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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73화


#62

“아하! 그런 것 때문에 저한테 온 거예요? 호호호! 맡겨 두시라! 이 수련이 나서는 길에 그 누가 걸리적거릴 소냐!”

다름 아닌 수련을 찾은 것이다. 소연은 흥분하여 소리치는 동생의 모습에 때아닌 후회 비슷한 감정이 모락모락 솟아올랐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대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은 있는 거니?”

수련이 처음에 자신 없어 하는 일이란 극히 드물었다.

“그럼요! 맘 푹 놓고 제게 다 맡겨두세요. 이래봐도 저 어렸을 적에 닭도 키우고 오리도 키우고 돼지까지 키워봤다니까요?”

소연은 겨우 그따위 것을 키워놓고 뒤돌아보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이자 식은땀을 삐질 흘리고야 말았다.

“아니, 그런 거 키우는 거랑 좀 다를 텐데…….”

그녀의 계속되는 걱정과는 달리 수련은 자신감 그 자체였다.

“다르긴 뭐가 달라요? 그저 예로부터 말 안 듣는 놈은 굶기면 다 고분고분해지게 되어있어요. 두고보라구요, 확실하게 훈련시켜 놔 줄 테니까. 헤헤!”

만일 그런 짓을 했다가는 주인님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소연은 생각했다. 귀신에 홀려서 데려온 녀석이라고 평소에 뉘 집 물건을 취급하듯 호연화를 대하는 동천이었지만 속으로는 지극히 아끼고 있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수련아, 다른 건 몰라도 굶기는 건 안 하면 안 될까?”

수련은 의아한 눈을 했다.

“왜요?”

소연은 나름대로 조리 있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으음, 뭐랄까. 네 순진하고 맑은 성격으로 볼 때 그건 좀 잔인하잖아. 그리고 주인님도 굶기면서까지 훈련시킬 생각이 없으시고 말야. 생각해봐. 주인님이라고 굶기는 방법을 생각해보시지 않으셨겠어?”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순진하고 맑은 성격 부분에서는 절로 고개가 다 끄덕여질 정도였다.

‘그건 그래. 평소에 나는 순진하고 맑은 성격을 빼면 시체라고 어렸을 적부터 누누이 들어왔으니까. 우웅, 하지만 말 안 듣는 녀석은 굶기는 게 진짜 제일인데…….’

이상과 실리를 좌우 양쪽에 놓고 저울질을 한 그녀는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했다.

“쳇, 까다로운 녀석! 알았어요. 그럼 다른 거라도 챙겨오죠, 뭐.”

말보다 행동이 빠른 수련은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 소연은 식어 가는 중의 차를 마시며 동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고 말이다.

“에휴, 수련이라면 다른 계통의 조련사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까지 꼬인 건지 원…….”

다른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수련에게 물으러 왔다가 그녀의 집중적인 질문세례에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된 것은 바로 그녀였으니까. 한마디로 그녀는 바깥나들이를 벼르고 또 벼르고있던 수련에게 딱 맞춰서 등장한 구원의 손길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생각해보니까 이곳은 여전히 변한 곳이 없네? 가구들의 배치하며 전체적인 분위기하며, 용케도 몇 년을 그대로 보존해놨잖아?”

마치 주인님의 방을 몇 년간 보존해놨던 자신과 같다고 말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켈켈, 고년은 천상 게을러서 건드리지 않았던 것 뿐 별거 없느니라.”

놀란 소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꾸부정한 허리에 검푸른 용두괴장을 지팡이 삼아 걸어오는 추한 몰골의 노파를 발견하곤 급히 인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천한 소녀가 태상림주님을 뵈옵니다.”

그렇다. 상대는 다름 아닌 동천이 사정화 다음으로 껄끄러워하는 요림(妖林)의 전 림주 청목신장(靑木神張) 정원(鄭元)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정원은 예의 그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연을 아는 척했다.

“켈켈켈! 누군가 했더니 약 소전주의 시녀로군.”

소연은 약간(?) 정신나간 노파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정원이 자신을 알아보자 내심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야 먹고살려면 한번 본 윗분들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야 했지만 이와 반대의 부류들은 입장이 달랐기에 아랫것들을 쉬이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몇 번을 오고가며 뵙긴 했지만 그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야? 우와, 역시 높은 자리에는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녀가 남몰래 감탄하고 있을 때 정원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용무로 찾아온 게지? 혹시, 저 위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수련이 때문인 게냐?”

아마도 정원은 이층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수련의 낌새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그녀 정도의 고수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예에, 암한문에 놀러가기 전에 무언가를 준비하고 내려오겠다기에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돌연 정원은 웃었다.

“켈켈켈! 저년은 성질이 불같아서 글렀어. 불같기만 하면 그나마 써먹을 수 있는데 문제는 그 불이 너무 쉽게 식어버린다는 것이지. 써먹을 데라곤 음식하고 방 청소 뿐이야. 켈켈켈켈!”

정원의 웃음소리는 확실히 귀에 거슬렸다. 옛날에 소연은 주인님의 낙서장을 들추었다가 ‘중원을 위해서는 꼭 뒈져야할 인물들 10선.’ 이라는 명단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첫째가 황룡미미였고 두 번째가 바로 정원이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치기 어린 장난으로 적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와 새삼 정원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자 주인님이 그렇게 적을 만도 했다고 내심 수긍하게 되었다.

“송구스러운 말씀이오나 그래도 애초에 가정 일을 시키려고 데려온 아이이니 훌륭하게 맡은 바 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정원은 수련을 변호해주는 소연에게 주름진 눈가를 옮겼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이곳에 붙어있지. 요림이었으면 당장에 족쳐서 내다 버렸을 걸? 켈켈켈!”

“아, 예에.”

왠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며 피하는데 정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골격도 제법 잡히고 쓸만해 보이는구나. 켈켈, 독살부부가 그럭저럭 잘 가르친 모양이야?”

소연은 순간 흠칫했다. 안 그래도 만독문에 관련되었던 예전의 일로 가끔씩 혼자 두려움에 떠는 그녀였는데 아수마전에 관련된 인물이 아니라 뜻밖의 인물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게되자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 그, 그 무슨…….”

정원은 실실거리며 빈정대듯 말했다.

“이년, 이년 놀라는 것 좀 보게? 켈켈, 지은 죄라도 있는 모양이지? 켈켈켈!”

당황한 소연은 입이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기분 나쁜 눈초리로 살펴보던 정원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흘흘, 장난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지. 그것보다 네년을 보아 하니 대강 틀은 잡힌 듯 하구나. 어떠냐. 고달픈 시녀의 일 따윈 그만두고 요림에서 생활해보는 것이.”

놀란 소연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네에? 요림이요?”

정원은 여전히 웃음을 흘렸다.

“켈켈, 놀라긴 제기랄. 네년은 두 마디 말 중에 한마디는 꼭 놀라느라 정신이 없구나. 그렇다. 재능이 있으면 꽃을 피워야지. 보아하니 소문주의 성격에 치여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줌은 물론 기본을 건너뛰고 바로 일선에 투입해주마. 켈켈켈! 구미가 당기지?”

별로 안 당겼다.

“아, 아뇨. 전 이대로가 좋아요. 만족해요.”

그러자 정원은 얼굴을 굳혔다. 하찮은 시녀 따위가 자신의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대로가 좋아? 만족?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겁에 질린 소연은 새하얗게 물든 얼굴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소, 소녀는… 허, 헛소리를 한 적이…….”

“갈! 그 말을 누가 믿는단 말이냐!”

분위기에 앞도 당한 소연이 벌벌 떠는데 섬세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거실로 들어섰다.

“할멈, 만족한다고 하잖아.”

흠칫한 정원은 신형을 돌렸고 사정화를 발견한 그녀는 언제 진노를 했냐는 듯 풀어진 모습으로 아가씨를 대했다.

“켈켈, 기척도 없이 소신에게 다가오실 정도라니. 나날이 일취월장하시는 모습이 대견스러울 다름입니다.”

사정화는 아미를 약간 찌푸렸다.

“할멈에게 대견스러워 해달라고 한 적 없어.”

상당히 무시하는 발언이었지만 정원은 오래 묵은 생강답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나치게 나섰다면 소신이 사죄를 드리지요. 켈켈켈.”

정원의 마지막 웃음소리로 퍼득 정신을 차린 소연은 급히 사정화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녀가 아가씨를 뵈옵니다.”

사정화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음, 그래.”

그것으로 끝이자 잠시 서먹해진 소연은 올라간 애가 왜 여태껏 내려오지 않는지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아, 미안미안! 오래 기다렸죠? 언젠가 위층에서 본 채찍을 찾느라 애를 좀 먹었어요. 어? 청목 할머니는 막 떠드는 소리가 들려서 온 줄은 알았는데 아가씨까지 오셨을 줄은 몰랐네요?”

정원은 실소하듯 말했다.

“고년 말 싹수는 여전하구나. 켈켈.”

수련은 대뜸 못 마뜩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싹수가 뭐예요, 싹수가. 저처럼 순진하고 맑은 성격의 싹수도 봤어요?”

정원은 이게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나 했다.

“떽! 발랑 까진 년 같으니라고. 지년 됨됨이를 알아야지!”

“뭐예요? 발랑 까진 년? 지금 말 다 했어요?”

어느 한쪽도 굽힐 생각이 없는 것 같자 사정화가 조용히 말했다.

“시끄러워.”

그리고 그것으로 주위는 평정되었다.

“에에……, 호호! 아가씨도 참.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움에 입씨름 좀 해본 거예요. 그렇죠, 청목 할머니? 호호호!”

수련은 참으로 재치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원이 전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잠시 휴전상태가 성립되었다.

“켈켈, 고년 참.”

“에헤헤!”

사정화는 실없이 웃는 수련에게 물었다.

“그 손에 들린 채찍은 뭐지?”

수련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나서야 뒤늦게 반응했다.

“아아, 이거요? 동천의 애완용 고양이가 하도 말썽을 피운다기에 제가 좀 훈련을 시켜주려고 들고 가는 거예요. 호호, 자고로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잖아요.”

잠시 한심하다는 눈으로 수련을 바라본 사정화는 채찍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물었다.

“난 그런 걸 한번도 내 집에서 구경해본 적이 없는데 어디에서 난거지?”

수련은 안 그래도 채찍을 찾느라 애먹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인상을 씀과 동시에 한 손을 허리에 턱 걸치고 채찍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말도 마세요. 청목 할머니의 방에서 찾았는데 어쩜 그렇게 꽁꽁 숨겨놓았는지 하마터면 이거 찾다가 날 샐 뻔했다니까요?”

이렇게 되자 사정화의 시선이 정원에게로 옮겨졌다.

“할멈 거였어?”

정원은 숨길 일도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

“켈켈, 소신이 젊었을 적에 잠깐 애용했던 채찍입니다. 저게 상당히 무뎌 보여도 사내놈들 수십은 그 채찍을 거쳐갔을 겝니다. 켈켈켈!”

“…….”

정원은 즐거웠던 옛 생각이 떠오르는지 웃음을 그치지 않았고, 나머지 세 소녀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수련은 수련이었던지 제일 먼저 말문을 터트렸다.

“어머, 망측해라. 할머니가 예전에 그런 취미가 있었단 말예요?”

정원은 그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을 했다.

“켈켈, 고년 생각하는 게 꼭 팥알 없는 찐빵 같구나. 그런 소리가 아니라 강호에 나가 사내들 수십은 그걸로 죽여봤다는 소리니라. 중간에 채찍은 궁합이 안 맞아 잡동사니 물품함에 처박아 놓았던 것이고. 켈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이년아.”

“치이!”

수련은 창피했던지 샐쭉해진 입을 다물었고 그런 수련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소연은 남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서 중간은 간 것이다.

“저어, 시간이 많이 지체된 듯 한데 수련과 함께 먼저 가도 되겠는지요.”

말이 지체되었지 사실은 암한문에서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주인님의 성격에 최고의 조련사를 데려온다 해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니, 지금 그녀가 걱정하고 있는 정도가 어떠할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 맞다. 아가씨 저 잠시 언니를 따라가서 놀다와도 되죠?”

사정화는 소연과 수련을 번갈아 보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물론이야. 단, 연운팔식(煙雲八式)을 완벽히 시전하면 가도 돼.”

수련은 좋다가 말았다.

“예엑? 그, 그걸 왜 이런 자리에서 하라고 하세요? 전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언니를 따라가려는 건데, 다른 사람도 아닌 아가씨께서 그런 말씀으로 제 앞길을 막으시다니! 흑, 너무하세요.”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처롭게 말했지만 사정화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연운팔식은 일류로 진입하기 위한 기초적인 검술이야. 못하겠다면 할멈이 온 김에 개인지도나 받도록 해. 쓸데없이 동천의 의미 없는 짓거리에 장단이나 맞출 생각말고.”

잠시 갈등하던 수련은 한숨을 내쉬며 아가씨의 명에 따랐다.

“에휴! 알았어요. 하면 될 거 아니에요. 맨손으로 해도 되죠?”

사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씨의 허락에 기본 자세를 곧추 잡은 수련은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일식! 성초등환(星初登煥)! 이식! 연환수초(連環水招)! 삼식! 사식! 에잇! 에잇!”

수련은 초식을 휘날리며 온 방안을 헤집다시피 다녔고 이를 옆에서 지켜본 소연은 생각했다.

‘장난하나…….’

소연조차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고수들의 눈에 수련의 행동이 어떻게 비쳤겠는가. 표정을 완전히 지워버린 사정화는 돌아서 나가며 차갑게 말했다.

“할멈에게 기초부터 다시 배워.”

수련은 화들짝 놀랐다.

“예에? 아직 육식까지 밖에 안 했는데요? 적어도 끝까지는 보시고 평가를 해주셔야……, 아, 알았어요. 기초부터 다시 배울게요. 호호, 아가씨도 참. 배우면 되잖아요. 배우면.”

사정화는 수련의 항의를 무서운 눈초리 한번으로 잠재운 것이다.

“켈켈! 쌤통이다, 요년아.”

꿀밤을 한 대 내려친 정원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를 드러냈고, 아프다고 반항하다 곱절인 두 대를 더 맞게 된 수련은 징징 짜며 이층으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결국 소연은 성과도 없이 시간만 날리게 된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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