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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97화


“본 각의 물건이라고? 허허, 그게 무엇이던가?”

동천은 내심 콧방귀를 뀌었다.

‘쳇, 늙은이가 알면서 모른 척 하기는…….’

성질 같아서는 수작부리지 말라고 한 소리 늘어놓고 싶었지만 진짜로 그랬다간 칼부림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동천은 애써 참았다. 그는 시치미 뚝 떼고 이야기를 조금 끌었다.

“아니, 환영혈에 관련되어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곳에 올 때 이미 잔심마도 양위에게 환영혈의 몸에서 살예총요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은 귀풍형은 정황 상 틀림없이 약소전주가 지니고 있으면서 튕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허어, 어린놈이 소문대로 영약하기 그지없구나. 무엇을 원하기에 감히 본 좌의 앞에서 줄다리기를 한단 말인가.’

살예총요의 분실사건은 살각만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 일이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비슷한 배분의 고수들은 물론이고, 자신들을 어렵게 대하던 자들마저도 내심 살각이라는 곳을 우습게 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물건만 맞다면 상대의 요구를 수용해줄 용의가 있었다. 물론 일이 성사된다면 상대가 영원히 입을 함구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사실 그것은 이쪽에서 먼저 밝히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네. 자네가 그것의 가치를 안다면 충분히 이해해 줄만한 일일텐데?”

늙은이가 토라졌다고 짐작한 동천은 괜히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는 만큼 이쯤에서 물건을 건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귀풍형으로서는 상당한 것을 요구해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지만 그래도 되는 줄 모르고 있던 동천으로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은 부탁이나 하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하, 죄송합니다. 잠시 어린 혈기로 객기를 부린 듯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원하시던 물건이 아닐까 합니다만…….”

조심스레 추측하는 표정으로 동천이 꺼내든 것은 살예총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합쳐 놓은 것이었다. 결국 동천은 후반부를 살펴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수작 따위는 부리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기는 얼굴로 그것을 받아든 귀풍형은 파본 된 곳이 없나 면밀히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흡족한 표정으로 연신 웃음 지었다.

“허허허, 틀림없이 완벽하군. 큰 은혜를 입었어. 허허허!”

동천은 헤프게 웃는 귀풍형의 모습을 보고 진짜 저 늙은이가 살각의 부각주가 맞는지 의심이 들었으나 살수란 어차피 진실 된 얼굴을 감추는 인간들인지라 그러려니 생각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눈에 뜨여 본 주인에게 돌려준 것일 뿐입니다.”

귀풍형은 동천이 따로 댓가를 받으려 하지 않는 줄 착각하고 얼른 손을 내저었다. 지금 당장에 매듭을 짓지 않는다면 나중에 골치 아픈 결과가 발생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닐세, 아니야. 허허, 이런 은혜를 입고 어찌 인간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되는 것일세. 그렇지 않은가? 자자, 그러지 말고 부담 없이 원하는 바를 말해보게나.”

이제 완전히 살예총요에 관하여 미련을 버린 동천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싶었는지 그만 뜸들이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정 그러시다면 은밀한 소문과 함께 살각의 정예고수들 몇몇을 제게 잠시 빌려주십시오.”

뜻밖의 부탁에 귀풍형이 눈을 크게 떴다.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어렵지는 않겠지만 좀더 자세한 요구사항을 원하네.”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방금 전 냉현과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해준 뒤 이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소문은 은중각에 한정된 소문으로서 그들 쪽에만 몰래 소문을 흘려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전대의 환영혈이 감히 살각의 비전무서를 훔치려다가 실패해서 죽음을 당했다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제가 살각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은중각에만 당도하게 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말입니다.”

“……!”

동천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귀풍형은 이제 누가 약소전주는 싸가지 만빵이고 생각 없이 아랫것들을 괴롭히는 종자라고 정보를 물어온다면 바로 그자의 목을 따리라 생각했다. 오늘 이렇게 실제로 대하고 보니, 그런 소문으로 점철된 인간으로 보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허어! 각주와 나만해도 은중각을 쓸어버릴 생각만 했거늘, 어찌 이리도 놀라운 발상을 했단 말인가. 환영혈이 살예총요를 훔치려다 그 자리에서 죽음을 당했다고 소문을 흘리면 이거야말로 본각의 비전무서가 털린 적이 없다는 효과도 얻을뿐더러 잘만하면 은중각이라는 살수집단도 덤으로 얻는 격이 아닌가!’

내심 감탄사를 연발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동천의 부탁을 허락해준 꼴이 되었다. 동천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양손을 모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부각주님의 현명하신 판단에 감사 드립니다. 그 보답으로 꼭 이번 일을 성공시키고 돌아올 것이니 염려 푹 놓으십시오.”

얼떨결에 허락해준 귀풍형은 이제와 무를 수도 없는 관계로 추가적인 말들은 삼가 하기로 했다.

“알겠네. 그럼 소문을 유포하는 것은 오늘부터 당장에 시작하기로 하고, 정예고수의 차출은 그때 가서 지원해주도록 하지.”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것이라면 전적으로 부각주님께 맡기겠습니다. 헌데…….”

동천이 말끝을 흐리자 귀풍형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이 있는가? 말해보시게.”

동천은 약간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질문을 했다.

“이것은 다른 문제인데 환영혈의 배후는 밝혀졌습니까?”

순간 안색을 굳힌 귀풍형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덮어두는 것이 자네의 신상에 좋을 것일세. 아마도 소교주님께서는 그분의 손으로 직접 처리를 하시려는 듯 보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듣는 동천은 ‘이 늙은이도 이미 알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찌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소교주 정도의 인물이 사주한 자에 관하여 모르겠는가. 만일 몰랐다면 환영혈의 배후를 캐겠노라고 벌써 난리를 쳐도 단단히 쳤을 것인데 말이다.

‘흐응, 그러니까 십 장로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는 교주파로서는 상관은혜의 치기 어린 질투를 덮어줄 생각이로군.’

일 장로에서부터 삼 장로까지는 확실한 교주파였고 육 장로에서부터 구 장로까지는 부교주파였다. 그리고 나머지 중립에 가까운 자들 중에 십 장로는 오 장로를 뺀 나머지 장로들을 이끄는 중심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십 장로만 잡을 수 있다면 교주파로서는 장로 넷의 지지를 거저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과연 야심만만한 소교주가 그런 십 장로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행동을 벌이겠는가? 절대 아닐 것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물론 상관은혜는 은근히 소교주의 눈밖에 났을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영리했던 동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하, 소교주님께서 어련히 잘 처리해 주실 터이니 관심을 끊는 것이 좋겠지요.”

귀풍형은 발을 빼야할 때 뺄 줄 아는 동천의 모습을 대하고는 왠지 흡족하여 미소를 지었다.

‘허허, 대세를 볼 줄 아는 놈이로군. 어쩐지 약전주가 부러운걸?’

그는 생각에 이어 말했다.

“그렇게 하시게. 자아, 그럼 오늘은 이만 여기에서 끝마치기로 할까?”

때마침 볼일을 다 끝마쳐서 눈앞의 늙은이하고 무슨 이야기를 더 나누어야 할까, 고민 중이었던 동천은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바쁘신 분의 시간을 너무 잡아 놓은 듯하여 말리지 못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귀풍형은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허허, 듣기에 좋은 말들만 골라서 해주는군. 알겠네. 그러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동천에게 등을 돌리던 귀풍형은 무언가 생각이 났던지 다시금 동천을 돌아보았다.

“아참, 환영혈의 무공에 관심이 있는 듯 하던데 필요하다면 이것도 자네가 맡아두게나.”

귀풍형이 건네준 것은 뜻밖에도 혈음살경이었다. 너무도 기뻐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그는 실실거리는 얼굴로 그것을 받으려다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예의를 갖추며 혈음살경을 받아들었다.

“생각해서 주신 것을 거부할 담력이 없으니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동천은 그것을 받는 순간에도 귀풍형의 말을 곱씹어 보았는데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수중에 환영혈의 비급이 있다는 것을 상대가 알고서 줬다는 결론을 내리자 과연 살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동천이 환영혈의 몸을 모두 뒤졌기에 살예총요를 얻은 것이니, 연륜이 풍부했던 귀풍형으로서는 잠깐만 머리를 굴리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동천만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연유야 어찌 되었던 환영혈의 비급을 모두 모으게 된 동천은 흥얼거리며 약왕전으로 돌아갔다.

“푸헤헤! 그러니까 은중각을 본교에 흡수하는데 네가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 말이지?”

약왕전에 돌아온 동천을 통해서 사건의 전모를 자세히 알게 된 역천은 기분이 좋아 날아갈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만 잘 벌이면 은중각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곳을 수라마가의 휘하에 놓이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부가 기뻐해서 덩달아 기뻐한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부님. 덤으로 환영혈의 비급까지 얻게 되었으니 살펴보신 후 쓸만하다 싶으면 이 제자에게도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역천은 기특하게도 제자가 힘들게 얻은 비급을 자신에게 바치려하자 흥에 겨워 이미 차려진 주안상에서 술을 연거푸 따라 마셨다. 그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흑흑, 이십 몇 년 전인가 점을 봤던 점쟁이가 하는 말이 조금만 고생하면 말년에 운세가 트인다더니 그 말이 딱 이로구나. 으흐흑! 이렇게 기쁠 때가!”

동천은 말을 마치고 또다시 연거푸 술을 들이킨 뒤에 곰방대까지 뻐끔거리는 사부를 조심스레 제지시켰다.

“사부님, 지나친 음주와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여서 제자가 무슨 말을 하던 간에 감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역천은 눈물을 흘리며 동천의 말을 따랐다.

“흑흑! 오냐, 사랑스러운 제자가 해롭다는데 어찌 이 몸이 계속 술을 마시고 곰방대를 피울 수가 있겠느냐! 내 안 마시겠노라! 내 안 피우겠노라! 그 전에 한 잔만 더하고. 꿀꺽꿀꺽! 캬∼! 쥑인다! 마셔, 마셔! 우헤헤헤!”

아주 맛이 갔다고 생각한 동천은 더 이상의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관계로 시녀들을 시켜서 거처로 모셔다 드리라고 명했다.

“휘유, 사부님께서는 다 좋은데 기분이 좋아지시면 주체를 못하시는 게 탈이란 말야?”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린 그는 어둠이 물든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거처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헌데, 어둑해진 방으로 들어와 화섭자로 불을 밝히려던 그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깜짝 놀라 경계태세를 갖추고 소리쳤다.

“누, 누구냐!”

그의 고함에 침대에서 누군가 꾸물거리는가 싶더니 걸어나오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예요.”

소연의 목소리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오늘 하루 공사다망했던 동천은 지레 겁먹고 놀랐다는 것에 은근히 화가 났다.

“이런 씨! 졸리면 니 방에서나 자빠져 잘 것이지, 왜 이 늦은 저녁까지 거기에서 누워있었던 거야?”

주인님의 호통에 위축된 소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죄송하고요. 어, 어떻게 되셨어요?”

그 말을 듣자 순간 동천은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는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무서워서 여태 내방에 숨어 있었던 거냐?”

동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연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네에, 흑흑. 어떻게 되었어요? 데, 데려가겠대요?”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든 동천은 아무 말도 못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진짜! 어두운 밤에 우는 여자 마주보기가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네?’

그의 마음을 반영이라도 하듯 조용히 한숨을 내쉰 그는 손을 들어 소연의 눈물을 닦아 준 뒤에 차분히 말해주었다.

“야, 소교주가 아니라 그 할애비가 데려간다고 해도 이 몸이 데려가게 놔 둘 성싶으냐? 없었던 일로 하고 왔으니까 마음이라도 졸였으면 가서 세수라도 하고 푹 자. 알았어?”

그제야 안도한 소연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다가 동천에게 안겼다.

“아아! 다행이에요. 다행……. 흑흑, 주인님! 아앙! 전 주인님 없이는 못 살아요, 흑흑흑!”

멋쩍어진 동천은 마음이 격해진 소연이 일종의 고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른 건 다 영악해도 남녀의 관계에서만큼은 평소에 그가 머리에 돌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수련보다도 뒤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울먹이는 그녀를 살짝 떼어냈다.

“옷에 콧물 묻어. 울려면 떨어져서 울어.”

“네, 네에. 훌쩍훌쩍.”

이제야 어느 정도 어두운 곳에 익숙해진 동천은 말없이 소연의 위아래를 슬쩍 훑어보더니 속옷만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말야. 너 언제부터 그 옷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냐?”

화들짝 놀란 소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비명을 지르며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처음에는 순진한 생각에 속옷만 입고 침대에 누워서 기다렸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주인님이 돌아오실 생각을 않자, 종래에는 오만가지 두려운 생각들이 떠올라 덜덜 떨며 침대 속으로 숨어버린 형국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꺄악! 너, 너무해요! 이런 건 진작에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그녀의 항의 아닌 항의에 동천은 침착하게 대꾸해주었다.

“저게 또 놀고 자빠졌네. 야, 어두워서 잘 안보이다가 적응이 되어서 지금 본 거야. 그리고 누가 그것만 입고 내 방에 누워 있으래? 화정이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으면서 꼴에 여자라고 창피하기는 한가보지?”

나름대로 자신의 몸매에 자신이 있었던 소연은 자존심이 상했던지 욱하는 성질에 지지 않고 맞받아 쳤다.

“너무 해요! 화정이의 경우는 너무 발달된 건데! 그리고, 그리고……. 화, 화정이가 하는 말이……, 주인님의 거, 거기도 만만치 않게 작대요!”

“무슨 소리… 뭐어? 너 이 계집애 이리와! 이리 안 와? 너 잡히면 죽는다?”

동천의 아랫도리가 평균치보다 작은 사실은 그가 남몰래 신경을 쓰고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감히 소연이 그 아픈 속내를 건드리자 그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침대에 숨어있던 소연은 속옷바람으로 튀어나와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감히 동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성싶은가?

“자, 잘못했어요! 꺄악, 꺅! 잘못했어요, 주인님! 그, 그저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아악, 용서해주세요!”

아닌 밤중에 소연의 비명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지만 아무도 나와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일에 길들여진 그들은, 그저 ‘소연 아씨도 잘못하면 곡소리 나게 맞는구나…….’ 라고 이해만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용감하게 나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옆방에서 왜들 저러나 싶어서 나온 화정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소연과 함께 얻어맞았다.

“아, 아파! 동천, 아파! 히잉∼!”

“아파? 감히 아프다는 말이 나와? 이 배신자야! 내가 분명히 몇 달 전 뒷간에서 바지를 올리다가 보였을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랬지! 그랬어, 안 그랬어? 야! 그랬어, 안 그랬어!”

머리통을 얻어맞던 화정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 아야! 아, 아프다니까, 동천.”

말이 구타지 차마 심하게는 때리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머리를 치거나 얼굴을 잡아당기기. 아니면 발로 엉덩이를 차기 정도만을 반복하던 동천은 옆에서 반성하고 있어야할 소연이 없자 뒤늦게 그녀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어? 소연, 이 계집애 어디 갔어. 설마, 튄 겨?”

화정이는 언제 혼났냐는 듯 밝게 웃으며 가르쳐주었다.

“헤헤, 소연이는 나 아플 때 동천의 눈치를 보더니 저기로 나갔어. 진짜 빠르더라?”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동천은 한순간 아무 말도 못했다.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그는 소연을 속인 일로 미안해했던 자신이 멍청했다고 생각하며 두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잡으러 뛰쳐나갔다.

“내 이 계집애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다리 몽댕이를 부러트려 줄 테다!”

그새 아픔을 잊어버린 화정이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줄 알고 신나 하며 주인님의 뒤를 바싹 뒤쫓았다.

“나두, 나두! 동천, 같이 가!”

“따라오지마, 계집애야!”

“싫어, 같이 놀래!”

그렇게 부산했던 그들이 빠져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내에는 삽시간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사박사박.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해진 앞마당을 조용히 거닐기 시작했다. 바로 호연화였다. 주변을 감상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던 호연화는 돌연 앞마당의 중간에서 걸음을 멈춘 뒤 발을 사용해 얼굴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귀를 쫑긋한 호연화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하늘을 향해 길게 울음을 터트렸다.

“냐야옹∼!”

다소 가볍고 분주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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