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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82화


#71

마차를 몰아 문영과 함께 약왕전에 당도한 그녀는 역천의 시비 중 하나인 매향에게서 연회에 가신 뒤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계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난감해진 소홍은 물었다.

“언제 오시는 지는 알 길이 없느냐?”

매향은 참으로 죄송해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에, 송구하오나 주도(酒道)를 같이 즐기시는 만검전주님과 함께 가셨으니 아직도 연회를 즐기시고 계시리라 봅니다.”

약왕전의 의술을 견식 해보고자 왔다는 핑계를 빌미로 파양호의 살수에 관하여 물어보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일이 틀어지자 그녀는 난감해했다. 매향은 고민하는 강소홍의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여겼는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소전주님이시라면 만나 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약왕전의 소전주라면 그녀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냉현과 더불어 암흑마교 이대 소악마라고 불리는 자라고 말이다. 항간에는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냉현보다 잔인함의 정도가 뒤쳐지지 않는다고 소문이 자자한 동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냉현의 반응 때문에 한번 만나볼 생각은 있으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더욱 급했기에 강소홍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글쎄에……. 약왕전의 의술과 처방 수준을 견식하기 위해 온 것이라서 말이다.”

아무래도 소전주라면 한참 모자라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매향은 언젠가 역천이 지나가는 말로 동천이 의술은 아직 멀었으나 암기실력만큼은 대단하여 거의 모든 약재들을 꿰뚫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소전주가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절대로 허튼 짓을 안 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주저 없이 동천을 내세울 수가 있었다.

“다른 것은 자신할 수 없으나 의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다방면에서는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시고 계십니다. 허나, 꼭 그분이 아니더라도 이 공자님이나 부전주님을 만나 뵈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매향이의 설명에 소홍은 그나마 부전주라는 인물이 마음에 끌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화상대로는 젊은 쪽이 더 편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녀는 일단 소전주라는 인물이 정말로 냉현만큼 싸가지가 없는지, 또 그에게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만일 동천에게서 소득이 없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뒤에 만나 보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다. 네가 그리도 자랑이 대단하니 내 한번 소전주님을 만나 뵈어봐야겠구나.”

매향은 안도하며 대답했다.

“소녀를 믿어주셔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해서 암한문에 당도한 강소홍은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온 소연에 의해 안으로 모셔졌다. 소연은 강소홍의 인상이 차분하고 미색이 뛰어난 동시에 부드러운 분위기까지 풍겨 나오자 마치 오랫동안 얼굴을 맞댄 사이처럼 부담 없이 동천을 대하듯 그녀를 그렇게 대했다. 그녀 또한 소연의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감지하지 못했고 말이다.

“주인님께서는 적룡등천각에 가셨는데 만나 뵙지 못하셨어요?”

접견실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신 강소홍은 계속되는 허탕에 내심 곤혹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꾸했다.

“아쉽게도 그렇구나. 나는 어제 저녁에 나와 내 거처로 돌아갔단다.”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된 소연은 말했다.

“아? 그렇다면 곧 돌아오실 거예요. 어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회에 참석하시지 못하신 것을 아쉬워한 주인님께서 오늘 아침에 나가시며 소문주님을 꼭 한번 뵙고 돌아오시겠다고 했거든요.”

강소홍은 눈을 크게 떴다.

“나를?”

소연은 이상한 오해 말라는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호호, 네. 인사라도 드릴 겸 모두들 궁금해하는 소문주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어요.”

소홍은 자신을 만나는 목적이 그저 호기심의 충족이자 그런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차후에 다시 오거나 소전주께서 찾아오시면 만나 뵙는 것이 좋겠다.”

소연은 생각 외의 상황이었는지 놀라했다.

“벌써 가시려고요?”

소홍은 대답했다.

“마냥 기다릴 수야 없지 않느냐.”

맞는 말이었다. 사실 소연의 입장으로서도 주인님이 빨리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손님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 그건 그렇죠.”

소연까지 수긍한 마당에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생각이 없어졌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녀는 창가 쪽에서 미세한 기척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가기로 한 소홍이 창가 쪽을 바라보자 당연히 소연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저 바깥 풍경만이 가득한 그곳에 잠시 후 순백색의 작은 동물이 뛰어 올라와 앉았다.

“야옹∼.”

“아, 연화야.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이리와.”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가볍게 뛰어오른 연화가 소연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어머나. 귀여운 고양이구나.”

소홍도 천상 여자였는지 귀여운 동물을 대하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소연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연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설산묘화래요. 주인님께서 바깥에서 구해오신 녀석인데, 아마도 배가 고파서 먹을 걸 달라고 저를 쫓아왔나 봐요.”

소홍은 말로만 듣던 영물이자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이게 간혹 설산에서만 보인다는 그 설산묘화라고?”

“네, 맞아요. 뭐더라? 아! 이 녀석의 어미들이 만년옥과를 먹어서 새끼로 태어난 얘가 크면 동족에 비해서 월등한 힘을 자랑할 거래요.”

소홍은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만년옥과라면 단숨에 일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높일 수 있는 영과(靈果)인데 그것을 설산묘화가 먹었다니!”

말하는 투로 보아 자신이 놓친 영과도 아닌데 짐승이 먹었다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는 눈치였다. 딱히 대답해 줄 말이 없었던 소연은 그저 웃기만 했고 말이다.

“호호, 뭐…….”

소홍은 귀엽기만 한 저 설산묘화가 나중에 크면 맹수들도 꼬리를 마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신기함을 금치 못했다.

“내가 좀 안아봐도 될까?”

소연은 흔쾌히 허락하며 당부했다.

“물론이에요. 헌데, 얘는 가슴에 안기는 걸 싫어하니까 그냥 어깨 위에 놓고 쓰다듬거나 예뻐만 해주세요. 간혹 화정이가 가슴에 안기는 하는데 바로 도망을 치고, 그나마 주인님께서 안을 때만 가만히 있는 정도거든요.”

손을 내밀어 건너오는 다리를 만들어 준 소홍은 쪼르르 타고 건너온 연화를 바라보았다. 하얀색과 대비되는 연화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흑요석을 연상하는 듯 했다.

“소전주님의 가슴에만 안긴다니, 이 녀석이 주인을 가리는 듯 하는구나.”

소연은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원체 야생의 습관이 강한 녀석이라서 잘 따른 다기보다는 친구나 동료로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소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훌쩍 뛰어오른 연화는 강소홍의 머리 위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자리를 잡았다. 소홍은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간 것도 모자라 하품까지 해대는 연화의 행동에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혹시, 가만히 놔두면 내 머리 위에서 그냥 자는 것은 아니겠지?”

소연은 웃으며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럼요, 호호. 밥 달라고 저러는 거예요. 일종의 시위라고나 할까요?”

소홍은 자신의 머리가 시위의 장소가 된 것에 대해서 딱히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연화를 조심스럽게 보듬어 소연에게 건네준 그녀는 말했다.

“어서 먹이나 줘. 배고픈 게 제일 서러운 거니까.”

소연은 장난조로 걸고 넘어졌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근데, 마치 많이 굶어보신 듯 말씀하시네요?”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 강소홍은 굶주리던 그때의 시절이 선명 하자 착잡한 미소를 떠올렸다.

“어렸을 적에 조금 굶어 봤단다.”

소연은 뒤늦게 아픈 상처를 건드렸음을 깨닫고 바로 사죄를 올렸다.

“아? 죄송합니다. 소녀가 너무 무례했던 것은 아닌지요.”

강소홍은 잔잔하게 미소했다.

“음, 괜찮아. 그건 그렇고, 수하를 보면 그 주인의 성품을 알 수 있다고들 말하지. 네 마음가짐을 놓고 본다면 분명 소전주님의 소문 또한 좋은 쪽으로 흘렀어야 정상인데 어째서 그 반대의 소문이 퍼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구나.”

소연은 안고있던 연화가 그녀의 어깨 위로 도망가는 가운데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주인님께서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시는 분이 맞긴 맞아요. 하지만 주먹이 앞섰다고 해서 잔인한 짓을 하시거나 시기와 질투심 따위를 앞세우지는 않아요. 아직도 순수한 면이 많이 남아있고 드러내길 꺼려하시지만 가슴까지 따듯하신 분이에요. 어쩌다 보니 소교주님과 비교의 대상이 되었을 뿐 조사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인님으로 인해 죽거나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따스함이 물씬 풍겨 나오자 강소홍은 눈앞의 이 소녀가 소전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대충 눈치챌 수가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지는걸? 이 아이를 사랑의 포로로 잡아둔 그 소전주라는 자가.’

흥미가 동한 그녀는 이렇게 된 마당에 기다리는 데까지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무리 대단한 살수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있다고 해도 문영과 함께 있는 한 쉽사리 당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도 한몫 했고 말이다.

“네 말을 듣고 나니, 다 헛소문인 듯 싶구나. 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지 소전주님을 한번 뵙고 떠날 것이니 너는 그 연화라는 설묘에게 먹이를 먹이고 오너라.”

소연은 놀라했다.

“예? 하지만 소녀가 어찌 귀한 분을 모셔놓고 감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소홍은 개의치 않았다.

“괜찮아. 나는 여기 문영이와 같이 있으면 충분히 지루하지가 않으니까.”

그녀가 쉽사리 고집을 꺾을 것 같지 않자 소연은 마주치기보다는 우회로를 택했다.

“정히 그러시다면 소녀가 먹이만 주고 바로 오겠습니다. 얘가 요새 식성이 좀 까다로워져서 신선한 생고기가 아니면 입에 대려고도 하지 않거든요.”

소홍은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밝게 웃어주었다.

“천천히 먹이고 오너라. 때마침 나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곧이곧대로 믿은 소연은 잘 되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둘러 연화의 먹이를 먹이기 위해 물러갔다. 나직이 웃음 짓던 강소홍은 표정을 바꾸어 인상을 찌푸렸고 말이다.

“후우! 과연 그자가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인지, 새삼 의심스럽긴 하구나.”

그녀는 제발 자신의 기다림에 가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 짜증나!”

암한문으로 되돌아오는 중인 동천은 마차 안에서 연방 짜증 짜증을 외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적룡등천각을 거쳐 돌아가는데 혈각(血閣)의 각주인 혈수(血手) 초무강(肖武强)과 마주쳤던 것이다.

“도대체가 할 말도 없으면서 난데없이 낮술은 왜 마시자는 거야?”

지금 그는 술 상대가 없으니 한잔 기울이고 가라는 초무강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주뼛거리며 몇 잔을 받아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나마 강소홍에게 위험을 알리고 돌아오는 길이라서 여유가 있었지, 그것도 아니었더라면 그의 성격에 다급해서 미치고 환장했을 것이 분명했다.

“음, 그래도 이 몸의 거지 연기가 참으로 일품이었단 말야? 하하, 난 정말 뭘 해도 뛰어나니 미치겠네?”

거지로 분장하여 서찰을 건네 준 자신의 연기가 새삼 마음에 들었던지, 그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초무강의 일을 사그리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연기를 잘하던 말던 세상을 다 산 얼굴을 하고있는 문사의 얼굴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내 나이 이제 갓 서른 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었다. 훗, 그나마 가정을 두지 않아 천만 다행이로구나. 잘 가라, 나의 청춘아!’

무슨 소리인고 하니, 동천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던 문사가 마음에 걸렸는지 이참에 그를 자신의 수하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문사는 그가 소속된 곳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던 만큼 그를 빼내오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웠다. 문사가 소속된 곳에서는 공연히 동천의 눈밖에 나고싶지 않았기에 그를 데려가는 것을 바로 허락했고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까 아직 저놈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어이, 방명록 담당! 니 이름이 뭐지?”

실의에 차있던 문사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대답했다.

“펴, 평초(萍草)라고 합니다.”

희한한 이름에 동천이 약간 반응을 보였다.

“잉? 개구리밥? 누가 사람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냐? 참나, 이 몸 같으면 부평초(浮萍草)라고 지었을 텐데.”

그거나 이거나 같은 뜻이었다.

“…….”

동천은 그가 대답이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마음에 안 들어?”

평초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음에 안 들다니요! 소신은 그저 진작에 그 이름이었다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을 텐데……, 하며 한탄하고 있었습니다요!”

동천은 대번에 싱글벙글했다.

“오오,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안 그래도 이 몸이 한 때 작명소를 차려볼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득보다는 실이 많더군. 한창 잘 나갈 때였는데, 어느 날 미미년이 이 몸을 부르더니 남만산 흑고양이의 이름을 지어보라는 거야. 그래서 흑묘가 어떠냐고 했더니 장난 하냐며 이 몸을 패대? 아, 시팔! 그때 맞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지!”

동천은 대번에 웃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금새 화를 냈고, 평초는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편하게 살는지 그것이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그 미미라는 분이 아주 질 낮은 분이셨군요?”

“바로 그거야! 잘난 것은 부모인데, 지가 연꽃 속에서 태어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고 외쳤던 인물인 줄 안다니까?”

“예에…….”

지껄이는 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대답할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어느새 마차는 암한문에 당도했다.

“아, 좋다! 역시, 내 집이 최고라니까?”

마차에서 내려 기분 좋게 걸어가던 동천은 누군가 뒤따라오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 넌 왜 이 몸을 따라 오냐?”

평초는 굽실거리며 말했다.

“그게 소인의 거처를 알지 못하여…….”

그러고 보니 그 문제가 있었다. 훗날에 어떻게 처우할지는 몰라도 기밀유지 상 당장에는 곁에서 지켜봐야 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게 또 그러네? 가만 있자. 너 잘하는 게 뭐냐?”

평초는 대답을 잘 하지 않으면 이상한 곳에 배치될지도 몰랐기에 신중하게 생각해서 입으로 내뱉었다.

“에에, 소인은 글을 좀 읽고 쓸 줄 알며, 손님 접대에도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습니다.”

동천은 그가 방명록을 적고 있었으므로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 이 몸의 집 앞에서 방명록이나 적을래?”

특별한 날이라면 모를까 방명록을 적는 일은 누구든지 꺼려하는 작업이었다. 문 앞에서 방문객을 계속 기다려야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깥에서만 죽치고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평초는 진땀을 흘려가며 말했다.

“소, 소전주님! 방명록은 특별한 날에 손님을 초대할 적에나 작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평일에도 그런 것을 작성한다면 사람들은 감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금새 좋지 않은 소문들이 떠돌아다닐 것이 분명합니다. 부디, 고려해주십시오!”

동천은 귀가 좀 얇은 탓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또 그러네? 음, 그럼 뭐가 좋을라나?”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동천은 이내 결단을 내렸다.

“아! 손님 접대에 일가견이 있다고 했지?”

평초는 방명록 작성의 일이 물 건너가자 안도하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그래. 그럼 접견실의 손님을 받는 것은 어떠냐? 이 몸은 집사 따위는 필요 없어서 안 두고 있지만 몇 달 정도 지켜봐서 잘 하는 듯 보이면 집사로 승격시켜줄게. 어때?”

위험부담이 크지만 서도 물품관리를 맡았던 예전의 일에 비하면 상당한 출세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보통 신분도 아닌 약왕전 소전주의 집사라면 여타의 같은 집사들과 격이 다른 것이다.

“아? 맡겨만 주십시오! 소인, 뼈가 가루가 되도록 봉사하겠나이다!”

옆에서 말없이 눈치만 보던 방삼은 그러다가 진짜로 뼛가루 되도록 얻어맞는 날이 올 것이라며 내심 혀를 찼고, 마냥 흥분에 들뜬 평초의 보직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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