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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37화


기로(岐路)의 남자 1

“훠이! 물러갈 지어다!”

동천은 이틀 전부터 자기 전에 부적을 태우는 습관을 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분명 누군가를 지켜주려다 세 명의 괴한들과 싸웠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지도 못하는 산 속에서 처량 맞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주인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요.”

소연이 두 번째 부적을 태우고 방안을 나돌아다니는 동천을 말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꾸만 부적을 태워서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는 주인님 때문에 그녀 자신이 불안해서 말리는 것이었다. 신비한 사내의 안내를 받아 황룡산으로 들어간 그들은 앞으로만 가면 동천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 사내의 말대로 ‘귀, 귀신이다!’ 라고 소리치며 내달려오는 동천과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떽! 니들이 귀신을 알아? 으으, 난 만나봤다고. 비록 생각은 안 나지만 그것이 바로 귀신을 만났었다는 단적인 증거야!”

동천은 가만히 있는 화정이까지 싸잡아 무식한 것들 취급을 했다. 그는 자신이 귀신이라 치부한 존재와 도연과 소연, 화정이를 같이 데려온 사내가 같은 부류임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걔들은 기억이 멀쩡하고 자신만 남는 기억이 거의 없자, 공연히 심통이 나고 그것 때문에 더욱 자신만 귀신에 쓰인 것이 아닐까 앞서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그만하세요. 공연히 저까지 무서워지잖아요.”

동천은 소연이 무서워하던 말던 상관없이 세 번째 부적을 태워 방안에 던졌다.

“훠이! 물렀거라! 물러갈 지어다!”

“냐옹.”

자그마한 고양이 소리가 들리고 하얗다 못해 시린 빛깔을 내뿜고있는 아이 주먹만한 고양이가 침대 위에 앉아있는 화정이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화정이가 양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잡아채려 하자 그것은 재빨리 앞으로 뛰어내렸다. 바로 호연화였다. 동천은 네 번째 부적을 태우려다 연화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불씨로 자신의 손을 지졌다.

“으아아악! 흐아, 흐아! 봐! 이것이 바로 귀신에 쓰였다는 증거야! 아아, 사람이 어찌 제 스스로 살을 지질 수 있겠어? 크윽! 화정아, 이 주인님이 꼼짝없이 죽게 생겼구나. 어쩌면 좋겠니?”

화정이는 요리조리 도망치는 연화를 잡아가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걱정하지마 동천. 안 죽으면 돼.”

딱!

“이년아! 어디, 도살장의 소나 돼지들이 난 안 죽어. 안 죽으면 돼. 이 몇 마디로 도살되지 않는다든?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아봐! 응?”

강시는 기본적으로 주인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갑자기 돌아버리는 실패작들을 제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불시에 얻어맞은 화정이는 소위 머리가 빠개질 정도의 충격을 받고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히잉! 히잉! 아파.”

“맞을 짓을 했으니까 당연한 거야.”

돌아서는 그의 허리를 타고 호연화가 머리까지 사뿐히 올라섰다.

“냐옹.”

동천은 사람머리 위에 올라타길 더럽게 좋아하는 새끼 설산묘화를 가볍게 쥐고 소연에게 건네주었다.

“야, 얘 좀 잘 간수해. 새깽이를 밟았다가 찍 소리도 못하고 죽으면 니가 책임질 거야? 쓰읍! 가뜩이나 생각할 것도 많은데 귀찮게 돌아다니게 만들고 있어.”

소연은 힘없는 자의 서러움을 만끽하며 호연화를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너무해. 내가 데려온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데려온 것처럼 말씀하시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것을. 여하튼 그녀는 또 다른 추가적인 명령이 떨어질까 봐 재빨리 대답했다.

“네, 주인님.”

동천이 호연화를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그의 품속에서였다. 처음에는 품속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후려쳐 죽일 뻔했다. 호연화가 스스로 빠져나와서 살았던 것이지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소연은 생각했다. 녀석은 태어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잘 걷고 잘 뛰는 엄청난 성장발육을 보여주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새끼에게 먹일 젖을 어떻게 구하나 고심하는 와중에(소연이 담당했다) 곧바로 아무 음식물이나 섭취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 자신의 인복이라고 떠들어댄 동천은 호연화가 배설을 하자 소연에게 맡기고 멀찍이 떨어졌다고 한다.

“근데 이놈의 자식은 굼벵이를 삶아먹었나. 뭐가 이렇게도 늦어?”

도연은 지금 제갈세가로 떠난 상태였다. 모든 정황을 살펴보건대 소연과 만났던 제갈일위가 장 할아버지와 문정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지만 만일을 위해 도연을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소연은 그런 주인님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혼자 떠들게 놔둬서 득 될 것이 하나 없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주인님. 아시다시피 거기에서 여기까지의 왕복이 적어도 보름은 걸리는 데,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 무슨 재주로 걔가 벌써 오겠어요. 이건 제아무리 도연이라 한들 불가능한 일이니까,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이 기회에 중한 상처를 요양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동천은 듣기 좋은 소리에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하하, 네가 간만에 옳은 소리를 하였구나! 하긴, 그놈이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음! 그렇다면 이 몸은 중한 상처나 요양해야겠구나.”

동천이 말하는 중한 상처란 옆구리에 남아있는 상처딱지였다. 사실 다른 모든 곳들을 비롯하여 그곳까지 다 아문 상태였기에 당장에 딱지를 떼어내도 무방했지만 ‘이것이 바로 영광의 상처라오.’ 라며 자랑이라도 하려는 지 전혀 그곳에는 손을 대고있지 않았다. 되려 상처딱지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소연으로서는 그 이야기만 꺼내면 주인님이 진정했기에 가능한 평생토록 남아있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아쉽게도 오늘내일 하는 것이라서 불가능할 듯 보인다.

“후우, 후우.”

날마다 하는 것을 뭐 대단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길게 두어 번 심호흡을 한 동천은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하나의 심법만 운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은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오래 걸렸지만 시작하는 것을 귀찮아해서 그렇지 일단 발동이 걸리면 전신이 편안해지고 힘이 넘쳐흘렀기에 동천도 이때만큼은 꾸준한 진기유통을 시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일과를 끝마친 그는 옷자락 안쪽을 살며시 들여다 본 다음 상처딱지가 아직까지도 그대로이자 대단히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랑!

“응? 뭐지?”

겹쳐진 옷 사이에 끼여있었던 듯 빛 바랜 양피지가 그의 헤쳐진 옷 속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바닥에 떨어지려는 찰나 그것을 집어든 동천은 기이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요사이 이러한 느낌은 부분적인 기억이 되살아 날 때만 느껴지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만있자. 이 야리꾸리한 느낌이 말이지…….”

거의 모든 기억이 사라져있는 동천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단편적인 부분들은 생각이 났다. 그나마 그것도 기억이 되살아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호연화를 처음 꺼내보았을 때. 역심무극결을 운용했을 때. 그리고 지금 빛 바랜 양피지를 꺼내들었을 때.

“이번 것은 기억이 날 듯 하면서도 안 나네? 흐음, 이게 뭐였지? 뭐였드… 아! 맞다! 오련 측 사람의 죽은 몸에서 꺼낸 거라고 했지? 근데 어째서 이게 나한테 있을까? 으음, 음음! 헉? 호, 혹시! 귀, 귀신이 준 거 아냐?”

요사이 이런 식이다.

“주인님, 그만하세요. 저 진짜로 무섭단 말예요.”

화정이와 꼭 달라붙은 소연이 제발 자제를 요청했지만 동천은 도리어 버럭 화를 냈다.

“가만히 좀 있어봐! 무서우면 당사자인 내가 더 무섭지 니가 더 무섭겠냐? 확! 치마를 까 내리고 볼기를 쳐줄 까보다.”

귀신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가 더 무서웠던 듯 소연은 얼른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짓궂게 소연을 놀려댔을 테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동천은 양피지 안에 시구(詩句)와 같은 글씨가 적혀져 있자 안에 쓰여진 내용을 천천히 소리내어 읽었다.

“그대여,

고통받고 있는가.

그대여,

힘을 원하는가.

나를 찾아라.

그대에게 무적(無敵)의 힘을 주고,

아무도 그대를 얕보지 못하게 하며,

다시는 그대를 멸시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이 그대를 우러러보게 해주겠노라.

나를 찾아라.

나를 찾는 것은 바로 그대의 몫이다.

그대에게 행운(幸運)이 있기를…….”

나름대로 제법 무게를 잡고 읽어 내려간 동천은 그 아래에 무언가 깨알같은 글씨들이 또 보이자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글씨들은 어찌나 작았던지 안력을 돋구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게 뭐지? 에에, 기운이 승하여 오름세를 기억하되 근본적으로 내재되어있는……. 헉? 허어어어억? 이, 이것은!”

놀랍게도 그 양피지의 마지막 하단에는 두 줄의 무공구결이 쓰여져 있었다. 이것 한 장의 내용 가지고는 활용할 수 없었지만 운 좋게도 무공구결의 첫 번째 구절이었던지 무공의 이름까지 적혀있었다. 그리고 동천이 그토록 놀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럴 수가! **천마도법(天魔刀法)**이라고?”

동천이 괜히 놀란 것이 아니었다. 천마도법이라니! 비록 일부분이었으나 그 상고시대의 천마의 무공이 적혀있다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천마도법이라면……우풉!”

소연도 배우고 들은 게 있는 이상 아는 척 하고 나섰다. 그러나 급하게 입을 막아버린 동천 때문에 하고싶은 말을 절반도 채 꺼낼 수 없었다.

“쉬잇―! 조용히 해! 만약, 이것에 대해 소문이 퍼져나가 봐! 우린 쥐도 새도 모르게 들개 밥이 될 수도 있단 말야!”

‘주, 주인님의 목소리가 더 커요!’

말은 하고 싶었지만 틀어막는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전혀 어찌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읍! 읍읍! 으으읍!”

그녀가 답답한 듯 신음소리를 내자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세게 막았다는 것을 깨달은 동천이 슬쩍 손을 내렸다.

“푸하! 헉헉, 주인님. 주인님의 목소리가 더 컸어요.”

“에? 그랬냐? 뭐 어쨌든! 이제부터 너는 못 보고 못 들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돼. 알았어? 아니아니,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려. 그래야 오래 살 수 있으니까. 잘 알아들었지?”

이 비밀의 중요성을 잘 인지한 소연은 군말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화정이는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그동안에 갈고 닦았던 나름대로의 눈칫밥으로 ‘화정이도 기억에서 지웠어!’ 라고 자진납세(?)하여 간만에 동천의 칭찬을 들었다.


“으아, 심심해.”

그로부터 십여 일이 지났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방세만 축내며 객점에 머물고 있자니 온몸에 좀이 다 쑤실 지경이었다.

“심심해. 심심해. 세상은 요지경.”

부적을 태우는 짓도 마침내 한계에 다 달았던지 닷새 째 되는 날 그만두었다. 더불어 그는 부적을 샀던 무당 집을 찾아가서 효과가 없다며 풍비박산을 낸 뒤 부적 값을 받아오는 극한의 싸가지를 보여주었다. 감히 그 짓거리를 말릴 수 없었던 소연은 분명 주인님이 되받아오는 것까지 계산하고 부적을 샀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고통 없는 세상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돈 안 준다고 버티다가 된통 얻어맞은 무당을 훔쳐보며 그저 빨리 낫기를 빌어주었을 따름이다. 어쨌든 과일을 깎던 그녀는 주인님이 심심해하자 한마디 건넸다.

“날씨도 좋은데 나가서 햇빛이나 쐬다 올까요?”

동천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가 늙은 개냐? 햇볕이나 쐬다오게?”

‘아니면 말고요.’

요즘 들어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한 소연은 차마 개기지는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에 습관을 들이는 듯했다. 그리고 상대에게 피해만 안가면 그만이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알 턱도 없지만.

“아? 그럼 나가서 별식이나 먹을까요?”

먹을 것 이야기가 나오자 그나마 동천이 반응했다.

“별식? 그게 뭔데?”

“그렇게 별식은 아니고요. 너구리를 잡아서 특수양념으로 구운 너구리 요리래요.”

“……니 대가리엔 그게 별식이 아니냐?”

어처구니 없어하는 동천에게 소연이 얼굴을 붉혔다.

“그, 그런가? 하지만 예전에 주인님께서 약왕전에 계실 때 드셨던 것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라서……. 헤헤.”

동천은 다른 무엇보다 그때의 기준으로 살고있는 눈앞의 소연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언제 적 이야기인데, 마치 어제까지 약왕전에 있었던 사람처럼 행동한단 말인가.

‘흠! 역시, 얘는 특이한 종자야. 아직 연구해 볼 가치가 남아있어.’

그는 생각하는 와중에도 군침이 고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 너구리 고기는 어디에서 팔지?”

소연은 가로막힌 왼쪽 벽으로 손가락을 꼬불꼬불 움직였다.

“저쪽으로 나가서 큰길을 돌아 창원제일루라는 곳의 맞은편에서 판대요. 여기 주인아저씨 말로는 몇 년 전에 새로 생겼다고 했는데……, 무슨 객점이라고 했더라?”

일단 소재지를 파악한 동천은 더 들을 것도 없이 앞장섰다.

“어디에 있다는 것만 알면 됐지 이름까지 알아서 뭐하게? 빨리빨리 돈이나 챙겨들고 나와.”

“예, 주인님.”

돈이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 몸만 따라가면 되었다. 그녀는 화정이와 함께 주인님의 뒤를 따랐다. 앞선 동천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지 연신 입맛을 다셨다.

“꿀꺽, 안 그래도 몸이 허했는데 잘됐다. 간만에 몸보신 좀 해보자.”

그는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봐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창원제일루라면 그가 발이 닳도록 지나쳤던 곳이기에 그곳만큼은 잘 찾아갈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백 번에 한번 성공할까 말까한 확률에서 동천이 당첨되었다.

“심―봤다아아!”

흥분한 동천이 대놓고 떠들어대자 심봤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주위사람들은 곧 아님을 깨닫고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창원제일루 앞에 멈춰 선 동천은 맞은 편에 **미미객점(美味客店)**이라는 간판을 보게되자 자신도 모르게 침을 뱉었다.

“퉤에이씨이! 하필이면 미미가 뭐야, 미미가!”

욕설과 침 뱉는 것을 절묘하게 배합한 동천은 대번에 들어갈 마음이 뚝 떨어졌다. 비록 그 미미가 아니더라도 불리는 발음은 같았으니 기분이 잡친 것이다. 그러자 앞서 심봤다 때문에 쪽팔려 물러나 있던 소연이 다가와 물었다.

“왜요, 주인님? 무언가 마음에 안 드세요?”

“당연하지! 이 몸이 그년 때문에 그 어린 날 자라나는 싹이 밟혔는데, 너는 내 시녀로서 분통이 터지지도 않냐?”

알아먹게 설명을 해야지 분통이고 뭐고 터트릴 것이 아닌가. 그녀는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진정하시고요.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그으…년이 누구이며 그으…년과 저 간판의 이름과 어떠한 상관이 있는지 말예요. 그리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렇게 화를 내시면 상처에 안 좋아요.”

상처 이야기가 나오자 효과는 확실했다.

“아차차! 후우, 후! 그러니까 이 몸의 어릴 적이었어. 황룡세가황룡미미란 되바라진 년이 있었는데 변태기질이 있는지 심심하면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구타했지. 그게 누구냐고? 바로 나야. 그래서 그 아이는 너무도 일찍 세상을 알았지. 그게 누구냐고? 누구 긴 누구야, 바로 나라니까? 아아, 세상에 참된 인재로 자라나고 싶었거늘……. 쩝, 그렇다고 지금 이 몸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는 마라.”

약간의 횡설수설을 듣고 보니까 언젠가 한번 정도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아아, 그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분은 개뿔! 그년이 어떻게 그분이 되냐?”

동천이 소연에게 한소리 하자 기회를 포착한 화정이가 나섰다.

“동천, 동천. 나는 그분이라고 안 했어. 그년이라고 하는 거지? 그치?”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화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이구, 우리 화정이가 아주 똑똑하네? 그래그래. 그 계집애는 그년이라고 불려도 싸. 아암∼, 그렇고 말고!”

주인님이 하는 짓으로 보아 아무래도 미미객점은 그른 것 같았다. 소연은 하는 수 없이 주인님의 의견을 물어보아야 했다.

“주인님, 그럼 어떻게 할까요? 갑작스레 이렇게 되어서 다른 곳을 지정하지 못했는데.”

동천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고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훗, 사람은 자고로 추억의 장소를 찾는 법이지.”

창원제일루를 본 소연이 물었다.

“저기로 가자고요?”

동천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저기를 가리킨 내 손가락이 오른쪽 방향으로 삐었냐? 아니면 왼쪽?”

“아, 아뇨. 그냥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물어본 거예요.”

“까불고 있어.”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한 동천은 아직까지도 망하지 않고 건재한 창원제일루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그들을 제일 처음에 맞이한 사람은 어느덧 서른 두 살로 접어든 **용삼(龍蔘)**이었다. 원래 이런 일은 아래의 신참이나 중간 녀석을 시켜도 되었지만 그의 말솜씨가 워낙에 탁월한지라 돈 벌레인 **우왕(雨枉)**이 그대로 놔두었던 듯 싶었다. 대번에 용삼을 알아본 동천은 약간 놀란 눈치를 보였다.

‘어라? 이 자식이 날아갔던 앞니를 다시 원상복구 시켰네?’

용삼은 들어오던 손님이 주춤하자 한창 잘나가고 있는 미미객점으로 옮기려는 줄 알고 재빨리 나가는 입구를 선점했다.

“자자, 선남선녀님들. 들어들 가시지요. 저희 창원제일루는 맛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서 겨우 몇 년 전에 생겨난 저기 미미객점과는 깊은 맛에서부터 질적으로 틀린 아주 우수한 주루입니다. 아마도 한 입 드셔보시면 아! 잘 왔구나, 싶으실 겁니다.”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난 동천이 짐짓 부잣집 도련님 행세를 했다.

“그런가? 내 아랫것들을 데리고 이곳을 유람하다가 소문이 무성하여(개차반이라고) 한번 와 봤는데, 그 진위는 식사를 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나겠지. 안내하게.”

용삼은 제법 짭짤하게 들어올 것 같자 기분이 좋아 가볍게 그들을 안내했다. 그는 동천에게 물었다.

“손님. 따로 귀빈실에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층이나 이층에서 드시겠습니까?”

솔직히 귀빈실이라는 곳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러나 탁 트이고 높은 곳을 선호하는 동천이었기에 잠시 갈등을 하다 결국엔 이층으로 정했다. 마침 딱 한자리 남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게 된 그들은 제일 잘 보이는 곳 왼쪽으로부터 동천 순으로 앉았다.

“손님,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동천은 아무래도 처음에 먹기로 했던 그것이 여운에 남는지 슬쩍 운을 띄웠다.

“그게 말일세. 여기 어딘가에 너구리 고기를 잘 한다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자네 혹시 그 음식을 아는가?”

동천은 용삼이 움찔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일에 이력이 났는지 상대는 용케도 태연했다. 이유인 즉 이랬다.

‘휘유, 다행이다. 바로 엊그제 미미객점의 부 주방장을 빼내왔는데 이렇게 여기에서 찾는 손님이 벌써 수십 명 째이니 말이다.’

그렇다. 하도 맛있다는 소문이 퍼져 미미객점이 흥하고 그에 반해 창원제일루가 쇠하자 우왕이 독한 마음을 먹고 거금을 들여 그곳의 부 주방장을 빼내온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의 주방장과 함께 그 요리를 개발한 장본인이 부 주방장이어서 맛 또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북적이는 미미객점을 기다리다 못해 다소 한가한 이곳으로 손님들이 슬슬 몰리고있는 상황이었다. 여하튼, 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 말씀이십니까? 당연하고 말고요! 저희 주루가 바로 **산달화육(山獺火肉)**의 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꼬들꼬들하고 매콤새콤 야들야들한 맛이 아마도 손님을 환상의 나래로 펼쳐드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시키시겠습니까?”

이곳에도 있을 줄 몰랐던지 동천이 약간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그러한가? 그렇다면 내 그것을 시켜보겠네. 우선 5인분만 가져와 보게나.”

“아이구, 감사합니다. 헌데 약주는 무엇으로…….”

‘새꺄! 지금 내 나이가 몇인데 술이야? 이게 아주 돈 독이 올랐네?’

술을 마셔서 뒤끝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는 동천.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없었던 동천. 그는 맛있는 거 먹고 토하기가 아까워 정중히 거절했다.

“하하, 자네 농이 너무 심하구먼? 내 나이 올해로 열 다섯이거늘, 어찌 술을 입에 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용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뭐 어린놈인 줄도 모르고 권했겠는가? 아니었다. 그는 이런 인간들이 의외로 멋을 부린답시고 술을 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었다. 그는 시치미 뚝 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농이라니요? 저는 이 정도 기품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응당 풍류를 즐기실 줄 알고 권했던 것인 뎁쇼?”

동천은 바로 넘어갔다.

“하긴… 이 몸이 풍류를 즐길 줄 알지. 하하, 자네가 알아서 순한 놈으로 시켜 오게.”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은 용삼이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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