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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30화


잠시 후 둔덕의 바로 아래에 도착한 동천은 계단도 없이 그저 발을 디딜 정도의 지형지물들만이 간간이 튀어나와 있자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이고는 신법을 사용해서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목조건물은 둔덕에 올라서자 바로 보였다.

“어, 이게 그거였어? 생각보다 별로 안 크네?”

자연적으로 생성된 좁은 둔덕을 평평하게 깎아내어 그 위에 지어 올린 탓인지, 중년여인이 기거하는 목조건물은 멀리에서 보았던 것보단 생각 이상으로 왜소했다.

동천은 더불어 김이 새는 것을 느꼈지만 이제 곧 기연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바로 마음을 곧추세웠다. 사실상 그는 이미 기연을 겪고 난 후였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이렇게 끝이 없는 것이다.

“계십니까?”

동천은 감지력에 걸리는 것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의를 차렸다. 역시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안심하고 제집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 내부를 살펴본 동천은 정갈하고 깨끗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잘 정돈된 방안이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내부로 이어지는 방 하나가 더 있을 뿐, 이 건물은 방 2개가 고작이었던 것이다.

“뭐야. 이게 끝이야?”

방이 2개뿐이라는 것은 실종된 혼천부원들이 이곳에 감금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는 뜻도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종된 자들의 숫자만 해도 총 24명이나 되었는데, 만일 그들이 이곳에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다면 지금쯤 동천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바글거리는 그들 사이에서 비좁다고 투덜거려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아참, 비밀통로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역시 이 몸은 진정한 천재에 근접하고 있다니까?”

새삼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한 동천은 침대와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러나 비밀통로는 고사하고 잘 숙성(?)된 먼지만 한 사발정도 들이켰을 따름이었다.

“콜록콜록! 으아, 이 아줌마는 하다 못해 영약이나 비급 같은 것들도 숨겨 놓지 않았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기에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싸돌아다녔던 거지?”

아무 소득도 없자 동천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삼류소설에 푹 빠져 있었던 동천은 그것을 너무도 맹신한 탓에 고수의 집에는 영약과 비급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혼천부원들의 생사보다는 그것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왔던 것인데 영약은커녕 그 흔한 도라지 뿌리도 없자 동천은 정말이지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악! 이건 말도 안 돼∼!”

이래서 잘못된 주입교육이 무섭다고들 하는 것이리라.

“겁낼 것 없다! 모두 싸그리 죽여라!”

정말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은 따로 있었다. 어디에서 모여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의 쥐 떼가 계곡이 끝나는 부분에서부터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부, 불가합니다! 윽! 으악!”

비좁은 곳에서 둑이 터지듯 밀려들어왔으니 손도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들 정도의 실력이면 아무리 쥐 떼가 몰려온다고 한들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는데, 쥐의 강이라고 할 만큼 밀려드는 쥐 떼의 혐오감이란 고도의 정신력을 소유한 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쥐들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살점을 뜯어내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극도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었다.

“살려줘! 죽고 싶지……, 크억?”

공포에 질려 뒤돌아 도망치려던 일급무사가 단칼에 베여 고꾸라지며 쥐 떼에 휩쓸렸다.

평호는 자신이 베어 넘긴 수하의 시체가 강물 위에서 춤을 추듯 둥둥 떠있어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본연의 임무를 떠올리곤 사방을 향해 외쳐댔다.

“물러서는 자, 내게 죽는다! 조금만 참으면 넓은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터이니 혐오스러워도 참아라!”

평호는 뻘 속을 헤치듯 힘겹게 전진하면서도 지휘자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다.

“으아아악!”

그는 위쪽에서까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힐끔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절벽 위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뒤쫓아 기어올라온 쥐들을 떨쳐내려다가 되려 실족하여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행태(行態)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평호는 정예라고 뽑아온 것들의 저 모양이자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절벽 위로 도망치라고 뽑혀진 게 아니다! 그러고도 본교의 정예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반성 때문인지 어쩔 수 없는 명령 때문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목청을 돋운 평호의 질책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각 당주급의 무인들도 생각보다는 침착하게 수하들을 독려하며 쥐 떼에 대응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몸을 강철 같이 굳히자 쥐 떼에 의한 피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그들은 서둘러 계곡을 벗어났다.

“철혈단주(鐵血團主)님. 피해상황은 어떻습니까.”

혈각의 단주 황절은 완전히 거지꼴이 된 몰골로 대답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몰골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살펴본 바로는 5명의 낙오자가 생겼습니다. 아마도 육체적인 피해보다는 정신적인 부분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멍청하게 있다가 물려 죽은 듯 싶습니다.”

5명의 낙오자는 평호가 베어버린 자까지 포함된 숫자였다.

평호는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어 안심했지만 계곡으로 몰려들었던 쥐 떼가 다시금 방향을 바꾸어 그들에게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이럴 때가 아님을 깨닫고 무리를 셋으로 나누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좁고 넓고의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계곡에서는 허리까지 차 올랐던 쥐 떼들이 이곳에서는 무릎까지 차오르기도 벅차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움직여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덕분에 여유를 가지게 된 그들 일행은 한결 편하게 움직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쥐 떼는 인위적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멀지 않은 곳에 명령을 내리는 자가 숨어있을 것이니 조속히 색출하는데 주력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끄덕인 살각과 혈각의 통솔자들은 움직이기에 앞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

“그보다는 이곳의 주인이 석추양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 듯 싶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자가 쥐를 조종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으음, 듣고 보니까 그렇군요. 분명히 그는 아닌 듯 싶습니다만 문제는 당대에 쥐를 부릴 수 있는 무림인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200년 전의 서풍왕(鼠風王)을 끝으로 쥐를 부리는 자가 등장한 적이 없었지 않습니까.”

살각의 형엽산은 철혈단주의 말투에서 묘한 여운이 느껴지자 날카롭게 물어보았다.

“그 말씀은 석추양이 이곳에 은거하며 서풍왕의 진전을 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철혈단주는 약간 놀라는 듯 하다가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시지요.”

“아, 그러셨군요. 헌데 2당주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만일 이곳의 주인이 석추양이 아니라면 충분히 상대해 볼만하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형엽산은 철혈단주의 말을 받아 평호의 의중을 물었다. 호전적인 마교인들답게 먼저 싸우고 보자는 의견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에 평호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상대가 석추양이 아니라면 확실히 쥐만 가지고는 우리를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목적은 싸움이 아닌 약소전주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본연의 임무를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험험!”

할말이 없어진 형엽산은 낮게 헛기침을 했다.

철혈단주 황절은 자신도 싸워보자고 말하려다가 선수를 빼앗긴 것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자신의 성급함을 감춰준 꼴이 되자 내심 형엽산에게 고마워했다. 별걸 다 고마워하는 철혈단주였다.

“2당주님, 큰일이 났습니다! 하, 하늘에서……!”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던 세 사람은 다급히 끼여든 수하의 외침에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중대사안을 논의 중에 끼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다가 입을 쩍 벌리게 되었다.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방불케 할 정도의 새 떼가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헉? 쥐 떼에 이어서 이번에는 새 떼란 말인가?”

너무도 놀라 움직이는 것도 잊었다가 득달같이 달려드는 쥐 떼에 뒤덮일 뻔한 그들은 재빨리 쥐들을 쳐죽이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엽산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소리쳤다.

“온갖 종류의 새들이 다 모인 것 같소이다! 쥐라면 모를까 맹금류가 섞인 새 떼의 공격을 당한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외다!”

맹금류의 공격은 쥐 떼의 깨무는 공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떼로 몰린 쥐들의 공격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쥐들이야 털어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맹금류의 경우, 날카로운 부리와 칼날 같은 발톱의 공격은 범인(凡人)이 작은칼을 휘두르는 것에 비견될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떼로 이어지는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위험하단 말입니까?”

맹금류의 무서움을 몰랐던 평호는 수석교관의 다급한 목소리에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경악에 가까운 철혈단주의 외침에 묻혔다.

“서, 설마! 만수존자(萬獸尊子) 양극일(陽極一)?”

놀란 평호는 상대를 바꾸어 다시 물었다.

“그 무슨 소리요! 만수존자는 450년 전쯤의 인물이외다!”

철혈단주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만수존자의 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오. 만수존자의 전인이 아니고서야 그 누가 쥐와 새 떼를 자유롭게 부린다는 말씀이오!”

만수존자 양극일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천시하던 동물조련의 일인자였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무림을 활보하던 자였는데, 그런 그를 광대 취급했던 한 문파가 일주일 후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등에게 몰살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천하는 경악 이전에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아무리 놀림을 당했다지만 무고한 생명들을 가차없이 맹수들의 먹이로 던져주었으니 이 천인공노할 만행에 어찌 무림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섬서성(陝西省)에서 일어난 이날의 참변으로 의기투합한 섬서의 무림인들은 대략 30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양극일을 급습했지만 결과는 전원몰살이었다.

개중에는 운 좋게 지옥도(地獄圖)에서 도망친 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동물만큼 추적에 능통한 존재가 없었던 만큼, 결국엔 그들도 잡혀 운명을 달리하고야 말았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무림공적이 되어버린 만수존자는 무림 전체를 상대로 싸우게 되었는데 아무리 그가 뛰어난들 개인과 다수의 싸움에서는 분명히 그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맹수들을 다 소진하고 쥐를 비롯하여 새 떼까지 동원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만수존자. 그때까지만 해도 무림인들은 그들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수존자에게는 숨겨두었던 비장의 한 수가 있었으니…….

바로 3천년 이상을 살아온 천붕(天鵬)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한 수를 꺼내든 만수존자는 마지막 순간에 전설의 영물인 천붕에 올라타고는

‘어리석은 것들! 본좌가 힘이 없어서 밀렸던 것인 줄 알았더냐? 천만에! 그저 본좌의 능력을 우습게 아는 너희들에게 약간의 능력만을 사용하여 잠시 놀아주었던 것일 뿐이었느니라! 하하하하!’

라는 오만한 외침을 들려주며 하늘의 점이 되어 사라져버린 전설의 대마두였다.

이런 만수존자로 인하여 입은 인명피해는 자그마치 1300여명. 그야말로 닭 쫓던 개꼴이 되어버린 무림인들은 허탈과 분노를 교차시키며 만수존자의 종적을 찾아 미친 듯이 천하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10년간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가자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잠정적으로 추적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수존자 하나를 찾기 위하여 뿌린 돈이 어마어마한지라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재정이 파탄 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원한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추적의 불씨를 계속 지펴갔지만 결국엔 그들조차 만수존자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200년 전에 등장한 서풍왕이 만수존자의 진전을 이어받아 쥐들을 부리게 되었다고들 입을 모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서풍왕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일리가 있는 말이구려! 일단 피하고 봅시다!”

심각해진 평호가 다급히 후퇴를 명했지만 안색이 굳어진 철혈단주는 침을 꿀꺽 삼킨 뒤에 입을 열었다.

“이미 늦은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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