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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06화


“멈추시오!”

객잔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 중 한 명이 다가오는 좌봉공 일행을 제지시켰다.

일단 멈춰준 좌봉공은 여유를 잃지 않고 그들을 대했다.

“이 객잔이 누구의 소유도 아닐진대 자네는 무슨 일로 멈추라고 하는 겐가.”

이마에 긴 상처가 인상적인 사십대의 장한은 무시 못할 기도를 내뿜으며 좌봉공을 압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나, 앞서 노선배의 일행에게 객잔 출입의 불가피함을 정중히 설명하였소이다. 무림의 법도를 아신다면 지금 노선배의 행위는 명백한 도발이외다!”

마주보며 대답하는 상대의 기도는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나 좌봉공은 상대의 기도를 그대로 받아낸 채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했다.

“허허, 다른 곳도 아니고 음식점일세. 더군다나 이곳을 지나치면 한참을 가야만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수밖에 없거늘, 자네야말로 객잔의 한 부분을 잠시만 같이 사용하자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나온다면 본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명은 조리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정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무림이라는 곳이 특히 그 사정에 목숨을 거는지라 장한은 절대로 물러설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좌봉공이 물러서지 않음에 안면을 꿈틀거린 장한은 한번 더 참으려는 듯 어눌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후배는 혈사교 밀막(密幕)의 막주 송구경(送究竟)이라 하외다. 이 후배가 모시는 분께서는 조용히 식사를 끝마치시기를 원하시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거나 이쯤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문제삼지 않겠소이다.”

순간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이유인즉, 그는 도연 같은 놈들만 보면 속이 뒤집혔던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분위기 자체는 틀려 보였지만 말투가 도연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대번에 비위가 상한 그는 내심 분노했다.

‘뭐? 문제삼지 않겠다고? 씹쌔꺄, 문제삼아봐! 삼아봐, 이 씨팔놈의 이마 찢어진 놈아!’

흥분한 동천이 뒤에서 씩씩거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좌봉공은 미소를 살짝 띄웠다가 지워가며 이야기했다.

“자네는 이렇듯 대화로 풀어가고자 노력한 노부야말로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밀막주는 스르릉 검을 빼들었다. 그러자 약속이나 한 듯 주위의 혈사교도들이 병장기를 꺼내들었고, 오행은살수들 역시 무기를 빼들어 대응 자세를 취했다.

허나, 이들 중에서 끝까지 무기를 손에 쥐지 않은 사람은 좌봉공뿐이었는데

섬전비엽전(閃電飛葉錢)

이라는 그의 외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말 그대로 엽전을 주무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히 그러시다면 이 후배의 검이 무정타 원망하지 않길 바라오!”

그것이 신호인 듯 혈사교의 인물들이 신속하게 일정한 자리배치에 들어갔다. 아마도 그들만의 공격대형인 듯 싶었다.

그러자 손안에 무언가를 쥔 듯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쥔 좌봉공은 쓰윽 주위를 살피더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뒤이어 그는 말했다.

“허허, 보아하니 노부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구나.”

순간 막주 송구경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겼다. 그도 그럴 것이 좌봉공의 혼잣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이 후배 또한 혼자서도 충분하나, 모시는 분의 안전을 생각하여 전력을 다해드리겠소이다. 쳐라!”

스스슷!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사교의 무리들은 선제공격에 들어갔다.

헌데, 엉뚱하게도 오행은살수들 쪽에서는 상대하기를 포기하고 객잔 안으로 쏜살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아차, 싶었던 송구경은 뒤늦게 깨닫고 소리쳤다.

“이런, 비겁한! 부막주와 그 휘하는 객잔을 보호하라!”

막주가 급하게 소리치자 푸른 가죽으로 온몸을 둘러 싼 음침한 사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방향을 틀었다.

그 사이 완전히 웃음을 지운 좌봉공은 표정과는 반대로 부드럽게 입을 열며 부단주 일행에게 손을 뿌렸다.

“허허, 자네들은 노부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피, 피해라! 으악!”

무언가 흐릿한 십여 줄기의 물체가 쏘아졌다. 당황한 부단주 일행은 서둘러 무기를 휘두르며 튕기는가 하면 손으로 쳐내거나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대는 등 안간힘을 써댔으나 애석하게도 온전하게 바닥에 착지한 이는 부단주 외에 아무도 없었고, 그나마 부단주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하! 폼만 더럽게 잡고 실력은 하나도 없었잖아? 쳇, 난 또 무게 좀 잡기에 제법 강한 줄 알았네.”

자기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상대를 도발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왜냐하면 송구경이 동천을 무섭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멍청한 것들! 저자는 나 혼자 상대할 것이니 나머지는 신형을 돌려 객잔을 사수하라!”

이를 악문 송구경이 홀로 좌봉공에게 돌진하며 명을 내리자 그의 수하들은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바꾸어 객잔 내부로 내달렸다.

“흥!”

바로 그때 제법 앙칼진 여인의 목소리가 객잔 내부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쾅!’ 소리와 함께 객잔이 일부가 터지듯 박살나며 오행은살수 중 하나가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놀란 동천이 입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오행은살수가 훤히 뚫린 구멍을 통해 보기 좋게 튕겨져 나왔다.

“크으윽!”

가슴팍에 선명한 손자국이 비치는 것으로 보아

장공(掌功)이나 수공(手功)

계열에 당한 듯 싶었다.

뒤이어 나머지 셋까지 곱게(?) 객잔 밖으로 내보낸 정체불명의 여인은 손을 탁탁 털며 새롭게 생긴 입구를 통해 걸어나왔다.

“소공(小公)께서 식사를 다 마치시지 못했거늘, 감히 하찮은 벌레들이 무얼 그리 주워먹겠다고 들어왔던 것이냐!”

타는 듯한 홍의에 도발적인 몸매를 지닌 여인은 어울리지 않게 귀엽게 딴 머리를 양 갈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얼굴만 본다면 청순 가련한 이십대 초반의 여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이미 오행은살수들을 처리한 장면을 보아서인지 아무도 그런 그녀를 여리게 보는 이가 없었다.

“이야, 여걸이네?”

동천은 여인을 그렇게 평했다. 만일 도도한 면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면 혹평을 해주었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으므로 후한 평을 내려준 것이었다.

알다시피 동천은 사정화를 도도한 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여인네를 보면 이유 모를 분노가 치솟았던 것이다.

“여걸? 여걸이라? 호호호!”

다행이 그쪽에서도 마음에 들었던 듯 상쾌하게 웃었다.

곧 웃음을 그친 그녀는 동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꼬마가 보는 눈이 제법이로구나.”

순간 동천은 안색을 팍 구겼다.

‘꼬, 꼬마아아아?’

동천은 바로 평을 바꾸었다.

“이야, 자세히 보니 싸가지 없는 년이네?”

기가 막혀진 여인은 말문이 막혀 입만 뻥긋거렸다.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 분노를 터트렸다.

“뭐, 뭣이? 네놈이야말로 알고 보니 요망한 꼬마자식이로구나!”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신법을 전개한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동천의 앞에 당도하더니 매섭게 손을 쳐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뺨을 후려갈길 자세였다.

‘헉? 뭐가 이렇게도 빨라?’

놀란 동천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려고 했으나 상황에 맞지 않게 그녀의 시선이 다른 곳을 보고 있자 그도 모르게 주춤했다.

동천은 모르고 있었지만 눈앞의 여인은 그의 뒤에서

발검(拔劍)

을 시전 중인 도연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 눈빛이 제법인 놈인데?’

눈을 반짝인 여인은 자세를 바꾸며 도연의 움직임에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도연의 발검에 앞서 엽전 하나가 그녀에게로 날아 들어왔다.

피잉! 섬전처럼 날아오는 엽전을 발견한 여인은 눈꼬리를 치켜 뜨며 그것을 낚아챘다.

허나, 엽전에 실린 힘이 무시할 수 없는 성질이었던지 잡아챈 그녀의 손은 힘겹게 뒤로 밀리는 듯하다가 스르르 멈추었다.

얼굴을 굳힌 여인은 훌쩍 뒤로 물러선 뒤 도연에게서 관심을 끊고 좌봉공을 노려보았다.

“듣기로는 암흑마교에서 엽전을 사용하는 살수가 있다고 하던데 그 사람이 당신인가요?”

좌봉공은 한낱 어린 계집이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저리도 당당하자 맹랑하다 여기는 동시에 상대의 신분이 궁금해졌다.

그는 손안의 엽전들을 매만지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허허, 엽전을 사용한다하여 어찌 다 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여인은 예측했던 대답이 아니자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란 말씀인가요?”

좌봉공은 대답했다.

“성질이 급한 아이로구나.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느니라.”

그러자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본녀가 성질이 급한 거라면 당신은 음흉한 거라고 해야할 거예요.”

껄껄 웃고 난 좌봉공은 손안의 엽전을 튕겨 두 개를 날렸다.

그러자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여인은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냈고, 허공에서는 작은 불꽃과 함께 시원한 쇳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따당! 헌데, 우연인지 몰라도 튕겨져 각도를 달리한 엽전 중 하나가 동천의 면상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 엽전이 튕기자마자 자신에게 올 것임을 미리 예측한 본 동천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찰나간 생각했다.

‘가만 있자. 방금 구긴 체면도 있고 하니 멋들어지게 잡아 챈 뒤에 저년에게 도로 날려줄까? 아냐, 어설프게 날렸다간 피하느니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 흐음, 그럼 피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기로 하고……. 그런데 어떻게 피해야 멋있게 피했다는 소리를 듣지? 살짝 옆으로 피할까? 아니면 철판교를 사용해서 허리를 눕혀? 아냐. 그런 건 별로 멋있어 보이지가 않아. 물론 뭘 해도 멋있는 이 몸이지만 기왕이면 최대한 멋있게 보여야 우매한 것들이 좀더 존경할 터인데 어떻게 피한다? 으음! 어떻게 피해야 무림인들 사이에서 전설의 명장면이었다고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을까나? ……응? 가만, 명장면이고 뭐고 이 몸의 바로 뒤에 도연이 자식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는 것은 잡지 않고 살짝 피한다면 그 자식이 직빵으로 맞는다는? 큭큭큭! 파하하! 좋아좋아!’

찰나의 생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긴 생각이었지만 그런 능력을 지닌 인물이 동천이었으므로 의구심은 갖지 말도록 하자.

어쨌든 도연을 골탕먹이려는 생각에 정확히 엽전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각도로만 살짝 고개를 옆으로 움직인 동천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행복에 잠겼다.

헌데, 누군가가 그런 상황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잘 날아오던 엽전은 예상치 못하게 튕기는 곡선이 급격히 휘어졌다.

“후후, 이런 것쯤이야 눈감고도 피할 수…….”

퍽!

“켁? 아이고, 내 누우우운!”

흡사 눈알이 터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아찔해진 동천은 체면이고 뭐고 바닥을 뒹굴었다. 이런 것과 비교해도 될는지 잘 모르겠지만 황룡미미와 사정화에게 눈을 맞았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과의 비교를 거부하는 통증이라고나 할까? 이건 직접 맞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도저히 말로서는 설명하기가 힘든 그러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놀란 도연이 다가가 뒹굴고 있는 동천의 양어깨를 잡자 그 와중에도 정신을 차린 동천은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치, 치워 쌔꺄! 너 같으면 주먹만한 쇳덩어리가 눈에 부딪혔는데 괜찮을 리가 있을 것 같냐? 우욱! 그건 그렇다 치고 좀 봐봐. 아프고 쓰라리고 눈앞이 뱅뱅 도는 것이 아무래도 이 몸의

용안(龍眼)

이 잘못된 거 같아.”

엄살 아닌 엄살을 떠는 동천의 눈을 자세히 살펴본 도연은 잠시 후 표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주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십니다. 아마도 순간적으로 진기를 일으키시어 눈을 보호하신 듯 합니다.”

그러자 ‘이상이 없다. 이 몸은 약왕전의 소전주다. 이러고 있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라는 연쇄작용을 일으킨 동천은 언제 바닥을 뒹굴었냐는 듯 바닥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어 그는 몸의 먼지를 털고 다시금 폼을 잡았다.

“험! 좌봉공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마저 손속을 겨루어 주십시오.”

좌봉공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예의상 안부를 물어보았다.

“허허, 정말 괜찮은 게요?”

‘아, 저 씁쌔 영감.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나. 괜찮다는데도 못 믿고 저따위로 물어보네?’

안 그래도 폼 잡다가 무너져서 짜증나는 그였는데, 자꾸 방금 전 일을 상기시키자 동천은 그 짜증이 배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어쩌랴. 상대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인인 것을 말이다.

“물론입니다. 큰 경험을 했다 여기고 자숙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같잖게 들렸던지 여인은 크게 웃으며 동천을 비웃었다.

“호호! 아서라, 꼬마야. 차후 거울을 통해 부어터진 눈을 보면서도 과연 자숙의 시간을 가질지 궁금할 지경이거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면 필시 네 엉덩이에서 못난 뿔이라도 날 것이니라. 호호호!”

‘저, 저 빨간 옷 입다가 불타 뒈질 년 같으니라고!’

자신을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계집년이 발칙하여 좌봉공에게 죽도록 패달라는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연 동천은 바로 그 순간 객잔 안에서 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걸어나오자 시기를 놓쳐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자혜(慈惠), 그만하면 되었으니 저분들을 모시고 들어오라는 소공의 명이시다.”

듬직한 체구에 표정까지 무겁고 진중한 것이 패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이 입을 열자 자혜라 불린 여인은 매서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뭐? 먼저 시비를 건 자들인 것을 아시면서도 그리 명하셨다는 말이야?”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간단명료한 청년의 대답에 동천은 혼자 중얼거렸다.

“참나, 저 계집은 지들이 먼저 건 시비를 왜 우리에게 덮어씌우려고 안달인지 모르겠네? 하여튼 누가 입이 두 개 달린 계집 아니랄까봐, 쯧쯧…….”

그 말을 들었는지 자혜가 냉랭해진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꼬마야. 대놓고 꼬마 티를 내서 좋을 것 없다. 더군다나 그러는 너도 그 두 개의 입 중 하나에서 태어나지 않았느냐. 그렇다는 것은 네가 네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니 그쯤에서 입을 다물어라.”

여인인 자신을 욕하는 것은 너를 낳아준 어머니까지 욕하는 것이니 알아서 찌그러져 있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되려 그런 상대의 말을 비웃었다.

“큭큭! 이 몸은 네 두 개의 입만을 나무란 것인데 너야말로 머리가 돌이로구나. 이 몸이 네 두 개의 입 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닐진대 어째서 네 입들을 욕하는 것이 내 자신을 욕하는 것이란 말이지? 설마, 네가 이 몸의 어미라도 된다는 말이냐? 큭큭, 수하가 저렇게 돌인데 상전이라고 다를까 싶구나! 아하! 아하하하!”

그제야 속이 시원해진 동천은 상대를 더욱 약올리려는 듯 배꼽까지 잡으며 웃어댔고, 분노한 자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 녀석! 소공께 질책을 받더라도 네놈의 목만은 따가야겠다!”

맹렬한

검풍(劍風)

이 몰아치는 가운데 소리 없이 그녀에게 다가선 좌봉공은 재빨리 검지를 세 번 튕기며 말했다.

“허허, 그것도 좋지만 어디 한눈을 팔아서야 쓰겠는가?”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엽전을 발견한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그것부터 막아내야만 했다.

“치잇! 누가 살수 아니랄까봐 잘도 기습을 하는군요!”

자혜는 좌봉공을 도발했지만 좌봉공은 여유롭게 그녀의 도발을 되받아 쳤다.

“허어! 그랬느냐? 이거 아무래도 천성인가 보구나.”

일단 그렇게 기선을 제압한 좌봉공은 재빨리 따라붙어 자혜를 물러서게 하려고 했으나 그는 나머지 엽전들을 다 날리기도 전에 옆구리가 싸늘해짐을 느꼈다.

눈썹을 꿈틀한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뒤로 물러섰다.

바로 자혜의 곁에 있던 청년이 도를 휘둘러 좌봉공의 움직임을 방해했던 것이다.

“흐음, 저 아이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실로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서로 대치한 상황에서 좌봉공이 묻자 청년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엽파(燁把)라고 하외다.”

‘엽파? 엽파라…….’

애석하게도 기억에 없었다.

일단 고개를 끄덕인 좌봉공은 자혜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엽전을 막느라 잠시 주춤했던 그녀는 동료가 좌봉공을 막아준 덕분에 재차 공격 중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좌봉공의 예상을 깨고 동천이 아닌 도연과 한 수를 겨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허, 도연이 상전을 위해서 대신 나서주고 있는 모양이로군. 흐음! 실력도 저 나이에 저 정도면 대단하다 하겠고……. 이거 정말 탐이 나는 물건인걸? 음? 허허, 주책 맞게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나도 늙긴 늙었나보군. 자아, 어디 보자. 초식 면에서 겨우 버티고는 있지만 상대와의 차이가 배는 넘는지라 곧 물러서지 않으면 크게 다치겠군. 그렇다면 서둘러 약소전주가 도와주어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텐데 우리의 게으른 약소전주는 무얼 하고 있을꼬? 설마, 상황을 제대로 인지 못하여 아까운 인재만 하나 잃으시려고 하는가?’

좌봉공이 정확한 판단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때 자혜가 득의양양하게 웃어대며 동천에게 말했다.

“호호, 꼬마야. 겨우 네 수하 하나로 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으리라고 보느냐? 어리석은 것 같으니라고! 호호호!”

그녀의 말처럼 도연이 계속 밀리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동천은 한가로웠다.

“글쎄에? 자신 있으면 뚫고 와서 다시 이야기하지 그러셔?”

그녀는 어린놈이 주제도 모르고 계속 자신의 속을 뒤집어 놓자 이를 바득 갈며 손속에 힘을 실었다.

“오냐! 본녀가 오늘 네놈의 목을 따지 않는다면 우문자혜(宇文慈惠)가 아니니라!”

파슈―슉! 갑자기 매섭게 몰아치던 검풍에 무거운 힘까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밀리고 있던 도연은 최후의 내공까지 짜내는 듯 안색이 하얗게 질리다 못해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리고 동천은 그런 도연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에그, 병신. 그것도 힘겨워서 쩔쩔 매냐? 참나, 도대체 저거 뭘 배운 거야?”

자신을 위해 싸워주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속마음은 도연이 숨넘어가는 것은 원치 않았던지 동천은 ‘딱!’ 소리가 나게 손가락을 튕겨 주위를 환기시킨 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무시한 채 쭈그리고 앉아 호연화와 손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 화정이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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