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44화
전조(前兆).
캉! 까앙!
두어 개의 횃불을 의지 삼아 서너 명의 사내들이 하염없이 곡괭이 질을 하고 있었다. 근육질의 사내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암도(暗道)의 끝 부분을 파내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곡괭이 질에 열심이던 그들은 돌무더기를 버리러나갔던 동료하나가 들어오자 기대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기대에 호응하듯 들어온 동료는 비어있는 수레 안에서 풍족한 음식들을 꺼내들었다.
“이얏호! 점심이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저 친구 돌아올 때가 점심이라는 것 말야!”
환호를 내지른 사내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 외에 나머지들은 그다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유인 즉, 이번에 나갔던 동료가 점심을 가져오느냐 아니냐에 내기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언제 음식이 배당되는지를 알 수가 없어, 확률적으로 ‘아니다.’ 에 돈을 걸었는데 재수 없게도 음식을 가져온 것이었다. 오직 ‘가져온다.’ 에 돈을 걸었던 사내가 동료들의 푼돈을 걷어 가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 옷의 사내가 싸늘히 말했다.
“돈 노름도 좋지만 식사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상기들 하시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인부들은 다급히 음식 주위로 몰려들었다. 잃은 돈을 잃은 돈이고 식사는 식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끼니를 놓치면, 저녁때까지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서둘러 젓가락을 놀렸다. 조용히 그들을 지켜보던 검은 옷의 사내는 나타났던 것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내가 사라진 것을 재차 확인한 인부들은 묵묵히 젓가락을 놀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다 좋은데 말야, 감독관이 너무 딱딱한 것이 흠이야. 안 그런가들?”
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이틀 겪는 것인가? 난 오히려 감독관만 사라지면 험담을 늘어놓는 자네가 흠이라 말해주고 싶네.”
그러자 모든 인부들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들 중 수염이 얼굴을 가릴 정도로 험난하게 생긴 인부 하나가 음식물을 한가득 씹어 삼키며 말했다.
“확실히 감독관이 싸늘하긴 하지만 이런 곳이 어디 흔한가? 급료가 많지, 끼니 끼니마다 음식 풍부하지. 어디 그뿐인가? 진도가 느리면 성질부터 내는 다른 곳과는 달리,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대했지 않는가.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지금에와 생각해보면 다른 곳들도 다 이래야 해. 그 자식들은 인부 귀한 줄 모른단 말야?”
수염 난 사내의 열변이 끝나자 그 사이 남은 음식들을 싹쓸이한 인부들은 저마다 배를 쓰다듬으며 긍정을 표했다. 온몸의 근육질과는 대조적으로 제법 곱상하게 생긴 사내는 수염 난 사내가 경악에 물들어하는 것을(먹을 것이 없어서)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그 말엔 나도 전적으로 찬성이오. 처음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놀라했소. 무슨 지하감옥에 끌려온 듯한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소이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반년동안의 계약직이지만 이 정도의 급료라면 일년, 아니 가족과 미래를 생각해 맘잡고 이삼년을 고생하더라도 계속 하고싶은 것이 본인의 솔직한 심정이라오. 모두들 안 그렇소?”
그 모두들이 대답했다.
“저 자식 또 저러는군.”
“냅둬, 어디 하루 이틀이야?”
“하여튼 어딜 가나 저런 놈 하나는 꼭 있다니까?”
인부들이 못마땅해하는 가운데 수염 난 사내가 마주 보이는 사내에게 항의했다.
“이보게, 저거 어디에서 데려왔나? 허튼 소리만 해대서 아주 짜증나 죽겠네.”
마주 보이는 사내는 죽을죄를 졌다는 듯 사죄했다.
“미, 미안하이.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서 데려왔는데, 툭 까놓고 보니 저 지랄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지금 후회가 막심이라네.”
수염 난 사내가 다시 짜증을 내려는 찰나 예의 그 검은 옷의 사내가 나타났다.
“휴식을 포함한 식사시간이 끝났네. 신참 하나가 들어와 다른 때보다 진도가 느리긴 하지만 아직은 봐줄 만하니, 최소한 지금의 적정 선은 유지해주길 바라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인부들은 다시금 곡괭이 질을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제법 험준한 산 고개를 먹빛 사두마차가 힘차게 질주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느긋하게 몸을 기대고있던 냉현(冷玄)은 뜻 모를 웃음을 짓기 위해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는 마주앉아있는 철소에게 물었다.
“속도는 빠른데 생각보다 목적지가 오래 걸리는구나. 본교를 떠나온 지 오늘로서 며칠이지?”
철소는 담담히 대답했다.
“한 달쯤 되었습니다.”
냉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한달 하고도 이틀이나 지났어.”
그렇게 잘 알고있는 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물었을까? 이 의문에 대답을 하자면 ‘알고있으면서도 한번 확인해보는 것이다.’ 라고 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 냉현의 성격이 그러하다고 나 할까? 성격이 그러하니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날짜개념이 없어서…….”
냉현은 너그러이 용서했다.
“괜찮아. 그러한 셈은 산관이 다 알아서하고 있으니까. 사람이 어찌 완벽함을 소유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답은 위와 같아도 철소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동천에게 욕을 얻어먹고도 평소의 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러한 정력의 소유자인 것만 같았다. 비유가 이상했는가. 하지만 이것은 분명 칭찬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늦어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철소는 잠시의 생각 후 대답했다.
“소인이 우매하여 미처 거기 까진 생각을 못했습니다.”
냉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그곳으로…….”
그때, 마차가 다급히 멈추었다.
“워워!”
그러나 능숙한 산관의 솜씨로 인해 마차의 흔들림은 생각보다 경미했다. 얼굴을 굳힌 철소는 바깥의 산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산관이 대답했다.
“산적 몇 놈들이 찝쩍대는 것 빼고는 별거 아냐. 소교주님께 그렇게 전해드려.”
대답은 철소에게 했지만 이야기는 냉현이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창가에 살짝 고개를 내민 냉현은 산적들이 으레 그러하듯, 돈을 내놓지 않으면 큰 화를 당할 거라는 그들의 위협에 흥미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는 세상에 나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들을 난생처음 접했던 것이었다. 이게 암흑마교의 내에서라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었던가?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 그는 마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눈치를 보는 산관에게 하던 대로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산관은 형식적으로나마 산적들에게 물러설 기회를 제공한 뒤 가차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어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여섯이나 되는 산적들은 자신만만하게 무기를 빼낸 것에 비해 너무도 허망한 죽음을 맛보았다. 냉현은 정확하게 심장이 꿰뚫린 시체들을 바라보다 갑자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소교주님, 소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아니, 됐어.”
냉현은 생각보다 쉽게 끝나 기분이 상했지만 나이가 나이니 만큼, 이런 일에 속내를 드러낼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았다. 그는 어느새 뒤따라 나온 철소와 함께 다시 마차에 올랐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마차가 출발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철소가 입을 열었다.
“사태가 생각보다 일찍 종결되어 싱거웠습니다.”
냉현은 겉으론 무심한 척 하면서도 말 한마디 하나에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철소가 이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내심 아까의 일을 철소에게 맡겨야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긴 했지. 좀더 끌기를 바랬는데 말야.”
저 혼자 고개를 끄덕인 그는 문득 동천이 떠올랐다.
“그 녀석은 잘 있나 모르겠군. 한 2년 정도 되었나?”
철소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2년 정도라는 말에 무슨 소리인지 깨달았다.
“예, 그 정도 되리라 생각되옵니다.”
“어린것이 악독하기로 소문나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는데 말야.”
여기에서 냉현이 동천을 귀엽게 본 이유는 동천이나 냉현이나 그놈이 그놈이기에 직감적으로 같은 부류를 대하는 눈빛이 관대했던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강호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소문만이 있을 뿐 언제 돌아오는 지는 소식이 없습니다.”
동천의 가출은 역천에 의해 강호행으로 뒤바뀐 상태였다. 냉현은 편안히 눈을 내리 감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는군. 일년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철소는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곳의 상황을 정확히 숙지하시려면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행여나 나중의 거사에 실수라도 벌어지면 큰일이니까요. 아시다시피, 그것을 행함에 있어 소교주님께서 차지하시는 비율이 5할 이상이나 되지 않습니까.”
냉현은 살짝 웃으며 눈을 떴다.
“그래서 가는 것이 아니냐.”
어두운 암도를 통해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곡괭이 내려치는 소리가 고작인 가운데 어느 순간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쩍!
분명 금이 가는 소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당황한 인부들은 웅성거리며 불안한 눈으로 갈라진 부분을 응시했다.
“어떻게된 일인가?”
“나도 잘 모르겠네. 잘 파내고 있는데 갑자기 금이 가는 게 아닌가.”
“무너질지도 모르니 우선은 일을 중단해야겠네.”
모두들 동의하고 멀찌감치 통로를 벗어나자 알게 모르게 그들을 감시하고있던 사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인가.”
수염 난 사내가 대표로 말했다.
“아 글쎄, 감독관 님의 명령대로 저곳을 파내고 있는데 갑자기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지 뭡니까? 저희는 무너지면 어쩌나 해서 잠시 피신한 것입니다.”
“벽이 갈라져?”
“예, 틀림이 없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는 신형을 돌리며 당부했다.
“으음, 잠시들 기다리시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십 줄의 중년을 대동하고 나타난 사내는 그를 모시고 문제의 그 장소로 들어갔다. 갈라진 벽에 당도한 중년인은 신중한 자세로 그 부근을 쓰다듬었다. 그런 다음, 벽 위에 한쪽 손을 얹고 반대쪽 검지로 손등을 톡톡 쳐보았다. 중년인은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보아하니 바로 건너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통로가 있는 듯 싶네.”
검은 옷의 사내는 신중하게 되물었다.
“틀림이 없습니까?”
“물론이네. 무너지거나 할 염려는 없으니 인부들에게 서둘러 파내라고 명하시게.”
확신하는 중년인의 목소리는 묘한 흥분과 설렘으로 뒤섞여있었다.
‘이 일에 투입된지도 2년 반이 넘어간다.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고대기관진식의 보고(寶庫)인 듯한 이곳을 접하고, 그 얼마나 흥분에 몸을 떨었던가. 아직도 둘러보지 못한 곳들이 몇 군데 남아있긴 하지만 배워야할 지식들이 줄어가는 이때 새로운 통로가 발견되기만 한다면…….’
그런 이유로 기대 섞인 눈초리로 상황을 주시하던 중년인은 성인 하나가 지나갈 만한 구멍이 뚫리자 지체없이 고개를 디밀어 주변을 탐색했다.
“토, 통로가 있네. 새로운 통로가 있어!”
중년인이 새로운 통로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자 묵묵히 대기하고있던 검은 옷의 사내는 곤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기관식(機關式)을 개조함에 있어 여유 분의 공간을 뚫었던 것뿐인데, 도해(圖解)에도 없는 통로가 나와 당황한 것이었다.
“뭐 하는가. 따라오게.”
퍼뜩 정신을 차린 검은 옷의 사내는 인부들을 물린 뒤, 준비해놓은 횃불을 들어 중년인을 따라 들어갔다. 한발을 움직임에 있어 일각 여를 소비할 정도로 신중함을 보여주던 중년인은 몇 발자국 전진해가하다 이내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이 부근은 기관진식이 없군.”
검은 옷의 사내도 내심 안도하고 물었다.
“그거 다행이군요. 허면, 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지요.”
고개를 끄덕이고 삼십여 발자국을 걸어가던 중년인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는지 옆의 사내에게 말했다.
“그 횃불을 바닥으로 비추어보게.”
사내는 의아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해주었다. 그것을 본 중년인은 바로 말했다.
“역시, 사람이 건드린 흔적은 없으나 바닥에 먼지가 없군. 심상치 않으니 우선 되돌아가야겠네.”
이야기를 마친 중년인은 신형을 틀었다. 헌데 그때, 반대쪽 통로에서 무언가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그는 소리쳤다.
“뒤쪽을 조심하게!”
그의 외침과 동시에 다가오던 무언가는 섬전(閃電)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달려들었다. 그 사이 중년인이 가리킨 곳으로 신형을 튼 사내는 횃불을 내던지고 검을 빼들었다.
“누구냐!”
서걱.
기분 나쁜 음향에 이어 방어자세를 취하던 사내의 목이 분리되었다.
“헉?”
기겁을 한 중년인은 주춤 물러서며 동료를 죽인 상대를 바라보았다. 바닥의 횃불 너머로 비치는 상대의 모습은 분명 사람이었다. 그에 용기가 일어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요!”
잠시 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상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는 누구냐. 어떻게 이곳을 알았지?”
상대의 목소리는 섬뜩하리 만치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사악한 면은 없어 보였다. 남달리 그러한 판별력이 뛰어났던 중년인은 살 수 있다는 생각 하에 오히려 당당하게 나갔다. 그래야 상대가 선뜻 손을 쓰지 못 할거라고 계산했던 것이다.
“어허,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 놈이 당당하기만 하구나! 네놈은 누구더냐!”
그것이 적중했는지 상대가 약간 주춤하는 듯 했다. 그것을 본 중년인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암흑마교와 전혀 무관한 척만 한다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가 있겠구나.’
중년인은 생각을 마치고 엄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말하지 못할까!”
그의 재촉에 의한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그럴 순 없지.”
가슴이 철렁해진 중년인은 한껏 뜨여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반백의 노인이 서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노인은 한때 중년인과 알고 지냈던 사이가 아니던가.
“이, 이럴 수가! 어, 어르신은…….”
노인 또한 의외의 상대를 접해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노인은 금새 웃는 낯으로 말했다.
“허허, 살다보니 이러한 곳에서 자네를 만나게 되는군. 아무리 세상이 좁다한들 이렇게까지 좁을 수 있으랴. 허허, 안 그런가?”
중년인은 얼떨떨함을 금치 못해 멍한 정신으로 대꾸했다.
“예, 예에….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곳에…….”
노인은 의도적으로 시선을 내려 목 없는 시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보다 자네의 동료를 해코지했으니, 이를 어찌할꼬.”
중년인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동료라니요! 아닙니다, 전 토목기관술을 알고있어 우연찮게 끌려오다시피 한 것입니다!”
비록, 이곳에 와서는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처음에 올 때만해도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것은 맞는 말이었다. 노인은 고생이 많았겠다고 그를 위로한 뒤, 이들의 정체를 물었다. 중년인은 상대가 상대인지라 아는 대로 털어놓았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암흑마교의 사람들인데, 고대의 기관도해를 토대로 개조를 하고있는 중입니다. 무사들이 백여 명쯤 되고, 인부가 삼 백. 그리고 저 같은 토목관계자가 스물에서 서른 안팎으로 배치되어있습니다. 진행사항은 거의 반정도가 끝난 상태죠.”
노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뭔가 미진했던 게야. 흐음, 그랬던 거로군. 반쪽일 것이라 의심도 해봤는데 진짜였단 말인가?”
노인이 중얼거리는 사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중년인이 이어 말했다.
“저어, 생각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지금쯤이면 순찰을 돌던 무사들이 손놓고있는 인부들을 발견하고 이곳에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속히 조치를 취하심이 어떨는지요.”
노인은 적당한 크기의 턱수염을 길게 쓰다듬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잠시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저 건너편 상대의 입을 막을지, 아니면…….”
말끝을 흐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노인은 마침내 뚫린 곳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서늘한 눈을 들어 그곳을 주시했다. 억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마교도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는 가운데 노인은 입을 열었다.
“반목(反目)과 공존(共存)은 언제나 한끝 차이였지. 허허, 언제나 한끝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