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44화
“으으.. 음..”
‘뭐지? 지금 내가 왜, 누워있는 거지?’
매향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계속 매향을 간호해주던 초향은 정신을 차리는 매향을 보고,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아..? 깨어났어요! 강의원님! 깨어났어요!”
“그래? 어디..”
매향은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눈꺼풀에 낯선 손이 올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누가 내 눈꺼풀을 만지는 거야?’
“으음.. 누구예요?”
매향이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서자, 강의원은 매향이 일어나는 걸 얼른, 거들어주었다.
“흐음.. 몸 상태는 괜찮은 것 같구만.. 그럼, 이만..”
그러고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초향은 강의원이 급히 나가려고 하자, 놀라하며 얼른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앗? 가시게요? 고마웠습니다.”
초향의 인사를 받은 강의원은 알았다는 듯이 나가면서 말했다.
“환자의 안정이 우선이네! 알겠나?”
“예. 안녕히 가세요.”
둘의 대화를 보니, 아마도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이 느끼기에는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니, 매향의 입장에서는 의아(疑訝)한 일이었다.
“초향아. 왜 그래? 무슨 일 났어?”
매향의 물음에 초향은 어색함을 감추려는 행동을 다분히 보이면서 다가왔다.
“으응.. 그런데, 너 생각 안 나니?”
“뭘?”
매향이 그때의 일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 같자, 초향은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런 시선을 받자, 매향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기 있잖아! 네가 소전주님을 업고, 나갔을 때 말야. 정말로 생각 안 나?”
소전주 얘기가 나오자, 뭔가 생각날 듯 하기도하고… 그때, 번뜩!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시큼한 냄새… 싯누렇고, 끈적끈적한..?
“으으으… 그때? 마. 맞아! 그때 내 얼굴에 토사물이 쏟아진 것 같았는데… 그럼,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건?”
매향이 겁에 질린 표정을 하자, 초향은 매향의 곁으로 가기를 잠시 꺼리는 것 같아 하다가, 그런 매향이 불쌍해 보였는지 다가가서 매향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 네가 기절해 있었던 걸… 휴우.. 근… 이각 정도 지나서, 지나가던 다른 하인들이 발견하고는 여기로 데려다 준 거야.”
“그.. 래..?”
초향의 말을 들은 매향은 그래도 그 상황에서 금방, 기절을 했기에 그때의 고통을 못 느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초향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매향의 말에 초향은 기겁을 했다.
“어? 아. 아냐! 얘도 참! 네.. 얼굴에 묻기는 뭐가 묻어있단 말이니?”
초향의 행동을 이상히 느낀 매향은 불길한(?) 생각에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얼굴이 아프다거나, 상처 부위가 만져진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내 얼굴에는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 왜 그래?”
매향의 말에 안심을 했지만, 이런 사태가 언제까지 숨겨질 리가 없다고 판단한 초향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매향에게 진실을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초향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매향아.. 지금부터, 아무리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고 해도 놀란다거나 하는 일이 없길 바래..”
예감이 안 좋았다.
“무… 스은.. 일인데?”
초향은 왜 하필이면 이러한 일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차원을 넘어서 정말로 화가 났다. 왜 하필이면…
“휴우.. 그래. 나는 네가 잘 버티리라 믿어. 매향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지금 네 얼굴 상태가 좀 안 좋거.. 아..?”
매향은 자신의 얼굴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에 초향의 이야기를 다 듣다 말고, 얼른 거울로 달려갔다.
‘설마.. 아무 일도 아닐 거야.. 그렇고말고.. 초향이가 나에게 장난치려고 그러는 거겠지? 봐봐? 이렇게 내 얼굴이 아… 무….?’
“꺄–악!!!!”
“매향아! 진정해! 진정하라고! 강의원이 별거, 아니라고 했어. 정말이야! 흑흑.. 매향아..!”
“내.. 내 모습이….? 싫-어!”
매향은 눈앞의 분통을 잡아서 냅다, 거울로 던져버렸다.
째-앵! 와장창창-!
“흑흑.. 매향아.. 강의원이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진다고 했어!”
그 말에 매향은 주춤! 하더니,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물어보았다.
“그래..? 훌쩍! 어.. 얼마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짜.. 짧으면 1개월..”
풀-썩!
“앗! 매향아? 매향아! 정신 차려!! 흑흑.. 매향아…!”
매향은 짧은 게 1개월이라는 말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과연, 매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을까..? 사건의 발단으로 다시 돌아가보도록 하자…..
매향은 자신의 옆얼굴에 쏟아지고 있는 토사물이 흘러서 자신의 입속까지, 흘러들어오는 것을 맛보며 앞으로 쓰러졌다. 매향이 기절해서 쓰러질 때, 매향의 양 어깨를 꽉! 잡고 있었던 동천은 매향의 등에서 무사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충격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므로, 그 충격에 또 속이 울렁거린 동천은 매향의 얼굴에 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웩,, 으…. 으웩!”
마침 주위에서 매향의 괴성을 들은 여러 하인들이 달려왔을 때, 매향의 얼굴은 머리의 형체(形體)도 못 알아볼 정도로 동천의 토사물이 소복히(?) 쌓여있는 것이 보였다. 일을 다 끝마친 동천은 그래도 더러운 건 아는지, 그냥 꼬꾸라지지는 않고, 옆으로 한 번 구른 뒤 다시 뻗어버렸다.
“…… .”
여러 하인들은 그 광경에 할 말이 없었다.
“으음.. 밥 줘…”
그렇게 뻗어있던 동천은 다른 하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업혀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인 매향은 동천이 업혀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각여 동안,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엎어져 있었다.
“야.. 벌써 시간이 꽤 지났잖아… 빨리 좋은 생각 좀 짜내봐.”
그때 옆에 있던 하인이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더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냥. 빗자루로 쓸을까?”
그 말에 옆에 있던 여자 하인이 인상을 쓰면서 구박했다.
“으이그.. 이 멍청아! 그랬다가는 얼굴에 상처가 남을 게 아냐? 넌 여자의 생명이 얼굴이라는 것도 모르냐?”
말하는 여자의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입장도 아닌 것 같은데, 꼴에 여자라고 얼굴에 대해서 대단히 강조를 했다. 다른 하인들이 들어보니, 그 말도 그렇것 같다는 생각에 의견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자.. 잘들 생각해 보자고. 어떻게 하면, 저 얼굴에 얹혀진 토사물을 안전하게 치울 수 있는지…”
이야기를 주도하던 하인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자, 곰보투성이의 하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쎄에…”
알고 보니, 그들은 매향의 얼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동천의 토사물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치울까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걸어가던 웬 소녀가 사람들이 모여있자, 궁금한 마음에 사람들을 헤집고 끼어들었다.
“저.. 잠깐만.. 요…”
한참을 비집고 들어가던 소녀는 옆사람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불상사를 당하고야 말았다. 잠시 어어? 하던 소녀는 그만 물동이의 힘을 못 이겨, 쓰러지고야 말았다.
콰직! 쏴아아아….
“어머? 이걸 어째….”
소녀는 매우 당황했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깨진 물동이에서 쏟아진 물들이 한순간의 힘으로 매향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그 광경을 본 곰보 사내는 흥분 섞인 말투로 소리를 질렀다.
“그거였어!”
옆의 사내는 곰보 사내를 보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 병신..”
그런 일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계속 방치되었을 뻔했던 매향은 무사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초향은 매향이 기절해서 업혀 왔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매향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 매향아..”
초향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매향을 오랜 시간 동안 간호해주었다. 그런데 매향의 얼굴을 닦아주던 초향은 매향의 왼쪽 얼굴이 누리끼리해져 있는 게 보였다.
“어? 웬 얼룩이?”
처음에 그냥 얼룩인 줄 알고 조심스레 매향의 얼굴을 닦던 초향은 얼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별일이 아닌 줄 알았으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누런 색깔이 더욱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가…”
그 색깔은 더욱 진해지더니, 나중에는 한눈에 드러나 보일 정도로 한쪽 얼굴은 하얗고, 반대쪽 얼굴은 누리끼리해졌다. 자신의 한계를 느낀, 초향은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얼른 뛰쳐나가 강 의원을 불러들였다. 처음에 들어온 강의원은 놀라 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매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였다.
“흐음…”
“강의원님. 매향이는 괜찮은 건가요?”
초향의 불안한 물음에, 매향을 계속 주시하던 강의원은 침중한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진단해 보건대, 매향의 얼굴은 아마도 소전주님의 그것에 장시간 덮여 있어서, 그 독기(毒氣)가 침투한 걸로 보이네..”
독기라는 말에 초향의 안색은 파래졌다.
“도.. 독기요? 그럼, 매향의 얼굴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음.. 독기가 다 빠져나가면, 괜찮을걸세.”
그 말에 초향은 안색을 펴며, 물었다.
“그럼, 독기가 다 빠지려면 어느 정도 걸리는지 아세요?”
강의원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글쎄… 대략, 한 두어 달 정도가 될 걸세..”
“예에? 그렇게나 길게요?”
“그럴 것 같네..”
초향이 불쌍한 마음에 매향의 얼굴을 쓸었다. 그때, 매향이 나직이 신음 소리를 냈다.
“으으.. 음..”
매향을 간호해주던 초향은 정신을 차리는 매향을 보고,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아..? 깨어났어요! 강의원님! 깨어났어요!”
소연은 술에취한 동천을보고, 온갖 부산을 떨었다. 침대위에 뉘여진 동천은 오후내내 잠만 잤다. 얼마나 취해 있었는지, 그 잠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동천은 그사이에 또 꿈을 꿨다. 이번에도 자신의 방이 물에 잠겨서 허우적대는 꿈이었다. 그때에도 어떠한 물체가 있어서, 그것을 보려고 애써봤지만, 희미하기도 하고, 흙탕물 때문에 무엇인지는 알수가 없었다. 아는거라고는 크다는 것 뿐인데, 그것이 커다란 입으로 자신을 잡아 먹으려는 듯 입을 벌릴 때, 꿈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