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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38화


“알겠습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용삼은 행여나 다른 음식으로 바꾼다고 할까봐 재빨리 내려갔다.

소연은 손으로 감싸고있던 호연화가 밖으로 비집고 나오자 엉뚱한 곳으로 가지 못하게 잡은 다음 말했다.

“주인님, 술은 왜 시켰어요. 보나마나 아무도 안 마실텐데.”

차마 ‘돈 아깝게.’ 라고 직설적으로는 말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그 아까운 돈을 쓰게 한 장본인이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아. 사내대장부가 어디 술 한잔 못 마셔서야 되겠느냐. 정 못 마시면 싸들고 가서 나중에 도연에게 주면 되는 것이야. 하하하!”

이미 허풍선이가 들어차 있어서 말로 해서는 알아들을 단계가 지난 듯 싶었다.

“동천, 그 술이란 거 남으면 내가 먹어도 돼?”

“아참? 화정이 또한 있었지? 그래그래. 남으면 네가 다 먹거라.”

“와아! 동천 최고!”

둘이 아주 호흡이 척척 맞고 있을 때 용삼이 다른 점소이를 대동하고 술과 음식을 날라 왔다. 그는 뜨거운 사각 돌판 위에 붉게 양념이 되어진 너구리 고기를 올려놓고 그 옆자리에 술 3병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동천이 뭐라고 할까 싶어 재빨리 선수쳤다.

“영웅과 미녀가 세분이니 응당 3병은 드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동천은 또 넘어갔다.

“하하, 자네 사람 볼 줄 아는구만? 놓고 가게.”

“예, 손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치이이이.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가 들리고 동천이 멋들어지게 술잔을 들어올렸다.

“소연아, 한잔 따라봐.”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공손히 술을 따라주었다. 꽤나 고급으로 가져왔던지 우윳빛 감도는 술 줄기가 향긋한 내음을 동반하며 술잔에 부어졌다. 만족한 얼굴로 한잔 들이킨 동천은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으아 써! 뭔 놈의 술이 이따위로 쓴 거야?’

그러나 동천은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았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식탁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크―어! 맛 좋다!(이 용삼 새끼, 아주 죽여버릴라!)”

동천이 태연하게 웃음을 짓자 거기에 넘어간 화정이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소연에게 디밀었다.

“소연, 나도 줘.”

소연은 쓴맛을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먹는 주인님을 잠시 바라보다가 군말 없이 화정이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주인님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끼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제일 윗분인 화정이었기에 한잔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자, 맛있게 마셔.”

“응! 걱정하지마. 동천보다 맛있게 먹을 자신 있어.”

쭈욱 들이킨 화정이는 입에든 것을 술잔에 도로 뱉어낸 뒤 오만상을 찡그리며 소연에게 말했다.

“히잉, 나 써어. 안 먹을래.”

동천은 더럽다는 듯 헛구역질을 했다.

“우웁! 야, 다시 안 마셔? 안 마시면 여기에 있는 술을 다 네 입에 쳐 넣은다?”

그래도 득실 정도는 따질 줄 아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화정이가 다시 마셔버렸다. 그녀는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소연에게 기대어 울먹였다.

“소연, 나 속이 메스꺼워. 나 토할 것 같아.”

소연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다시 좋아질 거야.”

동천은 위로해주기 바쁜 소연에게 술병을 들이댔다.

소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 그거 뭐요?”

동천은 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얼굴을 했다.

“뭐긴 뭐야. 기왕에 시킨 거니까 골고루 한잔씩 마셔야지.”

소연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전 됐어요, 주인님. 술하고는 영 관계가 없어서요.”

동천은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그래서. 그래서 네가 감히 이 몸께서 직접 따라주시는 술을 못 받겠다는 거야?”

난처해진 소연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휴……. 그러면 딱 한잔만 마실게요.”

거부할 처지가 아닌 소연이 양손으로 살며시 술잔을 들어올리자 동천이 굳은 표정을 풀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 받아. 그리고 쭉 마신 다음에 맛있으면 병나발을 불어도 말리지 않을게. 이 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해.”

그녀는 주인님 모르게 야속한 눈빛을 보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어요. 이거 마시고 쓰러진다면 모를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녀는 망설일 것 없이 눈 딱 감고 단숨에 들이마셨다.

소연은 ‘쓰읍!’ 거린 후 말했다.

“아우 써! ……가 아니라.”

동천은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 차 물었다.

“엥? 너 지금 안 쓰다고 했냐?”

동천 못지 않게 눈을 동그랗게 뜬 소연은 그녀 자신도 믿기 힘들다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 그게요. 예에.”

거짓말을 못하는 소연이 사실대로 말하자 동천이 표정을 바꾸어 흥미로워했다.

“오호? 네가 알고 보니 숨은 주당이었구나? 짜식이 술이 고팠으면 진작에 고팠다고 했어야지. 자, 한잔 더 마셔.”

“아뇨, 아뇨! 쓰지는 않지만 저는 한잔이면 되요. 정말이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째 그녀의 눈길이 동천의 술병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아울러 그녀도 모르게 입맛까지 다시게 되자 발뺌을 할래야 발뺌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 그럼 딱 한잔만 더.”

딱 한잔이 딱 두 잔이 되고, 딱 두 잔이 딱 세 잔이 되는 진리를 그녀는 아직 모르나보다.

“하하, 좋았어! 우리 소연이의 숨겨진 진면목이 나오는데?”

동천으로서는 제일 못 마실 것 같았던 소연이 꼴딱꼴딱 잘도 집어삼키자 그저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에 계속 따라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술 더가져와!”

흥을 깨는 듯한 술 취한 목소리가 갑자기 건너 건너편의 자리에서 들려왔다.

동천이 기분 잡치는 얼굴로 돌아보자 서른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술을 요구하고 있었다.

동천은 뒤이어 허겁지겁 올라온 어린 점소이가 혼자 씨부렁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에그, 또 지랄이네.”

“흑흑, 내 인생 돌리도―.”

사내는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지 식탁을 쾅쾅 쳐가며 고개를 푹 처박고 있었는데, 언뜻 보이는 윤곽이 동천의 눈에 익었다.

‘얼레? 저 인간이 누구인데 이렇게 낯이 익지?’

어린 점소이는 그 사내를 흔들며 말을 시켰다.

“강 표두님! 여기에서 이러시지 마시고 어서 집에 들어가세요! 집에 여우 같은 부인께서 기다리시잖아요!”

강진구는 풀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헤! 여우? 지랄하고있네. 끄윽, 꺼억!”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동천은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강진구 아저씨!”

그렇다. 그는 바로 소싯적 동천과 가장 뜻이 맞았던 강진구였다. 헌데, 그가 왜 이렇게 망가질 정도로 청승맞게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 동천이 물었다.

“이보게, 점소이.”

그가 부르자 때마침 강진구를 아는 척 놀라했던 동천을 보았기에 점소이가 재빨리 다가왔다.

“말씀만 하십시오, 손님.”

점소이가 허리를 굽실거렸다. 동천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음, 그래. 자네는 예의가 참으로 밝구먼. 내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무엇인가를 예감한 점소이는 바로 대답했다.

“예, 손님. 물어만 보신다면 소인이 아는 모든 것을 아주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요.”

“하하, 자네의 말만 들어도 듬직하군. 그럼 묻겠네. 저분이 왜 저렇게 술에 절어있는 것인가?”

어린 점소이는 마치 노리고 있었다는 듯 동천의 물음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절거렸다.

“아, 말도 마십시오. 예전에 말단 표사에서 십 수 년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운 좋게도 표두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는데, 바른 생활 사나이 조 조정인 대협께서 주선해주신 맞선을 덥썩! 받아들여 식까지 올리지 않았겠습니까요? 헌데 그 결혼생활이 마음에 안 드는지 반년도 못되어 저녁마다 찾아와 이러고 계시지 뭡니까. 저희 주루와는 십 몇 년 단골이시라 함부로 내치지도 못하겠고, 그것 때문에 쌓인 외상값들을 생각하면……. 어휴, 이젠 날마다 외상값을 못 받아낸다고 주인 어른께 혼나는 것도 이력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요.”

그 사이 강진구가 표두에 오르고 결혼까지 했음을 알게된 동천은 자신이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니까 넘어가고, 동천이 물었다.

“아니, 그렇게 부인이 마음에 안 든다던가?”

점소이는 외상값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자 아쉬워하면서도 다음 기회를 노렸다.

“제가 한번 뵌 적이 있는데 통통하긴 하셔도 살만 빠지면 미운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눈이 너무도 높아 저러시는 듯 싶습니다요. 듣기로는 벌써 석 달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지요? 에휴, 그나저나 외상값을 안 갚으셔서 저희들의 고충이 말이 아닙니다요. 빨리 갚아주셔야 할텐데… 아니면 다른 분이라도 대신…….”

드디어 이런 점소이의 노력이 통했는지 강진구의 불쌍한 모습에 목소리가 착 가라앉은 동천이 말했다.

“내가 내겠네. 얼마인가.”

“아이구, 감사합니다! 헤헤, 은자 8냥입니다요.”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라는 눈빛으로 강진구를 바라본 뒤 말했다.

“음, 없던 일로 해주게나.”

“…….”

어린 점소이는 황당했다. 얼마나 황당했으면 ‘내가 잘못 들었는가?’ 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동천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씨, 뭔 놈의 외상값이 그따위로 많아? 내가 미쳤어? 그 돈이면 놀고 먹고가 몇 달인데!’

그로서는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돈은 돈이었던 것이다. 하긴… 동천에게 뭘 바라겠는가. 이 이상 사악해지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 자네는 뭘 그렇게 멍청히 서있는 것인가? 자네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어린 점소이가 속으로는 이를 바득 갈면서도 재빨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 저런 잡놈이 다 있을까?’

점소이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다.

탁!

동천은 차마 가까이 다가가 신분을 밝힐 수도 없고 해서, 강진구를 안됐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다름 아닌 소연의 짓이었다. 어느새 두 병을 홀랑 비워버린 듯한 그녀가 세 병째를 들고 저 혼자 자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야, 너 무리하는 거 아니냐?”

동천이 나름대로 신경 써서 물어보자 얼굴이 보기 좋게 달아오른 소연이 약간은 풀어진 눈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저는 그저 맛있어서…….”

맛있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아무도 안 먹으면 어떻게 처리하나 은근히 신경 쓰고있던 동천으로서는 더욱 제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고기만 집어먹고 있는 화정이의 머리를 한 대 때려준 뒤 손수 술을 따라주는 기꺼움까지 보여주었다.

“쭈욱 마셔. 그리고 그동안 이 몸에게 서운했던 일이나 화났던 일들일랑 싹 잊어버려라. 뭐 그런 일도 없었겠지만.”

소연은 꾸뻑 인사를 했다.

“예에, 주인님.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아.”

“감사는 무슨. 살다보면 이런 때도 있는 것이지. 하하!”

동천이 따라준 술잔을 간단하게 비워낸 소연은 허락도 떨어졌고 해서 거리낌없이 마셔댔다.

‘아아,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난 여태껏 모르고 살았을까?’

왜 모르고 살았겠는가. 순진해서 모르고 살았지. 그렇게 취하는 줄도 모르고 홀짝홀짝 마시던 소연은 마지막 술병인데 남은 술이 얼마 없자 한 숟갈 남은 꿀을 아껴먹듯 아주 조금 조금씩 입안으로 넘겨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술은 떨어졌고, 약간(?) 간이 커진 소연은 주인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어어어어어어…….”

“취했구만? 저어어, 그러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왜, 더 시켜 줘?”

소연은 제대로 말한 것도 없는데 주인님이 벌써 알아듣자 너무도 기뻐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네에에, 주이님. 딱! 딱 한 병만 요. 헤헤.”

처음 마시는 사람이 그만큼 마시고도 안 취하면 이상한 거였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 동천이 과감하게 두 병을 더 시켜주었다. 그녀를 왕창 취하게 만든 뒤 나중에 꼼짝도 못하게 만들어 놓으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흐흐, 네가 요즘 까부는 듯한 낌새가 있었는데 어디 한번 개가되어 봐라. 그래놓고도 네가 다음날 얼굴을 들 수 있는지. 프하하!’

동천의 예상대로 네 병째 들어가기 시작하자 그것을 거의 비워갈 때 즈음 소연이 신형을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도둑잠을 자는 새색시 마냥 꾸벅거리다가 한 입 마시고, 꾸벅거리다가 한 입 마시기를 반복했다.

“이어 아무래도 무리하는 거 같은데……. 그만 마시고 싶으면 그만 마셔도 된다니까?”

동천이 은근한 바람까지 넣어주자 소연이 거절했다.

“아, 아이에요. 저… 저 아지까지도 멀쩡! 해요오오오.”

‘그래그래. 계속 그렇게만 멀쩡하거라. 으히히히! 이거 너무 좋아서 옛날 웃음 나오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진행이자 동천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흑! 흑흑흑!”

드디어 다섯 병째로 접어들자 소연이 술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굵은 눈망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부터 시작한 그녀는 그동안 맺혔던 것이 많았는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말예요. 흑흑, 주인님 나가시고 화정이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예?”

술에는 취한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목소리는 또렷해졌다. 그러나 당장에 그것을 구분해내지 못한 동천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깨어나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소연의 술잔을 빼앗고 말했다.

“내가 네가 아닌데 네가 힘들어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냐? 막말로 내가 힘들어할 때 네가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했었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그만 마셔! 너 취했어!”

끝에 가서는 다소 험악하게 그녀를 타일렀다. 그러나 그녀는 도리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동천을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어진 동천이 한마디했다.

“어쭈구리?”

기도 안 차는 동천이 어이없어 하는데 소연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어쭈구리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쳇, 빼앗아 가면 못 마실까봐? 꿀꺽꿀꺽! 흐아아!”

아예 병째로 들고 마신 소연은 더욱 또렷해진 초점을 잡고 동천에게 따지고 들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 내가 헛소리나 지껄였다는 거예요? 모두가 내 잘못이라는 거예요? 예? 예에?”

생각 이상으로 당황한 동천은 주먹을 들어올렸다가 주춤 내리고, 또 들어올렸다가 내리기를 두어 차례 반복했다.

“와아! 이거 미치겠네? 술 취한 애 때릴 수도 없고!”

순간 소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때려? 나를? 너 임마, 힘 좀 세다고 나를 때리겠다는 거야 지금?”

“어어? 임마? 그것도 너 임마아아?”

동천은 소연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으며 ‘저게 지금 나한테 한 소리가 맞아?’ 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소연은 ‘그래, 맞아.’ 라는 얼굴로 계속 몰아붙였다.

“그래! 너라고 했다! 너! 욕 잘하고, 성깔 더럽고, 욕심이란 욕심은 부어도 부어도 줄어들지 않는 너! 라고 했다! 꼽냐?”

그녀의 목소리에 강진구가 반응했다.

“술! 술 가져와!”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 소연이 반응했다.

“돈 내고 처먹어!”

‘헉? 이게 알고 보니, 성깔 있네?’

대뜸 소리치려다 그 기세에 눌린 동천은 전혀 딴 사람이 되어버린 소연을 보며 함부로 말을 걸지 못했다.

‘으이씨, 일부러 하라고 해도 저렇게 못하겠다! 바뀌어도 저렇게 바뀌나?’

술 취해서 개가되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아니었다. 목소리도 또렷하고 하는 말도 틀린 것 하나 없는 게(물론 동천이 듣기에는 헛소리다) 마치, 다른 간 큰 여자가 그에게 개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동천은 화정이를 시켜 진정시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만 두었다. 동천과 마찬가지였던 화정이가 그 맛있는 고기도 집어먹지 못하고 쥐 죽은 듯 소연의 눈치만 보고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요?”

드디어 소란스러움에 어린 점소이가 올라왔다. 옳다구나! 생각한 동천은 모든 것을 그 점소이에게 떠맡겼다.

“아, 말도 말게나. 내 시녀지만 술 주정이 이렇게 심할 줄 누가 알았는가? 나는 당황하여 손을 쓸 정신이 없으니 자네가 좀 말려보게. 그리고 이건… 수고 비일세.”

그냥 떠넘기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잘 아는지 동천이 슬쩍 점소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신이 난 어린 점소이는 돈의 액수를 확인한 후 잠시 동천을 노려보았다. 고작 1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손님 앞에서 대놓고 얼굴을 구길 순 없었다. 이 어린 점소이는 주루 내에서 제 2의 용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말투가 자연스럽고 싹싹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창원제일루의 차세대 기대주 점소이였던 것이다.

“헤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손님.”

“그건 당연한 일이니 넘어가고, 빨리 쟤나 좀 어떻게 해보게나.”

점잖게 행동하긴 했지만 사실 동천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나중에 소연이 정신만 차리면 아주 작살을 내놓겠다는 각오로 참고있는 중이었다. 그는 턱짓으로 점소이를 재촉한 뒤 물러섰고 어린 점소이는 탐색전 비슷하게 다가가 살며시 운을 띄웠다.

“저어 손님.”

화정이의 술잔을 빼앗아 자작하고있던 소연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뭐지?”

다분히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그러나 점소이는 그녀의 신경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나름대로의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취기가 많이 오르신 것 같은데 그만 드심이 어떨는지요.”

소연은 피식 웃고 나서 보란 듯이 술을 한잔 마셨다.

“이 누나는 술에 취하지 않았으니 어린 너는 엄마 젖이나 빨고 오너라. 깔깔깔!”

자신이 한 말이 재미있던지 그녀가 배꼽을 잡고 웃어 제켰다. 아무래도 그동안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일시적으로 폭발하자 평소의 그녀로서는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원 없이 토해내고 있는 듯 싶었다.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그녀는 연신 혀를 내두르고있는 동천에게 대뜸 소리쳤다.

“야! 와서 술 따라!”

“에이 씨!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화가 난 동천이 한 대 때릴 기세이자 갑자기 표정을 바꾼 소연이 엉엉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흑흑, 몸도 주고 마음도 줬건만 이제는 때리려고까지 하네! 으앙, 내 인생 돌려줘!”

동천으로서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으와악! 이거 미치겠네? 야! 앞길이 창창한 이 몸인데 어디에서 그따위 유언비어를 터트리고 지랄이야?”

뚝! 울음을 그친 소연이 독기를 머금은 눈빛으로 동천을 노려보았다.

“뭐? 유언비어?”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했던지 동천이 다 기겁하여 물러설 정도였다.

“그, 그래! 유언비어라고 하셨다! 이 몸께서 언제 널 건드렸다고 지랄은 지랄이냐?”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흑흑, 나쁜 놈! 바람둥이! 저질! 색마! 죽어버려!”

“윽?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색마인 거……, 헉?”

아무래도 뺨을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동천은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왜냐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돌판이 날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피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 정도쯤은 수월하게 피할 정도의 능력이 있는 동천이 아니던가! 그는 신법을 사용해 재빠르게 피했고, 목표물을 상실한 그 돌판은 멀뚱히 서있던 어린 점소이에게로 날아갔다.

으직―!

“꽥?”

코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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