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09화
“훗……. 아무리 생각해도 멋지단 말야?”
마차의 창문에 한 팔을 걸치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쓸어 올린 동천은 다소 몽롱한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평소처럼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던 화정이가 물었다.
“뭐가? 뭐가 멋져?”
동천은 물어볼 게 뭐 있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이 몸이지. 옆으로 보나,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완벽 그 자체 아니더냐. 하하하!”
화정이는 껄껄 웃는 주인님의 얼굴을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확실히 뒷모습은 멋져. 헤헤.”
그러자 가자미눈을 한 동천이 획 돌아보았다.
“뭐시여? 그럼 나머지 모습들은 안 멋있단 말이야?”
어째 분위기가 영 아니자 화정이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활짝 펴댔다.
“아냐, 멋있어. 이∼만큼 다 멋있어. 근데 그 중에 뒷모습이 제일 멋있어. 진짜야.”
동천은 무언가 속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일일이 대응하여 혼내주기도 뭐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그에게는 그러한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기분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신 저 혼자 히히덕 거리던 동천은 품속의 작은 옥병을 만지작거렸다.
‘흐흐,
호심혈왕단(護心血王丹)
인지 호기심황달인지 두 알이나 얻어냈으니 비상시에 두 번이나 회생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푸하하! 프히히히!’
무슨 말인가 하면, 일주일 전에 벌어졌던 혈사교 인물들과의 부딪힘과 관련하여 얻어진 소득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천 측에서는 혈사교의 소교주와 부딪혀서 좋을 일이 없었고, 혈사교 측 또한 암흑마교의 상층부 인물들과 크게 분란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차에 이해관계가 맞물려 화해를 하게 되었는데 즉석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장소량이 ‘약소전주의 수하가 심하게 다친 듯 하니 이것을 복용시켜 보시지요.’ 라며 장소량이 호심혈왕단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동천은 ‘오행은살수들도 심하게 다쳤는데…….’ 라며 지나가는 투로 이야기를 해서 하나를 더 얻어낸 다음 자기가 꿀꺽했고, 이렇게 품안에 보관하며 즐거워했던 것이다.
뭐 굳이 도연과 오행은살수들의 현재 상황을 거론하자면 그럭저럭 거동은 할 수 있는 상태였는데 동천은 그들에게 몸조리를 잘 하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준 뒤 호심혈왕단을 꿀꺽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소전주님 본교에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추어서는 듯 하다가 방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품속의 옥병이 닳을까 염려될 정도로 만지고만 있었던 동천은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밖을 내다본 그는 암흑마교의 출입문임을 확인하고 신분증명패를 내보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반시진 정도를 달려 비로소 약왕전에 당도한 그는 자기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끼며 마차에서 내려섰다.
“후아! 역시 집 중에서 내 집이 제일 좋다니까?”
뒤이어 다른 마차에서 내린 좌봉공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허허, 이번 일에 성과가 있어 다행이외다. 노부는 이제 다친 사람들을 이끌고 약전에 가겠으니 소전주께서는 노부 대신에 약전주께 안부를 전해주시기 바라오.”
동천은 좌봉공에게 오행은살수들과 도연의 처리를 맡겼던 터라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예, 수고를 끼쳐드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먼저 들어가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좌봉공은 다시 마차에 올라타 약전으로 이동했다.
그것을 느긋하게 지켜본 동천은 방삼에게 혼자 가라고 명한 뒤 자신은 걸어간다고 말했다.
“동천, 나도 걸어가?”
동천은 당연한 질문이 들려오자 화정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안 그럼. 기어서 갈텨?”
그런 건 잘 알아듣는지 화정이는 잽싸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야. 같이 걸어갈게. 진짜야.”
동천은 사람들의 눈도 있고 해서 말로만 타일러주었다.
“누가 뭐래? 그리고 네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이 몸이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그런 쓰잘때기 없는 질문은 이제 좀 하지마.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화정이는 밉지 않게 동천의 팔에 매달리며 어리광부리듯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응, 알았어. 말 잘 들을게. 헤헤.”
화정이의 귀여운 짓에 살짝 넘어간 동천은 그녀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곤 살며시 그녀를 몸에서 떼어냈다.
그런 뒤 그는 자신과 화정이를 바라보다가 급히 시선을 돌린 문지기에게로 다가갔다.
“이게 누구야.
하련(賀練)
아닌가!”
어렸을 적 동천이 약왕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문지기 당번을 맡았던 인연으로 서로 알고 지낸 사이가 되어버린 하련은 괜히 동천 일행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사실 화정이의 미모에 혹해서 그녀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예, 하련입니다! 무사히 다녀오셔서
무한영광(無限榮光)
입니다!”
아부를 듣게 되자 기분이 좋아진 동천은 바로 점잖게 폼을 바꾸었다.
“하하, 무한영광까지야. 자네는 그 동안 혀가 상당히 매끄러워졌구먼?”
무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하련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으음, 네놈을 욕하느라 혀를 좀 움직여서 그런가 보다.’
그런 다음 다시 고개를 든 하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심중을 숨기고 말했다.
“어이구,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나저나 전주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터인데 어서 들어가시지요.”
일단 폼을 잡아서 좀처럼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게 된 동천은 턱을 살짝 쓰다듬다가 그에게 말했다.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음, 그런데 말일세. 내 그동안 고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며 이것저것을 샀더니 금전이 조금 달리더군. 그래서 일부 품목을 외상으로 가져왔는데 이를 어쩐다?”
갑자기 눈이 동그래진 화정이는 자신의 주인에게 물었다.
“동천. 외상이라면 그 뭐냐 공짜로 빌려주는 건데 동천이 언제……, 아야!”
결국에 꿀밤을 맞게된 화정이는 정말로 아팠던지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비벼댔고, 괜히 눈에 띠여 생돈이 날아가게 생긴 하련은 눈물을 머금고 주머니에 지니고 있는 은자들을 토해내야만 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미약하나마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약소하지만 요긴하게 사용해주십시오.”
“어허, 이러지 않아도 되네!”
동천은 그 무슨 말이냐는 듯 대뜸 정색했지만 그의 손은 어느새 하련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자네가 정 원한다면야. 하하하.”
뻔뻔하게 하련을 돈을 갈취해간 동천은 그것도 모자라 신입으로 보이는 다른 문지기에게까지 돈을 받아낸 뒤 그에게 일러 길잡이를 시켰다.
“그래, 이 몸이 본교에 안 계신 동안에 별일은 없었는가?”
조금 걷다가 지루해진 동천이 묻자 길잡이 중이던 문지기는 속으로 시팔놈 개팔놈 욕을 하다가 다소 경직된 몸을 비틀어 동천 쪽으로 돌렸다.
“예, 예에.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소전주님이 오시기 일각 전쯤에 소교주님께서 본전에 들어가셨습니다.”
동천은 깜짝 놀랐다.
“뭐? 그 새…… 에로운 신공을 연마중이시라던 소교주님이?”
하마터면 그 새끼라고 말할 뻔했던 동천이 기지를 발휘하여 돌려 말하자 문지기는 자신 같은 신분이 소교주가 새로운 신공을 연마하는지 두들기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내심 투덜거린 뒤 그에게 대답해주었다.
“그,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소교주님은 확실하셨습니다.”
진짜 그가 확실하다고 하자 동천은 혹여 자신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곤 소교주가 미리 도착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로 가신다는 말도 없으셨고?”
문지기는 물어봐야 알 턱이 없는 것들을 자꾸 물어보자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답은 해야겠기에 다소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저희들이야 그저 윗분들께서 들어가신다고 하면 두말없이 열어주어야 하기에…….”
황룡세가에 있을 때 문지기 아저씨들과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 동천은 평소와 다르게 십분 이해해주었다.
더불어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그는 문지기를 향해 빙그레 웃어주며 이야기했다.
“자네는 참으로 성실하군. 혹시, 따로 원하는 자리라도 있는가? 어느 곳에 배치되고 싶다. 뭐 이러한 것 말일세.”
뜻밖의 제안에 황송해진 문지기는 허리를 숙여 좀체 펼 줄을 몰랐다.
“소, 소인은 그저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소전주님의 깊은 배려만으로도 충분합니다요! 소인은 지, 지금 하는 일에 충분히 만족해하고 있으니 괘념치 않으셔도 되, 됩니다.”
사양할 줄도 아는 모습에 더욱 마음에든 동천은 아니라며 손을 내저은 뒤 문지기를 시켜 필기도구를 가져 오라 명했다.
내심 기대감에 흥분한 문지기는 재빨리 근처 의생에게서 양해를 구해 먹을 담뿍 묻힌 붓과 화선지를 가져다 대령했고, 동천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문지기를 바라보며 ‘이 사내는 문지기에 소질이 뛰어난 바. 평생 문지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라.’ 라고 적어낸 뒤 잘 접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자네가 보다시피 이음새에 먹을 찍어 붙여놨으니 펴본다면 큰 경을 치는 것은 물론이요, 효력까지 상실하게 될 것이네. 그러니 조심해서 지니고 있다가 본 소전주를 안내해준 다음, 현재 문지기장을 맡고 있는
연호(然號)
에게 가져다 주게.”
황송해진 문지기는 양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요.”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우선 사부님께로 가세.”
기꺼워진 문지기는 앞으로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동천에게 길을 제시했다.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영수는 언제나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감 잡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는 서책들을 들여다보다가 약재를 살펴보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역시, 어렵군.”
따로 연구하는 것이 있는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읽던 책을 덮었다.
잠시 쉬려는 것이다.
그러자 때를 맞춘 듯 문밖에서 나긋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소교주께서 납시었습니다.”
자신의 전속시녀인
미소(美素)
가 소교주의 방문을 알리자 흠칫한 공영수는 뜻밖이었던 듯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교주님이 이곳엘 오셨다고?”
문밖의 미소는 머뭇거림 없이 대답해주었다.
“예, 틀림이 없사옵니다.”
재차 확인한 공영수는 눈썹을 깊게 미간에 모으며 무언가 잠시 생각했다.
서로 대외적으로 만나봐야 득 될 것이 전혀 없을뿐더러 자신이 찾아가면 찾아갔지 절대 찾아올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만나는 봐야 한다는 것이로군.’
생각을 마친 그는 물었다.
“접객실로 모셨느냐.”
“물론입니다. 또한 외람 되게도 속히 오시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확실하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 공영수는 서둘러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미소의 도움으로 금세 접객실에 당도한 그는 뜻밖에도 독전주인 광예까지 있자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미소하며 소교주와 광예에게 차례로 포권을 취해주었다.
“이렇듯 갑자기 왕림하시어 놀랐습니다.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광예는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찾아온 목적을 말하려고 했으나 곁에 그보다 상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의 예상대로 냉현이 입을 열었다.
“혹여, 10여 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가?”
공영수는 난데없이 10년 전의 일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무슨 의도인지를 알 수 없어 일단 고개를 내저었다.
“글쎄요. 그렇게 막연히 물어보신다면 소신은 난감할 따름입니다.”
냉현은 전혀 반응이 없는 상대의 모습에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바로 표정을 굳히며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아무래도 조금 도움을 주어야 기억해내겠는가?”
공영수는 왜 갑자기 찾아와 이러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으므로 신중하게 대답했다.
“미욱하여 소교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가르침을 바랍니다.”
냉현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는지 말문을 열었다.
“설마하니 귀배라는 것을 모른다고 잡아떼지는 않겠지?”
그제야 흠칫한 공영수는 소교주가 어떻게 자신이 소지했던 귀배를 알고 물어오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더불어 그는 이들이 그것과 관련되어 찾아온 것인 만큼 한번 더 생각해본 뒤에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뗐다.
“그것이라면……, 물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아내셨는지는 짐작하겠습니다만 그것이 어쨌다는 말씀이신지요?”
광예는 그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자 싸늘히 나섰다.
“거기까지 말했거늘 정말 모른다고 잡아 뗄 생각인가?”
공영수는 답답한 마음에 짜증마저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귀배 정도를 빼돌린 것이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닐진대 충성을 맹세한 나에게 이래도 되는 것인가?’
울화가 치밀어 오른 공영수는 안색을 붉히려다 겨우 심신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후우, 솔직히 귀배를 허락 없이 가져온 죄는 인정하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정도로 추궁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광예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했다.
“모른다?”
공영수는 단호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모른다는 자가 감히 귀배를 이용하여 소교주님을 중독 시켰단 말이냐?”
어리둥절해진 공영수는 짜증이고 뭐고 정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실로 예상치 못한 이야기여서 혹여 자신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자 음모에 빠트려 제거하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 무슨 소리요! 그 당시에 가져온 귀배는 그다지 효과도 없었을 뿐더러 그 이후 외부로 유출된 적이 전혀 없거늘! 또한 별것도 아닌 귀배가 어째서 소교주님을 중독 시켰는지도 의심스러울 따름이외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냉현은 흥분한 공영수가 너무도 자신만만 하자 광예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전음으로 물었다.
『저게 무슨 소리이지? 저자는 귀배를 너무도 하찮게 보고있지 않은가. 혹시, 귀배가 완성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그것에 생각이 미친 광예는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빠트린 듯 떫은감을 씹은 얼굴로 대답해주었다.
『10년 전에 공영수는 우리측과 끈이 연결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귀배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또한 우리측으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아무에게나 발설할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입니다.』
냉현은 광예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는 것은 저자가 지닌 귀배로는 나를 해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무슨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
당황한 광예는 진땀을 흘려가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 그렇긴 하오나 장담하시기는 이를 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귀배는 조합에 따라 어떠한 성질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그 당시에 저자가 미완성의 귀배를 얻어 나름대로 연구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냉현은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울러 그는 결심을 한 듯 솔직하게 그동안에 벌어졌던 일을 공영수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차분히 이야기를 듣던 공영수는 그제야 이들이 이렇게 강짜를 부리듯 자신을 몰아 세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고 한가지 집히는 바가 있어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귀배를 따로 연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져온 것을 다 사용한 뒤 새로운 귀배를 만들려고 했을 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약제실 뒷마당에 매장했던 그것이 변종을 일으켜 산공독의 성분을 띄게 되었고, 그것이 식물에 흡수되자 성분이 더 강해진 것을 알아냈던 것인데 나는 이 내용을 저들에게 말해야하는 것일까?’
무림인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마지막 비장의 수를 하나 남겨두듯, 공영수 또한 비밀리에 얻어진 결과물을 남몰래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하나쯤은 비밀무기가 있어야 배신자로서 살아남을 확률이 2배에서 3배는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헌데, 교주 측에게 간과 쓸개를 다 빼준 것처럼 지내왔던 그가 남몰래 숨겨온 연구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밝힌다면 자칫 그동안 쌓아왔던 신임을 단 한번에 무너트리는 결과가 되자 그로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던 공영수는 길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흘려보냈고, 반대로 그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냉현과 광예는 지루한 시간이 계속 흘러가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영수가 무언가 숨기고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탓에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었는데, 결국 기다린 보람이 무색하지 않게 공영수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