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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9화


“으아악! 내가 돌겠어! 내가 미쳐! 어떻게 저런 종자(種子)가 태어난 거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가..!”

열불이 난 동천은 어느 하인이 왜 그러시냐고 묻자, 신경질을 내며 그 하인의 발을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는 자빠져서 신음 소리를 내는 하인을 한 대 더 후려갈긴 후, 방안으로 들어갔다.

“씨익.. 씩. 열받어.. 저 계집애를 정말로 바꿔버려? 어휴.. 열받어.”

동천은 정말로 열받았는지, 방에서 방방 뛰었다.


종가진은 바람도 쐴 겸해서 자신이 기거하던 방을 나섰다. 이곳에 온 지 근 한 달 동안은 역천과 더불어 같이 의술을 논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었지만 역천이 제자가 생긴 후로는 그런 만남이 뜸해졌기 때문에 혼자서 산책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런 무의미한 시간을 갖는 건 자신과는 안 맞았지만, 며칠 후에 약소 전주를 위한 잔치가 있을 예정이므로 이곳을 떠나는 건 그 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소전주를 한번 만나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하하.. 날씨가 참 좋구나..”

종가진.. 그는 누구인가..?

“흐음.. 날씨가 참 좋구나..”

그는.. 어떠한 사람일까..?

“후후.. 날씨가 참 좋구나..”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똑. 똑.”

“누구야?”

동천은 한참 분을 삭이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리자, 신경질 투로 소리쳤다. 그러자, 밖에서 어느 여자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신성 종가진께서 소전주님을 뵙고자, 찾아오셨습니다.”

“신성(神聖)?”

누군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예. 전주님의 초청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아..? 그 실성? 응? 그런데 왜?”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시비의 말에 잠깐의 생각을 멈춰야만 했다.

“으음.. 알았어. 접견실(接見室)로 오라고 해.”

“예..”

동천은 그 인간이 왜 왔을까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봤다.

‘왜지? 그 새끼가 왜 나를 찾아왔지? 음.. 그런데, 걔는 뭐 하는 자식일까? 에이그.. 이럴 줄 알면, 그 자식에 관해서 조금 알아둘걸..’

내심 투덜거리며 접견실에 다다르자, 동천은 잠시 숨을 고른 후 웃음 띤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때 종가진은 하나의 서책을 들고 보고 있다가 동천이 들어오자, 반갑다는 표정으로 동천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하하..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소전주?”

“예에.. 그동안 잘 지냈었습니다.”

들어갈 때는 웃으며 들어갔지만, 실실거리는 종가진을 보자 얼굴이 저절로 굳어졌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길.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렇게 안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했다. 종가진은 동천이 들어올 때는 웃으며 들어왔다가, 자신을 보고는 얼굴을 굳히자, 아마도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책 때문인가 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책을 읽어서 화가 나셨나 보군요?”

“그게, 아니구..”

종가진은 얼른 동천의 말을 끊었다.

“하하하, 그럼 다행이군요? 나는 또 이 책 때문인가 해서, 가슴을 졸이고 있었지 뭡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오셨냐고 물어봐도 되나요?”

동천의 냉담한 말에 종가진은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음.. 왜 왔냐고요.. 알아맞혀 보겠습니까? 제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죠. 에.. 첫째, 오고 싶어서 왔다. 둘째, 오고 싶지 않았지만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셋째는.. 하하하. 아무 생각 없이 왔다. 어떻습니까? 한번 맞춰보시죠.”

‘미친 새끼…’

동천은 이 자식이 나이를 헛먹었나 했다.

“답은.. 세 번째요.”

“오옷! 역시, 머리가 좋으시군요? 하하. 맞추셨습니다.”

동천은 머리가 좋다는 말에, 여태까지 뚱해있던 자세를 풀고는 히히덕거렸다.

“히히.. 아이참. 뭘 그런 거 가지고..”

종가진은 그런 동천의 모습에 약소 전주가 칭찬에 약하다는 것을 한눈에 간파하고야 말았다.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소전주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간에 탁기(濁氣)가?”

“예? 탁.. 기요?”

종가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오..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자세히 봐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시던지요.”

동천은 탁기(濁氣)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락했다. 종가진은 동천이 간단하게 허락을 하자, 그때의 의문점도 있고 해서, 자세히 진맥(診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진맥을 해봐도 성과가 없자, 이번에는 진짜로 동천의 미간에 있는 탁기에 대하여 관찰하기 시작했다.

“흐음.. 이상하군요?”

“왜요? 모르겠나요?”

동천의 다급한 질문에 종가진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간에 자리한 탁기는 마음의 근심이 뭉쳐져서 형성된 게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요새 어떠한 일로 걱정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동천은 종가진의 질문에 꿈 얘기를 해줄까, 말까 하다가 결국은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동천의 말에 꽤 고심할 줄 알았던 종가진은 의외로 밝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난 또 뭐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꿈일 뿐이니까요.”

‘이 새끼가… 그걸, 누가 모르나?’

뭔가 기가 막힌 말을 해줄 줄 알고 기대했던 동천은 종가진의 허튼소리에 화가 났다.

“그러니까, 제가 답답하다는 거예요. 그런 꿈은 계속 꾸는데, 대체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동천의 흥분기가 섞인 말에 종가진은 진정(鎭靜)하란 듯이 두 손을 천천히 아래위로 흔들면서 말했다.

“자자.. 진정하시고, 제 말을 끝까지 잘 들으십시오. 하하. 너무 성급하시군요? 모름지기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답니다. 그래야 오해(誤解)의 소지가 남질 않거든요. 알겠습니까?”

종가진의 가르치는 듯한 말투에 기분이 좀 상했지만, 동천은 종가진의 말이 왠지 소연을 가리키는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천의 그런 모습에 종가진은 자신의 말에 소 전주가 곧바로 뉘우치는 줄 알고, 내심 탄복했다.

“하하. 소전주께선 귀에 거슬리는 말도, 참 겸허하게 받아들이시는군요?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인데, 소전주는 분명히 나중에 크면, 큰 인물로 자라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동천은 소연을 생각하고 있는데 종가진이 뭐라고 나불거리자, 이 인간이 지금 뭔 소리를 하나.. 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이 큰 인물이 될 것 같다는 말에 영문도 모르면서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가진은 동천의 그런 모습을 지켜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흘러들었군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꿈은 소전주님의 영역(領域)이란 말입니다.”

“영(領).. 역(域)이요?”

종가진은 동천이 못 알아듣는 것 같자,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어렵나요? 그럼 하나의 예를 들어보죠. 소전주님은 오늘 꿈에서 수영도 못했었는데, 한순간 수영을 잘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그 말에 동천은 자신도 그게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 맞아요. 그런데 제가 수영을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 그때부터는 다시 수영을 못하게 됐어요.”

쾅-!

“바로, 그겁니다!”

종가진은 자못 흥분을 했는지,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동천은 깜짝 놀라서 속으로 씨발놈, 개 발놈 하고 욕을 했다.

“그거.. 라뇨?”

“하하하… 소전주께서는 아주, 중요한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중요한 게 뭔데요?”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치닫자, 종가진은 입에서 침까지 튀기며 말했다.

“하하. 그건 말이죠. 의지(意志)입니다.”

“의지(意志)요?”

종가진은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꿈속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수많은 미녀들을 품어본다거나.. 아참, 소전주께서는 아직 그런 상상(想像)은 안 하실 테니… 뭘 예로 들어야.. 그렇지? 하하하. 꿈속에서는 갖고 싶은 장난감과 먹고 싶은 음식들은 모두 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종가진은 열심히 말을 한 후 동천을 바라봤다. 동천도 종가진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래서요?”

종가진은 동천이 못 알아듣자,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쳤다. 한마디로 힘이 다 빠졌다.

“으음..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소전주님의 꿈에서는 그 미지의 껌댕이가 소전주님을 괴롭히고 있지만, 소전주님이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반대로 그 검은 놈을 괴롭힐 수가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거기서는 그놈이 무지하게 크다고 했지만, 소전주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그 녀석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드디어 말을 알아들은 동천은 여태까지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그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종가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새끼가 진작에 이렇게 쉽게 말해줄 것이지, 왜 여태까지 어렵게 말을 했나 했다.

“오오.. 그것 참 괜찮은 생각인데요?”

종가진은 마침내 소전주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자,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하하. 제 이야기가 소전주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저도 그랬으면 하네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동천은 종가진의 말을 듣고 난 후, 빨리 자서 과연 그 말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눈치 없는 종가진이 자신을 붙들어 놓고, 장장 한 시진 반이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통에 짜증이나 미치는 줄 알았다. 길고 긴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종가진이 돌아가자, 동천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가 있게 되었다.

“에이.. 씨발 새끼.. 그거 하나 가르쳐줬다고, 더럽게 개기다 가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천의 표정은 밝았다. 꿈을 생각하자 얼른 실험해 보고픈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히히.. 얼른 가서 자봐야지..?”

동천은 들뜬 마음에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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