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46화
<동천3(冬天)>
<삼문(三文)>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을 날으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새가 아닙니다. 그러나 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꿈은 좋은 것입니다.
『꿈의 기억 중에서…』
<삼장(三章)>
그는.. 의외의 변수(變數)였다…
그런 자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도 무사하지 못하리라.. 나는 잠시, 수면(睡眠)에 빠질 것이다…
안배(按排)는 완벽히 했다..
동천은 자신이 잠이 들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번쩍.
저절로 눈이 떠졌다. 속은 괜찮았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지금 상황은 정말로 꿈일 것이다. 소연은 자신의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었다. 깨울까..? 관두자.. 괜히, 순진한 애 깨웠다간 꿈에서라도 울고불고, 지랄을 할 것만 같기에 깨우려는 걸 그만두었다. 소연은 그냥 자는 게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다.
동천은 조용히 걸어나왔다. 하늘.. 태양..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이상했다. 모든 풍경은 그대로지만, 왠지 모든 것이 가식적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뭐라고 반박할 만한… 그런, 느낌은 아니었기에 무심코 지나갔다.
“응? 꿈이 아닌가?”
앞서, 두 꿈같이 물난리가 일어나는 그런, 징조(徵兆)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칫, 그냥 깬 거구나? 괜히 신경 썼네… 사부님이 자고나면, 나을 거라더니 진짜였네? 히히.. 속도 괜찮아졌으니, 밥이나 먹어야겠다.”
방으로 들어간 동천은 소연을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 주인이 배고파 죽겠는데, 너는 잠만 퍼질러 자냐?”
“으음.. 깨.우…”
소연이 흔드는 자신의 손을 거칠게 치우며 잠꼬대를 하자, 내심 어이가 없어진 동천은 대갈통을 때려볼까 하다가, 간지럼을 피우기로 했다.
“간질간질.. 간질.. 간질… 깨어나라….”
“으.흑.. 오.호.호…. 그만.. 호호… 그.. 그… 애.. 헤헤.”
떼굴떼굴 구르면서 동천의 손길을 피하던 소연은 저만치 피한 후에야 겨우 일어났다.
“야.. 이제 깨어났어? 깼으면, 어서 밥이나 들여와.”
동천의 말에, 소연은 낄낄대며 일어섰다.
“큭.. 큭큭… 내.가… 내가 깨.. 깨우지.지? 너.. 죽..”
소연은 몸을 기우뚱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그런, 모습에 동천은 황당한지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어? 너는.. 소연이….?”
“킥킥키킥.. 인제 알.알.어?”
그때 소연이 아닌, 그 무언가의 등 뒤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엇? 이, 씨필…! 너, 내가 깨어나면 죽을 줄 알아!!”
소연이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나불거리던 동천은 자신에게 덮쳐오는 물줄기를 피해, 도망갔다.
-파악.!!
“웃!”
간발의 차이로 물줄기를 피했다. 피한 자리를 힐끗 쳐다보자, 거대한 구멍이 파여있었다. 그것을 보자, 꿈인 것을 알면서도 간이 철렁! 했다.
“에이, 개새끼! 오늘은 쉽게 안 당한다아……”
동천의 쌍스러운 말로 표현하면, 좆 빠지게 달리며 욕하고 있는데, 달리는 동천의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쫓아오는 게 보였다. 돌아보기 싫었다. 그러나 궁금한 건 못 참는 동천은 뒤를 돌아보자, 집채만 한 물줄기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자신에게 밀려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곤 곧, 동천을 덮쳐버렸다.
“아-악!”
“네? 네, 밥 가져올게요!”
동천이 꿈에서 깨어나며, 소리를 지르자, 꿈에서와같이 정말로 자고 있었던 소연은 동천의 소리에 잠에서 깨며, 횡설수설했다.
“헉.. 헉…!”
“아.. 이 땀 좀 봐! 이를 어째…”
동천이 땀에 흠뻑 젖어있자, 소연은 안쓰러운 눈길로 동천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줬다.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동천은 갑자기 소연의 볼을 잡아당겼다.
“아야야! 죄.. 죄송해요오.. 깜빡, 잠이… 아야~!”
소연은 자신이 간호는 안 하고 잔 것 때문에 동천이 자신의 볼을 꼬집는 줄 알았다. 동천은 꿈만 생각하면, 거기서 나불거리던 소연을 한 대 쳐주고 싶었지만, 막상 예쁜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약해져서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볼만 잡고 말았다.
“으-휴… 잘해. 내가 두고 볼 거다.”
“예.. 예.. 잘할게요.. 잘.. 흑흑.. 잘할게요…”
마음이 여린 소연은 결국에 울음을 터뜨렸다.
“으이구,, 좀만 화내도 울어버리니.. 나 원 참!”
할 수 없이, 나이 어린 동천이 울고 있는 소연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어느 정도 토닥여주자, 소연도 진정이 되는지 훌쩍임을 멈췄다. 그래도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어봤다.
“저.. 속은 어떠세요..?”
“응? 속? 아.. 그러고 보니, 괜찮은데? 다 나았나 봐!”
소연은 동천이 아까, 땀을 흘리며 일어난 것과는 달리, 속이 쓰라렸던 게 다 나았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속이 좋아졌으니, 동천이 할 일이 뭔지 알기 때문에 소연은 곧이어 일어섰다.
“어디가?”
“밥 가지러 가는데요?”
“오.. 그래? 그럼, 빨리 가봐!”
밥이라는 말에 입에서 군침이 절로, 흘렀다. 소연이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식탁에 앉아서 밥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왔습니다..”
잠시 후에, 소연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음식을 날라왔다. 하나의 음식이 자신의 앞에 놓여졌다. 흠… 두 번째 음식이 놓여졌다. 호오.. 세 번째 음식이 놓여졌다. 으응? 네 번째.. 다섯 번째… 이런..?
“자.. 잠깐, 이게 뭐야?”
동천의 좀 황당한 듯한 말투에 소연은 웃으며 말해줬다.
“호호.. 뭐긴 뭐예요? 죽(粥)이지. 아까, 전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길, 밥을 드시게 될 때는 죽을 드시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부 다가 죽이면 어떡해?”
뜯어먹는 걸 좋아했던 동천에게 죽이란, 죽 쒀서 남준다는 말처럼, 별 의미가 없었다. 전혀 씹히는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죽들은 계속 자신의 앞에 놓여지고 있었다. 수십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배가 고프기도 하니까…”
“한 번씩 떠먹어 보시고, 맛있는 게 있으시면 골라 드세요.”
소연의 말대로 하나씩 차례로 떠먹던 동천은 역시, 자신의 입맛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으… 내가 늙은이도 아니고..”
몇 번 떠먹던 동천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입에 맞는 게 없어요?”
“그래.. 그래도 죽은 수련이 잘 만들었는데.. 어? 그래! 야, 너 지금 수련한테 가서, 그때 나한테 만들어준 죽 좀 만들어 달라고 해라.”
동천이 예전에 사정화에게 맞고 나서, 수련이 만들어준 순죽의 맛을 못 잊어 수련에게 가보라고 했지만, 정작 소연은 수련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예? 수련이 누구신지…?”
“에이..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고, 아무나 붙잡고, 사정화네 집이… 아니고, 너 내가 사정화라고 했다고 누구한테 말하면, 죽어! 흠흠.. 다시 정정해서, 정화 아가씨의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누구라도 알 테니까 마차를 타고, 쌩하니 갔다와! 되도록이면, 빨리 갔다 와! 나 배고프니까..!”
“예에..”
소연은 동천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어볼 필요도 없이, 마차를 끄는 마부가 알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수고는 없어졌다. 마차를 탄 소연은 어서 빨리 도착했으면.. 했다. 시간이 늦으면, 동천이 지랄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소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차가 멈춰 섰다.
“얘야. 다 왔다.”
“예? 아.. 그래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마차가 멈추자 내려선 소연은 안으로 얼른 달려갔다. 바깥에서 목검을 가지고, 중단에 놓은 채 그 자세로만 근 반시진을 버티고 있던 수련은 예쁘장한 소녀가 숨 가쁘게 달려오고 있자, 마침 힘들기도 했으므로, 기본 자세를 풀었다.
“무슨 일이죠?”
수련의 물음에 근처까지 달려온 소연은 얼른 대답했다.
“예.. 혹시, 성함이 수련(睡蓮). 맞습니까?”
“그런데요?”
그제서야 소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연은 왜 자신이 왔는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아..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종합해보면, 동천이 내가 만든 죽을 먹고 싶어 한다는 말이죠?”
“예.. 어서 가주세요. 늦으면, 저 혼나요..”
그 말에 수련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혼나긴 왜 혼나요. 가긴 갈 건데, 잠깐만 기다려요.”
동천이 자신의 죽을 먹고 싶다고 하자, 기분이 좋아진 수련은 대나무 밭으로 들어가서 큼지막한 죽순을 뽑아왔다.
“후-아… 크네요.”
죽순을 처음 본 소연은 놀라 했다.
“자, 어서 가요.”
“아참! 늦었다..”
둘은 서둘러 마차에 올라탔다.
“이.. 씨. 왜 이리 늦어? 으.. 배고프다…”
수련이 오기를 한참 동안 기다린 동천은 아무리 기다려도 올 생각을 안 하자,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았다. 더 이상 못 참겠는지, 동천은 마지못해 눈앞에 놓여진 죽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어..?”
생각 외로 먹을 만했다. 배가 고프니 맛없던 것도 맛있어진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수련을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
“으와.. 식은 죽도 꽤 맛있당.. 후루루룩!! 쩝쩝..”
죽이 식기까지 하자, 통째로 들이마셨다.
“으히히… 맛, 죽인다..!”
덜컹. 덜컹..
그사이에 수련은 기쁜 마음으로, 마차를 타고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