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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95화


‘뭐야, 살각(殺閣)이였어? 쳇,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놈들이네. 살예총요의 분실을 벌써 알아차리다니.’

그것이 아니면 이들이 움직일 이유가 없는 관계로 동천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각주님까지 나서시다니 놀랍군. 하긴, 각주님께서 친히 나서셨어도 무리가 없는 일이었으니…….”

의미심장한 말에 흠칫한 양위는 죽어있는 환살과 동천을 번갈아 보며 무언의 눈동자로 대답을 종용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동천이 기죽어서 대답해줄리 만무했다.

“자네는 넋을 놓고 뭐 하는 것인가. 어서 아랫것들을 시켜서 도연과 여기 환살을 업은 뒤에 길을 안내하지 않고.”

양위는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약소전주에게 대답을 강요할 힘이 없었고, 그것이라면 부각주가 전담해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일단 마차로 되돌아가시겠습니까?”

혈살 때문이라도 그래야 했던 동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 환살을 잡느라 피곤하기도 하니 마차를 타고 소운정(疎韻停)으로 가야겠네.”

“알겠습니다.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살수답게 소리 없이 신형을 움직인 양위는 동천을 생각해서인지 적당한 속도로 길을 안내했다. 덕분에 수월하게 뒤따른 동천은 환살에게 쫓길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호숫가에 당도하자 내심 혀를 내두르며 마차에 당도했다.

“오, 오셨습니까요, 소전주님.”

동천은 웬 얼굴이 떡이 된 사내가 굽실거리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구……?”

사내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바, 방삼입니다요.”

그제야 동천은 자신이 쥐어 팼던 인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얼굴이 하도 개판이라서.”

“예, 예에…….”

방삼이 어떠한 기분일지 상관할 리 없었던 동천은 도연과 환살을 업고 온 자들에게 마차 안으로 옮기라고 명한 뒤 혈살도 같이 옮기게 했다. 그것을 지켜본 잔심마도 양위는 약소전주가 출발하라 이르자 조용히 나서서 물었다.

“시체와 한 공간에 계시려면 불편하실 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동천은 대꾸했다.

“왜, 자네가 데려가고 싶은가?”

양위는 공손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약소전주님의 불편을 생각하여 물어보았을 뿐 별다른 저의는 없었습니다.”

얼른 혈살에게서 혈음살경을 취하고 싶었던 동천은 깊게 상관하지 않았다.

“뜻은 고맙지만 되었네. 어서 앞장서게.”

이곳에서 소운정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되는 관계로 말도 없이 순수한 경공으로 마차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살까지 잡힌 마당에 체력 안배가 필요 없는 고로, 양위는 부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따라오십시오.”

“음, 알겠네.”

마차를 너무 빠르게 몰면 자신들에게 부담이 올 터이니 배려를 해달라는 소리였지만 알 턱이 없었던 동천은 우연찮게도 뜻이 맞아 그리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재빨리 마차에 올라탄 그는 앞서 달려가는 마라혈대의 대원들 중 몇몇이 자신의 마차를 호위하듯 주변에서 얼쩡거리자 심히 거슬려 창문을 닫아버렸다.

‘저 새끼들 은근히 신경 쓰이네? 확, 실수를 빙자하여 치여버릴까?’

자신이 하는 짓을 들킬까봐 그러는 것이다. 반사적으로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본 그는 완전히 밀폐되었음을 확신한 뒤에야 혈살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

“어?”

없었다. 있어야할 혈살의 무공비급이 없었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다시 뒤져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씨! 사내 몸 뒤지는 취미도 없는 이 몸이 두 번씩이나 수고를 해주었는데도 소득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괜히 죽은 혈살의 멱살을 잡고 뒤흔든 동천은 곧 의심의 눈길을 양위에게 돌렸다. 살예총요를 회수하기 위하여 파견된 자들이니 틀림없이 혈살의 몸을 수색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 자식, 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재수 없게 생겼다 했어. 으으, 그건 그렇고 무슨 명분으로 그놈의 수중에서 혈음살경(血陰殺經)을 빼앗는다지?’

들떠 있다가 기분이 잡친 그는 체면상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혈살의 몸을 뒤졌다는 것도 간접적으로나마 밝히게되는 셈이어서 애꿎은 도연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철썩, 철썩!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자식아! 니가 환살한테 그렇게 쪽도 못쓰고 자빠지지만 않았어도 세 개를 다 모을 수가 있었단 말야! 이 자식, 이 자식!”

이럴 때가 아니면 때릴 기회가 흔치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때 우연인지 몰라도 도연이 의식을 되찾았다. 몸에 충격이 가해져오자 본능적으로 깨어난 듯 싶었다.

“으음…….”

동천은 바로 행동을 달리 했다.

“어? 정신이 드냐? 괜찮아?”

도연은 어째 양쪽 볼이 심하게 아픔을 느끼면서도 힘겹게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그보다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그렇게 하찮은 줄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동천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도연에게 화가 났어야 정상인데 어쩐 일인지 화를 내지 않았다. 도리어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도연이 자신의 실력을 폄하했기 때문이다.

‘큭큭큭큭!’

혈음살경을 얻지 못했던 더러운 기분이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동천은 은연중 경쟁상대로 여기던 도연이 자신감을 잃자 승리자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큭큭… 이 아니라, 험! 어찌 그것이 네 실력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장로분들께서 기본 실력만을 키워주셨을 뿐 실전경험의 문제에 소홀하시다보니 경험이 없던 너는 당연히 진 것이니라. 막말로 시골 촌놈이 도심지로 상경하여 왜 사기를 당하겠느냐. 그것이 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러냐?”

비유가 조금 이상했지만 뜻은 다 알아들었다. 깊이 새겨든 도연은 주군께서 추궁대신 격려를 해주자 감동하여 고개를 절로 숙였다.

“과분한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는 실전경험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홀해도 되는데…….’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천은 꾹 참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와 같이 온 자들은 어떻게 만났느냐.”

도연은 대답했다.

“그들은 주군께서 작전상 후퇴하신 뒤 일각 정도가 지난 후에 마차를 지나치다가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혈도를 풀어준 뒤 주군을 도와드리기 위해 같이 동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작전상 후퇴라는 말에 흡족해진 동천은 웃는 낯으로 계속 물었다.

“훗, 성치 않은 몸으로 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군. 그리고 이건 다른 질문인데, 혹시 그들 중 누군가가 혈살의 몸을 뒤지지 않던?”

듣고 보니 생각난 듯 도연이 말했다.

“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라혈대의 대주께서 제 혈도를 풀어주시는 한편, 수하를 시켜 뒤져보라고 시켰는데 책자 한 권을 빼내어 살펴보시고는 실망하신 표정으로 갈무리를 했었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자식이 슬쩍했군. 양위야, 양위야. 혈살의 혈음살경이 그렇게도 탐이 났더란 말이냐? 쯧쯧, 개새끼.’

그래도 양호한 편으로 욕을 해준 동천은 혈음살경이 양위의 손으로 넘어간 것을 확인한 이상 어떻게든 자신이 가져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아냐, 너무 허술해. 그럼 이 방법은……. 그것도 아냐. 그 자식, 생각보다는 영악해 보였어. 윽! 방법은 없는 것인가?”

도연은 대화를 나누다 말고 다른 생각에 빠진 주군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상당한 육체적 고통이 따르고있는 관계로 조용히 운기조식을 취했다. 그렇게 서로들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마차는 무사히 소운정에 당도했다.

“소전주님, 다 왔습니다요.”

방삼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던 동천은 한참 전에 운기조식을 끝마친 후 피곤함과 고통을 억누르고 있는 도연에게 명했다.

“이 몸은 이곳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돌아갈 터이니, 너는 이 길로 약왕전에 가서 치료를 받거라.”

사실, 진작에 이런 명령을 내렸어야 했는데 그 당시엔 혈살의 문제로 도연을 생각하지 못해서 미처 배려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별로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나중에 아픈 놈을 혹사시켰다는 소리나 들을까 봐 마지못해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용무를 마치시고 돌아오실 때까지 대기하겠습니다.”

눈썹을 꿈틀거린 동천은 보는 시선들이 있자 화를 참고 말했다.

“음, 욕 나오게 하지말고 말 들어라. 잘한 것도 없으면서 명까지 어길 셈이냐?”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도연은 하는 수 없이 주군의 말씀에 따라야만 했다.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이 길로 돌아가 치료를 받겠습니다.”

그제야 동천이 흡족해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이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양위에게 물었다.

“부각주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살예총요에 관하여 동천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양위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저와 인원을 갈라 내성수호 1단주님께 가셨으나 제가 환살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 바로 전서구를 띄웠습니다. 아마도 이미 이곳에 도착하셨거나 오시고 계실 것입니다.”

‘전서구? 그걸 언제 띄웠지? 하여간 이 살수 자식들은 하는 짓이 음흉해서 마음에 안 든다니까?’

그런 자신도 살수인 환영혈의 무공에 관심을 가졌으면서 말은 잘 했다. 어쨌든 그는 표정을 흩트리지 않고 말했다.

“그런가? 긴히 말씀드릴 이야기가 있으니, 도착하셨거나 도착 중이시면 수고스럽더라도 본 소전주에게 찾아와 달라고 말씀을 전해주시게나.”

양위는 약간 허리를 숙여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손한 태도의 양위를 바라보며 더 해야할 이야기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동천은 더 이상 없자 이제는 가치가 없어진 시체들을 마라혈대에게 맡기고 소운정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시체들을 맡겼다고 공로가 그들의 것이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비의 안내로 풍향원(風向園)이란 곳에 도착한 동천은 껄끄러워하는 차를 앞에 두고도 맛있는 척하며 홀짝홀짝 마셔댔다. 어디를 가서나 차를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그동안 접대했던 손님들을 우롱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으웩, 차라리 약을 먹고 말지…….’

진저리를 치면서도 표정의 변화 없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던 그는 기다리던 강소홍은 안 오고 제일 재수 없어하는 자식이 걸어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냉현이 두어 명의 시비들을 거닐고 홀로 걸어오는 중이었던 것이다.

‘헉? 뭐야. 저 새끼가 왜 와?’

그 사이 동천의 앞에 당도한 냉현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놀랐는가? 표정을 보아하니 뒤통수라도 맞은 얼굴인데 웬만하면 얼굴 좀 펴게.”

동천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표정관리가 늦어 죄송합니다. 솔직히 의외여서 놀랐습니다.”

냉현은 특유의 여유를 보이며 실실 웃었다.

“얼굴은 놀라고 있는데 아니라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하하하!”

“예에, 하하!”

억지로 웃어준 동천은 기분이 좋아야할 자리가 삽시간에 가시방석과 같은 자리가 되어버리자 영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현은 그런 동천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그에게 물었다.

“그래, 환영혈 중 둘을 자네의 힘으로 처리했다고? 그 일 때문에 강 소저의 병간호를 하다가 흥미가 동하여 이렇게 찾아온 것이네.”

냉현에 이어 자리에 앉은 동천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입을 열었다.

“운이 좋아 크게 상처를 입었을 때 둘 다 각개격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강 소문주님께서는 그렇게 위중하신 것입니까?”

냉현은 슬그머니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하, 그렇진 않네. 다만 내가 공처가 기질이 있는지 그녀의 다친 팔을 도저히 간과하지 못하겠더군. 그래서 당분간 활동을 자중하라 일렀네.”

‘참나! 논다, 놀아.’

아무나 붙잡고 지금 냉현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전해준다면 미친놈 소리는 기본으로 들을 것만 같았다. 그 사악학 소교주가 공처가 기질이라니. 짜증이 나서 냉현의 웃는 얼굴에 찻잔이라도 내던지고 싶었던 동천은 끓어오르는 화기를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애써 다스려야만 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니신 듯하여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돌연 정색한 냉현은 말했다.

“큰 상처는 큰 상처라네. 다행이 독전의 전주가 빠른 조치를 취해서 별탈은 없었던 것이지.”

말 나온 김에 그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사부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까 편가르기를 하자면 독전은 교주를 지지하는 세력이었으므로 그것을 거론해보았자 기대한 답은 듣기 어려울 성 싶었다. 그때 냉현이 이어서 독촉을 했다.

“자자, 그 문제는 이제 그만 끝내기로 하세. 본 소교주가 뭐가 아쉬워서 이 자리에 몸소 나왔겠는가. 간단하게 운이 좋아서 그놈들을 처치했다는 말은 사양하겠으니 그때의 일을 가능한 자세히 설명해주길 바라네. 알겠는가?”

이번에도 건성으로 대답했을 시, 잘하면 한 대 치겠다는 얼굴이어서 약간(?) 찔끔한 동천은 중요한 부분들만 그럴싸하게 이야기해주며 무리 없이 진행시켰다. 이번에는 그래도 들어 줄만은 했던지 냉현은 이야기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오? 그러니까 혈살이 경우……, 큭큭! 혈살이라면 산관의 외호이기도 한데 그것이 같으니 기분이 별로 안 좋군. 좋아, 어차피 은중각만 쓸어버리면 당분간 그런 별호는 듣지 않을 테니 넘어가지.”

강호에서는 가급적 같은 외호를 피했지만 중원이 워낙에 넓은 땅덩어리이다 보니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같은 외호를 사용하는 자들이 종종 발생했다. ‘설마 이런 외호를 누가 사용하겠어?’ 라던가, 강호에 알려져 있지 않은 소수의 문파들이 전통적으로 계속 사용하는 경우. 혹은, 강호에 갓 발을 들여놓은 무인들이 이미 사용되고 있는 외호인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 등등. 사연만 놓고 따지자면 너끈히 수십 가지는 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까? 답은 대체적으로 간단했다. 문파끼리의 일이라면 상대의 전통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합의를 보거나 인정해주는 방법이 정석으로 쳐졌고, 개개인의 일이라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승자가 그 외호를 차지하는 방법이 주로 쓰여졌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도(魔道)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인데 그냥 쓸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 냉현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말이다.

‘가만있자. 혈살이라면 개나 소나 생각할만한 외호여서 저놈의 집안도 꽤나 신경을 썼겠는걸? 큭큭큭! 병신들, 하필이면 그런 걸로 외호를 짓냐?’

아닌게 아니라 흑혈이살은 그러한 이유 때문에 웬만하면 따로 떼어놓고 부르지 않았다. 흑살과 혈살은 흔할지 몰라도 흑혈이살이라고 하면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냉현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혈살의 경우, 자네의 예민한 후각에 피 냄새가 잡혀서 기습이 성공한 것이고. 환살의 경우, 중상을 간파하고 치고 빠지는 수법을 사용하여 죽였단 말이지? 하하, 재미있군. 내 듣자하니 자네가 은형포단이라는 것을 취했다던데 한번 볼 수 없을까?”

정보 한 번 빠르다고 생각한 동천은 그것을 냉현이 가진다고 하면 어쩌나, 하면서도 별 의심 없이 자신의 말을 믿고 넘어가 준 부분에 관해서는 안심했다. 만일 그가 계속 의심을 한다면 자신의 무공실력이 뛰어난 부분에 관하여 또 다시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잠시 마음이 느슨해진 그는 생각 없이 은형포단을 꺼내들었다. 헌데, 한 손으로 꺼내어 두 손으로 은형포단의 아래를 받치려는 순간 무언가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툭, 투둑!

“응?”

냉현은 떨어지는 책자들을 보고 순수한 궁금증에 놀람을 터트렸지만 동천은 아니었다. 나중에 돌아가서 찬찬히 읽어본다고 넣어 놓았던 환영혈의 무공비급들이 떨어진 것이다.

‘헉? 이 몸과 같은 천재가 저걸 잊어먹고 있었다니!’

지금 동천은 그 비급들이 떨어졌다고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환영혈의 비급을 취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은 이상 그는 상전을 속이고 우롱한 죄를 면치 못했기에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이것은……. 저기…….”

손을 들어 더 이상 말하지 말하는 손짓을 보인 냉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급들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우연인지 몰라도 비급들은 차곡차곡 쌓이듯 떨어졌는데 그는 제일 위에 떨어진 비급 하나를 집어 올렸다.

“환음살경? 호오, 이들의 비급을 자네가 지니고 있었던가?”

동천은 진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궁색한 변명을 시도했다.

“아, 그게……. 이번에 그자들을 상대하면서 살수란 참으로 까다로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그래서 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지 알아둔다면 앞으로 대비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잠시 훑어보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관계 기관에 넘겨주려고 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건성으로 환음살경을 넘겨본 냉현은 지금의 분위기를 즐기려는지 두어 번 더 살펴보며 동천의 애간장을 태웠다. 돌연 피식 웃은 냉현은 비급을 덮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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