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379화


“주군의 왼쪽에서 약간 뒤로 치우친 쪽입니다.”

“그래? 그럼 빨리 가자. 그놈들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니까.”

동천은 도연의 생각을 뒤집고 서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도연은 의아해했다.

“반대쪽인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신다고요? 분명 방금 전 객점 주인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했지 않습니까.”

내심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동천은 어깨를 쫙 펴고 가르치듯 말했다.

“그러니까 니가 여태 고따위로 사는 거야. 니가 모르는 게 있는데 아까 그놈이 어떤 놈이냐 하면 추적대에게 은자 1냥을 받고 내 위치를 가르쳐 준 놈이야. 헌데 그놈이 내 말을 순순히 들어줄 것 같아? 당연히 아니지. 즉! 이 몸은 그놈의 대가리를 뛰어넘어 내가 일러준 대로 서쪽으로 간다는 말씀이야? 히히, 이제 알겠냐?”

나쁜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 도연은 수긍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동천은 언제나 그렇듯 앞서가려 하지 않았다.

“임마, 니가 먼저 가야지.”

아마도 자신의 최대 약점인 방향치 때문인 듯 했다. 도연은 그것에 상관없이 순순히 선두에 섰다. 마치 그것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직분인 양.

“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무도 좋아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던 동천은 묵직한 허리의 전대를 만지작거리며 손을 저어댔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리라.

<가슴에는 금 99냥. 허리에는 그놈에게 빼앗은 은자 무더기. 이히히! 나 아무래도 복 터졌나 벼. 아아, 이것이 다 하늘님의 은총이로다.>

동천이 하늘님을 우러러 감사에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 전방에서 3명의 사내들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란 동천은 한순간 긴장을 했지만 곧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띠발, 깜짝 놀랐네.>

같은 3명이라서 무의식적으로 놀랐던 것이다. 밤이라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실눈을 한 사내와 늙은 거지, 그리고 냉막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그들은 서로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말을 늘어놓는 것은 실눈과 늙은 거지뿐이었다.

“내가 예전에는 그렇게 잘 나갔었다니까?”

혼자 흥분해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늙은 거지의 뒤를 실눈의 사내가 받아 말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 수법은 어땠습니까?”

동천의 눈에는 잘 놀고 있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냉막해 보이는 사내가 자신을 은근히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찰나 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동천은 이유 모를 한기를 느꼈다.

<으으, 저 자식 무림인인가 보다. 괜히 마주 꼬라 보다가 일 내지 말자.>

본능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던 동천은 그들을 비켜 가는 찰나 얼른 냉막한 사내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때 늙은 거지가 두 손을 마구 휘저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푸헤헤! 바로 이렇게 해서 손을 움직였지! 그렇게 되면 다 내 손안에… 엥?”

갑자기 늙은 거지의 몸이 굳는 순간 실눈의 사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냐. 아무것도 아냐.”

늙은 거지는 황급히 고개를 젓고 몸을 움츠렸다. 아울러 급히 전방을 향해 쏘아 나갔다. 엄청난 신법이었다. 그것을 본 냉막한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쳤군.”

뭘 미쳤다는 것일까?


그와 비슷한 시각, 동천 일행이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확인한 점원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주인어른! 괜찮습니까?”

“도움이 못 되드려 죄송합니다.”

“으으, 제가 좀만 힘이 있었더라도…”

홍이는 아랫것들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마침 잘됐다 싶어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아까 그 꼬마 놈이 들어온 거지?”

홍이의 물음에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한 점원이 다른 점원들을 제치고 입을 열었다.

“말도 마십쇼. 주인어른의 방에서 비명이 들려 우리들이 의원을 부르고 여러 가지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행패를 부리며 주인어른의 방으로 들어가서 마님과 도련님들을 내쫓았습니다. 그 뒤로는 주인어른이 겪으신 그대로고요.”

간발의 차로 발언의 기회를 놓친 다른 점원들이 안타까워할 때 홍이가 다시 물었다.

“내 마누라는?”

이때 나선 것은 역시 아까 그 점원이었다.

“그건 말이죠. 아까 그렇게 쫓겨나시고 관원들을 부르러 정주 형님과 같이 가셨습니다.”

홍이는 정주라는 소릴 듣고 눈에 불똥을 튀겼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더욱 중요한 질문을 이었다.

“으으, 애들은?”

“도련님들은 마님께서 나가시며 같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홍이는 한탄을 했다. 지금에 와서 관원들을 부른다고 발 빠르게 도망간 것들이 쉽사리 잡힐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휴우, 알았다. 그래도 그 꼬마 놈이 잘 고쳐놓긴 한 것 같으니 나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혀다오.”

점원들은 황급히 홍이를 부축시켜 침대로 데려갔다.

“윽! 조, 조심해 이것들아!”

점원들은 홍이의 엄살 아닌 엄살에 짜증을 내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홍 부인이 돌아온 것은 바로 그쯤이었다.

쿵쿵쿵쿵!

“여보! 흑흑흑!”

육중한 무게로 인한 거친 진동음. 퍼진 얼굴에 폭포수 같은 눈물과 그 못지않게 흘러내리는 콧물. 아무리 남편인 홍이라 해도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이럴 때 싫은 내색을 하면 나중에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애써 반기는 표정을 떠올렸다.

“오오, 당신도 무사했구려. 애들은?”

홍 부인은 남편이 자신과 대면하자마자 아이들을 찾자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들들을 찾는데 서운할 게 뭐 있으랴.

“곧 올 거예요. 흑, 아는 집에다 맡겨놓고 온 거니까 걱정 말아요.”

홍이는 아이들 문제까지 해결되어 다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가장 궁금했던 것을 해결한 그는 그 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뿌득! 그럼, 정주 그 자식은?”

“여보, 왜 그래요. 혹시 정주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홍이가 입을 열려는 찰나 때를 맞춘 듯 정주가 두 명의 포교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주인어른! 제가 왔습니다!”

그가 데려온 포교들은 단련된 근육을 자랑하며 홍이에게 물었다.

“어찌 된 거요? 얘기가 하도 요상하여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요사스러운 애들이 침입했다고 들었소.”

홍이는 새삼스레 떠오른 악몽 때문에 참담한 얼굴을 하다가 분노하며 정주를 가리켰다.

“그놈들은 도망갔지만 이놈이 바로 그놈들과 한패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칭찬받길 기다리고 있었던 정주는 자지러질 듯 놀랐다.

“예에?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패라니요?”

홍이는 입에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이놈아! 네놈이 그 애새끼들과 짜고 금고가 있는 곳을 가르쳐줬지 않느냐!”

순간 포교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이 났다. 특히, 총지(聰知)라 불리는 왼쪽의 포교가 더욱 그러했다. 다른 포교들이 도둑이나 강도들을 잡을 때 운이 안 따라 근 한 달간 건수를 못 올리고 있던 총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정주가 뭐라 하기 전에 재빨리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켁!”

방망이를 세워서 때린 탓에 기절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찌나 손속이 빠르던지 호통을 친 홍이가 다 무안할 지경이었다.

“자, 잘 잡았소이다.”

총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말했다.

“압송하겠소. 대질심문 때 다시 부를 터이니 그때 뵙기로 하지요.”

“예에…”

그로부터 일주일 후 홍이가 거동할 수 있을 때가 되서야 대질심문이 이루어졌다. 그때 홍이는 무조건 정주가 죽일 놈이라고 했고, 심문자 자격으로 참관한 총지는 항변하는 정주를 후려패며 죄를 전가시켰다. 결국 정주는 좋은 일 해보려다 생각 없이 떠벌린 동천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는 얘기다.


“끄아아아악!”

때아닌 밤하늘에 울려 퍼진 괴성(怪聲)이었다. 곤히 잠을 자던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한 이 비명소리를 듣고 귀신이 떠돌아다니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비명을 들었음에도 밖으로 나오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문제의 그 원흉은 동천이었다.

“다 죽여버릴 거야! 개보다 못한 놈들!”

도연은 그런 동천의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말리는 중이었다.

“주군 이러시면 안됩니다!”

좋다고 낄낄거리며 잘 나갔던 동천이 이렇게 괴성을 지르고 지랄발광을 떠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놔! 놔 임마! 그 씹새끼들! 감히 훔칠 게 없어서 나같이 불쌍하고, 하루하루 겨우 먹고사는 착한 아이의 돈을 훔쳐? 으아악! 내 돈! 자그마치 금 99냐앙!”

듣자 하니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가슴에 애지중지 품고 있던 밑천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은자를 금으로 환산해서 홍이에게 10냥 정도를 벌어(?)들인 동천. 그리고 곧바로 금 99냥을 잃어버린 동천. 환장할 만도 하리라.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