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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5화


재회(再會).

-또 만났구려..-

『헤어짐은 만남의 연장(延長)이라고, 생각하는 똑똑한 동천이 두 중늙은이들에게…』


“뿌드득! 빠드드득-! 두고 보자..! 뽀드득! 아무리 사부님의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해도 내 사전에 봐준다는 말은 없응께..! 뿌드드..윽! 계속 이를 갈았더니 내가 소름이 다 끼치네.”

동천은 아까 혈귀옹에게 맞은 곳에 흉터는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욱신거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참는다는 것은 평소에 조그마한 통증도 참아내지 못하는 동천으로선 성공했다고 볼 수가 있었다. 혈귀옹의 말대로 두 갈래가 보이자 왼쪽으로 계속 달려가던 동천은 드디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다섯 갈래의 길을 볼 수 있었다.

“휴우.. 어쨌든 중간 정도는 온 것 같네… 가만, 건물은 많은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네? 그냥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약왕전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볼까?”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동천은 주욱 늘어서 있던 여러 집들 중에 하나가 유독 튀어 보이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하급 무사들이 자주 찾아가는 객점이었다.

“어? 저거 혹시 객점 아냐? 옳지? 저기로 가서 물어보면 되겠구나! 어서 가보자.”

동천이 마음먹은 대로 걸음을 옮겨갈 때, 객점의 입구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면서 나오는 게 보였다.

‘어? 저 양반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한 양반은 재수 없게 생긴 게.. 또 한 양반은 눈 밑에 사마귀가.. 아? 이 씨팔! 그때, 저 중간쯤 늙은 것들이었구만? 흐흐흐흐… 이 씨팔 것들.. 잘 만났다…!’

동천은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두 사람이 계속 걸어가자 놓칠 것 같은 생각에 재빨리 달려가서 바로 뒤까지 따라잡았다.

“어이! 뭐 좀 물어보자구!”

둘이 서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던 사내들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재빨리 몸을 돌려 물어본 상대를 찾았다. 뒤를 돌아보자 동천이 보였지만, 그 사내들은 동천이 다짜고짜 반말을 한 것에 대하여 한참 동안 고민을 했다. 꼬마가 반말을 한다? 두 사내는 동천의 눈치를 보면서 서로들 의견을 주고받았다.

-야. 너(쟤가) 누군지 아니?

-아니. 나는(저 꼬마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둘은 다시 한참 동안 고민에 빠졌다. 자신들에게 반말을 해대는 것을 보니 높은 신분을 가진 것 같긴 같은데. 옷을 입은 꼬라지를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것 같기도 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던지 눈 밑에 사마귀가 난 사내가 동천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저.. 누구..?

동천은 사마귀 장한이 자신을 몰라보자 심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그때 동천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은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야? 눈깔이 삐었나? 좋아. 그럼, 내가 알아듣도록 말해주지. 지금으로부터 한… 팔일 전에 위기가 닥쳐와도 꿋꿋이 버티며, 잠시 기분전환차 길을 나섰던 천재소년이 있었는데.. 그때 네 그들과 마주치게 되었었지.. 물론, 그때는 내가 신분이 그리 높지는 않았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신분 도약을 하면서 앞으로 암흑마교를 이끌어나갈 인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그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동천이 우습지도 않은 얘기로 말을 이어 나갈 때 팔일 전이란 말이 나오자, 재수 없게 생긴 장한은 그때서야 떠오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때는 얼굴이 하도 개판이었으니까 멀쩡한 얼굴을 한 지금의 동천을 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 그때?

그러다가 그 아이가 나중에 약왕전주의 제자가 되어 소전주가 됐다는 소문도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큰일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옆에 있던 사마귀 장한도 그제서야 생각이 나는 듯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히히! 이제서야 생각이 났어?

동천이 웃으면서 말을 꺼내자 둘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인사를 안 했다는 것을 알았다.

-예..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동천은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화가 났지만, 어쨌거나 어른에게 인사를 받았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그런데 그때 말이야..?

-아! 저기.. 그때 일은요.

동천은 재수 없게 생긴 자식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저번에 정원 할멈이 사정화한테 변명을 하려는 자식들을 한 번씩 후려 패던 것이 생각났다. 눈앞의 중간쯤 늙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혼내줄까.. 하고, 벼르고 있던 동천에게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어? 이놈이 감히 내가 말하려는데 이야기를 잘라? 넌, 얘기할 때 네 거시기를 자르면 좋겠냐?

거기서 왜 거시기가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자신이 잘못한 것은 맞기에 사내는 어찌할 줄 몰랐다.

-예? 아 저.. 그게…

동천은 재수 없게 생긴 자식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공을 끌어올려 그 사내의 다리를 발로 있는 힘껏 차버렸다.

퍼-억! 뚜둑!

-헉!

눈부신 속도로 뻗쳐오는 동천의 발에 다리를 맞았던 사내는 자신의 다리가 앞으로 구십도 정도 꺾이는 것을 보았다. 부러진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옆에 있던 사마귀 장한도 굉장히 놀란 상태였다. 팔일 전만 해도 빌빌거리던 꼬마가 갑자기 이렇게 힘이 세지다니.. 어쨌든 상황 분석이 어느 정도 끝나자 자신의 구부러진 다리를 보고 있던 사내는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통증을 느낄 수가 있었다.

-크허헉! 으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

다리가 부러진 사내가 고통스러워하자, 옆에 있던 사마귀 장한은 놀란 표정으로, 동천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작은 위로를 해주었다.

-이.. 이보게 괜찮나? 이봐, 정신 차려!

그러나 고따위 말로써 이 고통이 해결(解決)될 리가 없었다.

-크-흑!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사내가 고통스러워할 때, 주위에 늘어져있던 집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고, 기웃거렸지만 곧이어 무관심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강한 몇몇의 사람들은 조심스레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들이 보던 말든 동천은 재수 없게 생긴 자식의 다리가 바깥쪽으로 꺾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저거 병신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서 입을 다물 줄 몰랐었다. 자신의 힘이 이렇게나 강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희열(喜悅)이 온몸을 감싸고도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천은 자신은 절대로 사람을 패고 희열을 느끼는 변태는 아닐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야. 겨우 그거 한 대 맞은 거 같고, 징징짜냐? 한 대 더 맞을래?

이 말의 효과는 놀라웠다. 다리가 부러진 사내는 한 대라도 더 맞으면 죽을 거라는 공포심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사마귀 장한은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동천을 향해 애원조로 말했다.

-저.. 소전주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소전주? 소전주가…. 나냐?

동천이 처음 들어보는 호칭을 물어보자, 사마귀 장한은 이런 녀석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자신이 싫었다.

-예. 아직 모르시나 본데. 역천님께서 전주이시니까, 그분의 제자분이신…

동천은 눈치 하나는 끝내줬다.

-맑디맑고, 푸르디푸르며,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겨울 하늘. 즉, 동천!

-예! 역천님의 제자분인 동천님께선 당연히 소전주님이 되시는 겁니다.

좋은 거 하나 알았다고 생각했다. 사마귀가 이렇게 좋은 걸 가르쳐줬는데 더 때린다면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호.. 그래? 그렇다면야…

사마귀 장한은 동천의 마음이 변할까 싶어 얼른 말을 못 박아뒀다.

-감사합니다. 역시 소전주님은 아량이 넓으십니다요.

동천은 아부에 약했다. 더군다나 아직 어려서 그런지 뻔한 거짓말도 구별해낼 정도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이면 무조건 기분이 좋았다.

-히히히.. 그런 걸 이제야 알다니. 험험. 그럼, 나 갈 테니. 다리 다친 거 잘 고쳐라.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동천이 그들을 스쳐갈 때 재수 없게 생긴 장한은 고통을 참으려고 했지만 아픔에 겨워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걸 보니 기분이 좀 그랬지만 자신이 아픈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갔다. 동천이 멀어져 가자 사마귀 장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다리가 부러진 장한은 원한(怨恨)에 사무친 눈으로 동천의 등 뒤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천은 등 뒤가 따가워지는 걸 느꼈지만 그냥 무심코 등어리만 벅벅! 긁고는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휘휘! 인생은 아름다운 거.. 휘익!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 히히. 이제 약왕전에…… 어떻게 가지?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네? 이봐..!”

약왕전 가는 길을 물어본다는 걸 깜빡하고 잊어버렸던 동천은 두 사내가 갔을까 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다행히도 두 사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게 보였다. 아울러 자신을 향해 눈깔을 부라리다가 황급히 딴청을 피우는 다리가 부러진 자식도 보였다. 그것을 본 동천은 얼른 다리가 부러진 사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어이! 내가 깜빡하고 못 물어본 게 있는데 말야..?

다리가 부러졌던 사내는 동천이 자신에게 다가와서 물어볼 게 있다고 하자, 또 다리를 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슬그머니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감싸면서 말했다.

-예? 아예.. 물어보십쇼. 제가 아는 게 있으면, 아는 한도 내에서 다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말야.. 빠샤! 빠샤!

-퍽! 퍽!

동천은 물어보는 척하면서, 순간적으로 재수 없게 생긴 사내의 두 눈을 짧은 연타로 후려 갈겼다.

-으-악! 내 누운!! 끄에엑! 내 다리! 흐으윽. 악! 악!

두 눈탱이를 맞은 사내는 눈에 엄청난 고통이 밀려오자 순간적으로 온몸을 비틀다가 부러진 다리까지 비트는 불상사를 겪고야 말았다. 얼마나 다리를 비틀었는지 ‘드드득!’ 하고, 다른 사람이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주위를 퍼져나갔다.

-이봐! 다리가.. 자네 다리가..

사마귀 장한은 완전히 반 바퀴가 돌아간 친구의 다리를 보면서 온몸에 왕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말은 안 했지만 동천의 생각도 사마귀 장한의 생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끄으으윽–!

재수 없게 생긴 사내의 발버둥은 개거품으로 끝났다.

-아, 저.. 저기.. 저.. 큰일났네..?

사마귀 장한은 동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친구를 쳐다보고 있자, 섣불리 도와주지도 못하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동천은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았지만 지금 말을 하면, 왠지 말이 떨려 나올 것 같기에 꾹! 참고 있었다.

‘동천아. 진정해라.. 저 자식 안 죽었다.. 진정해라.. 진정해라.. 다리만 조금 돌아갔을 뿐이다.. 진정(鎭靜), 진정.. 또 진정…!’

동천은 한참 동안을 굳어버린 채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울러 사마귀 장한도 동천의 이렇다 할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표정으로 동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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