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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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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무엇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어.”

동천은 내심 환영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물어봤자 이 몸은 대답을 하지 않을 거니까. 암! 대답 안 해. 절대로 안 해!>

순간적이나마 사정화의 용모에 빠져들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평소대로 돌아와 말했다.

“저희들의 잘못을 덮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련이는 어디에 갔기에 안 보이는 것입니까?”

자연스러운 질문이자 사정화의 대답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수련이는 내 명으로 할멈을 따라 잠시 요림(妖林)에 들어갔어.”

동천은 할멈이라는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멈? 할멈이 누구지? 쟤한테 할머니도 있었나?>

그런 동천의 의문점을 이해했는지 소연이 살짝 다가와 사정화의 눈치를 보며 귓말을 해주었다.

“왜 있잖아요. 청목신장 정원님이요. 요림의 태상림주.”

그제야 누구인지 깨달았다.

“아하? 그 늙어빠진… 이 아니라 그 정정하신 림주님?”

사정화는 살짝 눈매를 모으고 못마땅해하는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달라진 줄 알았는데 그 말버릇은 여전하구나.”

순간 식은땀이 흐른 동천은 어떻게든 현재의 실수를 무마시켜보고자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때리며 주절거렸다.

“에고고. 요놈의 주둥이가 맞고 싶은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쌍소리를 내뱉네? 요놈! 요놈! 그만 좀 내 속을 썩여라. 아가씨께서 보시는데 오늘만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안 그래? 엉?”

사정화는 입을 열었다.

“장난치지마.”

“예, 아가씨.”

바로 대답이 나오자 길게 끌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사정화가 넘어가 주었다.

“그 동안의 이야기는 대충 역천에게 들었어.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당사자인 네가 들려주도록 해.”

동천은 기가 막혔다.

<허? 내가 니 종이냐? 그게… 음, 종이네. 넘어가기로 하고. 그게 얼마나 긴 이야기인데 바쁜 이 몸을 붙잡고 들려달라 말라 하는 거야? 저게 오냐오냐 해주니까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냐? 안 되겠다. 언젠가 손을 좀 봐 줘야지.>

그렇게 생각한 동천은 굽실거렸다.

“헤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작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꾸었는데…….”

동천의 이야기는 그렇게 밤새 이어졌다.


“야! 야, 동천!”

이른 아침. 누군가 피곤에 절은 동천을 무지막지하게 흔들어 깨웠다. 감히 자신을 이따위로 깨우다니. 동천으로서는 화가 뻗치는 일이었지만 졸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으윽, 뭐야아. 나, 나 졸리다구. 깨우지마아아.”

상대는 그런 동천의 행동에 잠시 어이없어하다가 이내 동천의 한쪽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일어나라니까! 아가씨가 부르셔!”

콰당!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강했던 탓에 침대에서 떨어진 동천은 다른 이유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아가씨가 부르셔? 왜?”

수련은 정신 없어하는 동천을 잠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긴 왜야. 이유가 있으시니까 너를 찾으셨지.”

바닥에서 일어난 동천은 결국 그녀도 모른다는 말이자 당황했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어휴, 이걸 그냥!”

수련은 손이 올라간 동천의 행동에 눈을 치켜 떴다.

“이걸 그냥? 너 지금 이걸 그냥 이라고 했어? 그리고… 그 손으로 니가 어쩔 건데? 날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좋다 이거야. 때려봐! 때려봐때려봐!”

수련은 완전히 배짱 식으로 머리를 디밀었고 동천은 이런 그녀와 마주쳐봤자 자신만 손해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아아, 됐어. 됐으니까 가서 아가씨께 곧 간다고나 말씀드려.”

수련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지금. 나하고 이야기하는 게 귀찮다 이거야?”

<에이씨, 이게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한계에 도달한 동천은 잠도 설친 마당에 상대가 주제도 모르고 개기자 참지 못하고 맞받아 쳤다.

“그래 귀찮다! 귀찮으면 니가 어쩔 건데? 왜 세 살짜리 계집애처럼 쪼르르 달려가서 아가씨께 이르려고?”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아가씨에게 이르기 전격작전(?)’이 있었기에 언제나 당당했던 그녀였는데 그것을 동천이 언급해서 막아버리자 수련으로서는 분하고 원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 너어? 너어?”

그녀는 제 성질에 못 이겨 숨이 넘어갈 듯 보였다. 동천은 잠시 이 다음 상황을 예측했다.

<운다. 그 상태로 나간다. 정화가 묻는다. 꼬발른다. 맞는다…….>

안될 말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진정시켜주기로 했다.

“음,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도연이 걔가 고자질쟁이를 무척이나 싫어하더라고. 당연히 너는 그런 애가 아니지?”

순간 수련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눈알만 또르르 굴린 수련은 물었다.

“그 말… 정말이지?”

동천이 콧방귀를 뀌었다.

“참나! 얘가 속고만 살아왔나. 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어느 사내대장부가 고자질쟁이를 좋아하겠어? 안 그래?”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수련은 이대로 물러난다는 게 찜찜했지만 고자질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참기로 했다. 그녀는 매몰차게 돌아서 나갔다.

“어쨌든 빨리 나와!”

같잖지도 않은 그녀의 행동에 동천은 그저 피식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훗, 성인군자인 이 몸이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수련이 나가고 중얼거린 것이기에 그녀는 듣지 못했다. 이층 손님방에서 잠을 잤던 동천은 통로를 지나 일층으로 내려오며 어젯밤의 그 기나긴 둘만의 시간(?)을 상기시켰다.

<으으, 독한 년! 범인을 잡아넣고 밤새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날밤을 까며 그 긴 이야기를 다 듣는다니?>

밤새 이야기를 들려준 동천도 동천이지만 아무리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라 해도 동천의 이야기를 한 시진 이상 들어줄 리 만무하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볼 때 밤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정화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을 거의 내려오던 그는 불현듯 불안감에 몸서리를 쳤다.

<헉? 혹시 까먹었다고 다시 들려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사정화가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에게 다시 듣기를 바라겠는가. 또한 그녀의 뛰어난 머리로 볼 때 어젯밤에 들었던 이야기를 잊어버릴 리 만무하고 말이다.

“아가씨, 부르셨다고요?”

거실에서 아침을 들고있는 사정화에게 동천이 인사를 했다. 사정화는 수저를 내려놓고 동천의 인사를 받았다.

“그래. 일단 앉아.”

동천은 권해주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정화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어젯밤의 이야기는 잘 들었어. 이제 네 개인시간을 빼앗지 않을 테니까 아침이나 먹고 가도록 해. 그것 때문에 깨운 거니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진심으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사실 저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도 아니고 모두들 저를 필요로 하다보니 여간 바쁜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배려를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순간 사정화의 아미가 가늘게 모여졌다. 감사하다고 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의 이야기가 가식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찔끔한 동천이었지만 그는 잘도 둘러쳤다.

“그럼요. 한심 당주와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했고 그 후에 약전의 의원들과 함께 제가 돌아온 기념으로 조촐한 환영회를 열기로 했으며, 마지막으로 제 거처의 하인들을 점검하기 위해 앞마당에서 상견례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이 정도면 많은 것이 아닌지…….”

사정화는 자신의 눈치를 보고있는 동천에게 수긍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랬군. 다 좋은데 공연히 아랫사람들 구타하지 말고 원만하게 지내도록 해. 알았어?”

동천은 아니꼽게 받아들였다.

<쳇, 네년만 이 몸을 구타하지 않으면 돼. 알겠냐?>

어쨌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은 하지 않사오니 안심하십시오, 아가씨.”

사정화는 말 없이 동천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한번 믿어보도록 하지.”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다고 생각한 동천은 속마음과는 반대로 ‘예, 예.’ 거린 후 조심스럽게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무난히 식사를 끝마치고 암한문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방안에서 화정이를 가르치고있는 소연에게 말했다.

“약전에 가서 이 몸의 환영회를 가질 의향이 없냐고 물어봐.”

소연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물었다.

“환영회요? 무슨 환영회요?”

동천은 소연을 슬쩍 째려보았다.

“너는 우리말도 못 알아 듣냐? 이 몸의 환영회라고 방금 전 이 몸께서 말씀을 하셨잖아. 설마 또 못 알아들었다고 되묻는 건 아니겠지?”

소연은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으나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었기에 말씀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뇨, 이제 잘 알아들었어요. 얼른 달려가서 제가 물어보고 올게요.”

“열 셀 때까지 갔다와.”

그 말에 나가려던 소연이 주춤했다.

“저기… 백까지 세어주시면 안 될까요?”

동천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인심쓴다는 듯 얼굴을 폈다.

“그러지 뭐. 하나, 둘, 넷, 여덟, 스물…….”

소연은 다시 주춤했다.

“저기… 그게 무슨…….”

“빨랑 갔다와! 안 갔다와? 이걸 그냥 확!”

“꺄악! 가, 갈게요!”

놀란 그녀는 허겁지겁 뛰어 나갔다. 동천은 소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영 마뜩치 못한 표정을 지었다.

“참나, 저건 꼭 일을 시키면 그냥 안 가고 토를 단단 말야? 에잉! 내 팔자가 왜 이런지 몰라. 으이구, 열 받아!”

그런 동천의 옆쪽에서 화정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와. 이리와.”

동천의 눈치를 살피던 화정이는 호연화를 안아든 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당연히 눈치를 챈 동천이 물었다.

“야, 넌 또 어딜 가려고 그래?”

설마 들킬 줄을 몰랐던 화정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설프게 웃었다.

“에헤헤, 그게… 나가 놀려고.”

동천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가 노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헛소리말고 이리와 다시 앉아!”

단호하게 명령을 내린 동천은 호연화를 빼앗아 옆자리에 내려놓은 뒤 근엄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멍청한 소연에게 공부를 배고있는 중인 것 같더구나. 자고로 배움이란 훌륭한 스승의 밑에서라야 대성(大成)할 수 있다고 옛 성현들께서 말씀하셨으니 너는 이 몸께서 가르쳐주겠노라.”

화정이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배울게.”

그녀의 대답에 동천이 분위기를 이어 말했다.

“좋다. 그런데 소연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었느냐.”

화정이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사자성어.”

“뭐? 사자성어라고? 니가?”

동천이 놀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정이의 진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랐던 것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화정이는 대답할 따름이었다.

“어. 천자문도 다 못 배웠는데 소연이 그걸로 바꿔서 배우자고 그랬어.”

그제야 동천의 얼굴에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어 그는 나직이 탄식했다.

“어허! 가르치던 스승이 기본기를 무시했구나. 어찌 이런 일이!”

탄식을 끝마친 동천은 화정이 쪽에서 별 호응이 없자 재미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화정아. 자고로 사람은 기본이 튼튼해야 하는 법이니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사자성어 대신에 여태까지 배웠던 천자문을 다시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꼭, 그래야… 해?”

시큰둥한 반응이자 동천이 눈을 부라렸다.

“이런 배은망덕한! 네가 감히 본 주인님의 말씀을 개 똥으로 듣겠다는 것이더냐?”

화정이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할게. 할게.”

동천은 진정했다.

“흠. 진작에 그럴 것이지. 그렇다면 거기 붓을 들고…….”

그때 소연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헉헉, 주인님. 아, 안 늦었죠?”

동천은 뭔 소리인가 하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아아, 딱 맞춰 왔어. 방금 구십 구까지 세고 있었거든. 헌데 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시간 내에 도착했다는 말에 안도한 소연은 상기된 얼굴을 애써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후우, 후. 그분들이요. 곧 준비가 될 터이니 천천히 오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하시던데요.”

말이 천천히 지, 가능한 늦게 오라는 뜻이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때아닌 날벼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천히 오라면 되려 빨리 가는 것이 동천인 것을 그들은 몰랐다. 가능한 빨리 가고 싶어서 조바심이 난 동천은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음, 좋다. 화정아, 오늘의 뜻깊은 수업은 이것으로 끝마치겠다.”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밖으로 나갔고, 화정이는 배운 것도 없는데 헛소리를 하는 주인님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다그닥! 다그닥!

일렬로 늘어선 다섯 대의 마차가 거친 황토를 내뿜으려 내달리고 있었다.

“…….”

그 가운데 네 번째로 달려가는 화려한 금빛 마차 안에서는 청초한 용모의 미녀가 수심에 잠긴 눈으로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서는 대조적으로 밝게 웃고 있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소홍, 나 배고파.”

밝아 보이는 여인이 보채듯 말하자 소홍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올 거야. 그때 내려서 먹기로 하자.”

“응! 알았어!”

고민이란 전혀 없어 보이는 여인이 신나 하며 소홍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그녀의 행동이 못마땅하게 보였는지 맞은 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삼십대의 사내가 한마디 언급했다.

“문영 아가씨. 앞으로 사람들의 앞에서 조신해야 함을 상기시키시고 어투와 행동에 신경을 써주십시오.”

문영은 샐쭉거렸다. 그녀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강소홍을 올려다보았다.

“소홍, 그래야 돼?”

그녀가 의견을 묻자 강소홍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렵겠지만 숭 당주의 말이 맞아. 사람들 앞에서는 항시 말을 아끼고 조용히 있는 것이 네 임무야.”

문영은 난감해했다.

“우웅… 나 그런 거 싫은데…….”

“그래?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나와 떨어져있게 되는데 그래도 싫어?”

화들짝 놀란 문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아니! 나 이제부터 조용히 있을게. 난 소홍과 떨어져 있는 게 제일 싫거든.”

소홍은 미소지었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쁘네. 나도 너와 떨어져 있는 게 제일 싫어.”

문영은 주인이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느끼며 기분 좋게 늘어졌다.

“에헤헤. 그럼 나 오늘까지만 평소대로 할래.”

해이해진 문영의 행동에 숭의겸(崇義兼)이란 사내가 단호하게 대처했다.

“안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하루를 더 늦추십니까. 이번 임무에 본문의 사활이 달렸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만!”

강소홍이 보기 드물게 차가운 목소리로 상대의 말을 끊었다. 가라앉은 그녀의 눈동자는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숭의겸을 응시했고, 숭의겸은 공연히 소문주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내심 움찔했다. 잠시 생각 후 그는 한 발 물러섰다.

“소신이 무례를 범했습니다.”

강소홍은 씁쓸히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 아니에요. 내가 너무 민감했을 뿐 숭 당주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어요.”

숭의겸은 깊게 상체를 숙여 읍을 했다.

“그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강소홍은 표정을 풀고 물었다.

“암흑마교에 도착하려면 며칠이나 남았지요?”

“보름 전후면 무난히 도착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강소홍은 여운이 남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름이라…….”

그런 그녀의 무릎 위에서 문영이 투정하듯 말했다.

“맨날 마차를 타고 다녀서 문영이는 싫어. 난 집에서 가만히 놀고 싶어.”

강소홍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문영아, 보름은 금방 이야. 몇 일 밤만 자고 나면 보름은 훌쩍 지나가.”

문영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 몇 일 밤이면 훌쩍 인데?”

강소홍은 조금 생각하는 척 하다 말했다.

“글쎄… 한 사 오일?”

그러자 문영이 믿지 않았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보름은 15일이니까 열 다섯 번을 자야지. 소홍은 그것도 몰라?”

제대로 한방 먹었다. 설마 문영의 머리가 이 정도까지 돌아갈 줄은 그녀 자신도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문영이 자신을 놀려먹은 듯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그녀의 앞날에 비하면 이런 것은 일도 아닌데 말이다. 되려 그녀는 오랜만에 마음껏 웃었다.

“호호호호!”

문영은 주인의 웃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어? 소홍은 그런 것도 모르는데 웃음이 나와?”

강소홍은 문영의 볼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그것 때문에 웃은 게 아니야.”

문영은 아프지 않았기에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럼?”

“음… 그러니까 문영이 네가 사랑스러워서 웃었어.”

이해 못한 문영이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

“우웅, 사랑스러우면 웃어야 해? 그럼 나도 웃을까?”

강소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괜찮아. 웃지 않아도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 아니까 공연히 웃을 필요는 없어. 알았지?”

문영은 밝게 말했다.

“응, 알았어!”

강소홍은 살짝 꼬집었던 문영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착하다.”

“에헤헤.”

문영은 기분 좋게 웃었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강소홍은 메말라진 듯 한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의미하게 중얼거렸다.

“착해…….”

그녀의 눈가는 천천히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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