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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07화


중소구는 천마도해를 보고 또 보았다. 아울러 여지껏 강호의 세파를 이겨낸 고수답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손에 들려진 보물은 분명히 피의 대가를 안겨준다는 것을 말이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그는 냅다 동천의 대가리를 후렸다.

“으엑? 왜, 왜 때려요!”

동천이 추가로 억울함을 논할 새도 없이 중소구의 억센 손아귀가 멱살을 쥐고 들어왔다.

“왜 때려? 이 빌어먹을 놈아, 이거 한 장이면 세상이 피바다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

동천은 멱살을 잡히자 저도 모르게 발악했다.

“그래서 지금 황룡세가에 건네주려고 하는 거……아야! 거 때리지 좀 마요!”

분노에 못 이겨 한 대 더 때렸던 중소구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이놈아! 아직도 모르겠냐? 폐혈서생이 왜 외팔이를 쫓았겠어! 다 이 도해 때문에 쫓아온 거 아냐!”

“그 뒈진 놈은 왜 또 들먹여요!”

중소구는 말재주의 한계를 느끼곤 자신의 머리털을 쥐어짰다.

“으아아악! 이 덜떨어진 놈하고는 도저히 대화가 안 되는구나!”

쾅쾅쾅!

그는 대인의 체면상 석 대를 연달아 때릴 수 없어 거세게 발만을 굴렀다. 한편, 시끄럽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침착하게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도연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낮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 그렇구나.”

붉게 충혈된 중소구의 시선이 도연에게로 옮겨졌다.

“자네는 이해를 했는가?”

도연은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비슷하게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 그럼 소형제 자네가 나 대신 설명을 해주게나. 본 대인은 울화가 터져서 저 멍청한 놈과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네!”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던 동천은 중소구를 흘겨보며 괜히 지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연도 알았다고 하니 은근히 궁금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동천은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뭔 얘기야?”

조금 떨어져 있던 도연은 자세히 의사를 전달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그 외팔이가 쫓겨온 것은 필시 천마도해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쫓아온 폐혈서생이란 자는 죽었죠. 허나, 그 천마도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가 폐혈서생 하나일 가능성은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추후에 도착한 추적자들은 죽은 외팔이에서 도해를 가져간 자로 추적 대상을 바꿀 게 분명하다는 겁니다. 즉, 도련님으로 말입니다.”

그제야 이해를 한 동천은 새파래진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그, 그렇다면 지금쯤 내가 있는 곳을 찾고 있다는…….”

중소구는 버럭 소리쳤다.

“이 덜떨어진 놈아! 벌써 열흘 정도가 지났는데 그놈들이 병신이 아닌 이상 아직도 못 찾았겠냐? 찾고 있다가 아니라 벌써 찾아서 우리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 본 대인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거야!”

안 그래도 사정화의 추적대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다친 것 때문에 까먹고 있다가 지금에야 생각이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기가 몰려오자 중소구의 구박도 귀에 들어차지 않았다.

“으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오늘 밤 당장이라도 황룡세가를 향해 떠나야지!”

도연은 급히 중소구에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쉿! 말씀을 낮추십시오. 어딘가에서 감시자가 듣고 있을 게 분명하니까요.”

동천은 지가 떠든 것도 아니면서 다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쫄아도 너무 쫄은 것이다. 그것이 너무 가엽게 보였는지 중소구는 그만 화를 풀기로 했다.

“좋다. 여태까지의 잘못은 모두 잊어버리자. 그러나 명심할 것은 이제부터는 숨기고 자시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너!”

동천은 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대답했다.

“예? 아, 예에. 당연하죠. 이제는 숨길 것도 없는데요 뭘.”

도연은 이런 일에 중소구가 있어 얼마나 믿음직하고 다행인지 몰랐다. 완전히 믿음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군과 단둘이 행동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방금 전 소리가 너무 커 누군가 들었을까 염려됩니다. 떠나는 것을 좀더 미루던가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잠시 도연의 의견을 가늠하던 중소구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숨어있는 놈이 본 대인의 이목에는 걸리지 않았네. 본 대인보다 강한 자가 숨어있다면 아무리 숨죽여 도망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니 예정대로 오늘 밤에 떠나기로 하세. 오늘 떠나지 않는다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심기만 소모될 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동천은 도연이 지 멋대로 결정을 내려 불만이었지만 자신이 나섰다간 소구 자식에게 괜히 핀잔만 들을까 봐 가만히 있었다. 대신 자신도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주기 위해 중소구에게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그동안 우리는 뭐하고 있어요?”

중소구는 짜증스러운 어투로 대꾸했다.

“넌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졸리면 그냥 자빠져 자.”

“네.”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동천의 마음속에서는 연신 ‘씨발, 씨발.’이 울려 퍼졌다.


“자, 떨이에요. 떨이.”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이거 왜 이래? 안 된다니까.”

“왜 그러슈? 장사 하루 이틀 하고 살았슈?”

예전에 한 번 들어봤던 소리이다. 바로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종종 들리는 소리였다. 제법 잘 닦여진 관도를 지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들어온 동천 일행은 씻은 지 오래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티 내듯 먼지가 쌓이고 때가 탄 옷자락을 툭툭 털어가며 느긋하게 걸어갔다. 오늘로서 이주일째. 마침내 황룡세가의 영역권 내에 들어온 이들은 다소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쉬지도 못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다는 걸 깨닫자 신경이 다소 무뎌진 걸까? 아니었다. 사실, 이때쯤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련만 이곳까지 오는데 단 한차례의 공격도 받지 않았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남들과 정반대로 여태껏 긴장을 하다가 다 와서 긴장을 푼 것이다.

“흑흑흑.”

중소구는 동천이 갑자기 청승맞게 울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아, 뭘 잘났다고 울어? 이곳에 도착하니까 안심이 되어서 우는 것이냐?”

그런 게 아니라 오랜만에 정든 곳으로 돌아오자 동천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중소구에게 자신의 예전 신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동천은 대충 얼버무렸다.

“맞아요. 너무 안심이 되는 거 있죠? 흑흑, 그래서 말인데요.”

“그래서 뭐.”

“제가 앞장서서 안내해도 될까요?”

도연과 중소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동천이 마치 이곳의 지리를 아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동천의 예전 신분을 알고 있었던 도연은 대놓고 ‘너 이 근처에서 하인 생활을 했었니?’ 할 수 없었기에 우회해서 질문을 했다.

“예전에 이 근처에서 사셨습니까?”

“헉? 어, 어떻게!”

처음 약왕전에 왔을 때 문지기들에게 자신의 예전 신분을 밝혔던 동천은 정작 지금에 와선 그때의 일을 까먹은 지 오래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동천이 도연의 질문에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편,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중소구는 기도 안 차는지 동천의 꿀밤을 때렸다.

“이놈아, 네놈이 안내한다는 것은 이곳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느냐! 그런 건 지나가는 어린애라 해도 알 수 있겠다!”

동천은 아픈 머리를 비비며 불안한 눈으로 도연을 응시했다.

“그것… 때문이냐?”

도연은 주군이 하인 신분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황룡세가의 하인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귀동냥으로 들을 당시 어느 부잣집 하인이었다, 도살장의 아들이었다, 구걸하다 눈에 띄었다 등등. 동천의 예전 신분을 둘러싸고 별의별 소문들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지금 도연이 알고 있는 사실은 소연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래서 주군이 무슨 뜻으로 질문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던 도연은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것 외에는 다른 뜻이 없습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안도한 동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중소구를 따라 뒷짐을 졌다.

“흐음, 이 몸께서 말씀을 안 하셨더냐? 이 몸이 몇 년 전까진 이곳에서 살고 계셨다는 것을 말이다.”

도연은 오랜만에 보는 주군의 근엄한(?) 모습인지라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계속 폼을 잡으려던 동천은 같지도 않다는 중소구의 은근한 눈길에 얼른 원래의 그로 돌아갔다.

“헤헤, 결론적으로 좀 살았단 얘기야. 그러니까 내가 안내하겠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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