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16화
언뜻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신에게 반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면 말을 놓아도 되냐고 동천에게 우회적으로 질문한 것이었다. 동천은 기꺼이 허락해주었고 말이다.
“물론이죠. 제가 동생을 자처했으니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어요? 그러니 서론은 빨리 접어주시고 그 비밀을 먼저 말씀해주세요. 이 동생은 그 비밀이 듣고 싶어서 벌써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고 그 쿵쾅거림이 고막을 때려서 아주 고통스러워 죽겠다구요!”
동천의 재미있는 말솜씨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오자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호호, 그만 좀 웃겨. 난 재미 있는 말에 약하단 말야.”
“그래요? 그렇다면 빨리 말씀해주시는 게 좋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동생은 그 비밀을 들을 때까지 계속 이럴 거거든요. 아이쿠, 귀야! 심장소리가 드디어 천둥소리처럼 커졌구나! 아이고, 동천 죽는다!”
동천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화정이가 옆에서 똑같이 따라했다.
“아이고, 화정이 죽는다!”
철묘심은 재미가 극에 달했는지 배꼽을 부여잡고 까르르 웃어 제쳤다.
“알았어, 호호! 알았으니까 그만 하라고. 지금 강호에 나돌고있는 천마도해들 중에는 모조품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있을 거야. 한 달 전부터 시작한 이 천마도해의 열풍에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여러 장의 지도를 뿌렸다는 것이 확실하기는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그 중에 진품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여기까지는 다 알고있는 사실이지?”
알긴 개뿔이 알겠는가. 3년 동안 형운곡에 갇혀 있다가 오늘에서야 바깥으로 나왔는데 말이다.
그러나 동천이 누구이던가. 한때 황룡세가에서 눈칫밥의 제왕이라 불리고 살았던 고래심줄보다 질긴 인생이 아니었던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있어 숨쉬기 보다 손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이죠. 그런 이야기는 지나가는 개도 다 좔좔 외우고 있을 정도가 아닙니까. 그러니 빨리 좀 본론으로 넘어가자고요. 예?”
그의 재빠른 눈치를 반증하듯 영악하기까지 했던 동천은 길게 생각하는 실수를 벌이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철묘심도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보채기는? 그래 알았어. 그게 그러니까……, 응?”
씽긋 웃고 대답해주려던 철묘심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앞서 동천 일행의 행동에서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그녀가 제일 처음 의문시한 것은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왔기에 이 부근에서 천마도해가 출몰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있는 것일까, 그것이 신경 쓰였다.
“누님, 왜 그러시죠?”
그녀는 퍼득 상념에서 깨어났다.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다만 동생 일행이 용케도 이런 위험한 곳까지 왔다는 것이 놀라워서 잠깐 말을 잇지 못했어. 더군다나 아무 탈 없이 말야.”
일단 무사히 변명을 마친 그녀는 의도적으로 놀란 척하며 손뼉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있었던 거야? 아니아니, 이 부근에는 언제 왔어? 뭐 이상한 점이나 그런 것은 발견하지 못했어? 가령 수상한 사람이라던 지, 수상한 무리들이 지나치는 것 말야.”
나이에 비해 무림경험이 뛰어났던 철묘심은 자신의 진정한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게끔 여러 가지의 질문들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상대가 서너 가지의 질문들을 머리에 담고 있다보면 대게 생각 없이 대답해주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의 나이가 어리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계책에 8할 이상의 성공을 확신했지만 불행히도 동천은 그녀의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동천의 머릿속에는 ‘수상한 사람’ 밖에 들어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봤죠! 이 동생보고 빛나느니 어쩌느니 까대다가……. 헤헤, 말 좀 심하게 해도 그러려니 봐주세요. 제가 그 정도로 그 인간을 못마땅해하거든요. 가만,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그래도 주인님이라고 소연이 몰래 챙겨주었다.
“빛나느니 어쩌느니 까대다가…….”
“아? 그렇게 까대다가 줏대가 없는지 빛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불리해지니까 바쁘다고 빨빨거리며 도망쳤던 수상한 사람을 봤어요. 이름이 뭐더라? 개수불이라고 했나? 여하튼 형운곡 쪽으로 갔는데 아마도 곤욕을 치르고 있을 걸요? 킥킥!”
동천의 웃음과 반대로 대번에 일그러진 철묘심의 얼굴에는 수치심이 감도는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계획이 어긋났기 때문이 아니라, 동천이 말한 그 개수불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으……, 무슨 수불이라는 사람 말야. 좀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겠니?”
다른 사람을 깔아뭉개는데 동천이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신나게 금무량을 씹어댔다.
“당연하죠. 그게 뭐 어렵겠어요? 그러니까 그 인간의 얼굴 윤곽은 뚜렷했고, 청색 계열의 옷에다가 턱수염을 목 젓까지 길렀었어요. 문제는 그게 별로 어울리지도 않더라는 거죠. 지 딴에는 그 턱수염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나봐요. 쯧쯧, 그렇게 라도 살고 싶을까? 그리고요, 자신이 무슨 광검무적이라고 개뻥을 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우리들 모두 까무러치도록 웃어줬죠. 광검무적은 개뿔! 광검몰패(光劍沒敗)나 광검완패(光劍完敗)라고 짓는다면 모를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따위 별호를 지었는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누님도 듣고 보니까 그렇죠? 아하하!”
별호를 듣고서야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확인한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나직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녀는 뒤이어 물었다.
“곤욕을 치르고 있을 거라니?”
동천은 철묘심의 표정이 썩 좋은 듯 보이지 않아 의아했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그냥 넘어갔다. 그 대단하다던 눈칫밥도 가끔 놓치는 경우가 있나보다.
“그게 말이죠. 형운곡에 마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은 들으셨어요?”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그녀가 편안하게 대꾸했다.
“그래,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기인이 있다는 것쯤은 소문을 들어서 익히 알고있어.”
“맞아요, 맞아! 그 마녀는 진짜로 있죠. 그런데 그 마녀의 손속이 워낙에 매정한지라 걸리면 봐주는 것이 없죠. 아마도 지금쯤 그 개수불은 엄청 곤욕을 치르고있을 거예요. 킥킥, 무슨 이상한 실험용 재료로 쓰이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걸요?”
‘멍청한 아버지! 내가 공 백부를 찾아올 때까지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버지의 경솔함을 나무란 그녀는 조급해지는 마음과는 달리 침착하게 물었다.
“동생, 그 마녀가 그렇게 강해?”
동천은 계속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자 다소 거만해진 투로 말했다.
“음, 강한 것은 둘째치고 곡의 입구에 진법이 가로막고 있는지라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죠. 우리와 헤어진 시간대로 보아 강행군을 했다면 지금쯤 틀림없이 잡혀있을 게 분명해요. 헹! 쌤통이다. 거기서 몇 년을 썩어보라지? 그 반딧불 똥만큼의 빛남도 사라져버릴 테니까. 아참, 천마도해의 비밀은 안 가르쳐 줄 겁니까?”
심각해진 철묘심은 천마도해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위험에 처한 마당인데 천마도해고 뭐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는 쏜살같이 자리를 벗어나며 동천에게 말했다.
“미안해, 동생.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비밀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논하도록 하고, 이 근처에서는 가능한 빨리 떠나도록 해. 알았지? 그럼 잘 가!”
황당해진 동천은 점이 되어 가는 철묘심에게 소리쳤다.
“어어? 이봐요, 누님! 그런 게 어디 있어! 이씨, 지금 장난 하냐? 야! 야, 이년아!”
화를 내는 동천의 등뒤에서 화정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가! 안녕! 안녕!”
퍽!
“안녕은 뭐가 안녕이야, 이년아! 가뜩이나 열 받았는데 너까지 속 긁어 놀래?”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찬 동천은 씩씩거리며 끓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하다가 만만한 화정이를 몇 번 더 걷어찬 다음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런 주인님을 말릴 자신이 없었던 소연은 자신에게 도망 와서 징징 짜는 화정이를 그저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큼은 화정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이다.
“에이, 짜증나! 무엇들 해! 안가?”
도연이 대답했다.
“가긴 가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철 소저의 말씀대로 이 산을 가로질러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원래대로 계속 가시겠습니까.”
동천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철 소저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아참, 내가 재미있는 농담 하나 해줄까?”
도연은 이 상황에서 왜 농담이 튀어나오는지 의아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달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경청하겠습니다.”
“좋아좋아. 봄이 되어도 놀고있는 농부가 있었어. 그러자 농부의 행실이 걱정된 친구가 찾아와 하는 말이 ‘이보게 철이 철이니 만큼 묘나 심으러 가세.’ 라고 말을 했는데 깨어보니까 꿈이더라는 거야. 그로부터 며칠 후 아내가 임신을 했으니 그 꿈이 바로 태몽이라! 달이 차고 10개월만에 아이를 낳으니 그게 바로 철묘심이네? 농부는 딸년을 낳고 상심했지만 그래도 이름은 지어줘야 했어. 그리고 마침내 술 처먹고 고심하다 그 이름을 지었으니, 바로 ‘묘나 심으러 가세’ 를 줄인 묘심이었던 거야. 큭큭, 재밌지! 재밌지? 이히히히!”
“…….”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는 가운데 소연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기, 주인님. 그건 묘가 아니라 모인데요. 왜 있잖아요. 비 온 뒤에 모자리를 봐서 심는… 꺄악!”
동천이 그녀의 머리를 때렸던 것이다. 인정사정 없이 소연의 머리를 후려친 동천은 의외로 조용조용 말했다.
“소연아, 이 몸이 묘면 묘지 어느 안전이라고 가르치려드는 게냐. 자, 따라하거라! 묘!”
소연은 눈물을 머금고 따라했다.
“묘, 묘오.”
“으음, 좋구나! 자, 도연 너도 따라해 보거라! 묘!”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었던 도연은 바로 따라했다.
“묘.”
동천은 어느 때보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심심하면 개기는 인간이 자신의 말을 듣자 힘겨웠던 만큼 만족감이 드높았던 것이다.
“하하,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역시 이 몸의 제일 수하답다! 자, 가자!”
그때 화정이가 다가왔다.
“동천, 나는? 나도 할래! 묘! 묘! 묘!”
“확! 쌔려버릴라! 저리 안가?”
“히잉, 나만 갖고 그래.”
동천에게 찍힌 화정이는 당분간 귀여움을 받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이 몸이 말씀했어. ‘이 괘씸한 폐병자식아! 감히 죄 없는 서고 주인을 죽이다니! 내 암흑마교 약왕전 소문주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처단하리라!’ 라고 말야.”
“그랬더니요?”
소연이 착하게도 때맞춰 물어오자 신이 난 동천이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랬더니 이 주제도 모르는 폐병자식이 하는 말이 ‘나에게 반항하는 너는 죽어 마땅하다!’ 라고 그러는 거야. 분노의 화신이 되어버린 이 몸은 사부님께 전수 받은 신법을 사용해서 녀석의 등허리에 철권을 한방 먹여줬지. 그런데 더럽게도 약한 놈이었는지 ‘켁?’ 하고, 피를 토하며 뒈져버리지 뭐냐? 하하, 악인의 종말은 다 그런 거라구!”
제 흉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있는 동천은 쓸데없이 발동된 똥고집 때문에 철묘심이 가르쳐준 마을 쪽이 아닌, 원래 목적했던 마을을 향해 가고있는 중이었다. 그는 떠들어대는 것도 귀찮아지는지 가끔가다 ‘도대체 이놈의 마을은 언제 나오는 거야?’ 라며 짜증을 냈지만 어렸을 때에 비하면 짜증을 내는 횟수가 현저히 떨어져있었다. 그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당사자가 바로 소연이었는데 주인님의 짜증 횟수가 얼마 없자 도리어 더욱 불안해지는 이상한 증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저기야?”
주인님의 물음에 시선을 모아 멀리까지 내다본 소연은 드디어 마을이 보이자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예, 주인님. 전에 들린 마을에 비하면 제법 크고요, 물자도 생각보다 많이 드나드는 편이라 음식도 입에 맞으실 거예요. 저 마을사람 중 한 사람이 타지에서 운송업을 하고있어서 일부러 신경 써주고 있다나 봐요.”
“호오? 많이 아는데? 짜식, 역시 믿을 만해.”
기분이 풀린 동천은 기특한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소연은 수줍은 듯 혀를 살짝 내밀며 대답했다.
“에헷, 뭘 그런 걸 가지고…….”
소연의 머리에서 손을 뗀 동천은 그 손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본 뒤 수줍어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야, 너 머리 감았냐?”
소연은 엉뚱하다 못해 실없는 질문에 창피함이 치솟았다.
“너무하세요. 그건 실례라고요!”
볼멘 소리였지만 동천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실례고 지랄이고 머리 감았냐니까?”
그녀는 주인님의 성격상 가르쳐 줄 때까지 물어볼 것 같자 하는 수 없이 대답해주었다. 사실 켕기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 감았어요. 창피하니까 그만하세요.”
동천은 생각 외로 별다른 의도가 없었는지 한번 더 냄새를 맡아본 후 말했다.
“그래? 흐음, 어쩐지 은은한 향기가 나더라. 난 안 감아서 그냥 물어본 거니까 신경 쓸 거 없어. 하지만 정히 신경을 쓰겠다면 이 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도 무방해. 아마 비단도 울고 갈 정도의 부드러움에 감탄을 금치 못할걸?”
동천이 정말로 머리를 들이밀자 소연은 깜짝 놀랐다.
“예?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는 전혀 신경 쓰고있지 않아요. 정말이에요, 주인님.”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자 동천이 웃어댔다.
“하하, 민감하게 반응하긴……. 그냥 해 본 소리니까 가기나 하자고. 하하하!”
얼굴이 낯뜨거워진 소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주인님을 뒤따랐다. 다른 누가 보고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낯뜨거움은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마을에 들어선 그녀는 확실히 철묘심의 경고대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보기 힘들었던 무사들이 이 마을 사람들인 양 삼삼오오 짝지어 거리를 활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천 일행을 지나쳐가며 열이면 열 사람 모두 화정이와 소연 쪽을 힐끔거렸는데 아마도 그녀들의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리라.
“저런 잡것들을 봤나. 부모님이 길가는 여자나 힐끔거리라고 낳아준 것도 아닐 텐데 왜 쓸데없이 얘들을 쳐다보고 지랄인 거지?”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동천이 멀어져 가는 무사들의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자 도연이 알아서 나섰다.
“주군, 소인배들의 시선에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하자 동천이 기분을 풀었다.
“소인배? 흐응, 그건 그래. 맞는 말이야. 자고로 사람은 대인과 소인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고 옛 성현이 말씀하셨지. 이 몸 같은 대인은 마음이 넓고 자비로와 능히 만사에 모범이나, 소인배들은 생각이 좁고 이기심에 가득 찼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할까. 이는 나아가 무림 전체의 슬픔이니 우리 모두 아까 그 인간들을 용서해주기로 하자꾸나.”
“예, 주인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동천의 말이 자못 거창하게 끝나긴 했지만 이렇게 끝낸 것이 다행이었기에 모두들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화정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말이다.
“주인님, 요 앞에 가면 작은 주점(酒店)이 있는데 우선 그리로 갈까요?”
소연의 권유에 동천은 생각할 것도 없이 허락했다.
“네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마침 출출하니 가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발빠르게 앞장선 소연은 돌연 주춤했다. 얼마 가지도 않았을 때 왼쪽 집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피했다.
콰앙!
곧이어 집의 문짝이 부서지며 젊은 청년이 나동그라졌다.
“클클, 우리가 그렇게 잘 대해줬거늘 어찌하여 대접이 이리도 소홀한 것이냐.”
동천 일행을 비롯한 몇몇 무인들은 문 안쪽에서부터 부서진 잔해들을 걷어차며 걸어나오는 두 노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인상은 누가 봐도 음침하고 험악한 것이 ‘우린 나쁜 놈들이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 잘못하고 있는지는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었지만 섣불리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도연이었지만 주군의 명령 없이 움직일 그가 아니었고, 동천의 경우라면 정의라는 단어와 별개의 인물이었기에 지켜보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크윽! 도, 도대체 무얼 잘 대해줬다는 것이오!”
쓰러진 청년이 겨우 고개를 들고 항의하자 검은 옷에 키가 동천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하는 늙은이가 이죽거리며 다가왔다.
“숙박비와 뭇 무림인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았느냐.”
노인의 말이 다소 부풀려졌었는지 청년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숙박비? 안전? 웃기지 마시오! 당신들은 고작 두 푼에 내 집을 점거하고, 내 안전이 아닌 오로지 당신들에게 원수를 갚으러 찾아온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소!”
악에 받친 청년의 말에 동천의 눈이 약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