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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83화


#72

“자네, 그 의지가 마음에 드는군! 하하, 좋았어. 내 특별히 자네가 앞으로 일할 접견실이 어디인지 그 길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따라오게!”

어느새 말투까지 달리한 동천은 방삼에게 앞장서라는 눈치를 주었다. 안내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대기하고 있었던 방삼은 당황하지 않고 접견실로 앞장을 섰다.

“여기는 하인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고, 저기는 의생들이 가끔 쉬는 곳이지. 그리고 또 저기는…….”

접견실로 걸어가며 친절하게 지나치는 곳들의 쓰임새를 가르쳐준 동천은 어느 지점에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긴 이 몸의 개인 약재실……. 어라? 누가 들어가 있나?”

문은 닫혀 있었지만 감지력으로 안에 사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엔 아무도 열 수 없는 곳인데 누가 들어가 있자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씨! 언놈이 이 몸의 약재를 빼돌리는 거 아냐?”

정확히 말하자면 언놈들이었다.

“너희들 말야, 여기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전혀 관계도 없는 자들에게 으름장을 놓은 동천은 상당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자연스레 방삼과 평초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예에, 소전주님.”

화가 나있던 것과는 달리, 동천은 살며시 약재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약재를 빼돌리는 현장을 목격하려는 것이다. 기척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간 내부는 대체적으로 서늘하고 어두운 편이었는데 약재 보관장(保管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있는 탓에 좀더 들어가 봐야 상대편을 확실하게 볼 수 있을 듯 싶었다.

‘이런 잡것들! 걸리기만 해봐라. 아주 요절을 내줄 테다!’

내심 이를 갈며 안으로 다가갈 때였다. 갑자기 앞쪽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눈부신 속도로 다가와 그의 등뒤를 점하는 것이 아닌가! 암한문 내의 하인들인 줄 알고 방심했다가 기겁을 한 동천은 몸을 돌려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을 포기하고 오히려 앞쪽으로 튀어나갔다. 그쪽이 현재의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대들을 양쪽에 놓고 대치하게된 동천은 뜻밖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누구시죠?”

생각지도 못한 고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파장이 되어 동천의 귓가를 때렸다. 자신을 공격하듯 다가왔던 쪽과는 정 반대 쪽에서 들린 목소리였다. 동천은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뒤 대꾸했다.

“그러는 낭자는 누구십니까?”

두근두근!

그는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또, 똑같다! 그때의 예지몽과 상황이 똑같아! 만일 이 다음에 저쪽에서 그 말을 한다면……!’

머리가 멍했다. 작음 울림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심장소리는 점점 더 그의 뇌리 속으로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긴장과 흥분은 고조되어만 갔고,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두어 발 앞으로 다가온 상대는 밝은 곳으로 나와 동천을 마주보았다.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화사했으며 침착하고 단정한 외모는 대번에 동천의 흥분을 가라앉혀 주었다.

‘역시, 슬픈 눈빛이네…….’

그녀임을 확신한 동천은 무언가 슬픔을 간직한 듯한 서글픈 눈매의 여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여인은 곧 무엇을 깨달았는지 서둘러 말문을 열었다.

“아? 제가 무례하게 들어온 셈이니 먼저 신분을 밝혀야겠군요? 저는…….”

“됐습니다. 만독문의 소문주님이 아니신지요.”

소홍의 눈은 대번에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살수가 스며든 것으로 착각했으나 세심함이 떨어지는 동천의 행동에서 살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그녀는 문영에게 전음으로 공격을 멈추라고 명했다. 대신에 상대가 예사 인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여 자기 소개를 먼저 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듯 먼저 알고 대꾸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인님? 주인님이세요?”

그때 소홍의 뒤에 숨어있던 소연이 동천의 목소리를 듣고 앞으로 나왔다. 그녀 덕분에 분위기가 깨진 동천은 더 이상 진지함을 고수할 수가 없었다.

“얼레, 너도 있었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소연은 약간 이상해진 분위기를 느꼈는지 활짝 웃으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소문주님께서 주인님을 만나 뵙고자 찾아오셨는데 주인님께서는 생각 이상으로 돌아오실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 연유로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이곳의 차례가 되어 들어왔는데 이렇게 된 거예요. 헌데, 주인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이세요? 주인님의 방은 이곳을 지나치지 않는데?”

동천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아, 그거? 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사로 키워보려고 인재 한 명을 데려와서 그래. 아무래도 암한문의 내부지리는 주인이 손수 가르쳐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거든. 그래서 나 또한 이곳저곳을 가르쳐주다가 이곳에 인기척이 들리기에 수상해서 들어와 봤던 거야.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는 나 외에 아무나 출입할 수가 없잖아. 그보다……, 강 소문주님께서는 이 누추한 암한문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서찰을 건네준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기에 동천은 나름대로 긴장했다. 그러나 강소홍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약왕전은 본문과 달리 어떠한 체계를 지니고 있는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실례가 되지는 않을는지요.”

‘휴우, 그거였어? 난 또 뭐라고.’

내심 안도한 동천은 미소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렇진 않지만 사부님을 놔두고 굳이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조금은 궁금하다고나 할까요?”

그 질문에는 소연이 대답했다.

“전주님을 먼저 찾아뵈었는데 아직 안 돌아오셔서 그 다음으로 지식이 해박하신 주인님을 찾아오신 거래요.”

강소홍은 낮게 웃은 뒤 이어 말했다.

“네, 그렇다네요.”

동천은 그녀의 미소가 참으로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보고있자니 그 부드러움에 녹을 정도로.

‘윽? 정신차려라, 동천! 자고로 여자는 요물이라고 그랬다!’

분위기 전환 차 살짝 고개를 돌린 그는 처음에 자신을 덮쳤던 여인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저 소저는…….”

그제야 문영의 존재를 떠올린 소홍은 그녀를 불러 동천에게 소개했다.

“소개가 늦어서 죄송하군요. 이 아이는 제 시비로서 문영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적의 주화입마로 말을 잘 못하죠.”

일단 소개를 받아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미묘한 분위기의 문영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아, 그렇습니까? 헌데 어째 화정이의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소연은 대뜸 끼여들었다.

“주인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랬는데. 호호, 처음 저분을 뵈었을 때 초창기의 화정이가 돌아온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니까요?”

이렇게 되자 강소홍은 아까부터 거론되었던 화정이의 존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화정이라니요?”

동천은 말했다.

“제 휘하의 초혼강시를 말하는 겁니다. 여타의 강시와는 조금 틀려서 웬만해서는 누구와 상대해도 질 염려가 없지요.”

소홍은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시를 데리고 계시다니. 뜻밖이군요.”

“세상을 살다보면 뜻밖의 일이 비일비재하답니다. 하하하!”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소홍은 입가를 가리고 살며시 웃었다. 동천은 엉뚱하게도 그녀의 웃는 모습에서 손님을 너무 세워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럴 것이 아니라 접견실로 드시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들은 제가 직접 안내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소홍도 마냥 서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화정이의 일이 흥미를 끌긴 했으나 오늘은 그 문제에 관심을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에요. 소녀는 접견실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마침 동천도 돌아다닐 생각이 없었다.

“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따라오시지요.”

말이 따라오라는 것이지, 앞장은 소연이 섰다. 평초는 소전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단 방삼의 집에서 머물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말이다.

“만독노조께서는 강안녕하십니까?”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 시원스레 나오자 강소홍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런 물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기에는 마치, 잘 알고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듯한 어투였기 때문이다.

“네, 정정하십니다. 너무도 정력이 넘치셔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본문을 이끌고 계신답니다.”

동천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이 밤낮을 가지리 않을 정도면 미친 건데…….’

이상한 결론을 내린 그는 다음 질문에 들어갔다.

“별 소득이 없는 연회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피곤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전과 만독문과의 다른 체계를 살펴보시려고 오셨다는 말씀은 아무래도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요.”

소홍은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보아하니 속일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저 웃음으로 시작하려는 것이다.

“소녀가 할 말이 없게 만드시는군요. 네, 맞아요. 자세한 내막을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결코 약왕전에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었으니 안심하셔도 좋아요. 소녀는 그저 약왕전의 전주님쯤 되시면 파양호의 살수를 알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오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던 거예요.”

‘음, 솔직한데? 구차한 변명도 안 하고……. 으으, 아무리 생각해도 소교주 자식에게 주기는 아깝단 말야?’

동천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지체했고, 소홍은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중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동천은 입을 열었다.

“파양호의 살수들 중에서 아쉽게도 명성을 날린 살수는 제 기억에 없습니다. 그러나, 살수계를 은퇴했던 살수들 몇몇이 파양호에서 대단한 인물을 해치웠다는 소식은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1년 전의 일이었지요?”

동천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마치 자신은 다 알고있는 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만독문의 소문주 정도면 그 정도의 정보는 입수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실제로 소홍은 집히는 바가 있었다.

“아? 그렇다면 무림맹의 파양호 분타주인 형음풍(形吟諷)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던 사건이 살수의 짓이었단 말인가요?”

그 당시 그가 죽었을 때, 부검을 해도 타살로 입증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이 바로 형음풍의 돌연사 사건이었다. 음모론과 숙청론까지 거론되며 파양호 일대를 한창 떠들썩했던 사건이었지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었던 동천은 대충 아무 이름이나 나오자 아는 척 나섰다.

“후후, 소문주님쯤 되시는 분이라면 꼭 알고 계시리라고 믿었습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 말 뜻을 전하자면 파양호의 살수라고 해서 꼭 이름을 날린 살수를 지칭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순간 강소홍은 막혀있었던 그 무언가가 뻥 뚫린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충분히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혹시 그 살수들의 신분까지도 알고 계신가요?”

동천은 능청을 떨었다.

“하하, 워낙 힘겹게 입수한 정보인 만큼 자세한 것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은퇴한 살수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은퇴한 자들 중에 형음풍을 죽일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을 찾아보신다면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을 간추리실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그자들의 실력도 말입니다.”

동천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캬! 나 정말 이렇게 잘나도 되는 건가? 큭큭, 이거 이러다가 하늘님까지 질투하시겠네?’

그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소홍은 나름대로 귀중한 정보를 얻었음에 만족한 상태였다. 이제 그녀는 그만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비철신검(飛鐵神劍)으로 유명했던 형음풍을 눕힐 정도라면 협공을 당했을 시 아무래도 자신과 문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시, 소문대로 뛰어나신 통찰력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오늘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은 것만 같아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동천은 소홍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오래 기다리신 보람을 느끼셨다니, 저로서도 한결 무거운 짐을 던 것 같습니다.”

마주 미소한 소홍은 정보만 쏙 빼먹고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여겼는지, 자신도 동천에게 유용할만한 정보를 약간 들추어 가르쳐주었다.

“아참? 평소에 소교주님과 친분관계가 두터우신가보죠?”

동천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래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차차 가까운 사이가 되도록 노력할 예정이지요. 하하, 그런데 그것은 왜 물으십니까?”

이번에는 소홍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인 듯 능청을 떨었다.

“음, 그랬던가요? 실은 어제 소교주님과 부교주님의 따님이 함께 찾아오셔서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때 그분께서 약소전주님에 관하여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시는 한편 칭찬이 자자하시더군요. 특히, 소전주님의 어렸을 적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셨기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아니었나 보죠?”

소교주가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캐물었다고 하자 동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그 개자식이 아직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 뒷조사나 하고 다녔다는 말인가? 이런 치사한 개자식을 봤나!’

잠시 사태 파악에 머리를 굴리던 그는 강소홍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닫고 곧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하하,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당황을 좀 했습니다. 일단 소교주님께서 저를 좋게 생각해주시고 계신 듯 하니, 앞으로 친분을 쌓는데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듯 보이는군요.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빛을 보낸 소홍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별말씀을 다하시는군요. 그럼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동천은 살며시 일어서는 소홍을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아니,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소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도 너무 급히 돌아간다는 것은 알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려요.”

동천은 예절교본서(禮節敎本書)를 보는 듯한 차분한 강소홍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런 주인님의 태도에 불안해진 소연은 급히 나섰다.

“다시 오실 거죠?”

소홍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래야지. 화정이라는 아이도 관심이 가니 근시일 내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마.”

“호호. 네, 꼭 그러세요.”

동천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강소홍은 밖으로 나갔고,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웠던 동천은 그녀를 약왕전의 문 앞까지 바래다주기로 했다.

“이제 정말로 가봐야겠군요. 과분한 환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문 앞에 당도한 그녀가 말하자 동천도 하는 수 없이 수긍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럼 저도 되돌아 가봐야겠군요.”

소홍은 상쾌한 미소를 보냈다.

“네, 오랜만에 웃다 가는군요.”

동천 또한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럼 전 이만.”

즐거운 기분으로 암한문으로 돌아온 그는 강소홍을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았는지 침대 위를 구르며 킬킬거렸다.

‘히야! 처음에는 그저 곱상하기만 한 미인으로 보였는데 보고 또 보니까 그게 아니네? 마치, 볼 때마다 다른 여인을 대하는 듯한 신선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흐음, 방광 할아범이 여자 하나는 기똥차게 골랐단 말야?’

소연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좋아라 하는 주인님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빤히 꿰뚫어보았다.

“주인님, 아무리 마음에 들어하셔도 그분은 소교주님의 배필이세요. 만일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전주님께서 곤란하게 되시니까 자제해 주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천은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얘가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네? 꿈은 이루어지라고 있는 거야. 너는 그 나이에 꿈도 없냐?”

소연은 주춤하는가 싶더니 약간 붉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이루어질 수나 있을런지 잘 모르겠어요.”

동천은 강소홍 생각이 한참이었으므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짜식, 걱정하지마. 니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 이 몸이 보장한다니까?”

소연은 주인님이 건성으로 대답해줬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일렀고 그녀만의 꿈은 사춘기의 아름다운 즐거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밝게 물었다.

“그렇겠지요?”

동천은 여전히 침대 위를 뒹굴며 생각 없이 대꾸해주었다.

“그럼그럼! 하하하!”

그렇게 그가 당장의 기쁨만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전운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암흑마교를 둘러싼 먹구름은 점점 더 그 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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