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2화
“아~~함.. 잘 잤다. 쩝.. 쩝.. 목이 마르네?”
식탁에 가서 물을 따라 마신 동천은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 동천은 소연을 바라보았다.
“햐… 쟤 진짜 끈질기네…?”
한번 깨어났다가 다시 기절한 것을 알 리가 없는 동천은 침까지 흘리며 잠을 자는 소연을 바라보며, 아예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밖으로 나간 동천은 아직도 비가 오고 있다는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내일이 자신을 위한 날인데 비가 오면 다음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도밖에 없었다.
“하늘님.. 저 비를 그치게 해주세요. 하늘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잖아요. 내일 나한테 선물이 많이 오면, 그중에서 하나 골라서 하늘님께 드릴게요. 부탁해요…”
동천은 자신 있었다. 자신의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았던 일은 결단코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미 일만 빼고..
“자..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갈까? 하하하!”
널리고 널린 게 시녀다. 동천은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자신의 방으로 저녁상을 봐오라고 시켰다. 잠시 후에 음식들이 들어오자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아.. 맛있다. 역시, 저녁밥은 점심밥 다음으로 맛있단 말야? 그리고 아침밥은 저녁밥보다 맛있고.. 또, 점심밥은 아침밥보다 못하고.. 히히!! 내가 말하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그냥 먹기나 하자.”
동천이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구수한 냄새가 방안에 퍼지자 안 그래도 점심을 본의 아니게 못 먹었던 소연은 그 향기에 못 이겨 저절로 눈을 떴다.
“꺄악! 꺄-아악!! 사람 살려….!! 저..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야!! 살려줘요!!!”
갑작스러운 여자의 비명 소리에 맛있게 밥을 먹다 깜짝 놀란 동천은 소연이 창백한 얼굴로 몸을 휘청거리며 겨우겨우 상자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쯧쯧.. 이제 깨어났냐? 그러게 왜…..?”
왜 쓸데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느냐고 말하려던 동천은 눈물을 흘리며 기어 나오는 소연의 등 뒤에서 강시가 천천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동천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소연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꺄-악!!! 주인님!! 꺄악!!”
소연의 발악적인 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동천은 힘겹게 자신에게 달려오는 소연을 얼떨결에 안아주었다. 동천의 품에 안긴 소연은 그제서야 안심을 한 듯 힘을 쭉.. 뺐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시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상자에서 나와 소연에게 멀찍이 떨어져서 멈춘 후 동천 쪽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
“야! 울지 말고 그만 떨어져! 이건 아주 급한 일이란 말야!”
강시가 저절로 움직였다는 것에 대하여 놀란 동천이 소리쳤지만 소연은 막무가내였다.
“흑흑.. 싫어요… 무섭단 말이에요.. 엉엉!! 무서워요…”
강시를 한 번 쳐다보고.. 매달려있는 소연을 쳐다보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동천은 밑이 좀 축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실례를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 뭐야? 응? 킁킁.. 윽!! 야, 이년아! 너, 오줌 쌌지? 이익.. 야! 떨어져!! 더럽단 말야! 떨어져!!”
동천이 힘을 주어 소연의 얼굴을 밀어냈지만 소연은 얼굴이 찌그러지는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마 동천에게서 떨어지면 죽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흑흑.. 싫어요.. 저 밀어내면 똥까지 쌀 거예요… 진짜라구요… 흑흑흑..”
‘이년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소연이 울먹거리며 진짜로 똥을 누겠다는 자세를 취하자 잠시 어이없어하던 동천은 깜짝 놀랐다.
“어? 야! 알았어.. 알았다구! 너 안 떼어 놓을게.. 정말이야! 똥까진 싸지 말어…”
“흑흑.. 정말이죠…”
“이… 씨발! 그래, 이년아!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어?”
“아니요… 으음…”
동천의 말에 안도를 했는지 소연은 다시 기절해버렸다.
‘에이.. 찌린내…’
소연이 눈치채지 않게 속으로 인상을 찡그리던 동천은 소연이 잠잠해지자 의아해서 소연을 쳐다보았다. 조심스레 소연을 관찰한 동천은 기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에이.. 씨발년.”
풀썩…
소연이 기절한 것을 알자 매정하게 소연을 내팽개친 동천은 희한한 행동을 보인 강시에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야! 너 어떻게 일어났냐?”
혹시, 부실한 강시가 아닌가 해서 동천은 벽 뒤에 숨어서 말을 걸었다. 만약의 경우 강시가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杞憂)였고, 강시는 동천의 물음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 웃어? 야! 뒤로 돌아봐!”
강시는 순순히 동천의 말을 따랐다.
“호오.. 부실강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누워봐!”
이번에도 강시가 동천의 말을 따라 바닥에 드러눕자 동천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벽 모서리에서 나왔다. 아까 왜 혼자 일어났을까에 관한 의문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히히히! 좋았어! 야, 이리 와봐!”
명령을 받은 강시는 동천이 의기양양하게 버티고 서 있는 곳으로 일어나서 다가갔다. 가까이 온 강시를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사람보다는 피부색이 약간 창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볼을 잡아서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고.. 신나서 강시의 볼을 마구 당기던 동천은 어디선가 은은하게 찌린내가 풍기자, 그제서야 자신의 바지에도 소연의 오줌이 약간 묻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동천은 얼른 코를 부여잡았다.
“윽! 냄새…. 저 계집애 생긴 것 답지 않게 냄새가 아주 심하네? 에이.. 또 목욕해야 되잖아? 씨이… 야! 나중에 다시 부를 테니까, 상자 안으로 다시 들어가라.”
명령대로 상자 안으로 들어가는 강시를 잠시 쳐다보고 있던 동천은 다시 생각을 바꿨다.
“야! 그러지 말고 내 침대에서 드러누워라. 거긴 좀 딱딱한 것 같다.”
동천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강시는 아름다운 미소를 띄며 동천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유난히도 목욕(沐浴)을 기피했던 동천은 며칠 전에 억지로 떠밀려서 목욕을 한 후 어떻하면 더 버틸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소연 때문에 다시 목욕을 해야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일 사람들과 마주칠 때, 냄새를 풍기며 마주 대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서 그런대로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밖에 나가서 목욕물을 시킨 동천은 그래도 밥은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밥을 열심히 입에 쳐 넣었다. 한참을 먹을 때, 밖에서 목욕물이 준비됐다는 소리가 들리자 동천은 아쉬운 입맛을 달래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에게 소연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 후 욕실에 들어갔다.
“앗.. 뜨거..! 이년들이 내가 미지근하게 데워달라니까 아직도 뜨겁게 데워주네? 으으.. 누구 죽일 일이 있나….”
처음에 여기에 와서 다른 시녀들이 들어와 몸을 밀어줄 때, 너무나도 간지러웠던 동천은 안된다고 울먹이는 시녀들을 물리친 뒤 그 다음부터 자기 혼자 목욕을 했다. 발가락 하나로 물에 넣었다.. 뺐다.. 그렇게 일다경 이상을 버틴 동천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야 겨우겨우 몸을 담글 수가 있었다.
“어… 좋다…….”
무엇이든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기 좋아했던 동천은 평소에 친했던 강표두가 했던 행동을 떠올려 그대로 따라 했다. 흥이 일어난 동천은 즉석으로 노래까지 불렀다.
“청산(靑山)~~~~! 에~헤~~! 날 버리고~ 가신 임은~~! 밤길을 조심해요~~~! 나의 아름다운 칼날이~~! 네 대가리를 노려요~~~~! 랄랄라… 캬!! 끝내준다..”
일명. 날 버린 임의 뒤통수 까기… 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러대던 동천은 어느 정도 몸이 불자 신나게 몸의 때를 밀어댔다.
“그대는~~! 아시나요… 왜 나를 버리셨나요~~! 그대는~~! 아시나요.. 내~ 마음은 찢어진답니다~! 찢어진 이~ 가슴을 꿰매주세요~~~! 천천히.. 천천히~~ 안 아프게 꿰매주세요~~! 아프게 꿰매면….. 나의 아름다운 도끼가~~! 네 대가리를 노려요~~~~! 우히히히-! 난 역시, 일절보다 이절이 마음에 든단 말야?”
생각 외로 많이 나오는 때를 열심히 밀어댄 동천은 욕통에서 나와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준비되어있는 옷가지들을 걸쳐 입었다.
“흥흥흥… 아~ 개운하다.. 상처 때문에 뒷머리밖에 못 감았지만 피로엔 역시, 목욕이 최고란 말야?”
나중에 다시 목욕할 때가 찾아오면 목욕하기 싫어서 지랄을 하겠지만 이미 목욕을 했으니 마냥 좋은 동천이었다. 방안으로 들어온 동천은 깨끗이 치워진 방안의 모습에 흡족해했다.
“자아… 히히히! 자자!!!”
침대로 달려간 동천은 자신의 행동을 낱낱이 주시하고 있는 강시의 눈길에 어깨를 으쓱! 했다.
“야, 뭘 그렇게 보냐? 너도 졸리지? 그러지 말고 잠이나 자라. 이리 와봐. 내가 팔베개 해줄게.”
동천의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강시의 머릴 팔베개 해주던 동천은 얼마 못 가서 강시의 머리를 밀쳐버렸다. 팔이 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반대로 하고 자자. 네 머리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내가 못 견디겠다야.. 알았지?”
말을 알아들었는지 강시는 동천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팔베개를 시켜주었다. 강시의 품에 안긴 동천은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느낌에 기분 좋은 미소를 띄었다.
“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