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36화
‘캬아! 끝내준다!’
스스로 만족한 동천은 하마터면 그 뒤로 이어진 빨간 책의 내용을 읊을 뻔했다. 누구 옷을 벗기네 어쩌네 그러한 내용이었기에 큰일날 뻔했던 것이다.
짝짝짝짝! 미호가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이번만큼은 동천을 존중하는 뜻으로 그의 마음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속마음을 읽었었다고 해도 그녀라면 웃으면서 넘어 가줬을 테지만.
“동천, 너 정말 다방면에서 능력이 뛰어나구나?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직접 새로운 면을 보니까 더욱 존경스럽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야.”
절로 상체가 떠억 벌어진 동천은 다소 장난스럽게 자신을 추켜세웠다.
“에헴! 내가 이 정도라네!”
재미있었던지 미호가 고른 치열이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호호, 너다운 대답이었어. 여하튼, 받고만 있는 것은 실례니까 보답차원에서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
뜻밖의 소리에 동천이 물었다.
“어, 네가? 잘 할 수 있겠어?”
“그러엄, 기대를 안 하는 얼굴인데 막상 듣고 나의 아름다운 노래솜씨에 놀라지나 말라고.”
자신 있게 장담한 그녀는 동천에게서 약간 떨어진 후에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음률에 맞추어 가볍게 거닐기 시작했다. 산뜻한 움직임과 이어지는 콧노래는 절로 흥겨움에 물들었고, 마침내 그녀의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르자 곱고 슬픈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녀의 매혹적인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아, 나의 동천은 생각이 단순하다네.
그러나 그런 점이 나는 좋다네.
그 어린 날의 순수함이 나를 기쁘게 했듯,
부디 이런 동천이 변하지 않기를…….
아아, 나의 동천은 너무도 욕심쟁이라네.
그러나 그런 점이 나는 좋다네.
그 어린 날의 순수함이 나를 기쁘게 했듯,
부디 이런 동천이 변하지 않기를…….
미호의 콧노래가 노랫소리로 변모하자 동천이 눈을 들어 그녀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며시 미소지은 그녀는 노래에 취한 듯 보였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동천 또한 취한 듯이 바라보았다. 알싸한 이름 모를 향기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젖은 듯한 그녀의 눈매가 살며시 감겨들었다.
아아, 나의 동천은 마음이 따듯하다네.
그래서 그런 점이 나는 좋다네.
그 어린 날의 수줍음이 나를 기쁘게 했듯,
부디 이런 동천이 변하지 않기를…….
아아, 나의 동천은 정열을 품고있다네.
그래서 그런 점이 나는 좋다네.
그 어린 날의 수줍음이 나를 기쁘게 했듯,
부디 이런 동천이 변하지 않기를…….
그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동천으로 남아있기를…….
동천은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그녀의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선명했던 목소리는 어느새 작아져만 갔고, 또렷했던 그녀의 이목구비가 어느새 흐릿해져만 간다.
주르륵!
“어어…….”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꽃잎 위를 사뿐사뿐 거닐 듯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간다. 뿌옇게 맺힌 눈물을 닦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동천은 어느새 홀로 남겨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작은 소로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그의 기억은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