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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01화


짐짝은 소연과 화정이의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목표물로 당도하기 위해 소연을 지나쳐야 했던 검시관은 예의를 갖추어 양해를 구했다.

“잠깐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연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검시관과 그 뒤로 나열한 여러 무사들을 감당할 만큼의 뒷심이 부족했다. 그녀는 역부족인 자신을 느끼곤 울상을 지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여유가 있었던 검시관은 소연이 내려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다.

“꼭, 검사를 해야 하나요?”

그런 행동을 보일수록 더욱 강경하게 나간다는 것을 모르는 소연이었다. 검시관은 냉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수하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두 명의 사내들이 마차에서 내린 소연의 진로를 은근히 막았다. 드디어 마차로 들어간 검시관은 아직도 남아있는 화정이의 존재에 약간 머뭇거렸지만 방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짐짝을 둘러싼 보자기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검시관이 그러는 순간 짐짝 속의 민소희는 날카로운 그 무언가를 조용히 꺼내 들었다. 마치 단도처럼 길이가 짧은 물건이었지만 단도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듯했다.

‘바로 곁의 사내놈을 합쳐 전부 여덟…….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 한다.’

스르르륵.

보자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뚜껑이 열리고 피보라가 일 것이라 생각하니 아무리 민소희이지만 가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십 년을 넘게 조용히 살아온 그녀이기에 실로 오랜만의 살육전이 흥분과 긴장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곧이어 뚜껑이 열리고 막혔던 틈새로 빛살이 들어오는 찰나였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주춤한 검시관은 행동을 멈추고 화정이를 바라보았다. 높낮이가 전혀 없는 화정이의 어감이 그를 멈추게 한 것이다. 검시관과 시선을 맞춘 화정이는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당신은 똑같아.”

검시관은 묘한 기분을 떨쳐내려는 듯 침착하게 물었다.

“무슨 소리요?”

그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언제 웃었냐는 듯 화정이의 얼굴이 돌변했다. 믿을 수 없게도 지극히 차가워진 모습이었다.

“당신은 목이 잘렸어. 그러니까 당신도, 당신도…….”

화정이의 눈에서 진한 살기가 뻗쳐 나왔다. 지금 그녀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살상이 가능할 정도였다. 기겁을 한 검시관은 뒤로 물러서다 자빠졌고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란 나머지 물러서기에 바빴다. 화정이가 천천히 일어나 검시관을 향해 한 발을 내딛자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소연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아가씨! 저 강시 좀, 강시 좀 말려주시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도망가있던 소연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주인인 자신이 도망쳤다는 것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사태가 너무도 급박한지라 그것에 대해선 차후에 반성하기로 했다.

“화정아! 멈춰! 멈추란 말야!”

작은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에 한순간 화정이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눈앞에서 벌벌 떨고있는 저자의 목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분명 목이 잘린 자인데 다시 붙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그녀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을, 목을…….”

허공에 들려진 화정이의 손이 명령과 의지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잘라야 해. 그는 분명히 내 앞에서 목이 잘렸어. 그는 내 어머니와 아버……. 으윽! 아, 아파!’

아마도 예전에 그녀를 납치했던 자와 눈앞의 검시관이 비슷한 용모를 하고 있었던 듯했다. 넘어서는 안될 금단의 땅을 밟아서 일까?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은 화정이었다.

“아으윽! 머리가. 머리가.”

이 일련의 사태에 두려움을 느낀 소연은 열심히 용독경 내의 문구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곳에서 해답이 제시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머리가 아플 때는 두, 두 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너무 과다한 지식의 습득을 강요했을 때이고 다른 한가지는 대법이 깨지고 있다는… 징조이…다. 그, 그렇다면 화정이가?’

그때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화정이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쥐어짰다.

“머리가. 동천, 머리가 아파. 아파.”

소연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화정이에게 다가갔다.

“화정아. 정신 좀 차려봐!”

정신적인 의지가 필요했던 화정이는 이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소연의 어깨를 집었다. 헌데 그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두둑!

“아악!”

소연의 왼쪽 어깨가 순식간에 아래로 축 처졌다. 그러나 그녀의 그 비명 덕분에 화정이의 정신세계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갔다.

“헉헉. 헉.”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침까지 흘리고 있던 화정이는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마치 아편에 중독된 사람처럼 흐릿한 동공으로 전방을 향해 의미 없는 시선을 내비쳤다. 그 사이 헐레벌떡 마차 밖으로 도망을 친 검시관은 자신의 수하들을 시켜 소연을 빼오게 하고(물론, 그들은 개겼다.) 다행히 탈골만 된 소연의 어깨뼈를 맞춰주었다.

“괜찮습니까?”

검시관이 말을 꺼낸 것은 마차에서 십여 장이나 떨어진 곳에서였다. 그도 죽고 싶지 않은 다음에야 되도록이면 멀리 있고 싶었던 것이다. 소연은 힘없이 대꾸했다.

“예에. 뼈를 맞춰주셔서 이젠 살 것만 같아요.”

강시의 무서움을 오늘에야 알게 된 검시관은 마차 쪽을 보는 것 자체로도 무서운 나머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물었다.

“저 강시는 어찌 된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 있는 일이라서요. 헌데 물품 조사는 계속 하실 건가요?”

검시관은 자신의 수하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두들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들도 살고 싶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검시관은 사양의 뜻을 내비쳤다.

“하하, 됐습니다. 신분이 확실하시니 그만 두겠습니다.”

화정이가 난리를 피웠지만 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게 된 소연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다친 어깨를 부여잡고 살살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젠 가봐도 되지요?”

“예예, 물론입니다. 얼른 문을 열고 통과시켜드리겠습니다.”

나가는 용건이 분명 나들이였다. 머리만 잘 굴려보면 이렇게 다친 상황에서 무슨 나들이겠냐마는,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도 그것에 관해 떠올리는 자가 없었다. 그만큼 당황스럽고 해괴한 경험을 했는지라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한 듯했다. 예의상 마차의 근처까지 수하들을 대동시킨 검시관은 멀리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차에 올라탄 소연은 두려워하는 마부에게 어서 나가자고 명한 뒤 등받이에 몸을 묻혔다.

“괜찮으냐.”

가늘고 여운이 남는 사부의 목소리에 소연은 얼른 대답했다.

“예, 사부님. 왜인지는 몰라도 화정이의 대법이 깨지려고 했는데 그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탈출하게 되었으니 심려하지 마세요.”

마침 이야기가 나와 궁금해진 민소희는 피곤할 제자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화정이의 대법이 왜 깨지려 했지?”

소연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도 잘 몰랐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하진 않지만 주인님께서 너무 오랫동안 화정이와 떨어져있는 상황과 그 밖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섞여 오늘 우연히 발작을 일으킨 것 같아요.”

감송과 마찬가지로 강시에 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민소희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고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 수고했다. 좀 쉬거라. 이 사부는 암흑마교의 영역 권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그때 밖으로 나오마.”

“예, 사부님.”

소연은 대답을 마치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든 화정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처럼 새근거리는 숨결이 소연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아까의 그 모습과는 도저히 대비되지 않는 천진한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오는 소연이었다.

‘휴우, 어쩌지?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텐데……. 이번에 사부님께서 가시는 곳에 당도하면 동면을 시켜야 하는 걸까? 아이고 머리야. 화정이가 아프다고 하니까 나도 전염된 거 아닌지 몰라.’

마차는 진한 황토를 동반한 채 그렇게 떠나가고 있었고, 검문소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살각 쪽으로 날아간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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