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42화
-31~32- 기로(岐路)의 남자 3.
창산(窓山)에서 얻고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제갈세가로 돌아왔다. 그런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동천 때문에 겸사겸사 형산파(衡山派)로 가서 이영환(李鈴丸)에게 그 방법을 물으러 갔는데,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본디 장노삼이 정보를 얻고자 했던 중년의 사내와 마주칠 수 있었다. 일행이 있었던 그 사내는 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찰나에 장노삼과 마주친 것이어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어긋났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었다. 문정은 ‘정말 일이 잘 되려나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반가워하는 중년의 사내에 비해 장노삼의 얼굴은 영 불편하기가 그지없었다.
문정을 잠시 물리고 중년의 사내와 어디론가 사라져 한참동안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장노삼은 제갈세가로 다시 돌아가 한 노사에게 철경을 건네 받은 뒤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 와중에 문정은 그 중년인과 무슨 관계였냐고 물어봤지만 장노삼은 대답해주기를 꺼려했다.
석 달 동안 마차와 걷기를 반복하여 남해(南海)에 당도한 그들은 거기에서 어렵사리 배 한 척을 구해 태양군도(太陽群島)로 향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망망대해를 보름 밤낮 동안 지나가던 중 때아닌 열기에 잠이 깬 문정은 날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붉게 타오르는 듯한 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이 목적인줄 알고 기겁을 했다. 왜냐하면 말로만 듣던 화산용암이 섬의 이곳저곳을 가릴 것 없이 천지사방에 철철 흘러 넘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곳에 내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 편하게(?) 익사를 하리라 마음을 먹기까지 했었다.
다행히 그곳은 태양군도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다시 보름을 거쳐야 제법 커다란 섬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사실 추가적인 보름이라는 시간은 거리에 따른 시간이 아니라 속도 저하에서 오는 시간이었다. 대형선이 들어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도 여기에서 발생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곳마다 불똥이 튀기고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어서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배가 타버리거나 물 속에 빨려 들어가는 불운을 겪게되기 때문이었다.
말이 불운이지 그렇게 되면 인생 종치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이렇듯, 작은 소형선도 소용돌이를 지나칠 길목이 좁아 바다에서 고생하고 하늘에서는 언제 불똥이 튀어올 줄 몰라 이중고를 겪게되니 손이 많이 가는 대형선은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후아, 저기 중간에 보이는 화산도 아직 활동하는 것인가 본데요?”
문정이 태양도(太陽島)라고 일컬어지는 섬에 당도하여 첫발을 내딛고 처음 꺼내본 말이었다. 장노삼은 낮게 웃으며 문정이 가리킨 화산의 분화구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허허, 그렇구나. 아무래도 조속히 마치고 떠나야할 듯 싶다.”
잡목림(雜木林)으로 들어가자 문정으로서는 처음 보는 식물들과 벌레들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와, 요지경 속이네?”
장노삼은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본 뒤 나름대로 추측을 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시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는 듯 싶구나. 음, 이 정도로 유지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저 화산은 수천 년 간을 휴화산 상태로 머물러 있었음이 틀림없다.”
영리한 문정이 밝아진 얼굴로 바로 물었다.
“그럼 우리는 저 화산이 터질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어린놈에게 괜히 불안을 안겨줄 필요가 없어 장노삼은 단정짓듯 말해주었다.
“그렇지. 앞으로 몇 백년 정도는 끄떡없을 것이다.”
장노삼의 의도대로 안도한 문정은 일각 여를 걷는 동안 왠지 목적 없이 걸어가는 것 같아 물어보았다.
“어르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본디 최종 목적지는 용수천(湧水川)이나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있다고 하니 그들을 먼저 찾아야 한단다. 그래야 용수천이 어디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구나. 헌데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있을 줄은 몰랐네요? 들어오는 길도 만만치 않고, 주변 섬들의 영향으로 덥기는 엄청 덥고……. 흐아, 안쪽으로 들어와 조금 시원해지는가 싶었는데 익숙해지니까 다시 더워져요.”
장노삼이 말했다.
“이와 정 반대인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는 것이 사람이지. 아마도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자들의 후손이라면 분명 범상치 않을 것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알겠느냐?”
문정은 지당한 말씀이라 여기고 한치의 불평 없이 장노삼의 당부를 따랐다.
“예, 어르신.”
이어 그들은 가도 가도 똑 같은 풍경을 헤집고 나아갔다. 그러나 제멋대로 자라고 엉킨 나무와 넝쿨 때문에 걸어가는 길은 더뎠다. 그로 인해 그들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람은커녕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면서 가져왔던 식량들은 아껴 먹는다고 먹었는데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고, 다리야. 힘들고 죽겠네.’
지치고 힘들었지만 문정은 꾹 참았다. 이런 문정의 지치는 현상을 이틀 전부터 목격한 장노삼은 하루쯤 쉬어볼 까도 했으나 식량이 문제라서 여의치 않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것들뿐이라서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정아, 힘드느냐?”
문정은 고민할 것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까짓 것으로 힘들다면 사내가 아니지요.”
기특했던지 장노삼이 웃었다.
“허허, 기개가 대단하구나. 좋다. 조금만 더 가보자꾸나. 대충 섬의 절반 정도를 움직였으니 조만간 사람 사는 곳이 보일 것이니라.”
“예, 어르신.”
“그래그래. 어서 가자꾸나.”
장노삼의 예측대로 사흘이 지난 다음에야 그들은 사람이 사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들은 정 반대편에서 내려 걸어왔던 것이다. 자신을 촌장이라고 소개한 범상치 않은 노인은 평생에 드문 손님들의 방문에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장노삼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주자 그들 일행을 기쁘게 맞아주었다. 이유인 즉, 그 촌장이 장노삼에게 이곳을 알려 준 중년인과 알고있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껄껄, 그 녀석은 잘 지낸답니까?”
장노삼은 약간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 그놈을 건드려서 무사할 인간이 있겠소이까.”
촌장은 지극히 타당한 말이자 더욱 웃어댔다.
“그렇지요! 그 녀석 잘못 건드렸다간 잠자긴 다 글렀다고 봐야지요! 크하하!”
문정은 과연 이 촌장이 처음에 경계를 했던 그 인간인지 심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정의 느낌으로는 이 모습이 진정한 모습이라고 느껴졌기에 그런가보다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용수천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이까? 녀석의 말로는 이곳 촌장님께 물어봐야 가르쳐준다고 하시던데.”
촌장은 눈을 번뜩였다.
“혹시, 그들과 같은 이유인 게요?”
장노삼은 영문을 몰라했다.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물으면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이라니요?”
촌장은 장노삼의 반응이 진실 되어 보이자 강렬한 눈빛을 거두었다.
“으음! 모르시는구려. 벌써 10년 전부터 의문의 노인 둘이 용수천에서 죽치고 있다오. 물어보니 태양화리(太陽火鯉)를 잡으러 왔다고 하더이다. 그것도 3000년 이상 묵은 것으로 말이오. 원 말도 안 되는 소리나하고 자빠졌지.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게 잡힌답니까? 그랬다면 내가 벌써 두 번 환골탈태를 했지.”
흥미가 동한 장노삼이 물었다.
“꿈이 상당히 큰 분들인가 보오. 그래, 성함들이 어떻게 된답니까?”
촌장은 하도 옛일인지라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처음에 올 때 가르쳐주긴 했는데 말이오. 그 후로는 거기에서 나오지 않아……, 아? 이제야 생각나는구려. 화문(火門)과 암문(暗門)이라고 했소이다! 그렇지, 그랬지. 이름이 하도 이상하여 그게 진짜 이름이 맞냐고 몇 달 동안 따라다닌 적이 있소이다.”
문정은 그거 알고자 따라다닌 저 촌장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니까 사람도 적은 이런 심심한 곳에서 살자니 얼마나 화젯거리가 부족하겠는가. 문정은 그럴 만도 하겠다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확실히 특이한 이름이외다. 여하튼 우리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에 그곳을 찾는 것이오.”
장노삼이 꺼낸 것은 이물질이 말끔히 벗겨진 만년오행한철이었다. 문정은 그것을 접한 촌장의 입이 자신의 머리통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지는 것을 친히 목격했다.
“커허허―헉? 이, 이것은 마, 마, 마!”
장노삼은 촌장에게 이야기를 맡겼다간 날이 새도 어려울 것 같아 그 뒤를 자신이 이었다.
“그렇소이다. 만년오행한철이오. 이것을 녹여 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용수천이어야 한다고 하기에 찾는 것이외다.”
잠시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돌아온 촌장은 떨리는 손으로 만년오행한철을 만지작거렸다.
“트, 틀림없구려! 그녀석이 한번 완성품을 가지고 왔었기에 확신할 수 있소! 허허, 참! 이런 놈을 어떻게 구하셨누?”
“인연이 있으니 들어온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보다 지금 안내해 줄 수 있겠소?”
촌장은 힘찬 고갯짓을 했다.
“물론이오! 내 기왕지사 만드는 것까지 옆에서 도와주겠소. 내 비록 촌사람처럼 보여도 이 마을에서 유일한 대장장이외다.”
장노삼은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내심 고민하고 있었던 듯 한결 가벼워진 표정을 내비쳤다.
“그래만 주신다면 이 장 모는 감사하게 받아들일 뿐이외다.”
촌장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안내했다. 그는 장노삼과 문정을 화산의 분화구 쪽으로 안내했다. 올라가는 것만 해도 보통사람으로서는 험난한 길이자 촌장은 문정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러나 장노삼이 같이 있어야할 아이라고 말해서 하는 수 없이 동행을 허락했다. 촌장은 분화구로 내려가는 초입에 서서 내부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내 미리 말해두지만 분화구 중간에 다다르면 걸어가는데 조심하길 바라오. 잘못 헛디디면 용암 속으로 퐁당 빠져죽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문정을 잘 간수하길 바라오. 자신이 없거든 이제라도 내려보내던가.”
장노삼은 뜨끈뜨끈한 열기를 느끼며 물었다.
“안쪽은 어느 정도로 뜨겁소?”
촌장이 돌연 ‘아?’ 하고 히죽 웃었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문정을 데려갈 수 없는 이유가 있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너무 어리고 내공도 없는 탓에 폐가 타들어 가 즉사하고 말 것이외다.”
그것으로 결론은 났다. 문정은 왔던 길로만 내려가면 무사할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마을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는 내려오는 내내 정말 억울한 심정이었다.
“으아, 그 진귀한 장면을 못보고 내려와야 하다니! 쩝,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니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서도…….”
마을에 내려오자 혼자가 되어버린 문정에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꼬마 타지인이 처음인 듯, 신기해하며 꼬집어도 보고 짧게 자란 머리카락을 뜯어보기도 하는 등 문정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우왁! 가, 가만히 좀 놔둬요! 내가 뭐 장난감인 줄 아세요?”
참을 수 없어 소리치자 놀라 물러선 그들은 ‘싸가지 없네…….’ 라고 중얼거리며 신기한 물건을 쳐다보듯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문정은 재빨리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담 같지도 않은 담 너머로 대놓고 쳐다보자 마루를 지나 방안으로까지 들어가 버렸다.
“도대체가 새장의 새도 아니고 뭐가 그리도 신기해서 저 난리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고 보니까 절로 그런 불평이 튀어나왔다. 벌써부터 나돌아다니는 것이 불안해진 문정. 그는 긴장이 풀려 머리가 따끔해지는 것을 느끼고 살살 문질러 봤다가 한 뭉텅이나 빠져 있자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언제 이렇게 많이 뽑아갔지? 아이고, 이제는 창피해서라도 못나가겠구나.”
바닥에 앉은 문정이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데 누군가 그의 빠진 머리부분을 매만졌다.
“우와, 이런 땜빵 처음이야!”
“누, 누구냐!”
놀란 문정이 쳐다보자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그 또래의 여자아이가 되물었다.
“그건 내가 묻고싶은 말이야. 너 누구니? 왜 내 방에 함부로 들어왔어?”
잠시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 아무 말도 못한 문정은 곧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그럼 여기 촌장 님의 딸이냐?”
딱!
여자아이가 대뜸 문정의 머리를 때렸다.
“아야! 이게?”
여아는 말했다.
“내가 어딜 봐서 딸로 보이니? 손녀지. 그리고 너 누구냐니까?”
문정은 일단 자신의 잘못을 감내한 뒤 말했다.
“여기 손님이야. 근데 손님을 이렇게 때려도 되는 거야? 네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쳤어?”
순간 여자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리곤 울먹이기 시작했다. 문정은 곧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
‘아차!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모양이구나! 이를 어쩌지?’
“미안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라. 응?”
여자아이는 홱 돌아선 다음에 말했다.
“칫, 누가 뭐라고 그래? 이름은 뭐야? 나이는?”
무슨 죄인을 심문하듯 물어봤으나 똑같이 놀 수 없었던 문정이었기에 그는 남자인 자신이 대범하게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름은 문정(雯整)이고 나이는 9살이야. 너는?”
여자아이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고은비(高誾備). 나이는 7살. 됐지? 이제 나가.”
문정은 너무 한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큰마음 먹고 그녀의 이름을 칭찬해주려다 그만두었다.
“야, 나는 손님이야. 그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또 머리카락도 뽑고 꼬집고 그럴 거란 말야.”
고은비는 다시 돌아서서 문정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양 볼이 부풀어올랐다.
“푸웁―! 까르르르! 옷만 누더기로 바꿔 입으면 말로만 듣던 거지다, 거지! 꺄하하하!”
문정은 바닥을 뒹굴며 배꼽을 부여잡는 은비를 노려봤다. 이게 아무리 어리다지만 너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삼십대 후반의 사내가 들어왔다.
“타지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더니 너로구나?”
움찔한 문정이 이 무례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는데 은비가 쪼르르 달려가 사내의 품에 안겼다.
“아빠, 이제 돌아왔어요?”
사내가 은비를 안아들고 자상하게 말했다.
“어이구, 은비야. 심심하진 않았어?”
“응, 자고 일어나니까 쟤가 있어서 별로 안 심심했어.”
‘아빠? 아빠라고?’
문정은 돌아가신 줄 알았던 은비의 아버지가 들어오자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까 그의 어머니만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다. 그때 은비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인이 들어왔다.
“어머나, 얘가 그 애로구나?”
아버지의 품에서 내린 은비가 또 달려가 안겼다.
“엄마, 맛있는 물고기 잡아왔어?”
“그러엄, 누구 부탁이라고.”
‘엄마? 엄마라고?’
문정은 완전히 혼란스러워졌다. 죽었다던 은비의 엄마와 아빠가 전부 살아 돌아오자 이곳이 이곳이 아닌 것 같고, 저곳이 저곳이 아닌 것 같은 어지러움증까지 유발되었다.
“엇? 조심해야지. 혹시 먹은 게 부실했던 것이냐?”
은비의 아버지가 비틀거리는 문정을 잡아준 뒤 다소 걱정스레 물었다. 드디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물리친 문정은 내심 은비를 욕하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예에, 하필이면 섬의 반대쪽에 내려서 오는 내내 육포만 먹었더니 속이 좀…….”
은비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군. 육포가 속을 달래주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할 수 없으니 어린 나이에 비틀거릴 만도 해. 부인, 가서 이 애에게 먹을 음식 좀 만들어 오구려.”
“네, 알겠어요.”
은비의 어머니가 나가고 셋이 남게된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당연히 일방적인 질문 뒤에 답변의 형식이었다. 잠시 후 음식이 들어오고 그것을 맛있게 먹은 문정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 장노삼을 만날 수가 있었다.
“어르신, 어떻게 되었습니까? 벌써 만드셨습니까?”
촌장이 가로채고 끼여들었다.
“예끼, 이놈아. 그게 어디 돌아서면 뚝딱 해결되는 요술 방망이인줄 아느냐? 적어도 2년에서 3년은 걸리니 일찍 떠날 생각은 아예 접거라.”
문정은 무슨 쇳덩이 하나를 녹이는 것이 그리도 오래 걸리나 싶었다.
“예에? 세상에… 만년오행한철이 용암에 그렇게나 오래 안 녹는다는 말이에요?”
촌장은 무지한 문정에게 자세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무리 대단한 물질이라도 용암에 접촉하여 녹지 않는 것은 없다. 다만 만년오행한철이 그 기운을 잃지 않으려면 잠깐 넣었다가 몇 주 동안 용수천에 담가둬야 하지. 그러니 세상 최강일 수 있는 만년오행한철을 쉽게 변형시킬 수 있겠느냐? 자고로 보물이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수긍은 갔지만 너무도 오래 걸렸다. 물론 지긋지긋한 동천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는 만족했지만, 이런 따분한 곳에서 최저 2년을 머물러 있을 생각을 하자 앞길이 막막해졌다. 촌장은 그런 문정의 마음도 모른 채 염장이나 질러댔다.
“껄껄, 무슨 놈의 얼굴이 그 모양이냐. 마침 우리 귀여운 은비의 또래이니 서로들 재미있게 지내거라.”
‘이 영감님이 장난하나…….’
어딜 봐서 자신이 은비와 잘 지낼 것 같은가. 안 그래도 속은 것 때문에 정나미가 떨어졌는데. 그는 은근히 한숨을 내쉬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촌장님.”
대답하며 은비 쪽을 힐끔 보자 그녀가 작은 혀를 쏙 내밀고 메롱 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만 아니라면 인정사정 없이 쥐어흔들고 싶었다.
‘에휴! 막막하다. 막막해. 나의 최저 2년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려나?’
그렇게 2년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