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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89화


이어 그는 제일 가까이에 서있는 장한을 불렀다.

“어이, 여기 책임자 누구야.”

마차의 깃발을 보고 동천의 신분을 대충 감지한 장한은 서둘러 다가와 그를 안내했다. 진을 치고있는 자들은 대략 사십 명 안팎으로 보였는데 질서가 잡혀있고 두 눈이 부리부리한 것이 잘 다듬어진 정병들 같아 보였다. 매일 흐리멍덩한 하인들만 보아온 그로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말이다.

‘히야, 저놈들 중 몇 놈 달라고 하면 줄까 모르겠네?’

그가 사내들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 단단한 몸매에 인상 또한 단단해 보이는 키 작은 중년의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동천이 예전에 두어 번 스치듯이 지나치며 보았던 인물이었다.

“아니, 서북당주(西北堂主) 아니십니까.”

서북당주 위지천(委池川)은 마주 대하기 껄끄러운 상대가 찾아와 기분이 나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내색할 바보는 아니었다.

“하하, 이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어쩐 일로 이곳까지 당도하게 되었소이까?”

도연이 먼저 왔다간 것을 알고 있는 동천은 자신이 직접 왔으면 상황설명이라도 해줘야 정상인데 그렇지가 않자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자신도 서북당주를 무시했다.

“흐음, 경치가 참 좋습니다. 그런데 환영혈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몰렸을꼬?”

서북당주 또한 그 나름대로 자신의 물음이 무시당하자 눈 꼬리를 미세하게 파르르 떨었다.

‘어린것이 벼락출세를 하여 오만 방자하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는구나!’

서북당주는 처음에 도연이 찾아왔을 때 간략하게 일의 중대성만 가르쳐주면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직접 나서자 그는 이 어린놈이 환영혈이 누구인지 알고서나 저러는지 궁금했다. 알다시피 환영혈의 존재는 극비에 속했기 때문이다.

‘나조차 오늘에서야 보고를 받고 후방 저지선을 담당했거늘, 무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약왕전의 제깐놈이 뭐라고 환영혈을 알겠는가.’

괜히 어린것이 참견한다고 할까봐 걱정이었던 위지천은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진중한 분위기를 잡고 물었다.

“실례인줄 알지만 소전주께서는 환영혈이 어떤 자들인지 알고서나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런 난쟁이똥자루 같은 자식 좀 보게? 그럼, 쪽팔리게 모르는 걸 안다고 말씀하셨겠냐? 이걸 확!’

감히 자신을 떠본다고 생각한 동천은 나직이 코웃음을 쳤다.

“본 소전주를 너무 가벼이 여기고 계시는 것 같군요. 환영혈이라면 은중각의 최고살수들에게 내려지는 칭호로서 현재 이곳에 숨어있는 자들은 은퇴한 전대의 환영혈이 아닙니까. 죄목은 만독문의 소문주님을 암살 시도하려던 것이고 말입니다.”

흠칫한 위지천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자 오히려 무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어디에서 알아낸 것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봐도 대답해줄 리가 없었기에 그 질문은 포기했다.

“맞소이다. 실로 총명하시어 몸둘 바를 모르겠구려.”

동천은 위지천이 말로만 총명하다고 할 뿐 분위기로는 아직도 깔보는 듯한 인상이 남아있자 서북당주만 아니었으면 벌써 주먹이 날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각팔당 중에 한 명이면 무시 못할 지위였기 때문이다.

“하하, 과찬입니다. 서북당주보다 조금 밖에 나은 것이 없을 따름이외다. 하하하!”

위지천이 동천을 애송이로만 보고 있는데 그보다 조금 낫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동천보다 더 애송이라고 비꼰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이놈이?’

대번에 눈썹이 휘어진 그는 자신이 대놓고 약소전주를 애송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므로 분통이 터져도 그저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동천이 그저 농담이었다고 말하면 그로서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천은 얼굴이 붉어지고 씩씩거리기만 하는 위지천에게 말했다.

“헌데 환영혈이 스스로의 부주의로 꼬리가 밟힌 것입니까, 아니면 본교의 추적망이 뛰어나서 그들의 소재지를 파악한 것입니까?”

위지천은 약소전주가 아직 그것까지는 모르고있자 자신도 얼마 전에야 보고를 받아놓고선 큰 것을 알고있다는 듯 어깨에 힘을 주고 말했다.

“후후, 둘 다 틀렸소이다. 그놈들이 대담하게도 경비 강화를 한지 이틀이 지나지 않았는데 잠입해 들어와 살수를 펼쳤던 것이오.”

“어?”

전혀 의외의 대답에 동천이 놀람을 표했다. 그는 경비가 강화되면 살수로서의 승부욕과 득실을 따진 환영혈이 어쩌면 근 시일 내에 살수를 펼칠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물었다.

“그렇다면 만독문의 강 소문주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위지천은 비릿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팔뚝에 큰 상처를 입으셨지만 마침 수행호위로 오신 음혼당의 숭 당주께서 자리에 계셔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외다.”

그만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생각해보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다치셨다면 응당 본전에 오셔서 치료를 받으시거나 사부님께서 왕진을 가셔야 정상일텐데 어찌 그랬다는 소식이 본 소전주의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까?”

위지천은 뚫린 주둥이로 많이도 물어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소전주가 모르는 것을 들려줄수록 자신의 연륜과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흐흐, 어디 본교에 뛰어난 신의(神醫)가 약왕전주님 뿐이라고 하더이까?”

듣기 거북한 말에 동천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무슨 소리요?”

위지천은 동천을 약올리려는 듯 짓궂은 표정으로 약간 물러서며 말했다.

“아아, 화내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보오. 그러니까 독전의 광예님께서 치료차 가셨다는 말이외다. 알겠소?”

알긴 알겠는데 한번 발동한 성질은 좀체 가라앉을 생각을 안 했다.

‘이런 썅! 마도제일신의라고 하면 서북당주새끼의 에미애비조차 본전의 사부님을 손꼽거늘, 지가 뭐라고 독전의 광대새끼를 위대한 이 몸의 사부님과 비교한단 말인가!’

동천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지라 주먹이 절로 쥐어졌다가 펴졌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잠시 역심무극결을 끌어올렸다가 풀었고, 그제야 심신이 차갑게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음, 그랬다니 뜻밖이기는 하지만 소교주님의 예비신부가 되실 분께서 팔뚝에 큰 상처를 입으셨다는데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오? 더군다나 환영혈이 노리고 있음을 알고 경비를 강화한 것임에도 여지없이 뚫렸거늘, 치욕스러워하지는 못할망정 웃음이라니. 내 입장에서는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소이다. 듣자하니까 환영혈을 고용한 본교의 암중세력이 있다던데 서북당주께서 이리도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의심이 조금 드는구려. 아무래도 짬을 내어 집행부(執行府)에 오늘 일을 보고하겠소이다.”

“뭣이? 감히 터무니없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에 위지천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흑마교에서 반역도로 의심이 가는 자들이나 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이 제일 먼저 거쳐야할 관문이 바로 집행부였기 때문이다. 일단 취조에 들어가면 손속에 봐줌이 없고 결백이 드러나 병신이 되어 나와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하면 그걸로 끝나는 곳이었다. 또한, 일단 혐의가 포착되면 교주와 부교주를 제외한 상대의 지위를 막론하고 잡아들일 수 있는 강력한 체포권이 있었기에 암흑마교의 교도들이라면 집행부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서북당주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말까지 떠듬거리며 자신의 무죄를 열변 했다.

“누, 누가 좋아했다는 말씀이오! 나는 그런 적이 없소이다!”

동천은 당황하는 위지천의 모습에 고소함을 금치 못하면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흥!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하더이다. 바로 서북당주의 지금 모습이 그러하지 않소이까! 참나, 여기 이 수십 쌍의 눈들이 서북당주의 한결같은 웃음을 보았소! 당사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건 명백한 징계 감이오!”

설마 어린놈이 이렇게까지 모함할 줄 몰랐던 위지천은 자기 부하들이야 끈끈한 형제애로 맺어진 자들이니 단속만 잘하면 입 조심을 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어째 저희들끼리 시선을 맞추며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는 것을 보니 믿음이 안 갔다. 갑자기 부하들까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어쩌나 싶었던 위지천은 식은땀을 한 사발이나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소, 소전주님! 소인이 잠시 교만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천지신명에 맹세코 본교에 기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으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위지천으로서는 제 코가 석자인지라 계속 콧대를 높일 수가 없었고 스스로 자신이 아래임을 자처했다. 동천은 위협할 것이 당장에 떠오르지 않아 집행부를 거들먹거린 것인데 이리도 효과가 탁월하자 미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말이다.

‘어허! 이놈이 그래도 대세를 아는 놈이로구나!’

생각 같아서는 킬킬거리며 웃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망칠 수는 없었다.

“음, 지금 그 말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위지천은 대번에 말을 놓는 약소전주를 쥐어 패고 싶었으나 때가 아닌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위상으로 보자면 약간 뒤쳐지긴 하지만 외각팔당의 당주들과 사전(四傳)의 소전주들은 거의 동급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전의 소전주들이 차후 전주의 자리를 이어 받게 되었을 때 외각팔당의 당주들 보다 두어 단계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고, 마도세력의 특성상 언제 후계자들이 바뀔지 알 수 없는 관계로 양측은 서로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물론, 일단 전주의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그들을 발 아래에 놓고 보아도 무난했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자면 동천을 애송이로 생각한 위지천의 잘못이 크지만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이 외각팔당의 당주를 함부로 건드리면 당주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셈이라는 사실을 동천은 전혀 몰랐다.

“물론입니다! 어찌 소인이 이런 중대한 사안에 거짓부렁을 하겠습니까!”

동천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기회에 본때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위지천의 부하들 중 하나가 소리치며 맥을 끊어놓았다.

“적기(赤旗)가 보입니다!”

쩔쩔매다가 얼굴을 굳힌 위지천은 급히 산의 중턱을 바라보았고, 동천 또한 덩달아 그곳을 바라보았다. 산의 중턱에는 누군가가 커다란 적색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저건 뭐 하는 깃발인가?”

위지천은 한가하게 노닥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는 듯 신법을 발휘해 튀어나가며 소리쳤다.

“일단 따라오시… 입시오! 가면서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위지천은 갑자기 상전처럼 모시려니 혀가 꼬였다. 비록, 약점 아닌 약점이 잡혀있는 상황이기는 해도 여전히 애송이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있는 힘껏 발을 놀렸고 그의 신형은 쭈욱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어린 새꺄, 따라올 테면 따라 와봐!’

월등한 무공실력을 보여주면 한풀 꺾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위지천은 과시할 무공을 잘못 선택했다.

“어서 말해보게나.”

“으헉?”

바로 옆까지 따라붙어 묻는 소리에 놀란 위지천은 진기가 흩어져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그는 전혀 무리 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천의 모습에 자신감이 조금(?)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예, 예에. 그러니까 저 적기는 포위망이 벌어졌으니 어서 와서 충당하라는 신호입니다.”

동천은 약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힘겹게 따라붙고 있는 도연에게 물었다.

“야, 멀쩡한 포위망이 왜 벌어지냐?”

도연은 따라붙는 것도 힘겨운데 묻기까지 하자 벌게진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만큼 우리측의 사상자가 늘어났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하? 어떠한 합격진(合格陣)이 제 위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숫자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환영혈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많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리지? 그래서 필요한 자리에 인원이 모자라다는 뜻이고.”

“그렇습니다.”

위지천은 동천과 도연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내용에 놀란 것이 아니라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은 나이에 자신과 나란히 달리고있는 도연의 화후에 놀란 것이다.

‘소전주 자식이야 약왕전주님의 무공을 사사 받아 경공에 탁월함을 보인다지만 저놈은 누가 가르쳤기에 저 나이에 경공으로서 나와 겨룰 수 있단 말인가!’

기실 약왕전은 의술로만 전적을 올리는 곳이어서 같은 교내에서도 견제를 덜 받는 곳에 속했다. 서로들 교주파와 부교주파로 나뉘어 신진고수라던가 기존의 고수들 중에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의심 가는 자들을 은밀히 조사하는데, 약왕전은 대세에 영향을 끼칠만한 곳이 아니어서 견제파가 무관심에 가까웠던 것이다. 실제로 약왕전에 잠입하여 정보를 캐내는 사람들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견제파인 한열마가(寒熱魔家) 측에서는 그 밀정들조차 아까워서 줄이자고 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경비가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도연의 정체를 몰라 멀리에서 뒤따라오는 자신의 부하들과 도연을 번갈아 보며 은근히 화가 치솟던 그는 도연이 점점 뒤쳐지는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다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위험하오니 안전을 생각하신다면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십시오. 만일 계속 따라오신다면 뒷일은 책임을 못 집니다.”

실전경험도 없는 것이 공연히 객기를 부렸다간 바로 골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위지천은 안전을 생각해주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동천이 뒤따라와 주기를 바랬다. 실전의 쓴맛을 보면 좋고, 그러다가 뒈지거나 반병신이라도 되면 더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한 동천은 바로 넘어왔다.

“흐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

옳다구나, 좋아한 위지천은 적기를 흔든 사내에게 말했다.

“어서 메울 곳으로 안내해라!”

“예! 따라오십시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수하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재빨리 위지천과 동천을 뒤따랐다. 산 속 내부는 적기를 흔든 것이 무색하리 만치 조용했는데 곳곳에 널브러진 시체들만 아니었다면 평화로운 곳으로 오인할 정도였다. 그때 그들과 이십 여장 떨어진 곳의 바위 위에서 작은 깃발 서너 개를 쥐고 있는 말끔한 인상의 중년인이 위지천을 향해 소리쳤다.

“전방위(前方位) 삼변(三變) 쪽을 맡아주시오!”

동천은 내심 그따위 자리를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씨부렁거렸다. 그러나 중년인은 애초에 동천이란 인간은 무시하고 위지천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위지천은 휘리릭 날아올라 지정한 자리로 수하들을 이끌고 내려섰다.

“근데 진을 구축한 인간들만 보이고 환영혈은 안 보인다?”

도연과 위지천의 수하 몇 명과 함께 자리에 남은 동천이 묻자 곁에 있던 자들 중 깡마르고 살살 눈웃음을 치는 사내가 물음을 받았다.

“헤헤, 제가 이곳 상황을 조금 아는데 환영혈 중 영살이 이미 저 세상에 가서 간이 작아졌는지, 치졸하게 은신하며 본교의 동료들을 노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동천은 생긴 것이 하도 개판이어서 한 대 쳐주고만 싶었으나 들은 내용이 흥미로와 참기로 했다.

“한 놈이 죽어?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단 말이냐?”

그 사이 합격진은 다시 발동하기 시작했고 사내는 말했다.

“이곳 매추산(昧追山)을 넘어오던 중 내성수호 1단주(內城守護 一團主) 연평(涓平)님에게 추살 되었다고 합니다.”

내성수호단은 일류이상 급의 무사들만 모아 만들어진 집단으로서 암흑마교 내에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잘 움직이지 않는 고급인력들 쪽에 속했는데, 단주들은 3단주까지 편성되어있고 그들 위에 총괄하여 지휘하는 총단주가 있었다.

‘이 자식들 보게? 처음부터 센 놈을 투입했잖아?’

동천이 심심할 때마다 즐겨보는 삼류소설들에서는 약한 놈들부터 내보내다가 살림밑천을 다 거덜내서야 강한 자들을 내세웠다는 소리인데 쓸데없는 생각이니 신경쓸 것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무언가 감이 잡힌 동천은 신속하게 여러 색깔의 깃발을 흔들며 지휘하는 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게 저자인가?”

사내는 생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분이 지휘하시는 합격진은 본교에서 세 번째로 강한 진으로서 암흑연환낙뢰진(暗黑連環落雷陣)이라고 합니다.”

동천은 묻지도 않은 것까지 말해줘서 좋긴 좋은데 정이 안가는 놈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궁금한 것이 떠올라 물어보았다.

“그런데 1단주가 영살을 처치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서 왜 굳이 합격진으로 조여버리는 거지? 후방에 대기 중인 서북당주까지 불러모은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참으로 쓸데없는 인력낭비가 아니더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던지 도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이쪽에 관심을 기울일 사람도 없는데 비밀이라도 새어나갈 새라 주위를 둘러 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사실, 1단주께서 영살을 죽인 것은 순전히 어부지리입니다. 영살은 만독문의 소문주님에게 살수를 펼치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도주했는데 때마침 등장하신 1단주에게 걸려 생을 마감한 것이죠, 네. 헤헤.”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한 동천은 피식 웃었고, 우연인지 몰라도 진을 지휘하던 1단주 연평이 동천 쪽을 노려보았다. 켕기는 것이 있어 찔끔한 사내는 1단주가 자신을 노려보았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말을 바꾸어 1단주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단주님의 실력이 낮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일대일이라면 환영혈 누구와 맞붙어도 충분히 고꾸라트릴 능력이 충분히 계신 분이거든요. 네네.”

지랄한다고 생각한 동천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무사들의 몸놀림을 보는 동시에 환영혈을 찾았다. 동천은 상식적으로 그들이 진의 중앙에 갇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곳을 주시했는데 보이는 것은 거목(巨木)과 그 주위의 작은 수풀들뿐이었다. 일전에 추몽산장에서 비좁은 바위에 숨었던 기억을 떠올린 동천은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저기에 숨어있으려면 힘 좀 들텐데…….”

그때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던지 1단주가 금색 깃발을 일직선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환(幻)! 이변(二變), 칠로(七路), 출(出)!”

회오리의 강기를 일으키던 진은 순식간에 폭풍을 동반하며 거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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