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46화
이십대의 청년과 함께 대장간을 찾아간 문정은 서너 명의 장인들이 정신없이 일을 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 감탄해하며 그곳을 나왔다.
“직접보시니 어떠하십니까?”
청년의 물음에 문정은 억눌려있던 흥분을 금치 못했다.
“후와, 사방에 튀기는 불똥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다 없을 정도였어요.”
청년은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할 겁니다. 저곳은 노 영감님의 아버지 때부터 그의 아들까지 3대째 번창하고있는 곳이니까요.”
“3대 째나요?”
“예, 내년에 성년식을 치르게될 노 영감님의 손자도 뒤를 이을 거라는 소문이 있으니 이제 곧 4대 째로 접어들겠지요.”
문정은 부러움 섞인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대장간을 힐끔 돌아보았다.
‘나도 이러한 생활보다는 어쩌면 저런 곳처럼 가족애가 느껴지는 곳에서 정착하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한때는 무림 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와 그것도 물 건너간 셈이니……. 에휴, 나오는 건 한숨뿐인가?’
다소 허탈한 심정으로 걸어가던 그는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닥치고야 말았다.
“아이쿠!”
문정이 뒤로 엉거주춤 쓰러지려하자 그와 맞 부딪힌 상대가 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허허, 조심해야지.”
문정은 급히 신형을 바로잡고, 인자하게 웃고있는 노인에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제가 잠시 다른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괜찮다. 생각에 몰두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야.”
곱게 늙었는지 마주본 노인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문정은 절로 마음이 놓여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헌데 그 순간, 그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으로 인해 미약한 어지러움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문정은 깜짝 놀랬다.
‘이럴 수가, 어째서 이 할아버지에게 끌림이 느껴지는 거지? 내 능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나?’
그가 놀라하자 노인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왜 그리 놀라느냐, 나를 아느냐?”
그새 정신을 차린 문정은 아직도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 아니오. 예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발휘되어서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문정의 맥문을 쥐고 살폈다. 이어 그는 말했다.
“근골은 뛰어나지 않으나 성실하면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이 엿보이는구나. 하지만 내공이 생성되었던 흔적이 없거늘, 사라졌던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떠한 형태로 발휘되었느냐.”
말투로 보아 무림 고수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문정에겐 말못할 사연이 있었다. 아무리 능력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해야할 말과 가려야할 말쯤은 그도 알고있는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것이 좀 곤란하여 설명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답을 꺼릴 줄 몰랐던 노인은 흥미가 동했는지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흘흘, 아이야. 네가 사는 곳이 어디더냐. 내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구나.”
흠칫한 문정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했다.
“예? 그, 그게요. 제 개인적인 힘으로는 할아버님을 초대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그건 좀…….”
노인은 쉽사리 단념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힘이 없다 함은 엄한 부모님을 모시고 있거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말이로구나. 그게 아니면 신분이 낮다거나. 너는 둘 중 어느 것이냐.”
“그건 요. 제가…….”
입을 열자마자 다물어버린 문정은 상대의 말솜씨에 끌려가는 자신을 느꼈다.
‘역시, 연륜은 속일 수가 없구나. 하마터면 그대로 대답할 뻔했어. 조심해야겠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두 가지 다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인을 앞에 두고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인은 단번에 문정의 말뜻을 간파했다.
“허, 너에게 사부가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무공을 습득한 흔적이 없는 것이지? 아니야, 아니야. 사부라고 해서 다 무인이라고 할 수 없진 않은가. 허허, 아이야. 네 사부는 무엇을 하시는 분이더냐.”
문정은 상대가 설마 그것까지 맞출 줄 몰랐는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자 여태껏 가만히 지켜보던 청년이 나섰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머무실 곳을 찾는다면 제가 알아봐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 부근에는 숙식조건이 뛰어난 곳이 많은데 안내해드릴까요?”
청년의 됨됨이가 단정하자 노인의 시선이 절로 그에게 돌아갔다.
“자네는 어디의 누구인가. 그리고 이 아이와는 어떠한 관계이고.”
청년은 어렵지 않다는 듯 자연스레 대답해주었다.
“저는 제갈세가에서 첫째 도련님을 모시고있는 장인문(長絪紋)이라 합니다. 그리고 첫째 도련님의 명을 받들어 이분과 잠시 밖을 거닐고있는 중이죠.”
노인은 장인문이 문정에 관해 잘도 피해가자 절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문정에 관한 것을 잠시 미뤄두었다.
“호오, 장씨인가? 나도 장씨일세. 자네는 어디 장씨인가.”
장인문은 한 핏줄일수도 있다는 생각 하에 대답함에 있어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미욱하여 하남(河南) 장씨 12대손 인 것만 알고 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먼. 아쉽게도 본적은 다르지만 장씨는 장씨이니 동향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군.”
“저도 그러합니다.”
청년의 대꾸가 끝나자 노인의 관심사가 다시 문정에게로 되돌아갔다.
“너도 제갈세가에서 머물고있느냐.”
문정은 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노인은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하룻밤 신세를 지고 싶었으나, 네가 꺼리는 것 같고 나 또한 찾아야할 아이가있기에 이만 헤어져야할 것 같구나. 이것이 인연이라면 나중을 다시 기약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니 그때 다시 보자꾸나.”
그렇게 말한 후 노인이 사라져가자 아까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문정은 자신도 모르게 노인을 불렀다.
“저, 저기요!”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짓고 돌아섰다. 문정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책망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내심 자신의 주둥이를 쥐어박으며 결국 노인을 불러들였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시지요. 자리 하나 정도는 충분하니까.”
이어 그는 청년에게 죄송스러운 얼굴을 했다.
“제 마음대로 외부인을 초대해서 죄송합니다.”
청년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한번 정도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은 테니 안심하시지요.”
문정은 관대한 척 하면서도 일종의 경고까지 잊지 않는 청년의 대답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과연 제갈세가의 사람이라 철저하구나. 휴우, 능력을 잃지만 않았어도 사람을 대함에 있어 이렇듯 답답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리하여 나갈 땐 둘이었던 일행은 셋으로 추가되어 제갈세가로 돌아왔다.
“에, 오늘날 제가 이렇듯 훌륭하게 성장함에 있어…….”
아드득, 와작!
잠시 중단하고 눈살을 찌푸린 동천은 자신이 연설함에 있어 추잡스럽게 처먹기만 하고있는 중소구를 노려보았다. 중소구는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안 그런 척 먹을 것을 내려놓았다. 동천은 다시 웃는 얼굴로 되돌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훌륭하게 성장함에 있어 한 노사님의 노고와 저를 받들어주느라 열심이던 도연과 문정. 그리고 중…소구님이 계셨습니다.”
중소구의 대목에서 알게 모르게 얼굴을 찡그린 동천은 장황하게 자신의 빛나는 업적(?)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연설직전에 벌어진 중소구의 협박으로 인해(짧게 끝내라고 했다) 눈물을 머금고 일각 여밖에 설명해주지 못했다.
“자아, 오늘의 음식은 첫째 도련님께서 내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대에서 뛰어난 요리사들이란 요리사들은 모두 이곳으로 출장을 왔으니 그분들의 음식솜씨를 마음껏 즐기시지요!”
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고작 동천의 무공수련완결축하연(武功修練完結祝賀宴)에 말이다.
“이보게, 여긴 첫째 도련님의 축하연이 아니었나?”
한 사내가 궁금함을 못 참고 물어보자 옆에 있던 사내가 말을 받았다.
“잘 모르겠네. 나도 듣기로는 그런 줄 알았는데 와보니 전혀 아니더라고.”
“그래? 이것 참!”
제갈일위가 잔치를 벌인다는 소문에 개 때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정작 동천이 연설을 하자 이렇듯 의아해했지만, 마음껏 드시라는 동천의 외침에 하나둘 의아함을 접고 즐기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다.
“자자, 오늘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세! 위하여! 프하하하!”
아마도 오늘의 지출은 제갈일위에게 크나큰 타격으로 다가올 것만 같았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또 요? 하하, 주시는데 마다할 수 없죠. 꿀꺽꿀꺽!”
제갈일위야 어떠하든 일단 성공적인 축하연을 시작한 동천은 끊임없이 축하주를 권해주는 술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어린놈이라서 예의 상 권한 것인데, 잘도 처마시자 신기한 마음에 계속 권하는 것이었다. 다행이 뒷받침되는 내공으로 버틸 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제일 앞자리에 있어 사람들의 표적이 된 동천은 아무리 먹다 죽는 것이 소원이라 해도 몸을 사릴 때는 사려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사람들 속에 섞여 없는 듯 주위의 먹을 것을 집어먹었다.
‘히히, 역시 음식은 숨어서 먹는 것이 제 맛이라니까?’
먹성 좋게 음식들을 으깨 삼켜먹던 동천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놀람을 발한 동천은 더할 나위 없이 커진 눈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하, 할아버지.”
문정의 안내로 걸어오던 노인은 동천의 반응을 뛰어넘어 풍에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었다. 노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동천을 불렀다.
“동천아…….”
노인의 얼굴을 이모저모 살펴본 동천은 신나 하며 뛰어갔다.
“우와, 정말 장 할아버지예요? 진짜로?”
노인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신기한 듯 자신을 대하는 동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쓰다듬는 손길은 자못 떨리기까지 했다.
“허허, 허허허! 이런 곳에서 너를 만나다니…. 네가 늘 그렇게 부르짖는 그 하늘님의 가호인 듯 싶구나.”
“어? 할아버지 우세요?”
“예끼, 울기는 누가 운다는 것이냐.”
동천은 노인의 호통 아닌 호통에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려 여유 있게 깍지를 꼈다.
“에이,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래요? 난 또 할아버지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 줄 알고 좋아했네.”
동천을 대함에 있어 여유를 되찾은 노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쯤이야 우리 동천이 원한다면 해줄 수도 있지. 이 할애비가 한번 울어주랴?”
동천은 손을 내저었다.
“됐어요. 누가 보면 집나간 손자를 찾아온 할아버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줄 착각할거라고요. 그보다 이곳에는 어쩐 일이세요? 설마하니, 날 만나러 오셨을 리는 없고…….”
노인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문정의 한쪽 어깨에 그의 손을 올려놓았다.
“허허, 바로 이 아이의 덕택으로 너를 만날 수가 있었단다.”
노인이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자 동천은 잘했다는 듯 문정의 머리를 툭 쳐주었다.
“짜식…. 역시, 이 몸의 제자로다.”
“헤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쑥스러워하는 문정의 대답에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그렇다면 네가 바로 이 아이의 사부였더냐?”
노인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동천은 가슴을 딱 펼쳤다.
“에헴! 바로 그러하지요.”
노인은 내심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실망하는 동천을 보고싶지 않아 일부러 흐뭇한 척을 해주었다.
“대단하구나. 그 나이에 벌써 제자까지 다 두고.”
동천의 가슴이 더욱 벌어졌다.
“훗, 그저 그런 정도지요.”
그는 지켜보는 사람이 다 걱정할 정도로 가슴을 펼쳐댔다. 저러다 가슴 안 찢어지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걱정하는 사람이었던 노인은 화제를 다른 곳을 돌렸다.
“그런데 네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고작 제자하나 뿐이더냐? 허허, 따로 더 있으면 소개시켜 주려무나.”
마다할 동천이 아니었다. 그는 문정에게 알아서 놀라고 한 뒤 노인의 손을 붙잡았다.
“헤헤, 그거야 제일 쉬운 부탁이죠. 따라와요.”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치며 어디 아는 사람이 없나, 살피기에 여념이 없던 동천은 누굴 발견했는지 재빨리 노인을 데리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분은 바로 제갈세가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만큼 훌륭하신 부진한 당주님이세요.”
“오오, 그러냐? 이거 참으로 반갑네.”
대원들과 거나하게 퍼마시고 있었던 부진한은 동천이 웬 노인을 소개시켜주자 얼떨결에 일어나 노인의 인사를 받았다.
“예, 반갑다고 하시니 저도 반갑기는 하지만…, 누구 신지요?”
“허허, 여기 있는 천아 와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늙은이라네.”
부진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아? 철(鐵)이 아니고 천(天)?”
동천은 재빨리 끼여들었다.
“그건 요, 여기 장 할아버지와 저 사이에만 오고갈 수 있는 호칭이에요. 제가 하늘처럼 맑디맑고 푸르디푸르게 컸으면 하는 바램에서 혼자 그렇게 즐겨 부르시죠.”
그제야 부진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랬구만? 동천, 동천이라. 자네의 이름에는 그 호칭이 더 어울리는군.”
덥썩!
난데없이 부진한의 두 손을 꼬옥 쥐어 잡은 동천은 감격에 어린 눈으로 말했다.
“분명 복 받고 사실 겁니다.”
“응? 으응, 그래야 지.”
부진한에게서 볼일을 마친 동천은 노인에게 이름에 관한 부분을 신신당부해가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노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동천의 뒤를 따랐다.
“이놈의 자식이 어디에 처박혀있지?”
동천이 도연을 찾는 가운데 노인이 말했다.
“허허, 찾기가 힘든 모양이로구나. 정 힘들다면 나중에 소개시켜주어도 상관은 없단다.”
“그럴 수야 없죠. 다른 인간들도 아니고 할아버지를 소개시켜주는 자리인데 그것을 늦출 수야 있나요?”
“괜찮다고 해도 그러네.”
말은 그래도 동천의 말에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여러 곳을 둘러보던 동천은 뒤늦게 도연의 성격이 떠오르자 사람들이 뜸한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천이 찾은 도연은 ‘왜 진작 저곳을 쳐다보지 않았을까?’ 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다. 물론, 중소구와 함께 말이다.
“에이 씨, 저런 곳에 있었잖아? 할아버지, 저기에 어린놈과 중간쯤 늙은 놈이 보이죠? 헤헤, 저곳으로 가요.”
그 옛날 황룡세가의 동천으로 돌아간 그는 동심에 물든 얼굴로 발걸음을 가벼이 했다. 노인은 동천의 말투가 어딘가 어색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로 그를 뒤따랐다. 도연과 함께 있던 중소구는 동천이 웬 노인네를 데려오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옆에 분은 누구시냐?”
노인이 곁에 있어 기가 살아난 동천은 은근히 신경질을 냈다.
“거참, 성질 급하시네. 지금 소개해드리려고 왔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것을 말야.”
“뭐, 뭐라고? 아니, 이놈이!”
황당함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어진 중소구는 동천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가 두렵지 않다는 듯 살며시 뒤로 물러선 동천은 얼른 노인의 등뒤로 숨어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사이에 끼게된 노인은 웃는 낯으로 중소구를 대했다.
“알만큼 아는 사람이 어찌 어린아이의 몇 마디에 분기를 참지 못하는가. 참으시게.”
중소구는 나이든 노인의 말이기에 하는 수 없이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다.
“끄응, 그러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군요. 대인 중소구라고합니다.”
“만나게되어 반갑네. 장노삼(長路三)이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