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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08화


드러나는 진실.

“소교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집무실에 앉아 사색을 즐기던 냉현은 조용히 감았던 눈을 뜨며 문밖의 산관에게 물었다.

“누구냐.”

산관은 대답했다.

“독전(毒傳)의 전주호위인

전리염(電利炎)

입니다.”

냉현은 들여보내라는 말도 없이 상대를 문밖에 세운 채 계속 물었다.

“무슨 일로 왔다더냐.”

“귀배의 일로 찾아왔습니다.”

이번의 대답은 산관이 아닌 다른 자의 목소리였다. 보나마나 전리염일 것이리라.

“뭐? 귀배의 일이라고?”

다소 흥분한 냉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묻자 그에 부응하듯 전리염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그 일에 관하여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제야 상대를 마주할 생각이 들었던지 냉현은 전리염을 불러들여 자리에 앉혀 놓고 그에게 물었다.

“무언가 수확이 있기에 이렇듯 찾아왔으리라고 믿는다. 실로 그러한가?”

만일 별 수확이 없는 중간보고에 불과하다면 전리염으로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그에게 다행히도 이번의 보고는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다행히 실망시켜 드리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예, 소신이 이번에 뵙고자 하는 이유는 그 당시 귀배를 연구하던 자들 중에

공야중(空夜重)

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번 일과 아무 연관도 없으리라 보았던 그의 동생이 귀배를 약간 빼돌린 물증을 잡았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눈을 반짝인 냉현은 기이한 웃음을 지으려다 순간 얼굴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귀배가 세상에 퍼지게 되면 소수를 빼고는 해독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들의 씨를 말릴 수도 있는 극악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면 귀배가 유출되었었다는 말이냐?”

그런 냉현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는지 전리염은 확신에 찬 눈빛을 내비치며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전은 물론이고 교주님의 지휘 하에 사활을 걸고 제작에 들어갔던 약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냉현은 앞뒤가 맞지 않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유출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자가 감히 내 앞에서 귀배가 빼돌려졌다는 보고를 올리다니. 지금 네가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전리염은 차갑게 스며드는 소교주의 분노를 몸으로 느끼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자세한 것은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직접 독전에 왕림하시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금 취조를 끝냈기에 아마도 수월한 답변을 들으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으음……!”

확실히 현 상황은 전주호위 따위에게 듣고 말 내용이 아니었기에 냉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삐 움직여 독전에 당도한 그는 마중 나온 독전의 전주 광예를 발견하곤 그에게 물었다.

“귀배에 관한 희소식을 전해주겠다고?”

일단 고개를 끄덕인 광예는 소리 죽여 말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가능한 그것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신 채 소신을 따라와 주십시오.”

흠칫한 냉현은 확실히 흥분한 자신이 경거망동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주위에 서있는 호위무사 둘과 시녀 넷을 잠깐 둘러 본 후 싸늘하게 말했다.

“수고들 했다.”

그리곤 그냥 지나쳐 갔는데 호위무사들과 시녀들은 그런 소교주님의 말씀에 황송하여 고개를 숙였다.

광예는 내심 그들의 운명을 애석히 여기며 전리염에게 따로 지시를 내린 뒤 소교주를 안내했다.

“조금만 더 가시면 곧 취조실이 나올 것입니다.”

냉현은 비록 자신이 가고는 있지만 별로 내키지 않은 듯 그에게 물었다.

“꼭 가야만 하는가? 그런 지저분한 곳이 아니더라도 결과는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광예는 생각 이상으로 소교주가 깐깐하자 내심 너무 깨끗한 것만 추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는 중요한 일인 것과 동시에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소신은 가능한 소교주님께서 그자의 입으로 직접 들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안내하는 것이니 조금은 누추하시더라도 관대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생각한 냉현은 말했다.

“으음, 알겠네. 내 그렇게 하지.”

광예의 체면을 생각한 냉현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독전주를 따랐고 얼마 안 있어 목적지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열어라.”

목적지에 당도한 광예가 지시하자 보초인 듯 보이는 장한이 허리를 숙이며 재빨리 잠긴 자물쇠를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냉현은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취조실의 내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심한 고문을 당한 듯한 육십대의 노인이 의자에 묶여 기진맥진해 있는 것을 보고는 확인 차 광예에게 물었다.

“저자인가?”

“그렇습니다. 공야중의 동생인

공야도(空夜渡)

로서 감히 완성단계 직전인 귀배를 빼돌린 장본인입니다.”

냉현은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지 광예에게 시선을 옮겼다.

“완성단계 직전?”

광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예, 이곳에 오며 전리염에게 들었습니다. 소교주께서는 귀배의 유출에 대하여 심히 염려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 귀배는 완성단계 직전의 것이었습니다. 즉, 공기 중으로는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듣고 보니 안심이 되었던지 냉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광예는 재빨리 대답했다.

“어찌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자신에 찬 독전주의 대답에 안심한 냉현은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갑자기 또 다른 문제가 떠오르자 그는 다시금 안색을 굳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귀배의 효력이 살아는 있지만 공기 중으로 유포가 되지 않는 단계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그러한 것을 활용하지 않고 사장했던 것이지?”

일리는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러한 문제뿐이었다면 독전에서 미쳤다고 귀배라는 물질을 포기했겠는가?

광예는 피식 웃으려고 했으나 자칫 비웃음으로 비추어질 우려가 있어서인지 웃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소신이 부족한 설명을 드려 소교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힌 듯 합니다. 소신이 말한 완성단계 직전의 귀배는 귀배로서의 효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서 진정한 귀배와의 중간 경계선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귀배는 특별한 해독약이 없이도 2갑자의 내공만 있다면 능히 해독해낼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광예는 어딘가 날카로워진 소교주의 대답에 최대한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비단 그러한 것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전에서는 더 이상 건드리지 않기로 하고 귀배의 사장과 함께 그 연구자료도 묻었던 것입니다.”

독전주의 말을 다 듣고 난 냉현은 곰곰이 생각해보는 척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2갑자까지라고 해도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만둔 것인가. 또한 그 중간 단계의 귀배를 잘 활용했다면 다른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냉현은 귀배의 효능에 대하여 상당히 미련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독전의 광예가 미련한 인간이 아닐진대 자꾸 추궁하듯 물어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리시어 실로 위험한 물건에 관심을 끊지 못하시는구나. 하지만 귀배는 절대 다시 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말이다.’

그 당시 귀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겪어보았던 광예는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소교주가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소교주님, 만일 귀배가 강호에 퍼지고 그것에 흥미를 가진 무리들이 연구를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 무리들 중 하나가 본전에서 만든 완전한 귀배를 만들지 못한다는 보장이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아!”

크게 깨달은 냉현이 놀람을 발하자 광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또한 이 귀배는 제작과정 중에 발생하는 변수가 수천에 이를 뿐만 아니라 그 하나 하나를 대응할 때마다 막대한 양의 자금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금을 메우자면 부교주 파의 눈을 절대로 피할 수가 없지요.”

그만하면 다 알아들었는지 냉현은 손을 들어 광예의 말을 막았다.

“됐네! 되었으니 이놈의 입이나 열게 하시게.”

여태껏 두려운 눈초리로 벌벌 떨고 있었던 공야도는 소교주가 자신을 이놈이라고 칭하자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서 네가 저지른 죄를 모두 밝혀라.’ 하고 말하는 듯한 광예의 눈짓에 얼른 입을 열었다.

“죽여주시옵소서. 소인이 그만 황금에 눈이 멀어 형님이 잠시 연구 중이던 귀배의 일부를 빼돌렸나이다!”

냉현은 싸늘히 물었다.

“어디로 말이냐.”

너무도 차가운 목소리에 부르르 몸을 떤 공야도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며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그, 그곳은 바로 약왕전입니다.”

순간 냉현의 두 눈에서

기광(氣光)

이 터져 나왔다.

“뭣이?”

광예는 흥분한 소교주가 살기만으로도 공야도를 죽일 듯 하자 서둘러 그에게 진정하라 일렀다.

“소교주님, 좀더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다행이 큰 문제는 될 것이 없는 인물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말에 냉현은 의아해하면서도 일파의 소교주답게 곧 안정을 취했다.

그는 벌벌 떨고 있는 상대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넘겼느냐.”

“예, 예에. 바로 이공자이신

공영수

공자님이십니다.”

“공영수? 방금 공영수라고 했느냐?”

뜻밖이었던 듯 냉현이 놀란 눈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공야도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틀림없습니다요.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소인이 거짓을 아뢰겠습니까요!”

힐끗 광예를 바라본 냉현은 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눈빛을 보이자 공야도의 대답을 받아들이는 한편, 은밀히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고 꿍꿍이 수작을 부려온 공영수를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그러한 것을 숨기고 우리 쪽에 빌붙어 행동을 했었다니!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어지간히도 간이 부은 모양이구나!’

잠시 이를 간 그는 공야도에게 다시 화살을 돌렸다.

“네놈이 죽고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독전과 경쟁관계에 놓여진 약왕전의 인물에게 그것을 넘겼단 말이냐.”

눈앞이 깜깜해진 공야도는 소교주의 말투와 행동으로 보아 아무래도 살아남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선은 다해봐야 그나마 미련이 없는지라 그는 죽고 싶지 않은 마음에 상기된 얼굴로 그때에 벌어졌던 일들을 소상히 아뢰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하지만 사실과 약간 틀린 것이 독전주님께서는 와, 완성단계 직전의 귀배라고 하셨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오라 그때의 귀배는 제작 초기에서 중기에 이르렀던 물질이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귀배가 산공독에 쓰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때이고, 또한 대외적으로 귀배의 제작을 숨겼던 때도 아니었는지라 그것에 흥미를 가지신 약왕전의 이공자께서 소인에게 은밀히 그것의 일부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을 하시기에 평소 몸이 안 좋아 그분께 많은 도움을 받던 소인으로서는 선뜻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요. 그, 그래서 그때 약포 4개 분량을 주었고 그 뒤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가 않아 잊혀졌던 일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니 부디, 부,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우흑흑!”

별 생각 없이 저질렀던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공야도는 죽음이 앞을 가리자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냈지만 냉현은 그가 죽던 말던 상관할 바가 아니었기에 싸늘하게 그를 한번 쳐다본 후 광예에게 말했다.

“그 당시 연구원이었던 공야중의 동생이 귀배의 일을 알고있는데 어찌하여 처리하지 않았던 것인가.”

광예는 소교주의 질문을 무리 없이 받아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자는 전부 처리했습니다. 허나, 이자는 수박 겉 핥기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서 귀배가 중간에 별로 소용이 없어져 흐지부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무리하여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자 냉현은 그 즉시 질책의 눈빛을 보냈다.

“어찌 장담하고 살려두었단 말이지?”

광예는 상당히 곤두선 목소리이자 이번만큼은 조심스레 냉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부분만큼은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연구원들과 하청인원들은 거의 70명을 헤아렸고, 그들을 조용히 처리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인원이 소요되었기에 가능한 부교주 파를 의식하여 최소의 인원들만을 추려 제거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너무 무분별하게 제거한다면 부교주 쪽에서 내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흥!”

나직이 코웃음을 친 냉현은 공야도라는 인물에게 더 이상 볼일이 없었던지 신형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뒤를 따르는 광예에게 말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면 처리하시게.”

광예는 공야도를 처리하라 이르자 두말 없이 냉현의 명을 따랐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면, 공영수를 부를까요?”

멈칫한 냉현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수고스럽더라도 내가 그쪽으로 가주는 것이 예의일 듯 하군. 크크크!”

그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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