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0화
“아휴.. 어쩌지?”
소연은 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이따가 주인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가슴이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떡해.. 어떡해..?”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던 소연은 이렇게 자신이 고민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휴.. 할 수 없지. 우선, 주인님을 만나 뵈야겠다… 그런데, 주인님의 화가 아직도 안 풀렸으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내 어깨를 짚으시면서,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이러면, 어떡하지? 아아.. 어떡해…?”
“……. .”
동천은 소연의 방을 지나다가, 지금까지 소연이 한 말을 다 듣고야 말았다. 몇 달 전의 고통과 의붓 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저런다고는 하지만, 그런 소연이 불쌍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저런 계집애를 밑에 두고 있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試鍊)을 주시나이까…’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른 동천은 방문을 살짝 두드렸다.
똑. 똑..
“앗? 누. 누구세요?”
“나야..”
동천의 말소리에 소연의 방에서는 묘한 침묵이 돌았다.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던 동천은 지금 자신이 뭐하는 것인가 했다.
“야, 들어간다?”
“….네에..”
마침내 소연이 들어와도 된다고 하자, 동천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동천은 소연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야! 어디 있어?”
동천의 부름에 마지못한 듯한 소리가 침대 쪽에서 들렸다.
“여.. 여기요.”
그 소리에 침대 쪽으로 걸어간 동천은 마침내 소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야.. 너 거기서 뭐 하냐?”
“헤헤.. 그냥요. 저는 여기가 좋아서요.”
동천은 침대 밑에서 고개만 내민 채, 어색한 웃음을 짓는 소연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 그럼, 거기서 살아라.”
“예?”
“잘, 살라고..”
동천은 소연의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상대할 마음이 없어졌다. 그렇게 동천이 나가자, 침대 밑에서 자신을 방어(?)하던 소연은 지금 상황에 얼떨떨해 있었다.
“….. .?”
“잊자.. 잊어.. 오늘 일은, 미련을 버리자… 으휴.. 미련을.. 미련… 미련퉁이 같은 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동천은 우선 자보려고 했지만, 아까 잔 것도 있어서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이 안 올 때 참새를 세면, 좋다고 그 누구에게 들은 것 같기에 침대에 누워 참새를 세다가 그나마 조금 졸렸던 잠까지도 날아가 버렸다.
“에이. 열받어. 도대체 어떤 새끼가 참새를 세면 좋다고 했어? 나중에 생각만 나봐라! 그냥..”
잠이 오지 않아, 고민을 하던 동천은 쉽게 자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항광이 주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가만..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어디까지… 아? 여기 있다.”
자신이 읽었던 부분을 찾아서 한 십여 장까지 읽던 동천은 어느새 꿈나라로 향했다.
민삼(珉三)은 드디어 돈을 받았다. 그 자식이 와서, 돈을 갚는다고 했을 때는 기분이 엄청 좋았는데, 문제는 돈을 다 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 자식은 실실 웃으면서 돈을 갚겠다고 하더니만, 겨우 은자 하나? 어휴, 열받어!”
그래도 떼먹은 줄 알았던 민삼은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돈이 없어도 생길 때마다 와서 갚아준다고 왔으니, 언젠가는 다 갚아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그 말대로라면 꼭, 다 갚아줄 것이 분명했다.
“음.. 오늘 장사도 별로인 것 같은데, 이 돈으로 술이나 마셔야겠다.”
평소에 술을 잘 마셔댔던 민삼은 은자가 생기자 입이 근질거려, 침을 꼴깍! 삼킨 후 객점을 향했다. 얼른 술을 먹으러 가는데, 길가 옆 가장자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장사를 하던 웬, 곰보 투성이 노인네가 민삼을 불러 세웠다.
“이보게..”
그 말에는 기이한 매력이 있는지, 평소에는 그런 장사치 노인이 부르면 무시하고 지나갔을 게 뻔한, 민삼을 멈추게 만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민삼은 평소의 말투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요?”
민삼을 부른 노인은 민삼이 멈춰서서 자신을 바라보자, 잠시 뚫어지게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민삼은 그런 노인의 모습에 기분이 무척이나 상했다. 그때 노인이 민삼의 얼굴 쪽으로 천천히 손을 들더니, 갑자기 손을 흔들었다.
파-앗!
“웃-?”
순간, 눈앞이 환해지면서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갔던 민삼은 정신을 차리자, 눈앞의 노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까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제서야, 노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했다.
“허허, 아니네. 그만 가보시게나..”
“뭐요? 아니.. 이 놈의 영감…”
민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려다가 말았다. 이유는 갑자기 그 노인의 눈빛이 냉랭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눈빛은 섬찟함을 뛰어넘어, 푸른 기광이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아, 날씨가…”
민삼은 쫄은 나머지, 짐짓 딴청을 부리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으흐흐흐.. 이히히히..!”
동천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으아.. 이렇게 좋은 것을..”
침대에서 굴러다니던 동천은 아까의 꿈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해보았다.
<용독경>을 보다가 잠이 든 동천은 이상한 느낌에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동천의 예상과는 달리, 물은 아직 차있지 않았다.
“응? 꿈이 아닌가? 잠이 안 든 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차비를 하려던 동천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무섭지가 않았다. 아직까지는..
“의지(意志). 의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좋아! 덤벼봐라!”
꽝-!
동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문을 부수며, 거센 물길이 쏟아져 들어왔다. 당연히 기고만장(氣高萬丈)해 있던, 동천은 그 물살에 휩쓸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푸, 어푸.. 살.. 으읍!”
물이 입이며, 코며, 닥치는 대로 들어가자, 의지 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상황이 꿈이라고는 하지만, 느끼는 것은 실제와 다를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쾅! 으르르르…
밖에서 무언가가 부딪혔는지, 동천의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개같은 실성 새끼.. 의지 같은 소리하고.. 어욱, 숨 막.. 혀…’
일이 자신의 뜻대로 잘 안 풀리자, 종가진을 욕하던 동천은 아무리 꿈이라고는 하지만, 물 먹고 뒤질 생각이 없었기에 흙탕물 때문에 바로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무조건 앞으로 헤엄쳐 나갔다.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는데, 지속적으로 발악을 하자, 꽤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동천은 마침내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푸-웃! 헥헥.. 흐와… 헉헉.. 우선 숨 좀 돌리자… 후우.. 흐우..”
주위를 둘러보자, 물밑에서 커다란 물체가 자신의 집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그 물체도 동천을 보았는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동천 쪽으로 다가왔다.
“어.. 어? 저 새끼가..? 의.. 의지.. 다. 난.. 할 수 있다.. 커져라.. 커져라..”
도망은 글렀다고 생각한 동천은 겁이 났지만, 겨우겨우 버티면서 자신에게 커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물체는 자꾸만 다가오는데, 동천은 커질 생각을 않 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동천은 그놈이 바로 자신의 앞까지 다가오자, 눈을 꼭! 감고 소릴 질렀다.
“에이, 씨팔! 커져라! 커져!!”
순간 그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들이받는 것이 느껴졌다.
퍽억!
“으-윽!”
강한 충격에 눈을 뜬 동천은 그제서야, 눈앞의 물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몇 번 보았던 것인데, 시커멓고, 몸통은 길며, 얼굴 양쪽에 긴 수염이 달린 물고기..
“메.. 메기이? 어, 씨팔! 이 새끼가 왜…?”
황당한 생각에 메기를 바라보던 동천은 지금 자신의 몸 크기가 메기의 크기와 거의 맞먹을 정도라는 걸 알았다. 종가진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기분이 들떠있던 동천은 눈앞의 메기가 물살을 가르며, 자신에게로 돌진하는 게 보였다.
슈우우욱…
“어? 덤벼어? 그래, 덤벼봐! 이 새끼야! 난, 천하장사다! 덤벼봐!”
퍽! 퍽! 퍼억! 퍽!
간뎅이가 부어버린 동천은 다가오는 메기의 면상을 후려갈긴 후, 뒤집어 놓고, 메기를 밟아 버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천하장사라고 생각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자신의 몸집과 거의 비슷한 메기를 뒤집는 것은 아주 쉬웠다.
“히히히.. 죽어! 죽어! 이히히히!”
동천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었다. 완전히 맛이 간 것이었다.
“끼-끼익.!”
동천의 몰매에 메기는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동천의 몸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동천이 커지자, 주위에 차올랐던 물들도 조금씩 줄어들다가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 개놈의 자식! 너, 잘 만났다. 히히히! 네가 감히 나를 괴롭혀? 죽어봐라, 이 자식아! 죽어, 죽어!”
작아진 메기가 이제는 원래의 크기 정도로 줄어버리자, 더 이상 작아지는 일은 없어졌다. 한참을 밟아대던 동천도 그걸 느꼈는지 납작하게 변해버린 메기를 때리던 걸 멈추었다.
“히히히! 어떠냐? 이놈아! 나는 천재다! 그런데, 네가 감히 나 같은 천재를 괴롭혀? 천재 모독죄(?)가 얼마나 과중한 벌인지 네가 모르는 모양인데? 어디..?”
간혹 가다 꿈틀거리는 메기의 꼬리를 집어든 동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굵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더니, 그 나뭇가지를 메기의 입으로 쳐박아버렸다.
콰-악!
메기는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잠시 부르르르.. 떨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었다.
“어? 이 새끼가 벌써, 뒤졌네? 흐음..?”
메기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너무 쉽게 죽어버리자, 나무 꼬챙이를 위로 세우며, 빙빙 돌리던 동천은 구워 먹으면 그런데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 동천은 얼른 나뭇가지를 긁어 모았다.
“그다음에 필요한 게.. 불이.. 그렇지? 불!”
동천이 자신 있게 불을 외치자, 자신이 모아놓은 나뭇가지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히히히! 햐.. 진짜로 좋은데? 자.. 타올라라.. 타올라라.. 으히히힛!”
동천의 입에선 침이 고였다.
“햐.. 꿈이지만, 정말로 맛있었는데..”
메기를 먹고 나자, 동천의 꿈은 저절로 깨어나 버렸다.
“그런데.. 왜 메기가 내 꿈에 나타난 거였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단 말이야? 왜지? 에이, 알 게 뭐야? 내가 그놈에게 복수를 했으면 된 거지..”
동천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으니까, 얼른 포기해버렸다. 동천 다웠다…
바로, 그 시각 수련은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랄랄라.. 낙지야.. 낙지야.. 내 꿈에 나타나지 말고,, 말고, 동천의 꿈에 나타나려무나.. 나타나려무나.. 알았지? 호호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