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40화
그 시각, 강진구는 여전히 술에 절어서 술만 찾고 있었다. 물론 취해서 빌빌거리는 그에게 용삼이 술을 건네줄 리가 없었다. 그는 어린 점소이가 코가 으스러짐은 물론 안면이 박살날 정도로 중한 상처를 입고 실려나간 상황을 몰랐다. 그 당시 그는 어디에선가 ‘꽥?’ 하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자 자신의 마누라가 온 줄 알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아님을 알고는 곧 기억에서 지워버렸고 계속 술타령만을 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꺽?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아아아!”
“아, 짜증나. 저 노래 또 부르네?”
지나가던 신입 점소이가 신경질 투로 말했다. 내쫓을 수도 없고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고……. 그는 도저히 이층에서 있을 수가 없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일층을 훑어보고 있던 원로(?)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아니, 자네 왜 내려왔는가? 지금 실려나간 점칠(占七)이 때문에 주인 어른이 안 계셔서 다행이지, 만일 돌아오셔서 보시기라도 하는 날이면 경을 칠 테니 빨리 올라가게나.”
신입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쉽사리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저기 강 표두라는 분이 풍진 세상 너의 희망 어쩌구 노래하시는데 아주 듣기 싫어 죽겠습니다. 저거 어떻게 내쫓을 수 없습니까?”
점소이는 화들짝 놀라며 충고를 해주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말 말게나. 우리라고 저 인간 내쫓을 수 없어서 이러는 줄 아는가? 다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세.”
신입 점소이는 생각하는 듯하다 물었다.
“든든한 버팀목이라면……, 황룡표국 말씀입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진짜배기는 따로 있다네. 바로 세간에 간간이 회자되는 바른 생활 사나이 조정인 때문이라네.”
들어는 봤는지 신입 점소이가 놀라했다.
“헉? 그자라면 미친놈도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는 바로 그……!”
점소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네. 강 표두는 그자와 대단한 친분을 쌓고있지. 지가 그냥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저러고 살아도 황룡표국에서 자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 표국을 밀어주고 있는 황룡세가의 셋째 도련님과 그 조정인이란 자의 사이가 막역하다는 확실한 이야기가 있거든.”
오늘 좋은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 신입 점소이는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더 물어보았다.
“그런데 저 노래는 뭐랍니까? 무슨 사연이 있는 노래입니까? 제가 처음 일할 때부터 술에만 취하면 어김없이 저 노래를 불러대던데.”
점소이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던지 가볍게 대답해주었다.
“뭐 대단한 사연은 아니고 한달 전에 표행을 나갔다가 신마적이란 놈과 의형제를 맺었는데 그놈이 그렇게 저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하는군? 끼리끼리 논다고 술 처먹다가 의형제를 맺은 모양이네. 여하튼 그때부터 술만 마시면 저 노래를 부르니 원…….”
“예에, 그랬군요.”
신입 점소이는 듣고 보니까 귀만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푹 쉰 그는 하는 수 없이 이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가 계단을 중간쯤 오르는데 아래층에서는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차라리 그는 하루종일 출입구 옆에다 세워놓고 손님들께 인사나 하는 일을 시켜도 감지덕지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일이 원래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교대로 해야만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마음만은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술 가져와. 수울… 끄윽, 술을 가져오란 말이야.”
강진구도 지쳤는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술타령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 점소이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했다.
‘쳇, 어디 구석진 곳에서 농땡이나 부릴까보다.’
투덜대며 다른 곳으로 움직이던 신입 점소이는 수수한 외모의 이십대 초 중반의 여인이 술에 절어있는 강진구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여인은 엎어진 강진구의 어깨를 흔들어가며 깨우는 듯 보였는데 여동생쯤으로 생각한 신입 점소이는 제발 깨워서 데려가라고 마음속으로 빈 뒤 때마침 자신을 부르는 다른 손님에게로 달려갔다.
“일어나 보세요. 일어나 보세요.”
강진구는 귀찮게 누군가 흔들며 깨우자 손을 휘저어댔다.
“으응, 누구야. 술이나 가져오라고오오.”
여인은 슬픈 눈빛으로 포기하지 않고 그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많이 취하셨어요. 집에 가서 주무셔야죠.”
“끄윽, 여보오?”
강진구는 자신이 술김에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자신을 여보 라고 부를 수 있는 여인은 지금쯤 집에서 닭 한 마리를 간식으로 뜯어먹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여보 라니? 그는 가까스로 풀린 눈을 모아 상대편을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처음 보는 여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에… 소저는 누구요오? 혹시 사람 잘못, 딸꾹! 찾은 거 아니오?”
여인은 사람 잘못 찾은 것 아니냐는 소리에 울먹이기 시작했다.
“흑흑, 어찌 저를 모른 척 하세요. 저예요, 현소(玄素).”
강진구는 나름대로 사람 볼 줄 안다는 소리를 듣고 커왔다. 그 사람 볼 줄 아는 인간이 동천과 친했다면 이야기하나마나 개수작이 분명하지만 지가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어쨌든 그런 눈으로 눈앞의 여인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강진구는 술에 취해 인지능력이 떨어졌던지 한참 후에야 기겁을 하고 나자빠졌다.
“헉? 현소라고? 다, 당신 누구요? 내 마누라는 이렇게 예쁘지 않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예쁜 것은 아니고 평범함 보다 약간 떨어지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녀와 비교하자면 하늘과 땅의 차이었기에 강진구가 보기엔 세상 어느 미녀보다도 아름다워 보인 것이다. 자신을 아름답게 보아 기쁨에 충만 된 현소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놀람을 거두세요. 전 현소가 맞아요. 사실은 당신이 몇 달간 저를 외면하시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셔서 내외적으로 마음 고생이 심해 먹는 것이 부실했더니 이렇게 살이 빠졌던 거예요.”
듣고있자니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그럴 수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두 번, 세 번, 열 번 정도를 뚫어지게 바라본 강진구는 살이 엄청나게 빠진 상태이긴 했어도 꼴에 자기 마누라라고 곧 그때의 눈매와 생김새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오! 이리 오시오, 부인!”
얼굴이 달라지니까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는 강진구. 그는 자신의 품안에 쏙 안겨드는 현소의 가녀린 동체를 느끼며 감동에 감동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흑흑, 매일 살덩이의 품에 파묻혀 살다가 이렇게 보듬어 안는 입장이 되고 보니 꿈만 같기 그지없구나!’
현소는 남들의 이목을 느끼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사, 사람들이 봐요. 어서 집으로…….”
“가야지! 아암! 가고말고! 으하하하!”
강진구는 모든 점소이들이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주는 가운데(앓던 이가 빠지는 것 같아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가 되어 현소와 함께 창원제일루를 떠났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고통의 나날이었던 그 옛날의 시간들을 보상받는 것뿐이리라.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행복하게 지내던 현소는 보름을 기점으로 다시 뚱땡이가 되어버렸고 강진구는 다시 집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쿠울, 쿨.”
저녁 내내 달라붙는 화정이 때문에 늦은 밤까지 잠을 청하지 못했던 동천은 밀려오는 수마(睡魔)와는 별개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자 짜증을 내면서도 그녀를 계속 자신의 곁에 놔두는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 마당에 무엇인들 감내하지 못하겠는가. 아직 세세한 남녀관계를 몰라 자세한 부분까지는 선을 넘지 못했지만 말이다. 반대로 태평하게 잠이 든 화정이는 꿈을 꾸는지 간지러운 듯 히죽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으음, 동천 핥지마아.”
……소연이 듣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윽, 으윽!”
동천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자세히 보니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였는데 간혹 손을 휘젓기도 하고 발까지 움찔거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동작을 요하는 꿈을 꾸고 있나보다.
“안 돼. 안 돼에…….”
아닌게 아니라 지금 동천은 쫓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사부님과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 괴한으로 인해 그의 사부인 역천이 피를 본 것이다. 뒤이어 그 괴한에게 쫓기던 동천은 덜미가 잡히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안 돼에에에! 헉헉!”
그 꿈은 생생했다. 그리고 어쩐지 불안했다. 잠에서 깨어난 화정이가 눈을 비비며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의 생생한 꿈 때문인지 그녀의 물음은 동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헉헉, 꿀꺽. 이거 혹시… 예지력 아냐? 그렇다면 사부님께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