간다면 분명 도연이나 문정에게 화풀이하는 나날을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도연은 살며시 동천의 옆으로 다가와 말문을 열었다.

“주군, 제가 아침에 잠깐 문정이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그 심법을 익힘에 있어 그 애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동천의 고개가 도연에게로 향했다.

“맞지 않는다고? 무슨 근거로?”

“처음에는 별 이상이 없었는데 아주 미세하나마 내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한 것이 얹힌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뭐? 언제부터?”

“대략, 사흘 전부터랍니다. 오늘은 개미가 전신을 깨무는 것 같은 느낌까지 있었다는 군요.”

개미가 깨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정도에 따라 초·중·말기가 달랐지만 주화입마일 경우가 9할 이상일정도로 확실했다.

“에이 씨, 그 시키는 뭘 하든 손이 가게 만든다니까? 그래서 사흘 전에 다시 한번 가르침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던구만?”

“네, 문정의 말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혼자서 해결해보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동천은 어이없어 했다.

“참나, 그러한 문제라면 당장에 말했어야지. 그러다 병신 되면 평생을 후회할텐데 왜 그랬다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주군께 부담을 드리고싶지 않아서 그랬나봅니다.”

사실 도연은 알고있었다. 그러나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문정이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이유가 뻔한 성질의 주군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리 없는 동천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석이 그래도 사부인 이 몸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지. 이것은 아마도 본 전의 내력인가 싶구나. 하하하!”

도연은 아무 말 없이 동천을 안내했다.

사부인 동천의 말대로 심법을 중단하고 중소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고있던 문정은 중소구를 통해 동천과 도연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곤 재빨리 일어나 그들을 기다렸다. 그걸 본 중소구는 가끔 자신과 거의 동일하게 인기척을 느끼는 문정이 신기했지만 그가 대충 얼버무리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오셨습니까, 사부님.”

중소구에게 교묘한 눈 째림을 보내던 동천은 재빨리 인사를 받아먹었다.

“그래, 일찍 돌아왔느니라. 아? 중 대인께서도 계셨군요.”

중소구는 별 표정 없이 고개를 까딱이곤 도연에게 밝게 말했다.

“도 소형제, 이제야 오는가? 내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기다리고있었네.”

“저를 요?”

“그렇다네. 아 글쎄, 오늘 오후에 잠시 바깥을 거닐고 있는데 우연히 만난 부진한 부 당주께서 본 대인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고싶다며 간곡히 청하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본 대인은 수락했고 거기에 자네도 초대받게 되었다네. 가보지 않겠는가?”

“글쎄요. 전 갑작스러워서 좀…….”

동천은 난감해하는 도연을 바라보다 문정에게 전음으로 사실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문정은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하자면, 우연히 연무장을 지나치는척하다 부진한을 만난 중소구는 상대가 귀찮다싶을 정도로 일방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부진한으로서는 대원들을 가르쳐야하는데 중소구의 덕택으로 방해가 되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녁에 우리 집을 찾아오시오. 마저 이야기합시다.’ 라고 말하게 된 것이었다. 도연은 그 와중에 덤으로 끼워진 것이고 말이다. 문정은 대충 알고있으면서도 자세한 의사전달을 못해 답답함을 금치 못했지만 동천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도연에게 말했다.

“잘 됐네? 나는 문정과 오붓하게 저녁식사를 할 테니까, 넌 우리 걱정하지 말고 중 대인과 함께 맛있게 먹고 와. 알았지?”

중소구는 니가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동천을 바라봤다. 허나, 곧 도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빨리 가보기로 하세. 하하, 분명 맛있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도연은 자리에 남아 문정을 지켜보고 싶었으나, 주군의 심중을 간파하고 중소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죠.”

“푸하하, 잘 생각했네! 자아, 가보기로 할까나?”

중소구가 도연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붙었던 혹이 떨어져나간 듯 시원한 표정을 짓던 동천은 이내 근엄한 얼굴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문정을 바닥에 앉힌 뒤 마주앉았다.

“험, 그러니까 며칠 전부터 이상증세가 일어났다고?”

문정은 동천의 표정을 살피며 대답했다.

“예, 사부님. 정확히 사흘 전부터입니다.”

따악!

동천은 문정의 머리통을 한 대 때리고 말을 이었다.

“좋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 사부의 얼굴을 살피지 말거라. 대답을 함에 있어 감히 사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개 같은 짓은 피해야하지 않겠느냐. 안 그러냐?”

“예예,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문정은 내심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맞긴 맞는 말이었다. 제자 된 도리로서, 사부의 마음을 훔쳐보고 그에 따라 적당한 대답을 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뒤늦게 아파 오는 머리부위를 문질렀다. 그것을 본 동천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이제부터 장난 없이 본론에 들어가자꾸나. 사흘 전부터 이상이 있었는데 본 사부를 생각하여 그것을 숨겼다고?”

“무슨 말씀이신 지……, 아코!”

말 그대로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무심결에 고개를 쳐든 문정은 눈앞에 별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강력한 꿀밤을 맞게되었다. 너무도 아파 방바닥을 긁어대던 그는 ‘또 맞을래?’ 하는 소리에 자동으로 상체를 들어올려 자세를 바로잡았다. 물론, 고개는 숙이고 말이다.

“네가 모르는 듯 하니 부득이한 절차를 거쳐야겠구나. 사흘 전부터 이상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숨기고 있었느냐.”

다행이 동천의 얼굴을 살폈던 문정은 수월하게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증세가 너무 미약한데 그것을 가지고 사부님께 걱정을 끼칠까싶어 잠시 제자혼자 지켜보기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번 질문이 가장 큰 난관일수도 있었는데, 꿀밤 한 대로 맞바꾸었다면 이득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좋아, 좋아. 그렇다면 그 증상이 어떠하더냐.”

문정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 듯 하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요. 기의 흐름이 생성된 사흘 전, 단전에서 시작하여 오른쪽 가슴을 경유해 기를 흘려보내고 그것을 오른쪽 팔로 보낸 뒤, 다시 단전으로 돌아와 오른발로 흘려보내고 그 기를 이동시켜 단전을 경유해 심장 쪽으로 끌어올릴 때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 증상이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한 것이 얹힌 듯했다 이거지?”

“예, 그러나 처음에는 아주 미약하여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밥 먹고 잘 때만 빼고 쉴새없이 심법을 운기하자 그 통증이 점점 선명해지더라고요.”

“그러면 개미가 깨무는 듯한 증상은 언제부터냐.”

“그 증상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기를 했는데 그때부터였습니다.”

동천은 문정의 인내심을 칭찬하기에 앞서 참으로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참을 걸 참아야지, 어떻게 심법을 익힐 때 일어난 통증을 초보자 혼자 해결하려고 했단 말인가.

“오늘 운기를 할 때 통증의 강도는?”

“그냥, 약간입니다.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 가끔 미약한 정도로 깨무는 듯? 뭐, 그 정도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잘 들었다. 험! 네가 꾹꾹 참고있었던 것은 참으로 미련한 짓이고 꾸중 받아야 마땅할 일이었으나, 그것이 본 사부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기에 이번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겠느니라. 허나, 다음부터는 절대 혼자서 해결하려하면 안될 것이야.”

문정은 넙죽 상체를 숙였다.

“예, 사부님.”

다짐을 받고 난 동천은 허리띠를 풀어 바로 옆에 놓은 뒤 문정에게 명했다.

“이제 고개를 들고 돌아앉거라. 내 직접 손을 얹어 기의 흐름을 느껴볼 것이니라.”

문정은 군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는 사부가 자신의 명문혈에 한 손을 밀착하자 조심스레 말했다.

“이제… 시작할까요?”

“이 몸 같으면.”

“예?”

동천은 그것도 못 알아듣느냐는 식으로 화를 냈다.

“에이 씨, 이 몸 같으면 시작할거라고! 뭔 놈의 자식이 그리도 멍청하냐? 빨랑 안 해?”

문정은 겁을 집어먹고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당장에 운기하겠습니다.”

다급히 운기를 시작한 그는 일각 정도를 소비해 생성시킨 기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러나 워낙 극소량인 탓에 시전자조차 움직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니 동천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문정은 갑자기 음유(陰柔)한 기가 흘러 들어옴을 느꼈다. 아울러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 수준에 맞춰 잠시 적당량을 보내줬으니까 그것가지고 한번 해봐.”

“예? 예, 사부님.”

오 년 정도 될까말까한 공력이었지만 단전에 들어찬 내공의 느낌은 문정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단전에 들어찬 내공이라는 것이 뭔가 이질적이기도 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충족감을 유발했던 것이다. 그것을 굳이 비유하자면, 세 살 짜리 어린애가 생각지도 못했던 환상의 세계를 접한 그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뭐해, 빨리 운기하라니까. 그건 조금 있으면 사라지는 내공이라고.”

동천의 재촉에 연신 ‘네네’ 거린 문정은 지금의 느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내심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자신은 지금보다 몇십 배나 큰 내공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꿈을 안고 운기를 시작했다. 단전을 시작해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린 그는 흐름이 불안정하자 최대한 속도를 늦추며 진행시켜갔다. 아마도 갑작스레 늘어난 내공 탓에 통로를 이탈하려는 듯 보였다. 심혈을 기울여 겨우겨우 오른쪽 팔로 내공을 흘려보낸 문정은 오른팔에서 전해지는 충만한 기운을 느끼며 천천히 단전으로 회수했다. 잠시 여유를 가진 뒤, 오른쪽 발로 내공을 순환시킨 그는 드디어 이상이 생기는 부분으로 내공을 흘려보냈다.

“으윽?”

예상대로 바로 통증이 전해지긴 했다. 헌데, 내력이 커진 것 때문인지 전해지는 통증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가. 손을 얹고있던 동천도 연결해놓은 내공이 주춤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래? 제대로 가고있는데 무언가에 막힌 듯 진도가 나가질 안네? 뚫어놓은 통로에 비해 내공이 커서 그런가?’

동천은 문정에게 전해준 내공의 반을 도로 흡수했다. 그렇게 하면 수월하게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문정은 대번에 고통이 감소됨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온몸이 쩌릿쩌릿한 현상은 가시질 않았다. 불길해진 문정은 사부에게 말했다.

“저, 저기 그만하면 안될까요?”

동천은 문정이 운기조식 중에 입을 열자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어찌된 일인지 알고는 화를 냈다.

“얌마! 운기 중에 아가리를 놀리면 어떻게 해! 다행이 쥐뿔도 없는 놈이라 무사했지만 내공이 생겼을 때 지금처럼 했다간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최소 내상이고 최대가 죽음이야! 알겠어?”

순간 서늘해지는 문정이었다.

‘사부라는 작자가 그런 걸 지금에야 가르쳐주다니. 어쨌든, 앞으로 조심해야겠 다.’

이어 그는 더욱 불안해져 말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하면…….”

이 상황에서 그만둘 동천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현상을 접한 그는 자신의 몸이 아니기에 그대로 밀어 부쳤다.

“괜찮아. 아마도 니가 독특한 놈이라 익숙해지기 전까지 이러나본데…, 계속해봐. 잘못되면 본 사부가 그 즉시 진기를 회수해줄 테니까.”

이렇게되자 문정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그럼, 사부님만 믿겠습니다.”

“오냐.”

대답은 시원했다. 문정은 지금의 대답처럼 차후의 조치도 이처럼 시원스럽길 부처님께 빌었다. 그리고 잠시 머물러있던 내공을 순환시키자 ‘윽!’ 하는 신음소리는 바로 튀어나왔다. 다시금 고통스러워진 문정은 본능적으로 흐름을 멈추었다. 그러자 눈을 감고 기의 흐름을 느끼고있는 동천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구결의 해석대로라면 지금은 분명 내공을 역류시켜야한다. 이것은 상리(常理)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나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란 말인가? 혹시, 문정이 정말로 요상한 능력을 가지고있는 게 원인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나에게만 특별히 맞는……. 헉? 서, 설마!’

동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천기를 누설하는 듯하여, 차마 다음 생각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동천은 이를 악물고 다음 생각을 이었다.

‘설마…, 내가 천재라서? 아아, 진작에 알고는 있었지만…….’

잘 나가다 만리장성을 쌓던 동천은 문정에게서 진기의 흐름이 다시 느껴지자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힘을 실어줄 테니까 확 밀어 부쳐봐. 알았지? 하나, 둘, 셋!”

콰우우우우.

갑작스레 십 년의 내공이 추가되자 당황한 문정은 안 된다고 소리치려다 통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통제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해일이었다. 대처할 시간도 없이 거칠게 밀려들어온 진기들은 문정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장을 향해 치고 들어갔다.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 문정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으아아악!”

고통스러운 것은 몰라도 문정 못지 않게 가슴이 철렁해진 동천은 다급히 진기를 회수하고 손을 뗐다.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문정을 똑바로 눕힌 뒤 그의 얼굴을 토닥였다.

“괜찮아? 야, 눈 좀 떠봐!”

맛이 간 문정은 묵묵부답이었다. 무언가 이상하여 문정의 심장에 귀를 가져간 그는 고동소리가 없자 기겁을 하고 물러났다.

“히익? 주, 죽었어?”

발딱 일어나 도망치려던 그는 심장이 멈추었다고 다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부의 가르침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사랑스런 제자야, 사람의 죽음여부는 심장 따위가 멈추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신(身)과 기(氣)가 모두 죽어야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죽었던 사람이 몇 시간 혹은 하루나 며칠 후에 되살아난 실례가 있듯, 기가 강한 사람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시 충분히 살아날 수가 있으니 이점 명심하고 또 명심하거라. 알겠느냐?

-예, 사부님. 그렇다면 그 조치란 어떠한 것입니까?

-아주 탁월한 질문이구나. 사실 본 사부는 사랑스러운 제자인 네가 그 질문을 할 것을 알고있었기에 먼저 말해주고 싶은 욕구에도 불구하고 참고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차차, 잠시 화제가 빗나갔구나. 본론으로 들어가 얼른 가르쳐주마. 그런 종류의 사람을 되살릴 때는 영약과 침술을 이용한 방법이 최상이란다. 하지만 그 침술은 한번에 서른 여섯 군데를 각기 다른 힘의 비율로 꽂아야하는 방법이기에, 아직은 어리기만 한 너에게는 차후에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그 대신 간편하면서도 효과가 뛰어난 방법들을 가르쳐줄 테니 자알 듣거라. 첫째, 인공호흡이다.

“그래, 그것이 있었지?”

재빨리 인공호흡을 시도하려던 동천은 할 듯 말 듯 주춤하다 두 번째를 떠올렸다.

-둘째, 심장 마사지이다. 먼저 오른손을 상대의 가슴에 얹고 오른손 위에 교차로 포개듯 왼손을 올려놓은 뒤 강하게 두 번 약하게 두 번 내리누르길 반복해야한다.

이것은 자신이 있었다. 그도 급한 것을 알기에 지체없이 심장마사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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