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92화
“주군, 한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산길을 내려오는 와중에 도연이 묻자 동천이 대꾸했다.
“묻지마. 대답해주기 귀찮아.”
“아, 예…….”
묵묵히 걸어가던 동천은 자신이 심심해서인지 했던 말을 번복했다.
“야, 아까 물어보려던 질문이 뭐냐?”
도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로 물었다.
“주군의 평소 호방한 성격으로 봐서는 환영혈 중에 나머지 한 명을 잡는 일에도 관여를 하실 줄 알았는데 어찌 마다하셨는지요.”
동천은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도연의 물음에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넌 이 몸이 살귀(殺鬼)로 보이냐?”
앞서 길잡이를 하던 도연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검을 쥐었던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본 동천은 그때의 감정을 최대한 내비치려는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손을 벌벌 떨었다.
“으으! 생각해봐. 너 같으면 찔렀을 때의 그 더러운 느낌이 손끝에서 떠나질 않는데, 이 몸처럼 섬세한 분이 거기까지 따라가서 살해당하는 장면을 기분 좋게 지켜보실 것 같냐? 앙? 이 몸이 너 같은 줄 알어? 이런 젠장!”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던 도연은 진심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주군의 마음이 그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동천은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얼굴이자 고개를 끄덕이며 도연의 기세를 꺾었다.
“음, 되었으니 그만해라. 그렇게 숙이다가 시체 떨어진다.”
도연은 안 그래도 약간 내려온 시신을 바로 잡은 뒤 말했다.
“너그러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기를 꺾어놓았다고 생각한 동천은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먼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 장로들 곁에서 태강즉절(太剛則折)인지, 태감절개(太監切開: 내시가 절개를 지키다)인지, 그건 잘 익히고 있냐?”
도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태의 묘리(妙理)는 어느 정도 성취가 있으나 내공이 뒷바쳐 주질 못하고 있어서 현재 강의 묘리를 공부하고 있사온데 실력이 미천하여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동천이 일전에 육 장로에게 듣기로는 태강즉절 중 어느 것을 먼저 익혀도 상관은 없으나 하나의 묘리를 깨닫는 데에는 적어도 5년의 공부(工夫)가 필요하고, 두 번째의 묘리를 깨닫는 데에는 두 배인 10년이 걸리고, 세 번째 묘리를 깨닫는 데에는 또 그 두 배인 20년이 걸리며, 마지막 네 번째의 묘리는 40년이 걸리니 총 75년의 무공수련이 필요한 무공이라고 들었다. 물론 인연자가 천하에 다시없는 기재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일이었고 말이다.
‘에에, 이놈이 그걸 배운지 그러니까 올해로 대충 5년 전후니까……. 헉? 그렇다는 것은 이놈이 천하에 다시없을 기재(奇才)에 속한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운 좋게도 도연이 처음 선택한 무공이 순서대로 나열 된 태의 무공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태의 무공은 여타의 강, 즉, 절의 무공들과 비교하여 깨달음이 크게 작용하는 무공이었는데, 그 깨달음을 내려준 것이 다름 아닌 동천이었던 것이다. 우습게도 당사자인 동천은 자신이 도연의 무공을 발전시켜 주었다는 것도 모른 채 혼란해하는 중이었으니 사람의 운명이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그럼, 태는 몇 성까지 깨우쳤고 강은 또 몇 성까지 익혔지?”
도연의 성취가 약간 당황되었던지 동천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도연은 전혀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태(太)의 묘리는 10성에 이르렀고, 강(剛)의 묘리는 3성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주가 되는 무공이 10성의 화후라면 나머지는 내공만 뒷바쳐주면 언제라도 12성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지금 도연은 재질이 미천하여 태의 마지막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공이 모자라 태의 묘리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여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것을 분석하는 것에는 또 머리가 비상했던 동천은 이놈이 정말 일을 낼 놈이라고 생각했다. 동천의 성격상 좋은 뜻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으음! 내공만 바쳐주면 태의 묘리는 대성할 수 있겠구나.”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신 또한 조심스럽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 저! 머리통 바로 끄덕이는 것 좀 봐라. 저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자식이 할 짓이냐?’
괜히 배가 아파진 동천은 참아가며 물었다.
“허면, 장로들께서는 아무 조치가 없으시더냐?”
도연이 무슨 말인지 몰라 물어보았다.
“소신이 아둔하니 자세한 가르침을 바랍니다.”
그건 그렇다고 생각한 동천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내공만 뒷받침이 된다면 대성할 수 있는 묘리인데 가만히 뒷짐들만 지고들 계시냐고 묻는 것이다.”
그제야 도연이 깨닫고 대답했다.
“아? 그것은 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의존빈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혼자가 되었을 때 큰일을 해내지 못한다는 이유이셨습니다. 제가 듣기에도 마땅한 듯 싶어 수긍했고 말입니다.”
동천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도연에게 더 이상의 지원을 차단한 장로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하! 역시, 아무나 장로가 되는 것은 아니로구나! 하하하!”
기분이 좋아진 그는 무슨 멋진 말씀이라도 내려주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이자 잠시 생각한 후에 폼을 잡고 입을 열었다.
“무리하게 애쓸 것 없다. 조급한 자는 조급한 무공만을 익히게 되어있느니라.”
크게 작용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도연은 주군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쉬이 떠나질 않음을 느꼈다.
‘조급한 자는 조급한 무공만을 익히게 되어있다고?’
확실히 그는 무공의 진도가 막힐 때마다 빠른 시일 내에 진전이 보이질 않는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사단이 벌어지는 양 조급해했던 경향이 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이 10성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여긴 태의 묘리조차 껍데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 의심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다시 확인하는 것뿐이라면 다르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강의 묘리로 넘어간 것일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태의 묘리를 다시 되 집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구나.’
작은 깨달음이 모이고 모여 큰 대해를 이루듯 도연의 깨달음도 그러했다. 그동안 은근히 가슴 한 부분이 답답하고 묵직했었는데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 도연은 동천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주군의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한순간 닭살이 돋은 동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를 해주었다.
“그, 그러던지…….”
잠시 후 그들의 눈앞에 호숫가가 보였다.
“어이구, 어이구!”
도연의 길잡이 덕분에 아무 탈 없이 마차에 도착한 동천은 마부 방삼이 웬 노인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방삼은 앓는 듯 한 노인에게 매정하게 말했다.
“아, 글쎄. 안 된다니까요!”
한눈에 보아도 구타를 당한 듯한 노인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방삼의 발에 매달렸다.
“어이구, 나 죽네! 이놈아, 약왕전에 좀 데려달라니까 그게 그렇게도 어렵다더냐?”
동천은 죽겠다는 인간이 목소리를 참 크다고 생각했다.
“이 영감은 또 뭐야?”
늙은이에게만 집중하느라 약소전주의 도착을 뒤늦게 발견한 방삼은 순간 핼쑥해진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이 영감이 멋도 모르고 이곳 주위를 배회하다가 살수들 때문에 엄중 경계를 펼치고 있던 본교의 무사들에게 좀 맞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동천은 물었다.
“그런데?”
“예에, 그런데 눈은 제대로 달렸는지 이 마차가 약왕전 소유의 마차인 것을 알고 약왕전까지 태워달라며 이렇게 생떼를 쓰고있지 뭡니까.”
동천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 그래서 안 된다고 계속 내치고있는 중이었습니다요.”
동천은 계속 물었다.
“어쩌라고?”
“어, 어쩌긴요. 얼른 내쳐야……, 케헥? 아악! 악악! 크에엑∼!”
퍽퍽퍽퍽!
무식하게도 쥐어 패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동천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잡놈아! 개나 소나 다 이 몸의 마차를 이용하자고 몰려들면 어쩌려고 저깟 늙은이 하나 내쫓지 못해서 시간이나 끌고 지랄이야? 너 같으면 니 마누라 좀 이용하자고 부탁하면 옳다구나 한 번 타게 해줄 테냐? 응? 이런 씨팔놈 같으니라고!”
비유가 좀 적절하지 못했지만 성질 더러운 놈들이 대다수 판치는 마도계에서 이러한 처사는 당연한 편에 속했다. 보통 신분도 아니고 약왕전의 소전주 전용마차를 타보겠다고 우기는 노인네를 너무 곱게만 내쫓으려고 했으니 방삼은 맞아도 할말이 없었던 것이다. 좀더 무자비한 상전 같았으면 단칼에 숨통을 끊어놨을지도 몰랐을 것이고 말이다.
“사, 살려……. 흑흑흑!”
빌려고 해도 기력이 없자 방삼은 다 큰 어른이 목놓아 울어댔다. 묵묵히 시체를 어깨에 메고 있던 도연은 이쯤에서 중재를 하고자했다.
“주군, 사실 따지고 보면 방 마부는 주군이 안 계실 때 타일러 저 노인을 보내려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설마하니 방 마부가 주군이 바로 곁에 계신데 우유부단하게 처리를 했겠습니까? 잘못한 벌은 이미 충분히 내리신 듯하니 이만 노여움을 거두어주시지요.”
동천은 오랜만에 시원하게 운동을 좀 했고, 도연이 하는 말도 다 일리가 있는지라 이쯤에서 봐주기로 했다.
“틀린 말은 아니구나. 험! 내 이번 일은 특별히 용서를 해주도록 하지.”
“흑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흑흑…….”
황송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조아린 방삼은 정말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웠지만, 자신이 마부를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앞으로 계속 소전주의 비위를 어떻게 맞추나, 그것이 벌써부터 새삼스레 걱정되었다.
‘개자식!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치 않을 자식! 길가다 벼락 맞아 죽을 자식! 시팔 자식! 밥 처먹다가 급체해서 죽을 때까지 고생할 자식! 조까튼 자식! 믿었던 친구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서 뒈질 자식! ……자식! ……자식!’
조금(?) 한이 맺혔는지 방삼이 속으로 죽어라 욕을 해댔다. 그때 동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헉? 내가 너무 티 나게 속으로 욕했는가?’
자신에게 말한 줄 알고 덜컥! 심장이 내려앉은 방삼은 이내 자신에게 말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이구, 어린애야. 거기 죽은 애가 내 동생 같아서 좀 보자는데 왜 화부터 내는 것이냐. 어이구, 어이구. 팔다리 안 아픈 곳이 없구나!”
동천은 약간 맛이 간 노인으로 치부했다.
“쳇, 그렇게 아프면 더 아프기 전에 얼른 뒈지던가.”
“…….”
순간 정적이 일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라 막무가내인 노인조차 어이가 없었던 듯 싶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노인은 다짜고짜 도연의 어깨에 메여진 혈살을 잡아 끌어내렸다. 곤혹스러워진 도연은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 주군인 동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뜻이었다. 동천은 미친 늙은이를 때리면 10년은 재수가 없다는 속설을 황룡세가에 있을 때 들었기 때문에 구타하기도 뭐해서 손사래를 치며 허락해주었다.
“아아, 귀찮으니까 그냥 보여줘. 보여주고 나서 또 헛소리를 해대면 이 몸이 속설을 무시하고서라도 너를 시켜서 본때를 보여줄 테니까.”
결국 도연보고 10년 동안 재수가 없으라는 소리였다. 도연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으나 뒤의 말만 무시하면 이해가 되는지라 혈살의 시체를 노인에게 넘겨주었다. 노인은 대뜸 넘겨받아 바닥에 눕히더니 눈물을 흘리며 시체의 품을 뒤졌다.
“어이구, 미련한 놈. 어떻게 방심했기에 어린놈에게 일검(一劍)을 찔렸느냐. 하지만 걱정 말거라. 우리의 안배는 아직까지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니라. 그런데……, 없구나.”
노인의 행동과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동천은 살짝 물러서며 딱딱해진 얼굴로 물었다.
“뭐, 뭐가 없다는 거지… 요?”
노인은 어느새 표정을 지우고 살기에 물든 눈으로 동천을 노려보았다.
“내놓아라.”
동천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더더욱 물러섰다. 그런 그의 앞을 도연이 막아섰다. 어느 정도 안심한 동천은 말했다.
“환살께서는 무,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노인은 자신이 환살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는지 점점 살기를 물들이며 입을 열었다.
“내 너를 만난 시점에서 너를 죽일 기회가 총 일곱 번이 있었다. 그럼에도 손을 쓰지 않은 이유는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살기에 압도 된 동천은 한줄기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림을 느꼈다.
‘지랄하지 마라, 영감. 진짜로 위급했으면 예지력이 발동되었어도 벌써 발동되었을 것이다.’
기실 예지력은 동천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할 때마다 발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운석의 작용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동천이 허리띠를 착용하지 않을 시에는 십할의 예지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는 위지천이 수하들을 딸려 보내준다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말했다.
“그 해결해야할 문제가 무엇이오.”
환살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몰라서 묻는 것이냐, 아니면 시간을 끄는 것이냐.”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물론 속으로.
‘씨팔 탱이!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냐? 니가 그러고도 환살이야?’
끓는 속을 진정시킨 동천은 정중히 말했다. 듣고 보니 시간을 끄는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것이오. 알고 있다면 내 어찌 혼자의 몸으로 환살의 심기를 건드리려고 하겠소.”
환살은 재빠르게 심신을 안정시킨 동천을 바라보며 나직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좋다. 어차피 놈들은 아직도 나를 포위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을 테니까. 본 살이 원하는 것은 살예총요(殺藝總要)의 전반부다. 네가 지니고 있음을 안다. 내놔라.”
내심 은형포단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동천은 이게 또 무슨 개소리인가 했다.
“살예총요? 그게 뭐요?”
환살은 동천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씨익 웃었다. 그러나 평범한 웃음이 아닌 죽음의 미소였다.
“어린놈이 욕심이 많구나. 혈제(血弟)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이어서 살예총요만 넘겨주면 눈감아주려고 했거늘,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려는 게냐?”
츠으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기운이 환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두려움을 느낀 동천은 조금씩 물러서며 환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뭐, 뭐야, 저 영감! 살수가 대놓고 덤벼도 되는 거야?’
꿀꺽, 침을 삼킨 그는 외쳤다.
“우기려 마시오! 내가 혈살의 물건을 가져간 것은 은형포단 뿐이오!”
환살은 죽음의 기운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더 있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본 살은 이제 손을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푸슝!
그가 전혀 예비동작 없이 손을 튕기자 한줄기 불줄기가 동천의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쏘아졌다.
“으힉?”
비명을 삼킨 동천은 급히 상체를 왼쪽으로 꺾었는데 그보다 앞서 도연의 목검이 환살의 지법을 튕겨냈다. 부드럽게 반원을 그리며 뽑아든 목검 속의 진검은 환살의 환영살지를 허공에서 멈추게 했으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작은 공처럼 뭉쳐진 불줄기는 무형의 벽에라도 부딪힌 듯 잠시 주춤하다가 소멸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본 환살은 눈을 빛냈다.
“나이에 비해 제법 성취가 있는 녀석이로군.”
도연은 한 점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대꾸했다.
“말씀은 감사하나 주군의 바로 곁에서 제가 지켜본 바로는 살예총요라는 것은 듣도 보지도 못한 물건입니다. 저희는 오늘 여기에서 어르신을 보지 못한 것으로 할 터이니 물러나 주십시오.”
환살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지만 칭찬은 아끼지 않았다.
“지자(智者) 밑에 우자(愚者) 없다고 했다. 상전은 경박한데 수하는 진중하구나.”
도연과 관련되어 그와 비교 당하는 것을 제일 싫어했던 동천은 이런 곳에서조차 비교의 대상이 되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본래의 성격을 드러냈다.
“아, 진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냐? 시팔, 그래서 영감이 그따위로 이번 일에 실패한 거고, 또 영감의 동료들이 다 뒈진 거야! 알아? 그리고 말이지.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는 줄 알고, 안 가지고 있다고 하면 안 가지고 있다고 좀 믿어봐! 그렇게 의심이 많으면서 참 오래도 살았다고 보는데 댁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치?”
살수가 그런 말을 들었다고 크게 흔들릴 리는 만무했지만 적어도 동천은 환살의 아픈 과거를 건드리게는 하였다.
“놈……. 하지 말았어야할 말을 했구나.”
동천이 계속 주둥이를 놀리게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환살은 신속하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시금 막아서는 도연을 발견하곤 암기를 뿌리며 등뒤 쪽에 숨겨둔 검을 뽑아들어 주저 없이 도연의 사혈(死穴)을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