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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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 2.
“그럼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음침한 용모의 사내가 일어나며 인사를 올리자 냉현이 살짝 미소하며 대답했다.
“음, 그렇게 하게.”
사내는 곧 밖으로 나갔고 잔잔히 흐르던 냉현의 미소는 문이 닫히자마자 싸늘하게 돌변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온 산관은 분위기가 냉랭하기 그지 없자 신중을 기해 물었다.
“소교주님. 저 자도 아니옵니까?”
냉현은 산관의 대답 대신 자신의 할말만을 했다.
“다음 녀석은 누구냐.”
차갑기 그지없는 소교주의 물음에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산관은 급히 지니고 있던 명단을 살펴본 뒤 말했다.
“다음은 황전각주(荒戰閣主)의 아들인 홍의관(洪意觀)이옵니다.”
산관의 대답을 듣고 난 냉현은 여전히 차갑게 내뱉었다.
“데려와.”
“존명!”
사부인 역천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동천은 그를 안내한 시비가 대문 앞에서 멈추자 의아하여 물었다.
“뭐냐?”
알다시피 왜 멈추었냐는 뜻이었다. 허리를 굽힌 시비는 급히 대답해주었다.
“소녀의 신분으로는 여기까지 밖에 안내해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동천은 시비의 위아래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진짜로 미천해 보이네?”
“…….”
동천은 시비의 자존심이 상하건 말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사부님이 나와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급히 달려가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의 부름을 받고 제자 동천이 왔사옵니다.”
이미 제자가 왔음을 알고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동원하여 뒷짐을 지고 서 있었던 역천은 현재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음, 그래. 내 일단 너를 부르긴 했으나 부른 이유를 일러주지 않아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사부님이십니다. 제자는 그 말씀처럼 궁금해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푸헤헤! 이 사부… 험험. 제자는 이 사부가 웃는 것을 보았는고?”
당연히 방정맞게 웃는 것을 보았지만 그렇게 묻는 의도를 파악했기에 동천은 능청맞게 딴소리를 해주었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제자는 근엄하신 사부님을 계속 보고있었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없으셨사옵니다.”
지극히 만족한 역천은 껄껄 웃었다.
“헐헐, 네 눈은 역시 정확하구나. 어쨌든 이 문제는 넘어가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간은 네가 오랜만에 돌아온 것을 배려하고자 적응기간을 두느라 자유롭게 놔두었지만 이제부터는 다시 수련을 쌓아야 하는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되기에 하루에 두시진 이상은 꼭 이 몸의 지도편달을 받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생각지도 못한 말씀이자 당황한 동천이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다.
“사부님, 이 제자가 미흡한 것은 사실이오나 아직까지는 혼자서도 잘 해낼 자신이 있사옵니다.”
역천은 정색을 하고 질책했다.
“어허! 무도에 있어서 미흡한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너는 자신의 미흡함을 알면서도 이 사부의 관심과 정성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이더냐!”
반박할 여지가 없자 동천으로서도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에이 씨! 이제 좋은 시절 다 간 건가?>
내심 푸념의 한숨을 내쉰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 제자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사옵니다. 오늘부터라도 당장에 가르침을 받고자 하겠사오니 사부님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역천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엥? 지금 당장?”
동천은 사부가 꺼려하는 눈치를 보이자 잽싸게 밀어 부쳤다.
“예, 사부님! 지금 당장!”
방금 전까지 자신의 관심과 정성을 외면한다느니 어쩌느니 했던 역천은 막상 제자가 가르침을 원하자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이를 어찌했으까이! 난 좀 있다가 얼굴 마사지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사부 체면에 마사지 문제를 거론하여 미룰 수도 없는 법. 잠시 갈등한 역천은 확인 차 다시 물었다.
“허, 험! 진짜 오늘부터 이 몸의 가르침을 받을 터이냐?”
당연히 그것을 원할 리가 없었다. 동천은 사부의 얼굴을 살펴보는 척 하다가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놓았다.
“혹시, 오늘 무슨 바쁘신 일이라도…….”
번쩍!
역천의 눈에서 광채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것 때문이니라! 내 안 가겠다고 안 가겠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이 몸의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만검문주가 오늘 당장에 들려달라고 하더구나! 아아, 내 너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만은 상황이 이렇게 여의치 않으니 어찌하겠느냐. 오늘은 글렀으니 제자는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기 바라노라. 알겠느냐?”
동천은 하루를 벌었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해주었다.
“예, 사부님. 선약이 되어 계신데 어찌 이 제자가 사부님의 가시는 길을 막아설 수 있겠사옵니까. 안심하시고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그래그래. 헐헐헐!”
역천 또한 안심하고 제 시간에 마사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 할 때 와서는 안될 인간이 어슬렁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한심이었다.
“얼레? 소전주님도 계셨네? 헤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저주 문구 복사 문제로 역천에게 두들겨 맞았다가 근래에 와서야 회복한 한심은 평소의 일상생활이 역천에게 맞는 것이기에 개의치 않고 붙임성 있게 다가왔다. 잠시 한심을 뚫어져라 쳐다본 동천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맞다. 본전에 저런 인간도 있었지?>
동천은 바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한 당주도 편히 지냈는가?”
한심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야 뭐 평소 그대로 잘 지내고 있었읍죠.”
그때 역천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었다.
“몰골을 보아하니 다 나았나 보네? 그래, 오늘은 무슨 이유로 왔니?”
한심은 넉살 좋게 말했다.
“헤헤, 이유가 있어야 오나요? 기냥 심심해서 들렸지.”
동천은 그런 한심에게 한마디 건넸다.
“자네는 친구도 없는가?”
한심은 자신 있게 말했다.
“옙! 없습니다!”
“…….”
너무도 자신감 있는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동천은 생각했다.
<자랑이다, 병신아…….>
동천은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친구를 사귀게나. 사내라면 적어도 진정한 친구가 한둘은 있어야하는 법이라네.”
그러는 동천도 친구가 없었지만 제 허물은 못 본다고, 자신은 켕기는 것 하나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어쨌든 한심은 미적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헤헤. 귀찮아서요.”
휘익! 퍽!
“켁―?”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날린 동천은 사부님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했다.
“아? 이런 실수를! 이보게, 괜찮은가?”
한심은 터진 입을 어루만지며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왜, 왜!”
“으음, 그게 말이지. 일부러 때린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 이것 참!”
동천이 난처해하자 그보다 약간 늦게 주먹을 들어올렸다가 손을 내렸던 역천은 제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바로 중재에 나서주었다.
“되었다. 천아는 한심을 위해서 진실 된 충고를 해주었건만 한심은 되려 화만 돋구게 만들었으니 맞아도 쌌느니라. 만일 이 몸의 제자가 너를 때리지 않았더라면 이 몸이 진작에 후려쳤을 것이니 한심 너는 깊이 명심하고 이제부터 진정한 친구를 찾기에 발벗고 나서길 바란다.”
“예예, 전주님.”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자신이 맞은 것에 불만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대처해야만 뒤끝이 깔끔했기에 한심은 잊기로 했다. 원래 그의 성격도 좋게 말하면 둥글둥글해서(나쁘게 말하면 병신) 마음속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훌훌 털고 일어난 뒤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역천과 동천이 뭐하는 짓인가 살펴보는데 검붉은 단환을 꺼내더니 꿀꺽 삼키는 것이 아닌가!
“어? 그것은?”
역천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놀람을 표하자 그것을 잘못 이해한 한심은 아까워하는 티를 내며 또 하나의 단환을 꺼내 디밀었다.
“쩝, 마지막 한 개인데 드실래요?”
역천은 휙 잡아챈 후 요리조리 살펴본 후 물었다.
“너 이 만편환은 어디서 났어.”
“아아, 그거요? 며칠 전 약전에 갔다가 탁자 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곤 제가 가져온 건데요.”
순간 이마에 핏대를 올린 역천은 경련이 일어나려는 얼굴을 애써 가라앉히며 물어보았다.
“누구의 것이며 어느 곳에 쓰일 것인지는 묻지도 않고?”
한심은 역천의 분노를 전혀 못 느꼈는지 웃는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헤헤, 당연히 물어봤죠. 그런데 다들 바쁘다며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데요? 그래서 가져와도 되는 건 줄 알고 가져왔죠.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아서… 악! 아악!”
퍽퍽퍽퍽!
“띱때꺄! 이 띱때꺄! 내가 그거 없어졌다고 이러는 줄 알아? 가져갔으면 장부에 기입이라도 했어야지! 너 이 자식아! 그런 거 누락해서 있는 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일 터지면 어떻게 할래? 엉?”
한심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어구구! 잘못 했슈! 제, 제가 생각이 짧았슈! 다음부터는 절반만 들고 갈… 크에―엑!”
매를 버는 한심이었다.
<에그. 주둥이나 닥치고 있었으면 방금 맞은 걸로 끝났을 텐데, 어째 하는 짓이 지 이름 그대로 한심할까?>
동천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두드려 맞던 한심은 결국 참다못해 잘못 했다며 줄행랑을 쳐버렸다. 말로는 거기 안 서냐고 역천이 소리쳤지만 알다시피 단순한 상하관계의 그들이 아니었기에 그것은 형식적이었을 뿐이었다. 사실 역천이 만편환 따위가 중요해서 구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혈귀옹과의 거짓 약속이 들통날 확률이 높았기에 옳다구나 한심을 내쫓은 것이었다.
“에잉! 도대체가 저놈은 제 아비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니까?”
손을 털며 다가오는 사부를 잠시동안 바라본 동천은 단환하니까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생각난 김에 사부님에게 점수를 좀 따보고자 했다.
“사부님, 이 제자가 뒤늦게 생각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인데 실은 몇 달 전에 문정으로부터 몇 개의 단환을 받게 되었사옵니다.”
역천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단환?”
“예, 사부님.”
동천의 이야기를 듣고 난 역천은 혼잣말하다시피 중얼거리며 물었다.
“가만있자. 문정이라면 장난으로 거두어들였다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냐?”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 제자에는 못 미치지만 조금 똘똘한 아이입니다.”
역천은 자못 감탄했다.
“호오? 네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라면 상당한 재질이 있는 아이인가 보구나. 헌데, 무슨 단환을 말하는 것이냐?”
동천은 신중한 자세를 보이며 슬그머니 말문을 열었다.
“바로 화리혈현단(火鯉血炫丹)입니다.”
역천은 바로 생각나지 않는 이름의 단환이자 구겨진 인상을 펴지 못했다.
“꽈리… 뭐?”
동천은 바로 잡아주었다.
“꽈리가 아니라 화리혈현단입니다.”
“아, 그러니까 꽈리고 파리고…… 컥? 지, 지금 화리혈현단이라고 했느냐?”
그제야 사부가 제대로 된 반응하자 기세를 탄 동천이 흥분 섞인 어투로 대답해주었다.
“예, 사부님. 바로 천년화리의 피를 주성분으로 하여 만든 것으로서 10년 정도의 내공증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그 화리혈현단입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역천은 침을 튀기기까지 하며 입을 놀렸다.
“오오오! 어찌하여 그것을 지니고 있음을 지금에야 가르쳐주는 것이더냐! 아니아니, 그건 둘째치고 지금 그 화리혈현단은 어디에 있지?”
예상했던 전개에 만족한 동천은 침착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사부님, 그것이 어디에 가는 것도 아니니 진정하시옵소서. 그것은 이 제자의 방에 잘 보관되어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얼른 가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맞는 말이자 역천도 자신이 너무 흥분해있음을 자각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 그럴까? 험험, 그 단환은 생각보다 귀중한 것이니 그러지 말고 이 사부와 함께 가자꾸나. 혹시라도 정보가 유출되어 불온한 무리들이 강탈해가면 큰일이니까 말이다.”
그럴 염려는 전혀 없었지만 동천으로서도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그럼 밖으로 나가 이 제자의 마차에 오르시지요.”
후다닥!
채신머리없게 말이 끝나자마자 급히 내달린 역천은 전혀 엉뚱한 생각을 했다.
<흐흐, 화리혈환단을 이 몸의 얼굴에 바르면 한 10년은 젊어지겠지? 푸헤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물론 화(火)의 성질이 강해서 중화시켜주는 약재와 함께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나 뭐라고 변명해도 참 쓸데없는 짓인 것만은 분명했다. 순식간에 마차에 오른 역천은 서둘러 뒤따라온 동천과 함께 암한문으로 떠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생각났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제자에게 물었다.
“가만 있자. 아까는 경황이 없어 묻다 말았다만, 어째서 그 귀한 단환의 존재를 이제야 이 사부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냐?”
순서대로라면 알려줬어도 진작에 알려줬어야 정상인데 지금에서야 가르쳐준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동천은 당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현명하신 사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화리혈현단은 불의 속성을 가진 단환입니다. 헌데 이 제자가 본의 아니게 주축으로 삼고있는 내공은 독공입니다. 화는 독을 태우는 성질이 있으니 그것을 제자가 복용한들 어찌 득을 볼 수 있겠사옵니까. 그리하여 이 제자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단환이었기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오늘 한 당주가 꺼내든 만편환으로 인하여 그것의 존재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동천의 이야기에 빠져든 역천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내려쳤다.
“옳거니! 세상의 이치가 바로 이와 같으니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구나!”
별로 수긍은 안 갔지만 동천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제자의 생각 또한 바로 그러합니다. 까마득히 잊혀졌던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인하여 기억이날 줄 어디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앞서 말했듯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니라. 그런데 그 녀석은 무슨 용한 재주가 있다고 그것을 구해왔다더냐?”
“그것을 말씀드리자면 조금 긴데, 그러니까 그 녀석을 장 할아버지께 맡기고…….”
암한문으로 가는 동안 자세히 설명을 해주던 동천은 거처에 다다를 즈음에 대충 건너뛰어 이야기를 마친 후 아무도 없는 집안으로 들어가 조그마한 옥합을 역천에게 건네주었다.
딸깍!
흥분감에 콧김까지 휘날리며 옥합을 열어본 역천은 붉으스름한 단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자 절로 감탄사를 내뿜었다.
“오오, 한 알도 아니고 두 알도 아니고 세 알도 아니고 네 알도 아니고 다섯 알도 아니고 자그마치 여섯 알이로구나!”
동천은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는 사부님께 건의를 올렸다.
“두 알씩 아가씨와 부교주님께 드리면 어떻겠는지요. 나머지 두 알은 사부님께서 복용하시고 말입니다.”
역천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자 똑똑하고 사려 깊은(?) 제자의 품성에 흐뭇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으헤헤, 역쉬 이 몸의 제자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다르도다!”
“과찬이십니다, 사부님.”
“껄껄, 그런데 그 분배의 방식이 좀 잘못된 듯 하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정작 구한 주인은 먹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아니죠. 안 그래도 지금 그것 땜시 화딱지가 나서 죽을 판인데.>
동천도 그 부분이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제자는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복용하지도 못할 단환에 미련을 가져서야 되겠는지요.”
역천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아, 네가 성품이 이리도 착하여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심히 걱정스럽다 만은 세상의 모든 기운들과 물질들에는 다 상극이 있기 마련이고 이 상극들을 또 중화시켜주는 물질들과 기운들이 있기에 이 천하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너는 아느냐? 음, 물론 모르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겠지? 사랑스런 제자야 잘 듣거라. 화리혈환단은 불의 기운이다. 불의 기운은 물의 기운과 상극. 그렇다면 불과 물의 중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조금 야릇한 기분을 느낀 동천이었지만 일단 대답부터 했다.
“토(土)와 금(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역천은 진지해진 어투로 말했다.
“그렇다. 허나, 상생(相生)이 있다면 상극(相剋)도 있는 법. 예컨대 목생화의 이치. 즉, 나무가 불을 생 하는 이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목극화의 이치인 나무가 불을 극하는 이치도 있고, 또 금극목의 이치로서 쇠가 나무를 극하는 이치도 있지만 금생목의 이치인 쇠가 나무를 생하는 이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세한 이야기로 파고들자면 이런 자리에서는 불가능하니 오늘은 그냥 그런 정도만을 알아두거라. 험,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이 화리혈환단 또한 그러해서 토와 금의 기운이 성한 약재나 단환. 혹은 화와 상극인 독을 적절히 섞어 복용하면 충분히 네 진기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내공을 늘릴 수가 있다는 말이니라.”
“예에?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깜짝 놀란 동천이 목소리를 높이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역천이 대답해주었다.
“푸헤헤, 네가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로구나. 혹여, 이 사부가 거짓부렁이라도 했을까봐 싶어 그러느냐?”
“…….”
농담까지 섞어 말한 역천은 제자가 아무 말도 않자 조금 시큰둥해져서 다음으로 넘어갔다.
“뭐 어쨌든 아가씨께서는 한참 성장해야할 시기이니 예정대로 두 개를 드리고, 이 몸과 부교주님은 그렇게까지 필요가 없으니 각각 한 개씩 복용. 음,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네가 복용하면 되겠구나. 어떠냐. 이만하면 딱이겠지?”
“…….”
황당해진 동천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는데 그것을 이상히 여긴 역천은 제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으잉?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느냐?”
“아?”
드디어 정신을 차린 동천은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부님. 이 제자는 잘 알아들었사옵니다.”
역천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헐헐, 네가 잘 알아들었다니 이 사부 또한 기쁘구나.”
“당연한 것을 가지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공손하게 대답한 동천은 그나마 먹을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막상 여섯 개 중에 두 개만 돌아온다고 생각하자 분통이 터지고 억울했다. 상극의 중화라는 사전지식을 진작에 알아두었더라면 자기 혼자 꿀꺽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 볼일이 있어 급히 가봐야 하니 오늘까지만 푹 쉬고 내일 오후쯤에 알아서 찾아오너라. 알겠느냐?”
“예, 사부님.”
대답을 마친 동천은 생각했다.
<흐미……. 좃됐다.>
그저 울고만 싶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